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리우 지아쿤
물처럼 장소에 스며드는 건축
건축계의 노벨상, 2025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중국 건축가 리우 지아쿤(Liu Jiaku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기념하는 긍정적인 건축을 제시한다는 평을 받은 리우 지아쿤의 건축 세계를 소개한다.

건축계의 노벨상, 2025년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주인공은 바로 중국의 건축가 리우 지아쿤(Liu Jiakun). 그는 2012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왕슈(Wang Shu)에 이어 상을 수상한 두 번째 중국 건축가로 눈에 띄는 조형보다 삶을 품은 공간, 기능보다 감정을 담은 건축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아왔다.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그는 형태가 아니라 정서를, 외형이 아니라 진정성을 건축으로 표현한 인물이다”라며 “리우 지아쿤은 유토피아와 일상, 역사와 현대성,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처럼 상반되는 개념들을 얽어내며, 평범한 시민들의 삶을 기념하는 긍정적인 건축을 제시한다.”라고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급변하는 도시화와 경제 성장 속에서도 전통과 지역성, 그리고 공동체를 외면하지 않는 그의 건축가로서의 태도가 높게 평가되었다. 심사위원장이자 2016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는 “도시는 보통 기능을 분리하려고 하지만, 리우 지아쿤은 그와 반대되는 접근을 택해 도시 삶의 모든 차원을 통합하는 섬세한 균형을 유지한다.”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끝없이 단조로운 주변부가 만들어지는 도시에서, 리우 지아쿤은 건축물, 인프라, 조경, 공공 공간을 동시에 창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의 작업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시대에 도시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강력한 단서를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소설가를 꿈꾼 건축가
1956년 중국 청두에서 태어난 리우 지아쿤은 직계 가족 대부분이 의사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일찍이 그림과 문학에 흥미를 보이며 창작가로서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던 중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건축’을 처음 알게 됐고, 이후 1978년 충칭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해 건축가로서의 꿈을 좇기 시작한다. 그는 당시를 두고 “건축가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시절에도, 그저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낮에는 건축학도로 공부하고, 저녁에는 소설을 쓰며 소설가를 꿈꿨기 때문이다. 졸업 후 국영 기업 청두건축설계연구소에서 근무할 때도 그의 이중생활은 이어졌다. 낮에는 설계를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건축과 소설을 오가는 생활은 곧 그의 건축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소설을 쓰는 것과 건축을 실천하는 것은 서로 다른 예술 형식입니다. 이를 의도적으로 결합하려 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제 이중적 배경 때문인지, 서사적 특성이나 디자인 속에서 시를 추구하는 등 제 작업에는 이 둘 사이의 본질적인 연결이 존재합니다.
리우 지아쿤
글쓰기는 곧 그의 건축에 있어서 문학적 상상력과 자신만의 서사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특히 1993년 상하이 미술관에서 동료 건축가의 전시를 본 리우 지아쿤은 건축이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1999년 청두에 자신의 건축사무소 ‘지아쿤 아키텍츠(Jiakun Architects)’를 설립했고, 지역성과 공동체 중심의 건축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기 시작했다.
물처럼 장소에 스며드는 건축
리우 지아쿤의 건축은 단순한 양식이나 조형미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반복 가능한 공식보다는, 각 프로젝트가 놓인 맥락과 장소성, 사회적 상황에 따라 고유한 해법을 고민한다. 이러한 태도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적 위기에 직면한 오늘날 건축이 어떤 자세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킨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축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정신적 정체성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현실을 다룬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술과 지식 그 너머에서 ‘상식과 지혜’를 디자이너의 도구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실천은 현장에서 삶을 관찰하고, 장소의 기억을 수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의 프로젝트는 단지 하나의 구조물이 아닌, 일상생활의 새로운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한다. 청두의 웨스트 빌리지(West Village) 같은 사례에서 그는 밀도가 반드시 폐쇄성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며, 공공성과 공동체의 재구성을 통해 개방성과 공유 가능성을 건축적으로 실현해냈다. 이는 도시와 사람 사이의 새로운 ‘공존’의 방식을 제안하는 지적인 해법이었다.

