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피시 엔터테인먼트 아키텍츠 CEO, 레이 윙클러
해외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콘서트나 페스티벌 무대를 보면 문득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온갖 조형물과 특수 효과가 등장하는 무대는 누가 디자인하는 걸까? 상당수는 영국의 ‘스투피시 엔터테인먼트 아키텍츠Stufish Entertainment Architects(이하 스투피시)’의 작품일 확률이 높다. 비욘세, 마돈나, U2, 아델 등 글로벌 뮤지션들이 최고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스투피시의 문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설립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일하는 비결을 듣고자 CEO 레이 윙클러Ray Winkler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업계를 향한 애정과 간결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그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스투피시는 스스로를 ‘엔터테인먼트 건축사 사무소’로 정의한다.
우리는 엔터테인먼트와 건축을 결합해서 새로운 틈새시장을 만들어냈다. 스투피시는 공연과 쇼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 물류, 기술, 설비 등 실무적 측면과 더불어 감성적 부분, 디지털 경험까지 복합적으로 접목한다. 쇼의 스펙터클과 공연장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기반으로 공연과 건축을 조화롭게 결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업계에 우리 회사와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투피시는 무대 디자이너 겸 건축가인 고 마크 피셔Mark Fisher가 1994년에 설립했다. 그는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U2 등과 함께 일했다.
마크 피셔는 한마디로 로큰롤과 건축을 처음으로 결합시킨 사람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그가 무대 디자인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이전까지 알음알음 이루어지던 가내수공업에 불과하던 이 일을 오늘날의 전문 직종으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건축을 공부한 당신을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끌어들인 매력은 무엇이었나?
많은 사람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고 새로운 영감을 선사한다는 것. 전통적인 건축사 사무소의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자유롭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보통 건물 하나를 설계해서 결과물을 확인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무대 디자인은 건축 설계에 비해 훨씬 빠르게 진행되며, 결과물 역시 매우 다채롭다. 이 업계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클라이언트들도 내가 이곳에 몸담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평소 스투피시만의 디자인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없다. 뮤지션들과 협업해 그들을 위한 맞춤형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디자인에 임하며 스투피시만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종종 함께 일할 아티스트를 선정하는 기준을 묻는 질문도 받는데, 그 또한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뮤지션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모든 기회와 도전적인 시도를 환영한다.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려면 다양한 영역의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일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칫 최초 기획을 무너뜨리진 않나? 이를 끝까지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크리에이티브를 완성하는 일은 항상 협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뮤지션을 위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고 이를 발전시키려면 우리 팀에게는 없는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안무가, 조명 디자이너, 영상 디자이너 등은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매번 기쁘게 생각하며 환영한다. 디자인 작업을 할 때는 뮤지션이 공연하는 데 최선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관객이 최적의 방법으로 공연을 감상하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한국인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스투피시의 프로젝트는 2023년 블랙핑크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무대였다. 한옥 지붕을 형상화한 디자인이 인상 깊었다.
디자인 개발 과정에 블랙핑크 멤버들과 YG엔터테인먼트 측이 긴밀하게 관여했다. 소속사에서 보내준 한국 전통 건축 관련 자료를 보며 깊이 연구했다. 한옥 특유의 아름다운 기하학적 요소를 살펴보는 것이 디자인 프로세스의 출발점이었다. 한국 문화와 건축에 경의를 표하며 이를 무대 디자인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한옥 지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수백 미터 떨어진 관객들의 시선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독창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완성된 디자인에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사각형 조명 모듈 6개를 배치해 공연 내내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첨단 기술을 수렴하는 것 역시 중요할 것 같다.
첨단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빠르게 새로운 것으로 교체된다. 그렇기에 매번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기술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을 돕는 보조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면 최신 기술을 작업에 접목할 수 있지만, 기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
요즘 엔터테인먼트업계와 관련해서 주목하는 트렌드나 사건이 있나?
지난해 런던의 아바 아레나에서 열린 버추얼 콘서트 ‘아바 보야지ABBA Voyage’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 공연 개막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가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길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공연도 충분히 성공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했으니 말이다. 업계 전체에 새로운 가능성과 크리에이티브를 열어줬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스투피시가 앞으로 어떤 기업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지 궁금하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탁월한 아이디어로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보여주는 곳.



스투피시 CEO 겸 디자인 디렉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건축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던캘리포니아 건축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하며 무대 디자인과 이동형 건축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96년 스투피시에 입사해 레니 크라비츠, 로살리아, 블랙핑크, 엘튼 존 등 글로벌 아티스트들의 공연 무대 디자인을 진두지휘했다. stufi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