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섬에서 찾아낸 디자인 영감, 폴란드 ‘글라르 호텔’

고고학자·장인과 협업해 슬라브·노르딕 문화의 교차점을 공간으로 옮기다

폴란드 볼린섬에 문을 연 글라르 호텔은 고고학자, 장인 등과 협업해 과거 발트해 최대 교역지였던 섬의 역사적 유물과 자연을 공간에 깊이 있게 녹여냈다. 이는 오늘날 브랜드와 공간 디자인이 지역의 문화유산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고 재생할 수 있는지 명민한 해답을 제시한다.

바이킹의 섬에서 찾아낸 디자인 영감, 폴란드 ‘글라르 호텔’

폴란드 북서쪽 끝, 발트해와 맞닿은 ‘볼린 섬(Wolin Island)’은 오랫동안 여러 문화가 교차하던 장소였다.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볼린은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정착지 중 하나였으며, 발트해 최대 교역 항구로서 스칸디나비아 세계와 중국까지 이어지는 무역로의 교차점이었다. 슬라브·노르딕·아시아 문화가 뒤섞이며 뛰어난 수공예가 꽃 피었지만, 반복된 외침으로 볼린은 점차 쇠락했다. 여전히 볼린에는 도자기, 보석, 의상, 금속 도구, 석제 공예품 등 당시의 찬란했던 수공예 문화를 증명하는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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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otr Maciaszek

지난 2024년 폴란드와 독일, 덴마크, 스웨덴을 잇는 길목에 자리한 이 섬에 글라르 호텔(GLAR Hotel)이 문을 열었다. 단순히 로컬 문화를 흉내 내지 않았다. 오늘날 흔한 피상적인 스타일링 대신 고고학자, 역사학자, 장인과 함께 섬의 역사와 유물, 그리고 자연을 공간으로 풀어내며 주목 받았다. 특히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 <Dezeen Awards 2024>의 ‘호텔 인테리어 롱리스트’와 ‘지속 가능 인테리어 롱리스트’에 동시에 이름을 동시에 올렸는데, 오늘날 브랜드와 공간 디자인이 지역의 유산을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고 재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민한 해답을 제시하는 대목이다.

고고학자, 역사학자, 장인과 함께 협업하다

호텔 이름 글라르(Glar)는 볼린 섬 부족들이 숭배하던 성스러운 말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빛나는 것’을 뜻한다. 볼린 섬이 속한 서포메라니아 지역과 깊이 연결된 오너들이 직접 선택한 이 이름에는 섬이 품어온 역사와 문화를 기억하고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글라르 호텔의 인테리어는 바르샤바 기반 스튜디오 노케 아키텍츠(NOKE Architects)가 맡았다. 노케 아키텍츠는 폴란드의 건축가 피오트르 마치아셰크(Piotr Maciaszek)와 카롤 파스테르나크(Karol Pasternak)가 설립한 스튜디오로, 주거부터 호텔, 오피스, 스파까지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뤄왔다. 노케 아키텍츠는 설계에 앞서 볼린 섬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지역을 깊이 탐구했다. 폴란드 과학원 고고학자들과 직접 만나 9~12세기 볼린의 역사를 배우고, 볼린 박물관에서 고대 유물들을 직접 연구했다. “고고학자들이 들려준 이야기, 특히 볼린이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였던 시절에 대한 내용이 설계의 방향을 잡는 데 결정적이었다”라고 마치아셰크는 말한다.

이 리서치 과정에서 발굴된 모티프들이 공간 곳곳에 녹아들었다. 과거 화폐로 쓰이던 도자기·돌·호박 구슬 목걸이는 각 객실에 세워진 나무 조각품과 레스토랑 조명의 형태로 재해석됐다. 계단 벽면은 손으로 직접 빚어 마감한 흙벽 형태로 완성됐는데, 슈체친 역사박물관(Muzeum Historii Szczecina)에 전시된 중세부터 현재까지의 토양 단면에서 영감을 받았다. 지역 아티스트 올라 니엡수이(Ola Niepsuj)가 수영장 바닥 모자이크 제작에 참여했다. “진지함과 유머, 전통과 현대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그녀의 작업 방식이 호텔의 철학과 잘 맞았다”라고 파스테르나크는 설명한다.

볼린 섬을 닮은 공간

공간 전반에서 섬의 자연과 역사의 흔적이 드러난다. 두꺼운 직물, 매끄러운 유리, 거친 목재가 어우러지며 물, 호박, 수백 년의 수공예 전통이라는 섬의 본질을 공간 안에 담아낸다. 천장은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 날것의 질감을 살렸고, 벽 상단을 가로지르는 장식 띠는 거친 반죽 소재로 빚어 원형 무늬를 새겼다. 이는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에서 영감을 받은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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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otr Maciaszek

바위를 직접 깎아 만든 세면대는 발트해 파도가 오랜 세월 단단한 바위를 깎아내는 자연의 방식에서 착안했다. 목재는 해안가에 오랫동안 쓸려 다닌 것처럼 솔질하고 마감해 자연스러운 결을 살렸다. 91개 객실은 총 8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욕실이 개방된 객실부터 두 개의 침실과 간이 주방을 갖춘 패밀리 객실, 넓은 테라스를 갖춘 스위트룸까지 다양하게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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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otr Maciaszek

레스토랑에서는 2층 높이의 전면 유리창을 통해 테라스와 비세우카 호수가 보이고, 셰프가 직접 요리하는 오픈 쿠킹 공간과 여러 사람이 함께 앉는 조식 테이블이 갖춰져 있다. 스파에는 스칸디나비아식 사우나 문화를 반영한 넓은 사우나와 수영장이 갖춰져 있으며, 수영장 바닥에는 올라 니엡수이가 제작한 모자이크 작품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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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수영장 바닥에는 거대한 물고기가, 작은 수영장에는 호텔로 가는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백조가 그려져 있다. 볼린 섬의 땅속에 잠들어 있던 천 년의 기억을 꺼내 공간으로 옮긴 글라르 호텔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단순한 장식이 아닌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어떤 공간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준다. 고고학자, 역사학자, 지역 장인이 함께 만들어낸 이 호텔은, 건축이 지역 공동체와 어떻게 깊이 연결될 수 있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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