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새긴 저항의 메시지, RK Collective

RK Collective의 'Crafted Liberation' 프로젝트

RK Collective는 마흐사 아미니 사건에 대한 응답으로 결성된 디자인 듀오다. 전 세계 이란 여성들이 기증한 헤드스카프를 좌석 패턴으로 재구성한 ‘Crafted Liberation’을 통해 억압의 상징을 해방의 서사로 전환시킨다. 디자인을 통한 집단적 치유와 기억의 재구성을 시도하며, 감각적 언어로 저항과 연대를 시각화한다.

디자인에 새긴 저항의 메시지, RK Collective

2022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11의 죽음은 전 세계에 깊은 충격을 안겼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교 경찰에 체포된 그녀가 구금 중 의문사하자, 이란 전역에서는 ‘여성, 생명, 자유(Woman, Life, Freedom)’를 외치는 시위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호주 멜버른에서 활동 중인 이란계 디자이너 닐라 레자에이(Nila Rezaei) 역시 그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분노와 절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언어인 디자인으로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resize RK 1 1
© Debbie Gallulo

이를 계기로 레자에이는 크리스토퍼 크레이너(Christopher Krainer)와 RK Collective 를 공동 창립해 전 세계 이란 여성들로부터 기증받은 헤드스카프를 경기장 좌석으로 재탄생시키는 ‘Crafted Liberation‘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억압의 상징이었던 천 조각들은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패턴으로 좌석에 새겨져 해방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전한다.


Interview with RK Collective

닐라 레자에이(Nila Rezaei) & 크리스토퍼 크레이너(Christopher Krainer)

—몇 해 전, 마흐사 아미니의 뉴스가 ‘Crafted Liberation’의 계기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당시에 마흐사 아미니의 뉴스로 아마 모든 이란인들이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을 거예요. 저는 멀리서 모든 상황들을 살펴보고 시위 장면들을 접했는데, 온몸에 힘이 완전히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다른 이란인들처럼 SNS에 뉴스를 최대한 많이 공유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누구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인터넷에 뉴스를 퍼나르는 것 말고 내가 진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러다 문득, ‘그래, 나는 디자인을 할 줄 알잖아. 내가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 이 운동에 목소리를 보태보자’라는 답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Crafted Liberation’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Women 1
© Debbie Gallulo

이란계 호주 디자이너로서 당신에게 헤드 스카프는 어떤 의미인가요?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억압의 도구였던 이 천 조각들을 디자인 작품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어떤 감정적인 갈등이 있었나요?

정말 민감한 질문이고, 저 역시 늘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저희 프로젝트에서는 일부러 이 스카프들을 ‘히잡’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많은 여성들에게 히잡은 개인적 선택이자 힘의 상징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문제 삼는 건 ‘강제로 씌워진 헤드 스카프(unwanted headscarf)’22 , 즉 히잡이 통제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예요. 이 차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강요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스카프는 저에게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Women 3
© Debbie Gallulo

한편으로 제가 자라온 문화와 어린 시절, 그리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상징이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감시, 처벌의 도구이기도 하죠. 그래서 기증받은 스카프들로 작업할 때 마음이 정말 복잡했어요. 실제로 기증받은 스카프들은 아무래도 여성들이 직접 고르고 사용했던 천들이라서,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그 안에는 트라우마도 함께 담겨 있었죠. 이 천들을 경기장 좌석으로 다시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조용한 해방 행위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스카프를 썼던 여성들의 아픔과 존엄, 그 모든 감정을 디자인에 담아내고 싶었어요. 스카프에 담긴 과거의 의미를 지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헤드 스카프를 경기장 좌석으로 다시 만든 것이 흥미로워요. 원래는 억압의 상징이었던 스카프가, 여성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경기장이라는 공간의 좌석으로 바뀌었는데요. 이런 변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또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미적, 개념적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저희가 만든 경기장 좌석에 앉을 때 여성들의 이야기의 무게를 체감하기를 바랐어요. 이건 단순한 의자가 아니라 저항이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난 결과물이거든요. 개인의 상처와 경험이 공동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만질 수 있고, 실제로 쓸 수 있는 무언가로 변한 거죠. 스카프를 기증해 준 여성들에게 ‘우리가 여기 있었고, 지금도 여기 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Seats 5
© Debbie Gallulo

그래서 저희는 스카프를 의자로 재제작 하면서 파괴가 아닌 ‘변환’에 집중했어요. 통제의 상징이었던 히잡을 오히려 여성들에게 주체성과 휴식, 그리고 존재감을 부여하는 새로운 대상으로 바꾸고 싶었죠. 스카프들을 녹여 몰딩 처리한 뒤 경기장 좌석으로 재탄생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요. 경기장은 이란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출입이 제한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니까요. 이 작업의 개념적 핵심은 바로 ‘공간을 다시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하고 강제적이었던 존재를 강력하고 공적인 오브제로 탈바꿈시키는 ‘지속성’에 주목했죠. 이렇게 완성된 좌석들은 스카프를 썼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요. 이제 이 좌석들은, 스카프를 내어준 이들의 감정이 담긴 유물이자, 더 자유로운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능적인 오브제로 다시 태어난 셈이죠.

