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와 현대미술이 만난 순간

<寒樹, 고요한 맥박>전

전통과 현대가 조우하는 우리옛돌박물관에서 펼쳐지는 전시 <寒樹, 고요한 맥박>은 ‘회복과 성장’을 주제로 한 감각적 여정이다. 분재, 유리, 도자, 가구, 영상 등 다양한 매체가 층별 공간 속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며, 관객은 고요한 내면의 리듬을 따라 자신만의 치유와 성찰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분재와 현대미술이 만난 순간

성북구에 자리한 국내 최초의 석조 유물 전문 박물관인 우리옛돌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2025년 3월 13일부터 오는 5월 4일까지 열리고 있는 전시 <寒樹, 고요한 맥박>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메산, 오마 스페이스(OMA Space), 서희수, 정수경, 알코브 등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아티스트가 함께 참여해 ‘회복과 성장’이라는 주제 아래 다채로운 작품을 소개한다. 영상, 도자, 유리 조형, 공간 설치, 분재, 미드 센추리 가구 등 서로 다른 매체로 구성된 작품 50여 점의 조합으로 눈길을 끈다.

보이지 않는 연결과 고요한 치유

전시는 1층부터 3층까지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의 시작점인 1층 ‘새살(Healing Flesh)’은 상처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치유의 과정을 탐색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서희수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흙과 섬유라는 유기적 재료를 이용한 조형 작업을 통해 인간의 상처와 치유, 그리고 시간의 흔적을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그의 작업은 ‘붕대’라는 유연한 소재에 흙의 물성을 결합해 형태를 만든 뒤, 가마 속에서 단단하게 굳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간이 흐르며 상처가 보호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installation view 1 1
<寒樹, 고요한 맥박> 1층 전시 전경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차의과대학교 대학원에서는 미술치료를 연구한 서희수 작가는 심리적 불안과 죽음이라는 내면의 균열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무의식 속 상처의 회복과 자연과 인간 사이의 연결에 주목하며 조형 언어를 확장해왔다. 특히 ‘붕대의 결’에서 ‘나무껍질의 결’로 관심을 옮기며, 보다 자연의 흐름에 가까운 재료와 구조를 통해 치유의 서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고요한 암호(The Silent Code)’를 선보인다. 작가는 균사체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과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시각화했다. 이와 함께 구성된 메산의 이끼석은 고요한 회복의 상징으로 기능하며, 관객은 이곳에서 자기 내면에 자리한 치유의 가능성을 감각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시간의 결을 따라 쌓인 감각의 방

2층 전시장은 그 제목인 ‘결(Grain of Time)’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시간의 흐름이 남긴 흔적과 그로부터 비롯된 성장을 탐구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정수경 작가의 유리 조형 작품과 메산의 분재가 조우하며, 시간의 깊이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정수경 작가는 유리라는 물성을 통해 고체와 액체, 규칙과 우연 사이를 넘나드는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러시아에서 디자인을,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서 유리 조형을 전공한 그는, 자연과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가마 속에서 고온의 열을 거쳐 유기적으로 변형된 유리는 통제 불가능한 시간과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 불완전하고도 유려한 표면 위로 빛이 투과하고 굴절되며, 그 안에 놓인 분재의 나뭇결은 더욱 선명한 시간의 흔적으로 드러난다.

전시 공간은 정수경 작가의 유리 조형과 메산 분재 외에도, 알코브가 선보이는 미드 센추리 빈티지 가구도 포함한다. 가구, 작품, 식물, 오브제가 어우러진 이 아늑한 공간은 마치 세월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방’처럼 느껴진다. 정적인 듯하면서도 유동적인 조형물들은 관람자에게 시간의 결을 따라가며 자신만의 흔적을 되짚어보도록 이끈다.

installation view 2 5
<寒樹, 고요한 맥박> 2층 전시 전경

한편, 유리 조형과 분재가 놓인 공간에는 알코브가 큐레이션 한 20세기 미드 센추리 빈티지 가구가 함께 배치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스칸디나비안의 따스한 선율, 바우하우스의 실용성, 프랑스와 이탈리아 아르데코의 우아함, 그리고 유러피언 브루탈리즘의 실험성까지, 알코브의 수집품은 마치 시대를 통과해온 감각의 흔적처럼 공간을 감싼다.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일컫는 20세기 디자인 가구를 수집하고 해석해온 알코브는 이번 전시에서 가구라는 매체를 통해 삶의 풍경과 기억을 건드린다.

