그 카페의 실용적이며 아름다운 가구, 스튜디오 이이
우연히 방문한 브런치 바에서 스튜디오 이이의 나무 가구를 마주하고, 이곳이 궁금해졌다. 유연하게 디자인된 가구를 통해 상업 공간의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 내는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

지하 스튜디오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독특하게도 난간이 없었다. 오전까지 작업 중이던 가구들은 그 계단을 따라 곧 오픈할 LP바로 옮겨졌고, 아직 정돈이 덜 된 작업실 한가운데 놓인 큰 테이블에서 스튜디오 이이(Studio EAEA)의 오지훈 디렉터와 마주 앉았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 우진이 개인의 습관과 신체 사이즈에 꼭 맞춘 가구를 만들 듯, 스튜디오 이이는 나무를 주재료로 사람과 공간에 조화로운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정형과 비정형, 직선과 사선이 공존하고, 그 사이를 편안하게 오가는 사람들. 오지훈 디렉터에게 가구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 스튜디오 운영 방식과 디자인 원칙, 그리고 이이가 참여한 프로젝트에 대해 물었다.
Interview
오지훈 스튜디오 이이 디렉터

스튜디오 이이의 시작
스튜디오 이이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스튜디오 이이는 2021년 9월 합정동에서 시작한 가구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현재 저를 포함해 총 6명이 디자인과 제작을 함께 하며, 재미있게 가구를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저희의 슬로건은 ‘Expanding & Nearing’으로, 확장(Expanding)과 접근(Nearing)이라는 뜻이에요. 두 단어 모두 ‘EA’가 들어가죠. 처음에는 한자로 떠날 이(離), 가까울 이(邇)를 사용해 가구의 프레임이 붙고 떨어지는 개념을 담았고, 이후 영어로 변형해 현재의 표기와 슬로건을 정하게 되었어요.
확장과 접근이라는 슬로건에는 어떤 의미를 담았나요?
‘확장’은 저희가 다룰 수 있는 가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고, ‘접근’은 고객과의 소통을 의미해요. B2B든, B2C든 고객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디자인하고 싶거든요.


이이의 시작이 궁금해요. 디렉터님이 가구 디자인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가구를 시작하게 된 얘기를 하려면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데요, 원래는 대학을 목표로 공부했지만 삼수 끝에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미련이 사라졌고,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철없던 시절이긴 하지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아버지께 프리젠테이션까지 하면서 오토바이를 샀어요. 서울 곳곳을 여행하며 제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클래식 스쿠터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요. 특히 영국의 모즈(mods) 같은 서브컬처를 통해 의복, 스타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개념을 배운 것 같아요. 이후 패션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과 관계를 쌓는 것, 막무가내로 부딪히는 용기를 익혔어요.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도 즐겁지 않았고요. 그때 하루하루가 지루해서 시간 가는 일을 찾던 저에게 친구가 한번 나무 수저를 깎아보라고 한 거예요. 별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그 친구 집에서 8시간 동안 집중해서 작업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가구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 상암동에 있는 아트 퍼니쳐 기반의 가구 전문 제작소에서 가구를 배웠어요. 가구를 배우면서 3년 정도 개인 작업을 하다가 지금의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었어요.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고 가구가 좋아서 시작한 것도 아닌데, 초반 디자인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디자인이나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오토바이를 꾸미거나 패션 매거진에 있을 때도 정답은 없지만, 사실상 정답 같은 조합이 존재하잖아요. 어떤 아이템들을 조합하면 좋을지, 조합의 정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어요.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로 개념을 정립한 후 형태를 만들어가는 프로세스를 따르면서 재미있게 저만의 방식을 만들어 나갔어요.
학교라는 울타리 없이 업계로의 진입이 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학교 대신 다른 인프라를 얻은 것 같아요. 서브컬처와 패션을 경험하며 알게 된 친구들이 지금은 어엿한 큰 브랜드를 운영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이의 팀원들은 어떻게 모였나요?
사실 지금까지 채용 공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한 친구가 합류한 후 그 친구가 주변의 다른 친구를 데리고 왔고, 그렇게 인연이 이어지면서 지금의 팀이 되었어요.

