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첼라에 음악 페스티벌만 있는 건 아니다, Desert X 2025
사막 한가운데서 만나는 대지 예술 축제
매년 전 세계에서 음악 팬들이 모여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코첼라 밸리. 이곳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 ‘코첼라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 Arts Festival)’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격년으로 열리는 현대 미술 축제 ‘Desert X’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예술 행사다.

매년 전 세계에서 음악 팬들이 모여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코첼라 밸리. 이곳은 세계적인 음악 축제 ‘코첼라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 Arts Festival)’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격년으로 열리는 현대 미술 축제 ‘Desert X’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예술 행사다. 2025년에 5회를 맞이하는 ‘Desert X’는 2017년 시작된 국제 전시로 격년마다 열리며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사막이라는 공간에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통적인 미술관을 벗어난 이 전시는 사막의 환경과 지형, 빛과 공기 같은 자연의 요소를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며 독특한 감상 경험을 제시한다. 작품들은 코첼라 밸리 전역에 분산되어 있어 지도와 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관람객은 트럭이나 차량을 타고 직접 이동하고 감상하며 색다른 전시 관람 경험을 할 수 있다.

올해는 ‘원주민 미래주의’, ‘디자인 액티비즘’, ‘기술과 생태’, ‘기억과 정체성’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총 1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배경과 시선으로 사막이라는 장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11점의 작품 중 특히 주목할 만한 4개의 작품을 함께 살펴보자.
김수자(Kimsooja) -〈To Breathe – Coachella Valley〉
한국의 김수자 작가는 유리로 된 원형 구조물을 통해 사막의 요소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구조물 안을 걸으며 발밑 모래의 질감, 공기, 빛의 굴절과 반사 등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유리 표면에는 빛을 분산시키는 특수 필름이 입혀져 시간이 지나며 빛의 변화에 따라 공간 전체가 무지갯빛으로 반짝인다. 이 작품을 ‘빛의 보따리’라고 표현하며 한국 전통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했다.

〈To Breathe – Coachella Valley〉는 2020년 사우디아라비아 알울라에서 선보였던 유리 구조물 작업과 연결되며 미국 서부에서 시작된 ‘빛과 공간(Light and Space)’ 미술 운동에 대한 오마주이자 동양 철학과 감각의 재해석이기도 하다. 1960~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전개된 이 미술 운동은 자연광, 공간, 지각의 변화를 탐구하며 관람객의 감각을 확장하고자 했다. 김수자는 이 전통을 사막이라는 열린 환경 속에서 빛과 공기, 시간의 흐름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이어받았다. 동시에 그녀는 중국 도교, 유교, 불교의 색채 이론과 동아시아적 사상을 작품에 녹여 기존 서구 중심의 ‘빛과 공간’ 미술을 새로운 관점으로 확장했다.