정수경의 유리, 메산의 분재, 알코브의 가구가 함께 어우러진 이 공간은, 마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조용한 거실’과 같다. 유동적인 감각, 정적인 구조, 그리고 생활의 흔적이 교차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의 결을 따라 자신만의 기억을 더듬게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나무의 결처럼 축적된 세월의 밀도와 그 안에 깃든 회복의 가능성을 천천히 마주하게 된다.

공간과 감각의 경계를 허물다

3층 전시장 ‘숨(Breath of Light)’은 감각이 확장되고, 존재의 흐름을 감지하는 마지막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아트&디자인 스튜디오 오마 스페이스의 키네틱 설치 작품과 메산 분재가 빛, 소리, 움직임의 흐름 속에서 조응한다.

installation view 3 1
<寒樹, 고요한 맥박> 3층 전시 전경

오마 스페이스는 자연의 원초적 요소들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몰입형 환경을 조성해온 예술 스튜디오로, 시간과 존재의 변화를 시각화하는 실험적 설치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장을 가득 채운 패브릭 월과 섬세한 조명 설계를 통해 시공간의 경계를 흐리고, 관객의 감각이 열리는 공간을 만들었다. 대표작 <Infinity>는 영상 사운드와 함께 끊임없이 움직이며, 멈춰 있는 듯하지만 쉼 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리듬을 드러낸다.

resize BLUE SPACE 02
오마 스페이스는 3층 전시장 공간 전체를 패브릭 월로 연출했다.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3층 공간 전체를 패브릭 월로 연출했다. 벽과 천장을 유연하게 감싸는 천은 시선을 부드럽게 흐르게 만들고, 경계를 허물며 하나의 공간 안에서 감각의 밀도를 높인다. 공간을 채우는 소리와 빛의 결은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 흐름 속에 놓인 메산의 분재는 조형물이 아닌 생명체처럼 반응한다. 빛의 각도에 따라 실루엣이 스치듯 달라지고, 그 그림자는 패브릭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정적인 오브제로 보였던 분재는 어느 순간부터 공간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존재로 전환된다. 겉보기에 정지된 듯하지만,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미세한 떨림은 천천히 감각을 열고, 관객으로 하여금 내면의 조용한 떨림에 귀 기울이게 한다.

installation view 3 4
INFINITY 05
<寒樹, 고요한 맥박> 3층 전시 전경

이처럼 이곳에서 ‘숨’은 단순한 호흡이 아니다. 이는 존재의 리듬을 감지하고, 내면과 교감하며 자신을 다시 인식하는 은밀한 파동이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흐름을 받아들이는 이 조용한 경험은 곧 치유와 성찰로 이어지며, 전시는 마지막까지 새로운 가능성의 여운을 남긴다.

installation view 3 PR
김마저 작가의 ‘꺼내진 조각 a’ 프로젝트도 3층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는 감각의 여운을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함께한다. 김마저 작가의 ‘꺼내진 조각 a’ 프로젝트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조각으로 형상화한 실험적 작업으로, ‘용기’, ‘무애’와 같은 이름이 부여된 조각들을 통해 감정의 개별성과 공유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 외에도 아티스트 토크, 분재 체험, 전시 해설 등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마련되어 있다. 특히 매일 오후 2시에는 전문 도슨트와 함께하는 전시 해설이 진행되며, 관람 후에는 태와재 카페에서 전시와 연계된 특별 메뉴도 즐길 수 있다.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이번 전시는 일상 속 감각을 일깨우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Mini Interview

김수현 <寒樹, 고요한 맥박> 전시 기획자

이번 전시 <寒樹, 고요한 맥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기획의 출발점과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를 듣고 싶습니다.

팬데믹 이후 한국 미술시장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기업들의 아트 브랜딩과 공간에 대한 문화적 투자도 활발해졌습니다. 전통 유물 중심이던 우리옛돌박물관 역시 현대미술과 호흡하는 공간으로 전환되었고, 이를 보다 장기적이고 차별화된 방향으로 새롭게 운영하고자 했습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분재를 매개로 현대미술 작가들과 협업해 긴 겨울과 인생의 굴곡을 넘어서는 여정을 전시로 담고자 했습니다. 이는 식물에 감정을 투영하고 교감하는 현대인의 감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opening 4 copy
메산의 분재. 김수현 기획자는 이를 ‘시간이 깃든 조각’이라고 표현한다.

