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철학을 잇다, 미드가르드의 새로운 여정
100년 전통의 미드가르드, 과거와 미래를 잇는 디자인 혁신
바우하우스 조명의 상징, 미드가르드가 지속 가능성과 순환 디자인을 더해 다시 태어났다. 100년을 이어온 빛의 철학, 그 특별한 브랜드 스토리를 소개한다.

2025년 4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 Design Week)>는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행사 중 하나로, 최신 디자인 트렌드와 브랜드 철학을 공유하는 자리다. 이 행사에 포함된 조명 전문 전시인 ‘유로루체(Euroluce)’는 2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조명 디자인 전시로, 기술과 미학이 집약된 최전선의 무대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은 조명 브랜드가 있었는데, 바로 독일의 조명 브랜드 미드가르드(Midgard Licht)다. 독창적인 디자인과 철학, 지속 가능성과 조명 기술, 그리고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롭게 결합한 브랜드 정체성으로 주목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21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글로벌 콘퍼런스에서도 미드가르드를 만날 수 있었다. 미드가르드 CEO 데이비드 아인지들러(David Einsiedler)는 글로벌 콘퍼런스 공식 연사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조명디자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위한 길을 밝히다(Lighting the way for sustainable design)’라는 주제 아래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지속 가능한 조명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100년의 역사를 가진 조명 제조업체 미드가르드를 인수한 후, 단순한 복원이 아닌 조명 산업에서 무엇이 변화해야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바우하우스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순환 경제(circularity)와 수리 가능성(repairability)이라는 현대적 개념을 접목해, 미드가르드를 지속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조명 브랜드로 전환시키는 여정을 소개했다. ‘타협 없는 지속 가능성(Uncompromising Sustainability)’이라는 원칙 아래, 전통적인 제조업체를 어떻게 혁신의 주체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전했다.
미드가르드와 바우하우스
그렇다면 미드가르드의 조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브랜드가 걸어온 100년의 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9년, 독일 중부 튀링겐의 작은 마을 아우마(Auma)에서 출발한 미드가르드는 창립자 커트 피셔(Kurt Fischer)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당시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혼란 속에서 전력 공급조차 원활하지 않았고, 특히 산업 현장에서는 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위한 도구가 절실했다.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였던 커트 피셔는 산업 현장에서 직접 마주친 불편함으로부터 조명 디자인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시 대부분의 작업장은 천장에 고정된 전등 한두 개에 의존하고 있었고, 특히 금속 가공이나 정밀 작업을 수행할 때 손의 그림자가 생기거나 빛이 작업 부위에 정확히 도달하지 않는 일이 잦았다. 이는 작업 효율과 안전성 모두를 저해하는 문제였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빛의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조명 기구의 구조를 고안했는데,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스프링 밸런스 램프다. 독립된 지지대, 스프링 장력, 회전 가능한 조인트로 구성된 램프는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빛을 원하는 위치에 조정할 수 있도록 하여, 기존 조명의 한계를 극복하는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한 발명이었다.

한편, 이 무렵 독일에서는 디자인과 건축의 혁신 운동인 바우하우스(Bauhaus)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며, 예술과 산업을 결합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우하우스는 기능성과 구조적 미, 그리고 기술적 합리성을 추구하며, 일상생활에 예술을 접목시키고자 했다. 미드가르드는 이러한 사조와 긴밀히 호흡했다. 피셔의 램프는 바우하우스의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이상적인 도구였고, 1926년 바우하우스 데사우(Bauhaus Dessau)의 새 건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비품 중 하나로 포함된다. 특히 TYP 113 테이블 램프는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요제프 알버스(Josef Albers)의 집은 물론, 바우하우스 학생들의 아파트, 그리고 스튜디오에도 장착된다.


