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도쿄 다이칸야마에 스며들다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에 논픽션의 첫 번째 일본 시그니처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1층은 브랜드의 제품을 경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스토어, 2층은 감각적인 카페로 구성되었다. 향에서 맛으로 이어지는 브랜드 경험부터 조현석 공간 디자이너 인터뷰까지.

도쿄 시부야에서 단 한 정거장 떨어져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간의 결이 흐르는 곳. 다이칸야마는 낮은 건물과 오래된 주택, 풍성한 녹음이 어우러진 거리 위에 감도 높은 카페, 편집숍, 츠타야 다이칸야마 T-사이트 같은 공간이 밀집한 동네다. 문화와 디자인, 여유로운 일상의 미학이 공존하는 이곳은, 도심의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리듬으로 호흡할 수 있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그 중심에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논픽션’의 일본 첫 번째 시그니처 스토어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도쿄에서 만나는 첫 번째 스토어
자기만의 루틴과 감각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논픽션은 향을 통해 내면의 힘을 깨우는 일상의 리추얼을 제안하는 브랜드다. 고요하고 절제된 미학, 섬세한 향 조합, 감각적인 비주얼을 바탕으로 일상을 위한 감성적 경험을 설계해 왔다. 2019년 서울에서 시작한 논픽션은 향수, 보디케어, 핸드크림, 홈 프래그런스 등 리추얼에 기반한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며 뚜렷한 미감과 내러티브로 국내외에서 팬층을 넓히고 있다.


그런 논픽션이 일본에 처음 오픈한 시그니처 스토어는 단독주택의 정서를 그대로 살려 완성되었다. 브랜드 고유의 조용하고 절제된 감도를 공간 곳곳에 스며들게 하면서도 지역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와도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도록 세심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다. 도쿄 다이칸야마역 바로 옆에 위치해 여행자에게도 최적의 위치일 터. 논픽션 도쿄 다이칸야마는 2층 규모로, 층마다 다른 경험을 제안한다. 1층에서는 논픽션의 향수와 보디, 홈 리추얼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고 구매할 수 있으며, 2층에는 브랜드 최초의 카페가 자리해 감각적인 음료와 디저트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브랜드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전체 공간과 가구 설계는 논픽션의 오랜 파트너로 함께해 온 공간 디자이너 조현석이 진행했다. 규칙적인 기둥 구조를 지닌 건물의 특성을 살리면서 선과 면이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는 조형적 간결함 속에서 논픽션 특유의 정제된 미감을 전달한다. 이러한 구조적 미니멀리즘 위에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더해지며 문화와 예술과 공명하는 브랜드의 태도가 조용히 드러난다.
공간에 깃든 예술 작품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뉴멕시코 출신으로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마들렌 코벤(Madeline Coven)의 비정형 조명이다. 정돈된 인테리어와의 대비되는 조형은 하나의 오브제로 기능하며, 공간에 우아한 긴장감을 더한다. 1층에는 섬유 예술가 장연순 작가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아바카’라는 자연 섬유를 쪽물에 염색하고, 다리고, 재봉하는 전통적인 공정을 수차례 반복해 완성한 이 작업은 빛과 공간을 만나며 깊이 있는 입체감을 자아낸다. 아크릴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온 윤라희 작가의 작품들 역시 스토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논픽션과 5년째 협업해온 작가의 작업은 제품과 공간을 자연스럽게 잇고, 그 안에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특히 주목할 만한 오브제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민재 작가가 논픽션을 위해 제작한 테이블이다. 퀼팅 처리된 유리섬유와 레진으로 제작된 이 테이블에는 램프가 삽입되어 있다. 해가 지고 불이 켜지면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공간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작가는 이 작업을 “램프인 척하는 테이블”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그 유쾌한 별명처럼 조형성과 기능성을 넘나드는 이 작품이 다이칸야마 스토어만의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논픽션의 감각을 맛보다


2층에 마련된 카페는 논픽션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공간이다. 브랜드의 시그니처 향에서 영감을 받은 음료와 디저트를 통해 논픽션의 감각은 미각과 시각으로도 확장된다. 요모기 라떼, 바질 레몬 스프리츠 등은 향을 재해석한 메뉴이고, 로고를 형상화한 바닐라 카라멜 케이크와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디저트도 준비되었다.
카페 디자인 역시 브랜드의 세계관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다. “단순히 예쁜 카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논픽션의 세계관을 연결해서 보여주고 고객 경험을 더 깊이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서 공간 자체는 기존 논픽션에서 추구해온 방향성과 크게 벗어나지 않되, 메뉴나 플레이팅에서는 분위기를 환기하는 위트를 담고자 했습니다.” 브랜드 관계자의 말처럼 포크, 접시, 티팟 등 플레이팅 요소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큐레이션 했다.


