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로 지은 파빌리온, 빛 뮤지엄
제주 유동룡미술관 야외에 작은 구조물이 들어섰다. 단단하게 닫혀 있는 듯하지만 내부엔 빛이 은은히 스며드는 파빌리온 ‘빛 뮤지엄’이 그 주인공이다.

제주의 강렬하고 변화무쌍한 빛은 바람과 구름, 비와 안개 사이를 끊임없이 통과하며 순간순간 다른 표정을 짓는다. 제주 유동룡미술관 야외 진입로에 들어선 파빌리온 ‘빛 뮤지엄’은 제주의 빛을 건축적으로 포착하고자 한 시도다. 건축가는 단순히 형태로 자연을 재현하는 작업이 아니라, 자연의 감각을 구조 속에 스며들게 하는 파빌리온을 짓고자 했다.

빛 뮤지엄의 검고 투박한 나무 덩어리는 닫힌 형태로 외부를 향하지만, 그 폐쇄성은 오히려 내부로의 접근을 유도한다. 외부에서의 조형적 긴장과 내부에서의 감각적 개방은 이 작은 구조물의 이중적 성격을 예고한다. 뮤지엄의 구조는 240mm x 150mm 크기의 전나무 블록을 일정한 간격으로 적층해 만들었다. 각 목재 블록은 구조체이자 빛을 받아들이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목재 사이 12mm의 틈은 단순한 건축적 조인트를 넘어, 제주의 빛과 바람을 공간 안으로 스며들게 하는 섬세한 필터 역할을 수행한다. 이 틈 사이로 흐르는 빛은 형태를 부각시키거나 공간을 해설하지 않는다. 오히려 빛은 ‘존재’로 머물며, 공간 안에 미묘한 물질적 인상(material impression)을 남긴다. 이 뮤지엄에서 목재의 거친 결과 불에 탄 표면, 그리고 스며드는 빛은 제주의 바람, 습도, 냄새, 그리고 시간의 흐름까지를 응축된 감각으로 불러낸다.

관람자는 뮤지엄 안에 들어서면서, 자연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대신, 틈 사이로 드러나는 빛의 떨림과 목재의 숨결을 통해 바깥의 자연이 어떻게 내부 공간으로 스며들고, 공간이 어떻게 다시 감각의 밀도로 응답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고정된 의미를 강요하지 않고, 사용자 스스로가 자신의 감각을 통해 공간을 완성하게 한다. 공간은 프로그램이나 기능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다. 그 대신, 변화하는 빛과 바람의 흐름, 목재의 촉감과 냄새가 하나의 느린 사건처럼 쌓여 ‘살아 있는 건축’을 만들어낸다.


빛 뮤지엄은 형태를 위한 구조물이 아니다. 제주의 자연이 던지는 감각적 떨림을, 건축이라는 물리적 매체 속에 가만히 스며들게 한 결과물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지 않고, 자연을 느낀다. 그리고 이 감각의 흔적은 공간을 떠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몸과 기억 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