바우하우스가 표방하던 ‘생활을 위한 예술(Kunst für das Leben)’의 정신은 미드가르드의 조명을 통해 구현되었다. 램프는 단순한 인테리어 장치가 아닌, 인간의 삶과 노동, 공간을 고려한 설계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독일 디자인 역사에서 조명이 단순한 기능적 도구에서 독립적인 디자인 오브제로 진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즉, 미드가르드가 바우하우스와의 협업을 통해 독일 모더니즘 조명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미드가르드의 재탄생
1956년 커트 피셔의 사망 후, 미드가르드는 그의 아들 볼프강 피셔(Wolfgang Fischer)가 이어서 운영했다. 하지만 1972년, 동독 정부가 자국 내 민간 기업들을 국가 소유로 전환하는 대규모 국유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미드가르드 또한 국유화 대상이 됐다. 이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하에서 생산수단을 국가가 통제하고, 외부 자본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이후 미드가르드는 ‘VEB Industrieleuchtenbau Auma’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동독 체제 아래 미드가르드는 인민 소유 기업(Volkseigener Betrieb, VEB)이 되었지만, 국유화 이후에도 볼프강 피셔가 계속 운영을 맡아 기술적인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9년 동독 평화 혁명와 이어진 체재 붕괴, 1990년 독일 통일과 민영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영 기반을 상실했다. 시장에서 점차 잊혀 가다 결국 2011년 파산을 맞이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미드가르드 조명을 수집하고 연구해 온 데이비드 아인지들러(David Einsiedler)와 요케 라쉬(Joke Rasch)가 회사를 직접 인수해 리브랜딩에 나섰다. 이들은 미드가르드의 방대한 아카이브와 200점이 넘는 오리지널 조명 기기 컬렉션, 그리고 원래 사용되던 생산 도구들까지 함께 인수해 역사적인 조명의 복각과 재생산에 돌입했다. 현재 미드가르드는 전량을 독일에서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고, 일부 부품은 초기 설립 시기부터 함께한 지역 공급업체들과 협업해 제작한다. 클래식 컬렉션을 복원해 과거를 존중하는 한편, 동시에 새로운 제품 라인을 통해 현대 디자인의 기준을 반영했는데, 이를 통해 미드가르드는 다시금 ‘살아 있는 브랜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드가르드 디자인, 조명 너머를 비추다
미드가르드의 디자인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문제를 디자인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디자이너 스테판 디에츠(Stefan Diez)와 협업한 조명 제품 ‘AYNO’다. AYNO는 ‘순환 가능성(circularity)’을 중심으로 설계된 제품이다. 비처 플라스틱 대신 재활용 가능한 소재만을 사용하며, 부품 하나하나가 쉽게 조립되고 해체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특히 고객이 스스로 조명을 조립하거나 고칠 수 있게 하는 구조는 단순한 사용자 편의성을 넘어, 제품 수명 연장을 통한 지속 가능성의 철학을 구현한다.


디에츠는 “디자인은 이제 아름다움만이 아닌 책임까지 담아야 하는 시대입니다”라고 말하며, AYNO의 성공이 단순한 양산이 아니라 철학의 구현임을 강조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AYNO의 컬러 선정에서도 지속 가능성이 중심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회색 모델의 경우, 디자이너의 감각이 아닌 재활용 가능한 자동차 내장재의 색상에 맞춰 결정되었다. 즉, ‘소재의 가용성이 디자인을 주도한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2025년 선보인 ‘LOJA’ 컬렉션도 주목할 만하다. 디자이너 세바스티안 헤르크너(Sebastian Herkner)가 미드가르드를 위해 디자인한 이 시리즈는 핀란드계 미국인 섬유예술가이자 조각가인 로야 사리넨(Loja Saarinen)의 이름을 따왔다. 종이, 유리, 니켈 도금 강철 등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로야 컬렉션은 펜던트, 테이블, 플로어 램프의 형태로 구성되며, 곡선형 종이 갓이 손으로 직접 조작 가능해 빛의 방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글루를 사용하지 않고 조립된 구조 덕분에 각 부품은 쉽게 분해·수리·재활용이 가능하고, LED 및 트랜스포머는 도구 없이도 교체할 수 있다.



이처럼 미드가르드는 ‘조명’을 단순한 기능적 오브제가 아닌, 지속 가능성과 미학,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100년 전 만들어진 철학을 바탕으로, 100년 뒤에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조명을 만드는 것, 바로 이것이 오늘날 미드가르드 디자인의 핵심이다.
Mini Interview
미드가르드 공동 CEO 데이비드 아인지들러(David Einsiedler)