건축은 무언가를 드러내야 합니다 — 그것은 지역 사람들의 고유한 특성을 추상화하고, 정제하며, 가시화해야 합니다. 건축은 인간의 행동을 형성하고,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고요함과 시의 감각을 제공하고, 연민과 자비를 불러일으키며,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리우 지아쿤

한편 리우 지아쿤의 건축은 늘 장소와 사람, 기억과 감각을 중심에 둔다. 대표적으로 쑤저우 황실 벽돌 박물관(Suzhou Museum of Imperial Kiln Brick)과 후후이산 메모리얼(Hu Huishan Memorial) 같은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자 인프라고, 동시에 역사적 기록이며 공공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들 공간은 개별적이면서도 집단적인 기억을 환기시킨다. 건축이 단지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사회적·정서적 구조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셈이다.



아울러 그는 높거나 낮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각 지역의 자원과 장인 정신에서 출발하는 ‘적절한 수준의 기술’을 건축에서 추구한다. 루예위안 석조 미술관(Luyeyuan Stone Sculpture Art Museum), 루저우 얼랑진 톈바오 동굴 지구(Tianbao Cave District of Erlang Town) 재생 프로젝트 등이 이러한 접근의 실천적 사례이다. 지역에서 조달 가능한 재료로 공간을 구성하고, 자재의 진정성을 존중하며, 재료 그 자체가 말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그 결과물은 시간이 흐르면서도 그 가치를 유지하며, 오히려 자연스럽게 노화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은 감동을 전한다. 결국 리우 지아쿤의 건축은 ‘존재하는 건축’이다. 물처럼 스며들고, 머무르고, 흘러가며 그 자리에 어울리는 형태로 변화한다. 단순히 건축가 한 명의 창작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이 반영된 집단적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기억하고, 서로를 발견한다.
리우 지아쿤의 대표 건축 프로젝트 5
2025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리우 지아쿤(Liu Jiakun)은 그저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공동체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삶의 무게를 기억하며, 장소와 사람을 이어주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건축은 언제나 구체적인 장소에서 출발하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과 감정을 품는다. 리우 지아쿤의 다섯 가지 대표 프로젝트를 짚어보며, 그의 건축 철학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실현되었는지 소개한다.
웨스트 빌리지 (2015)
중국 청두시


중국 청두시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웨스트 빌리지(West Village)는 단순한 상업 지구가 아니다. 주거, 상업, 예술, 커뮤니티 기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즉, 도심 속 공동체 실험장과도 다르지 않다. 리아 지아쿤은 밀도와 개방성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조건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았다. 일반적인 상업 복합시설과 달리 비정형적 디자인인 ‘대형 중정’ 구조를 택한 점이 눈길을 끈다. 마치 하나의 커다란 분지처럼 조성된 웨스트 빌리지는 중앙에 큰 중정이 자리하고, 그 안에 더 작은 대나무 중정을 다층적으로 배치했다. 모든 공간이 개방되어 있어 방문객이 공원처럼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눈길을 끄는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중정의 실루엣을 따라 이어지는 고가의 러닝 트랙이다. 조깅과 자전거 주행을 위한 공간으로 도심 속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적 장치다. 옥상과 지면 사이에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구조로 내부 동선을 입체화했는데, 그 덕분에 건축 전반에 있어 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단순한 복합시설을 넘어 살아 있는 공공 공간으로 불리는 이유다.



(오른쪽) West Village, photo courtesy of Jiakun Architects
대나무로 구성한 중정도 눈여겨볼 점이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사랑받아 온 대나무 그늘 아래의 여가 생활 방식을 계승하고 재해석했다. 과거의 공동체적 기억을 오늘날 도시 환경 속에서 되살렸는데, 기억과 감각, 장소와 사람을 건축의 중심에 두는 리우 지아쿤의 건축 철학이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시계 박물관(2007)
중국 청두시