아녜스 데네스(Agnes Denes) – 〈The Living Pyramid〉
아녜스 데네스는 이번 Desert X 2025에서 사막 위에 식물로 덮인 피라미드 형태의 설치 작품 The Living Pyramid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지역 자생 식물을 심어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고 시들고 다시 씨앗을 퍼뜨리는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 주기를 시각화했다. 관람객은 식물의 변화를 따라가며 시간의 흐름과 생태계의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The Living Pyramid〉은 미국 서부에 위치한 서니랜드(Sunnylands)와도 상징적으로 연결된다. 서니랜드는 과거 세계 각국의 정치·사상적 리더들이 모여 평화와 외교를 논의했던 장소로 ‘미국 서부의 캠프 데이비드’로 불린다. 데네스는 피라미드처럼 정교하고 질서 있는 형태를 사용해 서니랜드가 가진 상징성과 사람들이 오랫동안 꿈꿔온 이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와 동시에 식물들이 자라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이 가진 끊임없는 변화와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피라미드의 구조로 인간이 만들어낸 규칙성과 이상을 보여주고, 이를 덮고 끊임없이 변하는 식물들을 통해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과 생명력을 나타낸다. 데네스는 이 작품으로 수학적 질서와 생태적 변화가 공존하는 풍경을 제시하며 인간 문명과 자연 환경이 교차하는 관계를 사막이라는 대지 위에 담아냈다.
사라 메요하스(Sarah Meyohas) -〈Truth Arrives in Slanted Beams〉
사라 메요하스는 빛과 시각적 인식을 주제로 작업하는 예술가이자 경제학자다. 이번 Desert X 2025에서는 빛의 굴절과 반사로 만들어지는 ‘코스틱(caustics)’ 패턴을 활용한 설치를 선보였다. 코스틱은 곡면이나 물결을 통과한 빛이 만드는 독특한 패턴으로 자연에서는 수영장 바닥이나 유리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메요하스의 설치에서 관람객은 직접 거울 패널을 조정해 사막 바닥에 리본처럼 펼쳐진 구조물 위로 햇빛을 투사할 수 있다. 이 빛의 흐름은 “진실은 비스듬한 빛줄기로 도착한다(Truth arrives in slanted beams)”는 문장을 드러낸다. 거울과 곡면은 각각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설계되어 있어 태양의 궤도와 빛의 흐름에 따라 시간대별로 다른 빛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고대 해시계와 20세기 대지 예술에서 영감을 받았고, 자연광을 매개로 기술적 정밀성과 감각적인 시각 효과를 결합시켜 작품에 녹여냈다. 관람객은 설치물을 직접 조작하며 빛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패턴과 착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샌포드 비거스(Sanford Biggers) -〈Unsui (Mirror)〉

미국 작가 샌포드 비거스는 Desert X 2025에서 높이 약 30피트(9미터)가 넘는 구름 형태의 조각 두 점을 선보였다. 작품은 수천 개의 스팽글로 덮여 있어 햇빛과 바람에 따라 색과 광택이 끊임없이 변하며 사막 풍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작품명 ‘Unsui(운수)’는 일본어로 ‘구름과 물’을 의미하며, 불교에서 수행자의 자유롭고 유연한 삶의 태도를 상징하는 개념에서 따왔다. 비거스는 이 구름 형태를 통해 경계 없는 이동성과 변화, 그리고 연결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에 위치한 제임스 O. 제시 데저트 하이랜드 유니티 센터(James O. Jessie Desert Highland Unity Center)에 설치되었다. 이 지역은 과거 흑인 커뮤니티가 강제 이주를 겪은 뒤 형성된 곳으로, 현재까지 지역사회 복원과 보상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비거스는 이 장소의 역사적 맥락을 작품에 담아 자유, 정체성,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외에도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라파엘 헤프티(Raphael Hefti)는〈Five things you can’t wear on TV〉를 통해 소방호스를 제작하기 위해 개발된 검은색 직조 폴리머 섬유를 사용해 빛과 열, 물질의 변화를 사막 풍경 속에 풀어낸 대형 설치 작업을 선보였으며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한나드 쇼노(Muhannad Shono)는〈What Remains〉를 통해 고정된 정체성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막의 풍경을 표현하고 기억과 상실 그리고 변화를 주제로 자연과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을 풀어냈다.


유럽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카프와니 키왕가(Kapwani Kiwanga)는〈Plotting Rest〉를 통해 삼각형 격자 지붕 아래 빛과 바람을 통과시키며 이동성과 불안정성을 드러내는 쉼터 구조물을 선보였다. 이처럼 다양한 지역과 배경을 지닌 작가들의 작품이 코첼라 밸리 곳곳에 설치되어 사막이라는 대지 위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Desert X는 오는 5월 11일까지 이어지며 전시는 모두 무료로 공개된다. 사막의 시간과 빛, 자연 속에서 예술을 만나는 ‘Desert X’는 현대미술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는 대지 예술 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