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하반기 놓치지 말아야 할 해외 전시 10
새로운 감각을 짓는 창작의 현장들
2025년 하반기, 예술·디자인·건축을 넘나드는 전시들이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기술, 환경, 공동체 등 동시대 이슈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10개의 해외 전시를 통해 예술이 감상에서 참여로 확장되는 흐름을 만나보자.

2025년 하반기, 세계 각지의 미술 기관들이 새로운 시선과 실험을 담은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기술, 환경, 공동체, 감각의 변화 등 다양한 주제가 예술·디자인·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롭게 펼쳐진다. 작가들은 익숙한 재료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전시 공간은 감상에서 체험으로 확장된다. 지금, 전시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하고 상상하고 참여하는 하나의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올해 하반기, 이 흐름을 대표하는 10개의 해외 전시를 지금 소개한다.
베를린에 피어오른 안개 조각
장소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독일
기간 2025년 4월 26일 – 9월 15일
안개를 조각 재료로 사용하는 일본 아티스트 나카야 후지코(Fujiko Nakaya)의 대규모 개인전이 베를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에서 열리고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투명한 건축 위에 매일 피어오르는 안개는 순간마다 형태를 바꾸며, 도시와 자연, 인간의 관계를 시각·촉각적으로 드러낸다. 바람과 빛, 온도에 따라 반응하는 이 작품은 일시적이지만 강렬한 감각의 장소로 건축을 재해석한다. 관람객은 매일 새롭게 변화하는 안개와의 조우를 통해 ‘경험하는 조각’을 체험하게 된다.

Neue Nationalgalerie – 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 / David von Becker
한편, 실내 전시는 나카야의 영상 작업, 인터뷰, 설치, 아카이브 등을 통해 작가의 60년 작업 세계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기술과 자연, 제도와 감각 사이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세계 최초의 안개 조각을 선보인 이래, 기후와 환경,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예술적 질문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조각에 대한 정의를 다시 묻고, 비물질적 조각이 우리 감각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기회다.
물 위의 교향곡, 파동의 미학
장소 부르스 드 커머스 – 피노 컬렉션, 프랑스
기간 2025년 6월 6일 – 9월 21일
프랑스 출신 사운드 아티스트 셀레스트 부르시에르-무주노(Céleste Boursier-Mougenot)가 파리 부르스 드 커머스의 로툰다 전체를 수조로 바꾼 대형 설치 <clinamen>을 선보인다. 지름 18m에 달하는 원형 수조는 돔을 통해 들어오는 하늘빛을 담아 푸른 거울처럼 반사하며, 그 위를 수십 개의 백색 자기 볼(white ceramic bowls)이 부유한다. 이는 미세한 전류에 의해 부드럽게 움직이고, 서로 부딪히며 은은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이 사운드는 인간 연주자의 개입 없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파동이 지휘하는 순간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전시 제목 ‘clinamen’은 고대 에피쿠로스 철학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원자가 중력의 직선 궤도를 벗어나 예측 불가능하게 방향을 튼다는 ‘비선형적 편향’을 뜻한다. 이는 이 설치의 핵심과도 맞닿는다. 음향은 반복되지 않고, 설치의 상태는 늘 변화한다. 관람자가 머무는 순간마다 유일한 감각이 새롭게 생성되며, 시간이 정지한 듯한 청각적 몰입감을 선사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 꽃 너머를 보다
장소 뉴욕 현대미술관(MoMA), 미국
기간 2025년 5월 11일 – 9월 27일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의 자연에 대한 영적 탐구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19~1920년 봄과 여름에 제작된 식물 드로잉 연작 <Nature Studies>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해바라기, 수선화, 나무 꽃 등 스웨덴 자생 식물을 묘사한 수채화 위에는 원, 격자, 나선 같은 추상적 도형이 함께 등장하며, 자연을 통한 내면 탐구라는 작가의 신념이 시각적으로 펼쳐진다. 클린트는 “꽃을 뚫고 본다”라는 신념 아래 자연을 그리며 인간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전시는 세 시기로 나뉜다. 1917년 ‘영적 안내자’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자율적 탐구에 나선 시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연과 식물에 몰두한 <Nature Studies> 드로잉과 노트북을 통해 그녀의 관찰과 사유를 담아낸다. 마지막은 1922년 수채화 시리즈 <On the Viewing of Flowers and Trees>로 마무리되며, 생명체에 깃든 정신성과 색채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번 뉴욕 전시에서는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에서 새롭게 발견된 버섯 드로잉도 미국 최초로 공개된다. 이 작업들은 예술과 과학, 추상과 관찰의 경계를 넘나들며 힐마 아프 클린트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질서와 공동체로 짜인 세계, 셰이커 디자인
장소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독일
기간 2025년 6월 7일 – 9월 28일

셰이커(Shakers)는 18세기 말 미국으로 이주한 기독교 공동체로, 금욕·평등·공동체 노동을 신앙 실천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들의 절제된 가구·건축·도구는 훗날 미니멀리즘과 근대 디자인의 중요한 선례가 됐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전시 <The Shakers: A World in the Makin>은 셰이커 철학이 디자인으로 구현된 과정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조명한다. ㅠ전시 디자인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듀오 포르마판타즈마(Formafantasma)가 맡았으며, 셰이커 뮤지엄 소장품과 현대 작가 7팀의 신작을 포함한 150여 점이 공개된다. 셰이커 의자·수납장·바느질 데스크부터 찬송가책·메트로놈까지 모든 오브제에는 ‘노동은 곧 예배’라는 윤리와 기능미가 녹아 있다.