중국 청두시의 젠촨 박물관 지구(Jianchuan Museum Cluster)에 자리한 시계 박물관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건축으로 표현한 공간이다. 리우 지아쿤은 과거 시계탑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박물관을 건축하며, 전통적인 시계 구조와 현대적인 공간 구성을 조화롭게 결합했다. 그는 붉은 벽돌과 콘크리트를 활용해 세 개의 전시관을 기하학적인 볼륨을 가진 공간으로 구성했는데, 각각의 전시실은 조명과 재료의 질감이 모두 다르게 구성되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상징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천장을 둥글게 개방한 원형 전시관이다. 중앙의 원형 천장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시곗바늘처럼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한편, 리우 지아쿤은 공간의 순환형 동선을 연출해 관람객이 마치 시계의 내부를 따라 걷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벽과 바닥에는 시간의 층위를 암시하는 재료의 디테일이 스며있고, 각각의 전시 공간은 고유한 조도와 색감으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시계 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건축 자체가 기억과 정체성을 담는 시계가 되어 하나의 역할을 수행한다. 시간의 축적을 건축 언어로 해석한 리우 지아쿤의 해석과 위트가 돋보이는 프로젝트다.
후후이산 메모리얼 (2009)
중국 청두시
후후이산 메모리얼(Hu Huishan Memorial)은 2008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희생된 15세 소녀 ‘후후이산(Hu Huishan)’을 기리기 위한 추모 공간이다. 작고 절제된 형식을 가진 건축물의 모습이나 그 안에는 깊은 상실감과 고요한 애도가 담겨 있다. 외부는 석고로 마감된 삼각 지붕 구조로, 재난 이후 설치되었던 임시 구호 텐트를 연상시키며, 리우 지아쿤은 재난 직후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이곳 건물 내부는 오직 작은 피프 홀을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다. 분홍색 침실이 재현되어 있는데, 생전 후후이산이 사용하던 소지품을 고스란히 배치했다. 이를 통해 리우 지아쿤은 한 소녀의 삶을 한순간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건축이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적 기억으로 어떻게 치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억과 장소의 결합을 구현된 복합적인 감정의 장은 건축이 기억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쓰촨 미술대학 조소과 (2004)
중국 충칭시
중국 충칭시 쓰촨 미술대학 조소과 건물은 상층부가 외부로 돌출된 비정형적이고 각진 형태로, 하나의 건축적 조각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리우 지아쿤은 제한된 대지 조건 속에서 내부 공간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강렬한 조형적 언어를 드러냈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외벽, 비대칭적이고 유기적인 볼륨은 마치 조각가가 형태를 빚어내는 창작 제스처를 연상시킨다.


외장 마감에는 주변 산업적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녹슨 철색(rust-toned) 금속 패널을 사용했다. 인위적인 장식을 배제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질감을 통해 재료 자체가 말하도록 한다. 리우 지아쿤은 재료의 진정성을 중시하는데 건축이 외부 환경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기억을 축적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녹슨 색조는 공업 도시 충칭의 맥락과 조각이라는 예술 장르의 물질성을 동시에 반영하는 상징적인 요소인 셈이다.

이 건축물은 단순한 교육 시설이 아니라, 창작과 감각, 기억이 어우러지는 살아 있는 조형물이다. 공간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실험할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사람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리우 지아쿤은 이 건물을 통해 건축이 단순히 형태나 기능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람, 환경, 시간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는 감성적인 풍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톈바오 동굴 리노베이션 프로젝트 (2021)
중국 쓰촨성 러산시

중국 쓰촨성 러산시 얼랑진 톈바오 동굴 지구 재생 프로젝트(The Renovation of Tianbao Cave District of Erlang Town)는 리우 지아쿤의 공동체 중심적 건축 철학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지역은 과거 유명한 랑주 술의 생산지였지만 낙후된 동굴형 주거지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리우는 이 지역에 철거가 아닌 보존과 재구성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기존 지형과 동굴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며, 안전성, 위생, 생활 동선을 현대적으로 개선했고, 지역 주민과 긴밀히 협력해 공공 공간, 공동 부엌, 커뮤니티 센터를 조성했다.



특히, 프로젝트의 핵심 공간 중 하나인 문화 센터에는 거울처럼 반사되는 전시장과 기암절벽과 자연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돌출형 리셉션 홀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은 방문객으로 하여금 자연과 역사, 지역 문화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또, 지역의 술 문화와 동굴 주거의 흔적을 활용해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한 이 프로젝트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을 연결하고, 장소가 지닌 정체성을 되살리는 데 주력했다.


이 프로젝트는 단지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들 간의 신뢰와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우 지아쿤은 이 건축을 통해 건축이 사회적 연대를 회복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사람,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공간이 무엇인지를 실천적으로 제시했다.‘철거와 개발’이 아닌 ‘보존과 회복’을 선택한 톈바오 동굴 지구 재생 프로젝트는,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감성적이고 현실에 뿌리내린 건축 전략의 진면목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