‘분재’와 ‘현대미술’의 조우가 독특합니다. 이 두 요소를 연결하게 된 계기와 의도는 무엇인가요? 특히 분재를 ‘시간이 깃든 조각’으로 바라본 관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재’와 ‘현대미술’의 조우는 서로 다른 시간성과 감각을 지닌 두 매체를 통해 회복과 성찰의 여정을 시각화해보고자 한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분재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축적을 품은 자연의 풍경이자, 시간의 밀도가 가장 응축된 조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손길과 자연의 시간이 공존하는 이 매체를 저는 ‘시간이 깃든 조각’으로 바라보았고,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여기에 각기 다른 감각과 해석을 덧입히고자 했습니다. 분재의 고요한 외형 속에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이 존재합니다. 이는 정적인 듯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현대 설치미술의 특성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죠. <寒樹, 고요한 맥박>은 그러한 미묘한 공명들을 따라가며,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내면의 회복을 조용히 마주하게 하는 전시입니다.

전시 공간을 층별로 ‘새살’, ‘결’, ‘숨’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하셨더라고요. 하나의 서사가 층을 따라 이어지는 구조도 인상 깊었는데, 이런 구성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전시를 기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객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대입해 보며 하나의 서사를 직접 ‘경험하고 공감’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먼저 1층 ‘새살’은 상처를 인식하고 마주하는 순간을 담은 공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깊이 연결된 내면의 균열과 그 안에 깃든 치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발견하게 하죠. 치유는 단번에 일어나지 않기에, 이 여정은 감각적으로도 가장 낮고 깊은 내면에서부터 출발합니다.

installation view 1 4
<寒樹, 고요한 맥박> 전시 전경
installation view 3 3
<寒樹, 고요한 맥박> 전시 전

2층 ‘결’에서는 그렇게 시작된 치유가 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유리, 나무, 오래된 빈티지 가구 등 모든 오브제가 시간과 감정의 층위를 품고 있으며, 그것들은 곧 삶의 흔적입니다. 이 공간은 회복의 과정이 ‘시간’이라는 층위를 만나며, 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전환되는 지점입니다. 마지막 3층 ‘숨’은 변화의 끝에서 비로소 도달하는 새로운 호흡의 공간입니다. 감각이 확장되고, 내면의 맥박이 외부 세계와 다시 연결되며 변화와 시작, 가능성을 마주하게 되죠. 그림자로 비치는 실루엣을 따라 나 자신을 감각하고 경험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아래에서 위로, ‘고요한 맥박’이 점차 살아나는 치유의 서사 구조로 설계되었습니다. 각 층은 하나의 챕터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관객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이 여정을 천천히 음미하길 바랐습니다.

installation view 3 2
<寒樹, 고요한 맥박> 전시 전경

이번 전시에서는 메산, 알코브, OMA Space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협업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시너지가 있었다면요?

살아 있는 생명체와 함께하는 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명상적 행위였습니다. 매일 분재와 이끼돌에 물을 주고, 주말이면 테라스로 꺼내 햇볕과 바람을 쐬게 하는 일상이 어느새 제게도 하나의 수행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런 반복의 시간 속에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그리고 시간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죠. 특히 2층에서 정수경 작가의 유리 조형과 분재가 만나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낸 순간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투명한 유리를 통과하는 빛과,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식물이 만들어낸 조화는 예상보다 훨씬 큰 울림으로 다가왔거든요. 1층의 이끼돌은 살아 있는 듯한 아우라를 뿜어냈고, 3층에서는 130년 된 향나무가 키네틱과 영상 작업을 묵직하게 감싸주며 공간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작업들이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이번 협업에서 만들어낸 가장 큰 시너지였다고 생각합니다.

20250418 041504
<寒樹, 고요한 맥박>전 포스터

이번 전시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가장 주목해 주셨으면 하는 지점, 또는 마음에 담아 가길 바라는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쉽게 바뀌고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매체는 점점 다양해지고 수많은 콘텐츠들이 쉬이 열리고 사라집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고, 치유와 극복의 과정을 진정성 있게 마주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인간이 삶이라는 여정에서 마주하는 긴 겨울을 고요히 탐험하며, 성장과 회복의 과정을 통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감각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빠른 일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내면의 리듬, 고요하지만 분명한 맥박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눈으로만 보는 전시가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이 되길 바라며, 또 그 여운 속에서, 관객 스스로 자기만의 ‘숨’을 찾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