다양한 팀원들과 스튜디오를 꾸려 나가는 지금, 이이의 운영 방식이 궁금해요.
저희는 회사라기보다는 조합에 가까운 개념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요. 물론 월급도 정상적으로 지급하지만, 수직적 관계보다는 컴패뇽(compagnon, 동료)으로서 서로가 동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는 방식을 지향해요. 장 프루베(Jean Prouvé)의 회사 운영 철학에 많은 공감을 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각자의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능력과 특성을 지니고 있잖아요. 누군가는 디자인을 특출하게 잘하고, 누군가는 제작을 더 잘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누군가 부족한 부분을 묵묵히 채워주고요. 모든 면에서 균형 잡힌 ‘육각형’ 같은 사람이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은 드물어요. 중요한 건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특별히 팀원들에게 바라는 모습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이 딱 좋아요.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작업이 고되기 때문에 분위기를 밝게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요, 다들 웃음 욕심이 많아요. 하루 동안 누가 가장 많이 웃겼는지에 집중하면서 작업을 합니다. (웃음)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가구 디자인 원칙
이이의 작업 영역을 크게 디자인과 제작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공간과 가구 디자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초기 컨셉 기획과 도안 단계부터 클라이언트와 긴밀히 소통하며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나가요. 가장 먼저 무드보드를 공유받아 방향성을 설정하는데요, 저는 그 무드를 나라나 도시로 해석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이거 뉴욕 느낌인데?’ 하는 식으로요. 핀터레스트를 보기보다는 구글맵에서 찾은 도시들에서 영감을 얻고요. 무드를 바탕으로 컨셉을 정리하고 수종과 텍스처를 제안한 후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최종 디자인을 완성해요. 저희는 어떤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고객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를 수용하는 유연한 접근 방식을 선호해요. 이이의 목표 또한 하나의 ‘색깔’을 가지지 않는 것이고요. 팀원 5명의 색깔이 작업물로 계속 보였으면 좋겠거든요. 카멜레온처럼요. 제가 무드나 방향성을 정한 뒤에는 프로젝트마다 가장 적합한 팀원이 PM을 담당하죠.




노노스탄테, 2024
가구 디자인 김상우(스튜디오 이이)
가구 제작 스튜디오 이이
페인트 샤인 디자인
공간 디자인 윤주노
그럼에도 디자인에서 차별성과 독창성이 발휘되는 지점이 있다면
새로운 디자인은 없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껴요. 레퍼런스 없이 창작했다고 해도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과 유사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을 검증할 방법도 없고요. 형태적 독창성보다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수제 초콜릿과 와인을 페어링하는 ‘노노스탄테’ 작업에서는 영화 〈윙카〉에서 착안해 디자인한 장이 있어요. 주인공 윌리 웡카가 들고 다니며 초콜릿을 만드는 트렁크가 있는데, 그 요소를 초콜릿을 만드는 이 공간에 가져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디자인할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완성된 공간에 가구 디자인만 필요한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 같은데요, 공간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요. 공간이 미니멀하다면 가구가 주인공 역할을 해 포인트가 될 필요가 있고, 반대로 공간이 화려하면 가구는 심플하게 디자인해 균형을 잡아줘야 하죠. 공간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살피며 디자인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 사람들은 처음에는 개성 강한 디자인을 선호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미니멀한 것을 원하기도 하잖아요. 그 패턴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저희 가구가 쉽게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이 공간에서 오래 살아남아라’ 하는 마음으로 디자인하는 것 같아요. (웃음)
수종의 선택에서도 이이만의 특징이 담길까요?
한국에서는 하드 우드가 흔히 얘기하는 고급 가구에 사용되는 재료인데요, 대표적으로 레드 오크, 월넛, 메이플 같은 목재가 여기에 해당하죠. 반면, 소프트 우드인 송(소나무)은 이름처럼 하드 우드보다 밀도가 낮아 가볍고 휘기 쉬운 특징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송이 단순히 저렴한 대체재가 아니라, 가구를 더 가볍고 실용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재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송을 많이 사용하려고 해요. 찍힘이나 내구성 문제는 일반 오일 칠이 아닌 우레탄 도장으로 마감을 두껍게 올려서 보완할 수 있어요. 이런 부분은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호 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쓸 수 있는 목재가 제한적인 만큼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어떻게 활용할지, 어떤 마감 처리를 해야 할지 꾸준하게 공부하며 대안을 찾아가고 있어요.