시장에서 사장되어가던 조명 회사 ‘미드가르드’를 인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1년, 인테리어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던 중 미드가르드(Midgard Licht)라는 브랜드를 수집가의 시선으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함부르크에서 ‘PLY’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개인적으로 미드가르드의 빈티지 조명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1920~50년대에 제작된 조명들을 집과 직장 등 공간에서 직접 사용하며 브랜드의 역사와 기능적 원리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 미드가르드가 여전히 피셔(Fischer) 가문의 2세대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2008년이나 2009년경에는 3세대 가족 구성원을 직접 만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2011년 미드가르드가 파산해, 개인적으로 투자자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당시에는 브랜드의 가능성을 이해해 줄 사람이 많지 않아 보이더군요. 다행히도 PLY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2014~2015년에 브랜드를 직접 인수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어떻게 재정비했나요?
미드가르드의 방대한 역사적 자산 앞에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우리는 브랜드의 유산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였습니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둘 다”였고요. 한편으로는 클래식 컬렉션을 복원하고, 옛 도면들을 기반으로 제품을 재생산하며 역사를 존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56년 이후 단 한 건의 신제품 개발이 없었던 브랜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야 했습니다. 산업 디자이너 슈테판 디에즈(Stefan Diez)와 함께 협업해, 지속 가능성과 바우하우스 정신을 결합한 ‘AYNO’라는 신제품을 탄생시켰습니다. AYNO는 단지 형식의 재현이 아니라,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본질적 기능성과 현대적 문제의식을 재해석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 정신과 혁신 기술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바우하우스 정신은 근본적으로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1920년대 독일은 유겐트슈틸(Jugendstil)과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이 만연했던 시대였습니다. 모든 것이 장식적이고 화려했던 그 흐름을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기능과 실용성에 집중한 현대적 미학으로 전환한 것이 바로 바우하우스였습니다. 저희도 이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단순히 과거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과감하게 과거와 결별하고, 오늘날의 문제와 환경을 반영해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드가르드를 인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클래식 디자인을 존중하고 복원하는 한편, 현재와 미래에 요구되는 기술과 지속 가능성 기준을 반영하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이중적 접근이 필요했죠. 우선 고전적인 조명 구조를 복원하고, 1920~50년대 조명이 가진 구조적 강점과 한계를 철저히 분석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고전적 디자인의 본질을 깊이 이해한 다음, 비로소 현대적 기술과 순환형 디자인 개념을 적용해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즉,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옛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깊이 이해하고 난 뒤, 현재에 필요한 방향으로 과감하게 재해석하고 진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드가르드 조명 디자인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지속 가능성’인데요. 지속 가능한 제품을 개발하고 그 가치를 전달할 때, 브랜드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을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본질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디자인이 디자이너의 의도나 창의성에 의해 주도되고, 지속 가능성은 사후적으로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지속 가능성은 별개의 옵션이 아니라, 처음부터 디자인 프로세스 전체를 지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소재의 가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YNO의 경우 원하는 색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찾아 사용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이 색을 쓰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사용 가능한 재료는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순서였습니다. 이것이 현재 디자인의 큰 전환점입니다.
또한,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들려면 제품의 수명주기를 연장할 수 있는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즉, 제품은 쉽게 수리할 수 있어야 하고, 부품은 교체 가능해야 하며, 가능한 한 분해와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제품이 오래 사용될수록, 그리고 업그레이드나 수리가 용이할수록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 구현됩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속 가능한 제품은 단지 윤리적 선택을 넘어서,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이익(수명, 편의성, 비용 절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진심으로 지속 가능한 제품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지속 가능한 제품 개발은 자원 사용을 줄이고, 수명을 연장하며,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젊은 디자이너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순환형 디자인(Circular Design)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제 디자이너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책임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AYNO 역시 그런 접근에서 출발했으며, 모든 부품은 직접 분해, 수리, 재조립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AYNO의 디자이너 스테판 디에츠는 순환형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했는데요. 제품은 오랫동안 유용해야 하며, 수리 및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고, 표준화된 모듈 구조, 재활용 가능한 소재, 분해 가능한 설계, 환경적 스토리텔링 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이 AYNO 설계 전반에 녹아 있는 셈이죠.
또한, 미드가르드는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단계에서 세 가지 원칙을 따르고 있는데요. 첫째, 순환 디자인은 프로젝트의 전제조건이어야 합니다. 둘째, 디자이너가 아니라 소재의 가용성이 디자인을 주도해야 합니다. 셋째, 모든 개발 과정은 이 10가지 원칙에 따라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검토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디자인은 이제 하나의 문화적 메시지이며, 책임을 동반한 창의의 도구입니다. 젊은 디자이너 여러분에게는 실험과 탐색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고치고 해체하며 다시 만들어보는 경험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지속 가능성은 제약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창의성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