(오른쪽) Amie Cunat, »Stacked Boxes«, 2018 Courtesy of the artist and HESSE FLATOW New York, photo: Jenny Gorman
아미 쿠낫(Amie Cunat)의 미팅하우스 재해석, 크리스 할스트룀(Chris Halstrøm)의 기도 같은 자수 작업, 크리스티엔 마인더츠마(Christien Meindertsma)의 생분해 바구니 관 등은 과거와 현재, 신앙과 디자인의 경계를 감각적으로 넘나드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시는 수공예 미학을 넘어 젠더 포용·지속가능성·공동체 경제 등 21세기 디자인이 직면한 과제를 비추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윤리적 창작의 가치를 일깨운다.
북유럽 원주민의 역사와 숨결을 수놓다
장소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스웨덴
기간 2025년 6월 14일 – 11월 9일

스웨덴 북부 출신 예술가 브리타 마라카트-라바(Britta Marakatt-Labba)의 대규모 회고전이 스톡홀름 근대미술관(Moderna Museet)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Where Each Stitch Breathes>. 북유럽의 원주민인 사미(Sámi)의 역사, 자연, 공동체 기억을 자수로 직조한 약 60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사미는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러시아 북부에 걸쳐 살아온 유럽의 대표적인 원주민 집단으로, 기후 위기와 자원 개발, 문화적 억압 등으로 오랫동안 생존과 정체성의 위협을 받아왔다. 마라카트-라바는 이러한 사미의 현실과 신화를 전통 자수를 통해 조형화해 왔다.

대표작 <Historjá>(2003–07)는 24미터 길이의 파노라마 자수로, 사미 신화와 자연, 1852년 카우토케이노 봉기 등 원주민의 집단 기억을 촘촘하게 담아낸다. 2017년 카셀에서 열리는 <도큐멘타14>에서 공개되어 국제적으로 주목 받았다. 자수를 매개로 여성의 손노동, 공동체적 내러티브, 생태 감수성을 담아온 마라카트-라바의 작업은 동시대 미술에서 보기 드문 울림을 전한다.
신화가 된 구조물, 경기장을 다시 보다
장소 MAXXI 국립 21세기 미술관, 이탈리아
기간 2025년 5월 30일 – 10월 26일
로마 MAXXI에서 열리는 <Stadi. Architecture of a Myth>는 경기장이라는 건축 유형을 역사적·사회적·도시적 맥락에서 탐구하는 전시다. 아테네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부터 헤르조그 & 드 뫼롱의 알리안츠 아레나까지 총 54개의 경기장을 통해 ‘스포츠 공간’에서 ‘도시의 신화’로 진화한 건축물의 변천사를 보여준다.


전시는 단순한 아카이브 나열을 택하진 않는다. 도글라스 고든과 필립 파레노의 비디오 작품 ‘Zidane, A 21st Century Portrait’를 시작으로, 르코르뷔지에의 10만 명 수용 경기장 드로잉, 렌조 피아노의 산니콜라 스타디움 모형, FIFA 월드컵 포스터와 같은 시각적 자료들이 공간, 감정, 권력의 교차 지점을 형성한다.

후반부 ‘인류학적 섬’ 섹션에서는 관중의 감정, 팬덤의 진화, 정치적 공간으로서의 경기장 역할이 조명된다. 이탈리아 축구의 상징 마라도나 스타디움, 힐스버러 참사와 같은 사건들, 그리고 오늘날 ‘트랜스포머 경기장’이라 불리는 유연한 건축물까지 함께 다룬다. 이번 전시는 경기장을 단지 ‘경기’가 아닌 ‘기억과 욕망, 통제와 해방이 중첩된 건축’으로 조망하며 동시대 도시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렌즈를 제시한다
북적이는 언어, 낯선 진실
장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
기간 2025년 6월 24일 – 11월 9일