메이커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는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이미 설계된 가구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작만 필요한 경우에는 적합한 수종과 구조 설계에 집중해요.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형태가 종종 피상적인 매스 디자인일 때가 있는데요, 수축과 팽창, 휨 등 원목의 특성을 고려해서 실현 가능한 형태로 조정하며 과정을 거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죠. 예를 들어 의뢰받은 디자인이 그대로 제작되기 어려운 경우, 단순히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로 어렵지만 이렇게 구조적으로 풀면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대안을 제시하려고 하고, 이런 방식이 신뢰를 형성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이이 인스타그램에서 프로젝트 외 팀원들의 디자인 작업물을 볼 수 있는데요, 따로 판매하는 제품인가요? 디자인, 제작, 사진 등 작업자의 이름을 드러낸 크레딧의 이유도 궁금하고요.
아니요, 판매하지 않아요. 조금 재미있는 시스템인데, 팀원들이 만들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있어요. 대신 비용은 제가 부담하고요. 그렇게 완성된 샘플을 팀원이 원하면 가져가기도 하죠. 그 디자인이 훌륭한 디자인이면 그다음에도 훌륭한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크레딧을 나눠 가져가는 것은, 개인이 한 작업이 회사 이름으로만 귀속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기여를 인정하는 거예요. 저는 디자인을 하는 이유가 인정 욕구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욕구를 회사라는 틀로 가둬버리면 점점 지칠 수밖에 없다고 봐요.
온라인 가구 판매를 준비 중이라고요. 처음 선보이는 제품은 어떤 건가요?
저희는 장을 판매할 예정이에요. 지금 샘플이 여기 작업실에 있는데 거울과 수납이 결합한 형태로, 평소에는 수납장으로 사용하다가 돌려서 거울로 쓸 수 있어요. 특히 오피스에 구석 공간이 죽잖아요. 그런 구석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디자인했어요.
의자나 테이블이 아니네요? 앞서 시그니처 디자인이 없다고 해서 처음 선보이는 의자가 이이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했거든요.
장이 시그니처 디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이이의 DNA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 놨을 때 예쁜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게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공간의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면에서요.

URT, 2024
가구 디자인 설인수(스튜디오 이이)
가구 제작 스튜디오 이이
공간 디자인 라이프앤웍스
페인트 샤인 디자인
가구를 디자인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과 놓일 공간을 함께 고려하는 작업이군요.
맞아요. 저희는 특히 F&B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카페를 작업할 때 클라이언트가 “여기 서랍 왜 넣으셨어요?”라고 물으면 “컵 어디에 보관하실 건가요?” 같은 질문을 던져요. 또 화장실 앞에 서랍을 디자인해 배치했을 때 “이게 꼭 필요한가요? 이것 때문에 비용이 추가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반응에 “화장실용품 여기에 넣으셔야 할 것 같은데, 화장실에 상부 장이 없어서”라고 설명해요. 그러면 클라이언트도 그 필요성을 이해하고 만족하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히 가구를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기능과 사용성을 최적화하는 요소로, 실제 운영과 사용자의 동선도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스튜디오 이이가 있는 장소들