스카프와 재활용 폴리머를 결합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기술적인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산업적으로 의자를 제작하는 과정과 이란 여성 개개인의 스토리를 어떻게 조화시켰는지 디자인 관점에서 설명해 주세요.

기술적으로 정말 어려웠어요. 스카프 소재가 너무 부드러워서 쉽게 뒤틀려서 원래 모습을 잃지 않고 고정시키는 게 큰 도전이었죠. 여러 방법을 시도하다가 탈론 테크놀로지(Talon Technology)의 LPM 프로젝트(Local Plastics Micro-Factory)와 긴밀히 협업하게 됐어요.

Vincent Sirvin 10
© Alexander Smith

LMP 프로젝트는 재활용 폴리머와 관련해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하는 곳으로 유명하거든요. 그들의 전문성 덕분에 제품의 튼튼함과 디자인의 섬세함 사이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어요. 가장 중요했던 건 좌석에 스카프의 패턴이 그대로 보이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야 여성들의 이야기가 과정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Alex Smith Factory 21
© Alexander Smith

스카프와 얼마 전 참여하신 베를린 디자인 위크를 포함해 여러 디자인 행사에서 프로젝트가 활발히 소개되고 있어요. 현장 관객이나 관계자의 반응은 어떤가요? 또 이 프로젝트가 이란 안팎의 커뮤니티, 특히 디아스포라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분들이 놀라워하는 부분이,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가 실제로 누군가가 사용했던 스카프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에요. 그 순간 감정적으로 바로 연결된다고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각 스카프에 담긴 이야기를 더 깊이 전달하고 싶어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와 협업해 여성들의 영상, 사진, 목소리 녹음까지 담은 디지털 자료를 제작했어요. 단순히 물건이나 디자인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여성들의 진짜 목소리가 사용자에게 전해지길 바랐죠.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이란인들에게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행동이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받았어요. 힘들고 어두웠던 경험을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바꾼다는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이 와닿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진짜 바라는 건, 이런 저항의 규모와 의미를 사람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일상 속에서 이뤄지는 작은 용기들이 모이면,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싶습니다.

이 외에도 RK Collective는 디자인과 사회운동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현재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RK Collective의 시작은 정말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디자인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여전히 표면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을까?’라는 의문이었죠. 그래서 우리는 순환 경제, 지속가능성, 그리고 포용적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제품과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이 임팩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함께 협업하고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함께’라는 점이에요. 저희는 단순히 클라이언트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솔루션을 사용할 사람들과 파트너가 되어 공동으로 디자인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생활용품부터 수리 가능한 전자제품, 그리고 기업의 제품-서비스 모델 전환까지, 모든 프로젝트가 이 철학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FABB 프로젝트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보조 샤워 의자는 저희에게도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제품이에요. 사용자, 돌봄 제공자, 작업치료사 등 200명이 넘는 당사자들과 몇 달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만들었죠. 단순히 기능적인 필요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고, 목욕이라는 일상적이지만 굉장히 사적인 순간에 ‘존엄성’을 되찾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깊이 고민했어요.

FABB의 또 다른 특별함은 완전히 수리 가능하고 재활용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을 독립성과 자존감의 순간으로 바꾼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고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시드니의 서큘러 키 재개발Circular Quay Renewal 프로젝트예요. 다학제적 디자인 스튜디오인 ‘Maynard’와 협업해서, 시드니에서 가장 붐비는 교통 교차로를 더 포용적이고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접근성은 물론, 해당 지역의 원주민 스토리텔링과 직관적인 길 찾기 등,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감정적 경험까지 고려해서 설계했어요.

결국 저희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시스템을 바꾸며,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크게 만드는 디자인이죠. 현상 유지가 아니라, 진짜 변화를 만드는 것. 이것이 저희가 지향하는 방향입니다.

Women 4

마지막으로 ‘Crafted Liberaltion’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경험하셨나요?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요?

‘Crafted Liberation’ 프로젝트는 저희에게 큰 확신을 줬어요. 우리가 왜 디자인을 하는지,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해줬죠. 특히 저는 젊은 디자이너들, 그중에서도 여성 디자이너들이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소수의 특권층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거든요. 사실 이런 사회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에이전시가 많지 않지만, 젊은 세대 중에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이런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 2000~2022): 2022년 9월 16일 이란 테헤란에서 히잡 착용 불량을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후 구금 중 사망한 22세 쿠르드계 이란 여성. 그녀의 죽음은 이란 전역의 반정부 시위와 국제적인 여성 인권 운동의 촉발점이 되었다. ↩︎
  2. RK Collective 는 ‘히잡’이라는 단어 대신 ‘강제로 씌워진 헤드 스카프(unwanted headscarf)’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자발적으로 히잡을 착용하는 이들을 비판하거나 불쾌하게 하지 않고, ‘원치 않는 머리 스카프’라는 표현을 통해 강제성을 띤 도구라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