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 만나는 한지 공예의 재해석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 2024' 앵콜전

오는 5월 12일까지 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 전시 <봄을 오르다>가 진행 중이다. 고유의 시선으로 전통 공예 재료인 한지를 해석한 디자이너, 작가, 스튜디오 등 7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 만나는 한지 공예의 재해석

서촌라운지에서 지난 3월 19일부터 오는 5월 12일까지 전통 공예 재료인 한지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전시 <봄을 오르다>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23년도 추진 사업으로 프랑스 파리 ‘메종&오브제 2024’에서 선보인 전통 한지를 활용한 예술 창작품과 그 가치를 이어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 오프닝 행사 모습 사진 피스피스


서촌라운지에서 만나는 한지 공예

무엇보다 전시가 열리는 장소가 흥미롭다. 전통가옥 한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가꾼 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 전시가 열리는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작품들과 공간의 결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서촌라운지는 공공한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다. 1층 내부 공간은 외부 마당을 포함해 전시 및 프로그램 운영을, 2층은 휴게 및 서재 공간으로 한옥과 한국의 주거 문화에 관한 서적들로 채워져 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1층 내부 공간과 외부 마당 일부에서 만날 수 있다. 전통과 현대를 융합해 기획된 서촌라운지의 전시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전시의 깊이감을 더한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3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라이카 대표 작가이기도 한 이갑철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산타 바바라 미술관, 아시안 아트뮤지엄 등 국내외 유명 에술 기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흑백 사진 ‘무제’를 한지에 프린트한 작품을 소개했다. 사진 피스피스

한편 이번 전시의 핵심 키워드는 ‘재해석’이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 3세대를 대표하는 이갑철 작가와 숯을 이용한 다양한 조형물을 선보여 온 박선기 작가의 작품을 바이그레이, 스튜디오 누에, 김선희, 스튜디오 포, 스튜디오 신유 등 젊은 세대 크리에이터들이 고유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작품을 선보인다.


한지로 이어진 창작자들

세대부터 작품 성향까지 제각기 다른 창작자들을 이어주는 건 다름 아닌 전통 공예 ‘한지’이다. 이갑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지 위에 자신의 작품을 출력했다. 흑백 사진 ‘무제’를 선보였는데 자연 속에서 포착하는 음영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이 작품으로부터 바이그레이의 심지선 작가, 스튜디오 누에의 김지은 작가는 영감을 얻어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이들은 시간, 사유, 자연의 흐름을 재해석한 작품 속에서 강조해 표현한다.

바이그레이 심지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지를 바탕으로 투각 기법과 바람에 날리는 실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 피스피스

바이그레이의 심지선 작가는 소재의 순수함을 표현하며 패브릭 아트를 바탕으로 작품을 소개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지의 비치는 물성을 활용해 눈길을 끈다. 특히 조각 기법 중 하나로 면을 깎거나 도려내는 투각 기법을 이용해 빛이 투과되도록 해 작품 스스로가 음영을 만들어 내도록 했다. 이를 통해 한국의 계절과 날씨의 다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스튜디오 누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지은 작가는 식물 작업가이자 화도(華道)가로 불린다. 이번 전시에서 심지선 작가와 마찬가지로 한지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자연과 음영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이갑철 작가의 흑백 사진에서 영감을 얻은 ‘여정’과 ‘풍경속으로’는 다양한 두께의 한지를 자연물 형상으로 정교하게 자르고, 이를 여러 겹으로 쌓아 독특한 음영감을 연출한다.

정교하게 자른 한지를 여러 겹으로 쌓아 만든 스튜디오 누에 김지은 작가의 작품들 사진 피스피스

특히 행잉 설치 작품 ‘여정’은 한지의 제조 과정을 식물의 모티프와 연결 지어 눈길을 끈다. 한지는 질긴 닥나무의 섬유질이 으깨지고 벗겨지며 만들어지는데, 탄생에서 소멸로 귀결되는 식물의 생존 주기를 연상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물의 희생을 통해 작품으로 재탄생한 작업을 통해 자연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도 인상적이다.

식물 모빌 작품과 함께 식물 연출도 맡은 스튜디오 누에 사진 피스피스

한편 스튜디오 누에는 식물 모빌 작품뿐만 아니라 공간 내 식물 연출까지 도맡았으니 이를 염두에 두고 전시장을 거닐어 보길 권한다.


한지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

박선기 작가의 작품과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 역설적인 건축과 가장 작은 건축을 각각 이야기한다. 사진. 피스피스

이갑철 작가와 함께 이번 전시에 참여한 박선기 작가는 숯을 이용한 모빌 작업을 소개했다. 그의 작업의 특징과 한지를 모티프로 스튜디오 신유, 김선희, 스튜디오 포는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인다.

스튜디오 신유의 작품 ‘트레이’와 그 위에 놓인 스튜디오 포의 작품 사진 피스피스

2019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첫 번째 영 앰버서더 선정 작가인 스튜디오 신유(신용섭, 유승민)는 박선기 작가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건축적 조형성을 표현하기 위해 보편적인 건축 양식 ‘기둥-보’ 구조를 활용했다. 행잉 모빌 작업으로 박선기 작가가 ‘역설적인 건축’을 이야기했다면, 스튜디오 신유는 한지 가구를 통해 ‘가장 작은 건축’을 이야기해 눈길을 끈다.

빛의 순간을 채집해 다양한 매질의 연구를 통해 빛의 속성을 드러내는 김선희 작가도 박선기 작가의 작품 속 건축적 조형미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는 한지를 아교포수 한 뒤 모서리를 물로 용해해 한지 고유의 질감을 살려 공간감을 만들었다. 작품을 통해 한지에 반영되는 광량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한지의 물성을 재조명하고, 한지의 시간성을 살펴보는 조형 작품이다. 무엇보다 일상 속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조명 제품으로서 실용성이 높다는 점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스튜디오 포의 유은정 작가가 제작한 작품 ‘단색의 군상’ 사진 피스피스

‘감싸다’라는 뜻의 한자 ‘包(포)’를 사용하는 스튜디오 포의 유은정 작가는 여러 가지 자연물을 금속으로 감싸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손으로 한지를 일일이 찢고, 겹겹이 쌓아 올려 수작업으로 빚어낸 달항아리 모양의 작품 ‘단색의 군상’을 선보인다.

표면에서 보이는 못의 배열은 시각적인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는 한지와 사람의 오랜 역사를 표현한 것으로 군상과 군집을 나타낸다. 사진 피스피스

한지의 찢김과 비침의 특성을 중첩해 ‘모노톤’의 형상을 지닌 작품의 실체는 바로 향낭이다. 이는 때로는 향을 품기도 하고, 때로는 향을 확산하는 한지의 물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작품의 물성과 형태와 더불어 눈여겨볼 건 바로 작품의 표면. 열한 개의 면면에 하나씩 뚫어 넣은 못의 배열은 시각적인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는 한지와 사람의 오랜 역사이자 ‘군상과 군집’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한지에 대한 창작자들의 다채로운 관점이 바로 이번 전시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시간을 초월하는 공예의 아름다움을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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