에이치비비 스튜디오 팝업, 2024
가구 디자인 김상우(스튜디오 이이)
팝업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이이
케이터링 캐피 서울
모션 그래픽 스튜디오 렌즈
오브제 권병휘
지난 연말에 공간과 가구 디자인으로 참여한 에이치지비비 스튜디오(HGBB Studio) 팝업은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에이치지비비 스튜디오는 덴마크 코펜하겐과 서울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남성복 브랜드에요. 제 친한 친구인 이상찬 디자이너가 운영하고 있어요. 친구와 덴마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덴마크의 문화가 담긴 브랜드를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보통 팝업은 방문객들이 옷이나 그 안에 담긴 콘텐츠를 보면 끝나는 형식인데, 그렇게 풀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덴마크가 인본주의적이고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나라라고 생각해요. 팝업 공간에도 그런 요소를 담고 싶었죠. 방문객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둘러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존을 구성했어요. 공간 총괄을 맡은 저희를 포함해 덴마크 원두를 공식 유통하는 캐피, 목공예가 건병휘 작가, 스튜디오 렌즈 등 네 개의 브랜드가 참여했는데요, 친구의 브랜드를 빛나게 하기 위해 이렇게 모인 것도 덴마크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팝업을 위해 나무 가구를 제작한다는 결정은 어떻게 했나요?
그 부분은 팝업이 끝난 후에도 가구를 활용하는 것으로 풀어냈어요. 모자가 진열된 메인 존의 장이나 테이블 모두 에이치지비비 스튜디오의 서울 오피스 사이즈에 맞춰 제작해 팝업 종료 후 그대로 오피스로 옮겨져서 사용되고 있어요.
저는 블레스 브런치 바(Bless Brunch Bar)를 방문하고 스튜디오 이이를 알게 되었는데요, 블레스 브런치 바의 디자인 컨셉은 무엇이었나요?
블레스 브런치 바는 이전에 작업한 클라이언트와 함께한 두 번째 프로젝트였어요. 서울에 브런치 바를 오픈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듣고 함께 현장을 방문했는데, 예상보다 공간이 작아 당황했죠. 지난해 여름이었는데, 뙤약볕에서 시멘트를 쌓아 타일을 바르고 있는 클라이언트를 보고 함께 시멘트를 날랐던 기억이 나요. 디자인은 여러 번 시안을 수정하며 최적의 설계를 고민했고, 핵심 컨셉은 서양의 카페나 브런치 바에서 영감받은 외부 테라스에 있어요. 테라스가 전면부에 보였을 때의 느낌이 확실히 다르거든요. 그리고 나무와 나무가 만나는 접합부의 간격을 띄어서 테이블의 틈을 만든 것도 이국적인 느낌을 연출하기 위한 요소였어요. 좁은 공간에서 테이블의 틈이 개방감을 더하기도 하고요. 사소한 부분인데, 이런 사소한 부분을 저희가 잘 건드리는 것 같아요.



블레스 브런치 바, 2024
가구 디자인 김상우(스튜디오 이이)
가구 제작 스튜디오 이이
테라스의 테이블 디자인이 굉장히 독특해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기보다는 사용성을 고려한 디자인이었어요. 좌우로 출입이 가능하고 펜스 역할을 해야 했거든요. 와인 칠러와 와인 잔을 거치하는 구멍 같은 재밌는 디테일도 야외 공간에서 안전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가구뿐만 아니라 공간 전반을 담당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는 감각을 경험한 현장이었어요. 제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베이스가 항상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된 현장이기도 했고요. 블레스 브런치 바는 굉장히 좁은 공간인데 기존 좌석 수보다 두 좌석을 늘렸어요. 이를 위해 벽에 벤치석을 만든 건데요, 공간이 다소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도 사람들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또 가구 제작 과정에서 세 가지 수종을 혼합해 사용했는데, 수종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처음 생각과 달리 결과적으로 잘 어우러졌고, 사람들이 수종을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에디션덴마크 서촌, 2023
가구 디자인 김상우(스튜디오 이이)
에디션덴마크(Edition Denmark)의 여러 공간에서 스튜디오 이이의 가구가 많이 보여요. 세 번이나 함께했는데, 어떻게 시작된 작업이었나요?
에디션덴마크가 서촌 수성동 계곡 앞에 첫 쇼룸을 오픈했을 때 제가 바로 옆 카페에서 일을 했어요. 바게트 잘라 드리고 저는 에디션 덴마크에서 꿀을 사며 인사하는 사이였죠. (웃음) 당시 저는 오전에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오후에는 가구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그걸 에디션덴마크 이지은 대표님이 알게 되었고, “언젠가 함께 작업해보자”고 얘기했던 게 시작이었어요. 처음 요청받은 작업은 커뮤니티 스페이스를 조성하는 거였는데, 작업을 하면서 일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거예요. “이거 성수에도 필요할 것 같은데?” 하면서 성수 에디션덴마크(현재 밋보어 서울 by 에디션덴마크)를 위한 테이블과 의자도 만들고요. 사실 그때는 공간적인 개념도 없었고, 하나하나 주변에 물어보면서 배우며 공사했던 공간이라서 더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예요.

