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두가 빚어내는 블루스와 발효, 그리고 삶의 리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열리는 정연두 작가의 개인전,〈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

영상, 사진, 조각,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해온 작가 정연두의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오는 7월 20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16년만에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정연두 작가는 블루스 음악과 발효의 리듬을 중심에 두고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유머와 염원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정연두가 빚어내는 블루스와 발효, 그리고 삶의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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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작가 프로필 이미지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오는 7월 20일까지 정연두 작가의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이 열린다. 정연두는 영상, 사진, 조각, 퍼포먼스 등 여러 매체를 자유롭게 오가며 작업해온 작가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대상들을 연결하고 어울리게 하면서 감춰진 시대의 간극과 균열을 드러내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이번 전시는 2008년 이후 국제갤러리에서 16년만에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정연두 작가는 블루스 음악과 발효의 리듬을 중심에 두고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태도를 유머와 염원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전시의 전체 구조는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부터 보컬, 색소폰, 오르간, 드럼까지 총 다섯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선율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연주자들은 모니터 속에서 각자의 사연과 배경을 품은 채 합주를 이어간다. 다섯 명의 연주자가 풀어내는 리듬은 전시장 곳곳에 놓인 영상, 사진, 조각 작품들과 상호작용을 한다. 정연두 작가는 블루스의 기본적인 12마디 구조를 참고해 작곡가 레이 설(Ray Soul)의 가이드라인 아래 간단한 코드와 67 bpm의 느린 템포 제한만을 연주자들에게 제시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자유로운 해석으로 기반으로 개별 연주를 녹음했고, 각자의 연주가 잘라지고 겹쳐지며 하나의 합주로 완성된다. 이렇게 탄생한 〈피치 못할 블루스〉(2025)는 서로 다른 리듬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공명을 시각과 청각으로 동시에 풀어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손가락 움직임에 반응해 빛을 발하는 항아리 작품 〈아픈 손가락〉(2025)을 만날 수 있다. 항아리 내부에는 다각형 형태의 구조체가 설치되어 있으며, 그 구조체를 비추는 조명이 연주에 따라 변화하며 음악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치환시켜준다. 작가는 블루스 음악의 즐거운 선율 이면에 감춰진 슬픔, 아픔, 위로 같은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희노애락이 함께 존재하는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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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b. 1969) 〈피치 못할 사정들〉 스틸 이미지, 2025, 4K digital video, color, signage, framed, 44 x 75 x 6 cm
7 min. 10 sec. (loop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전시의 또 다른 벽면은 한국에 정착한 고려인 후세대들과 협업을 통해 구성했다. 작가는 오랜 시간 이주민의 삶과 불연속적인 삶의 배경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구소련 시기 강제 이주를 겪은 고려인 후손들의 이야기를 주목한다. 보컬리스트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사연을 바탕으로 블루스 형식의 곡을 부르고, 그 가사는 전시장의 사운드 장치에 실려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들의 사연은 인도네시아의 전통 염색 기법인 바틱(batik)을 응용한 천 위에 새겨져 뒤편을 장식한다. 녹인 벌꿀집으로 기록된 이야기는 치자, 강황, 자초 등 약초로도 쓰이는 국내 천연 염색제를 통해 천 위에 물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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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점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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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b. 1969), 〈피치 못할 사정들 #5〉, 2025, Batik on cotton, natural dyes and medicinal herbs, framed
53 x 70 x 4 cm (frame), 38 x 55 cm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사진 안천호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전시 후반부에는 ‘발효’라는 또 하나의 리듬이 등장한다. 정연두 작가는 몇 해 전부터 막걸리를 직접 담가왔고 쌀이 누룩과 만나 생성되는 발효를 요리의 영역을 뛰어넘은,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신의 영역에 가깝게 받아들인다. 신비한 발효의 섭리를 블루스 음악과 연결시켰다. 드럼 소리는 막걸리 기포가 터지는 박자와 연결되고 사워도우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색소포니스트의 숨결과 겹쳐진다. 이렇게 음악과 발효는 인간 삶의 예측 불가능한 과정을 은유하는 두 개의 축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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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점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옆의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 연작 〈바실러스 초상〉(2025)은 메주를 만들 때 콩이 바실러스 균과 만나 발효되며 피어난 거품에서 도깨비 같은 얼굴을 찾아낸 이미지들로 나열했다. 발효의 흔적에서 우리와 닮은 모습을 찾아내고, 다름과 닮음이 공존하는 자연의 섭리를 친근하고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이를 보는 관람객에게 유쾌하면서도 신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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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b. 1969), 〈바실러스 초상 #5〉, 2025, Color inkjet pigment print, framed, 62 x 50 x 4 cm (frame), 45 x 33 cm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신비로운 미생물의 세계는 우주의 창조로도 확장된다. 오르간과 피아노 연주가 흐르는 공간에서는 퍼커셔니스트가 밀가루를 흩뿌리며 우주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든다. 이 장면은 영상으로 기록되고 옆에는 마치 성운처럼 보이는 사진이 함께 전시된다. 그러나 영상 속 설명은 이미지가 사실 밀가루로 만든 것임을 밝힌다. 우리가 경이롭게 바라보는 우주의 풍경조차도 일상적인 재료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드러내며 장난기와 숭고함, 가벼움과 무게감 사이의 절묘한 균형을 경쾌하게 표현한다.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은 제목 그대로 설명되지 않는 삶의 조건을 어떻게 견디고 통과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정연두 작가는 이처럼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유머와 여유 있는 시선으로 풀어내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어우러지는 전시 속에서 관람객이 공감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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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점 정연두 개인전, 〈불가피한 상황과 피치 못할 사정들〉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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