현대미술에서 ‘문장으로 말하는 예술가’로 손꼽히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유럽 최대 규모 회고전이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Another day. Another night>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그녀의 40년 작업 세계를 집약해 선보이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권력, 젠더, 소비, 미디어 등 동시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대표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크루거는 흑백 사진 위에 강렬한 빨간색 배경과 흰색 텍스트를 결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그니처 스타일로 유명하다. “당신은 나 없이 누구인가?”, “나는 사기당하고 있다” 같은 문장은 단순한 문구를 넘어 사회 구조와 인간 심리에 대한 직설적 질문을 던진다. 이번 전시는 크루거 특유의 작업을 영상, 사운드, 디지털 설치 등으로 확장시킨 몰입형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스페인어와 바스크어로 제작된 신작은 지역적 맥락과 세계적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내며 관객과의 새로운 대화를 시도한다. 단순한 시각 이미지가 아닌, 말과 권력의 구조를 뒤흔드는 이 전시는 언어의 힘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강력한 미술적 실천이다. 크루거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이 전시는 ‘말이 예술이 될 수 있다’라는 확신을 전한다.
물성과 상상의 숲을 설계하다
장소 모리미술관, 일본
기간 2025년 7월 2일 – 11월 9일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Sou Fujimoto: Primordial Future Forest>는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Sou Fujimoto)의 지난 25년을 아우르는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주택부터 공공시설, 국제 박람회 구조물까지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는 ‘건축은 숲이자 플랫폼’이라는 철학을 꾸준히 실천해왔다.

이번 전시는 300㎡ 규모의 대형 설치 ‘The Forest of Models’을 중심으로, 수십 개 프로젝트의 모형과 드로잉, 프로토타입, 프로젝션 시뮬레이션 등을 하나의 ‘건축의 숲’처럼 배열해 관람자에게 건축적 사유의 흐름을 공간으로 체험하게 한다.


특히 후지모토가 디자인 프로듀서를 맡은 <오사카 엑스포 2025>의 상징 구조물 ‘그랜드 링’은 1:5 대형 모델로 구현되어, 내부와 외부, 지역과 세계의 경계를 넘는 건축적 상상력을 선보인다. 전시 공간 곳곳에는 프로젝트 간의 ‘대화’를 구성한 설치, 건축물 안에서 사람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한 모형, 후지모토의 철학을 담은 북라운지 등 감각적 장치가 더해져 있다. ‘원시적 미래’라는 전시명처럼, 이 전시는 건축이 자연과 사회, 개인을 잇는 열린 장소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며, 오늘의 도시와 삶을 다시 설계할 상상력을 건넨다.
프린트로 직조된 100년의 기억
장소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
기간 2025년 5월 22일 – 2026년 1월 4일

텍스타일은 우리 몸과 집을 가장 먼저 감싸는 디자인이다. 덴마크 디자인 뮤지엄의 <The Power of Print>전은 바로 그 친밀한 소재가 품은 100년의 덴마크 기억을 펼쳐 보인다. 20세기 초 마리 구드메 레트, 헬가 포이트, 도르테 라슈우 등 여성 장인들이 구축한 소규모 공방 문화는 아르네 야콥센, 악셀 살토 같은 산업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확장되며 덴마크 디자인의 ‘골든 에이지’를 뒷받침했다.


전시는 박물관 소장 프린트 원단과 패턴 샘플을 포함해 150여 점을 선보이고, 요세피나 에네볼, 리즈베트 프리스, 안네 파브리키우스 뮐러 등 동시대 텍스타일 프린터 8인의 신작을 함께 배치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잇는다. 반복 손압인과 대담한 색채로 직조된 작품들은 ‘느린 리듬’이 어떻게 오늘의 감각·윤리·지속가능성을 직조하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와 함께 발간되는 도록 『덴마크 텍스타일 프린트 100년』은 연구사적 빈틈을 메우며, 작은 공방에서부터 산업까지 이어진 손길의 유산을 기록한다. “프린트는 패턴이 아니라 삶을 찍는다”라는 듯, 이번 전시는 프린트 텍스타일을 새삼 ‘살아 있는 공예’로 재조명한다.
도시를 바꾸는 실험들
장소 시카고 전역
기간 2025년 9월 18일 – 2026년 2월 28일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북미 최대 규모의 <시카고 건축 비엔날레(Chicago Architecture Biennial)>가 여섯 번째 에디션을 선보인다. 주제는 ‘SHIFT: 급진적 전환의 시대, 건축(Architecture in Times of Radical Change)’. 도시 전역의 상징적인 장소를 무대로 30개국 100여 팀이 참여하는 전시, 설치,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예년처럼 모든 행사는 무료로 진행된다. 올해의 예술감독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플로렌시아 로드리게스(Florencia Rodriguez). 건축 저널리스트이자 교육자이기도 한 그는 이번 기획을 통해 급변하는 사회·문화·환경 속에서 건축이 어떤 대응과 제안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특히 주거, 생태, 재료 혁신 등 도시 공간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슈를 다루며, 전시뿐 아니라 영화, 팟캐스트, 디지털 출판 등 다양한 형식의 대중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 담론의 장을 연다. ‘건축은 본질적으로 변화와 대화하는 일’이라는 로드리게스의 말처럼, 이번 행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감각과 상상을 다시 여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