유동룡미술관, 2022
기획 및 디렉팅 유이화
가구 디자인 석운동
가구 제작 스튜디오 이이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 ITM 유이화건축사사무소
2022년 12월에 개관한 제주 유동룡미술관 1층의 책 선반과 테이블, 벤치는 메이커로 참여한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닐까 하고요. 가구 디자인은 석운동이 맡았고, 스튜디오 이이가 제작을 진행했어요.
이타미 준 선생님은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건축가이고, 그분을 위한 공간에 작업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경험이었어요. 가구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벅차오르는 작업이었지만, 난관이 많았던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1층 ‘먹의 공간’은 선생님의 저서와 작품집을 모아놓은 라이브러리인 동시에 사유하는 공간인데요, 원형 공간을 둘러싸고 벤치와 테이블, 책 선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대형 가구를 제작하고 설치해야 했어요. 구조 자체가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에서는 “빨리 포기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할 정도였죠. (웃음) 실측에만 3일이 걸렸고, 설치 작업은 4일 연속으로 진행했어요. 모두가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처음 15mm~20mm로 두었던 오차 범위도 실제 과정에서 5mm까지 줄였고요. 그렇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이 프로젝트는 모든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운 좋게 끝난 현장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서 추억도 많아요.



제작이나 설치 과정에서 메이커로서 고민한 디테일이 있다면
원목의 수축과 팽창을 제어하기 위해 도브테일(dovetail, 주먹장맞춤)로 작업했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책 선반을 본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달았을까, 궁금하게 만들자였어요. 고정 방식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데 시간을 정말 많이 투자했어요. 지금 가서 보면 어디에 고정했는지 모를 거예요.
지난 연말에는 전시 〈그루터기: 시간이 만든 자리〉에도 참여했어요. 독거노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의자를 제작했는데,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연말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한 전시였어요. 저는 흔들의자가 가족의 삶을 관통하는 가구라고 생각해요. 임스 부부가 임신한 직원들에게 선물한 락킹 체어(Eames Rocking Chair)도 흔들의자이잖아요. 외국 영화에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자주 등장하고요. 아이가 태어나면 수유하는 공간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휴식 공간이 되었다가 나이가 들면 추억의 회상하는 공간이 돼요. 여러 순간을 함께하는 가구로, 이 흔들의자가 어르신의 삶의 여정을 담을 수 있는 가구라고 생각했어요. 겉보기에는 단단하고 우아하지만, 안쪽을 들여다보면 우드카빙 기법으로 새겨진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내면에 깊이 새겨진 흔적을 포함한 모든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멋진 삶의 일부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다행히 어르신께서도 이 의자를 좋아하셨다고 해서 기뻤어요.
가구 너머의 이야기


일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클라이언트가 작업물을 보고 좋아할 때 가장 기분이 좋죠. “이 공간을 다시 작업하라고 해도 똑같이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족감이 커요.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사실 저는 혼자가 아니잖아요. 함께하는 멤버들에게 이유 모를 책임감을 느껴요. 월급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오는 책임감이 아니라, 이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서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그 시기에 저와 함께해주고 있다는 것에 늘 고마움을 느끼거든요. 친구들에게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서, 그것을 조금씩 증명했다고 느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나요?
초심과 이어지는 부분인데,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 병원을 해보고 싶었어요.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가 소통하는 기본적인 공간이 책상이잖아요. 저는 대화 속에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믿는데, 제가 만든 가구 위에서 그런 중요한 일이 이뤄진다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병원 외에도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싶어요. 특별히 가리는 게 없어서 여러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새해를 맞아 올해의 계획을 들려준다면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은 아직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는데요, F&B 공간 2곳과 LP바 1곳, 그리고 패션 편집숍 1곳을 준비하고 있어요. 3~4월까지는 일정이 꽉 차 있는 상태예요.
마지막으로 스튜디오 이이의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해요.
제 꿈이 한국을 대표하는 홈퍼니싱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가구만이 아니라 향수, 수건 등 다양한 생활 제품까지 포함하는 것이죠. 공간은 작은 요소 하나로도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예를 들어 아무리 멋진 가구가 있어도 주변이 디자인적으로 어울리지 않으면 공간의 완성도가 깨져요. 내가 만든 것들로 집을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