1층과 마찬가지로 카페의 접시와 컵, 화병 또한 국내외 다양한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작은 금속 화병은 금속 공예가 윤여동 작가의 작품으로, 생화 장식과 어우러져 공간의 색다른 무드를 더하는 섬세한 장치다. 조희진 작가가 운영하는 이스트스모크의 세라믹 접시와 윤여동 작가의 참 장식이 달린 포크는 디저트에 시각적인 재미와 감각을 입힌다.
논픽션의 향을 온몸에 입히고 맛보며, 브랜드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곳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한편, 공간을 이루는 수많은 결정 뒤엔 디자이너의 시선이 있다. 조현석 디자이너가 전하는 논픽션 도쿄 다이칸야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조현석 공간 디자이너
공간과 가구를 설계한다. 이번 논픽션 다이칸야마 프로젝트에서 논픽션 시그니처 스토어와 논픽션 카페의 공간과 가구 설계를 맡았다. johyunseok.kr
논픽션과의 협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진행한 논픽션 프로젝트에서 유지하려고 했던 공간 디자인의 고유한 미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2021년 성수동 스토어를 시작으로 논픽션과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해 오고 있어요. 프로젝트를 거듭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논픽션의 공간 미학을 점점 더 섬세하게 다듬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제가 나름 지키고자 했던 태도는, 논픽션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공간 안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은 최대한 ‘음소거’하고, 브랜드와 제품 자체가 순수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공간을 디자인할 때 항상 염두에 두는 디자이너님의 철학이나 원칙도 궁금해요.
특정한 방법론이나 원칙을 고수하려고 하진 않아요. 어쩌면 고정된 방법론이나 원칙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 제 원칙일 수도 있겠네요. 욕심이 있다면,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방법론과 원칙을 만들고 싶습니다.

논픽션 다이칸야마는 브랜드의 첫 일본 시그니처 스토어이자 첫 카페를 포함한 공간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미션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하셨나요?
매 순간 다양한 미션이 주어졌지만, 공간 디자이너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미션은 공간 그 자체에 있었어요. 목조 건물이라는 특성과 더불어, 일본의 엄격한 법규와 건물의 구조적 이유로 인해 기존 요소들을 자유롭게 제거하거나 추가하는 데 제약이 많았습니다. 자칫 공간의 단점으로 드러날 수 있는 부분들이었기에, 그것들을 드러내지 않고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숨겨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다이칸야마라는 지역적 특성도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나요? 이곳은 사선 형태의 건물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데요. 다각형 입면, 비대칭 매스 디자인을 적용한 이유가 궁금해요.
말씀해주신 특징들은 모두 기존 건물이 본래 가지고 있던 요소입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처음 일본을 방문해 공간을 마주했을 때, 특히 2층의 비워진 공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간의 형태, 구조, 채광까지 너무 좋았죠. 그래서 기존 공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논픽션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스틸을 사용한 카페 키친과 김민재 작가의 유리섬유 테이블이 놓인 윈도우가 인상적인데요. 디자이너님이 가장 신경 쓴 디테일은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1층에서 여러 개의 기둥과 벽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흐름, 그리고 그 공간들이 어떻게 사용될지를 중심으로 많은 고민을 했어요.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섰을 때 좌우로 나뉘는 순간이 방문객에게 다양한 공간의 흐름을 경험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공간에 오래 머무르며 논픽션의 내러티브를 체험하길 바랐습니다.

논픽션 다이칸야마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와 맞춤 디저트 중 어떤 메뉴를 추천하시나요?
다이칸야마역 입구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논픽션 카페의 시그니처 디저트인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차분하고 여유 있는 공간 안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다이칸야마의 활기찬 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그런 대비적인 감각을 경험해 보셨으면 해요.
앞으로 논픽션 다이칸야마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떤 공간적 경험을 하길 바라시나요?
논픽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단어는 ‘환대’가 아닐까 싶어요. 공간 안에서 직접적이거나 적극적인 제스처가 없어도,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환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