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하반기 건축이 돋보이는 미술관 4
조각 정원부터 파빌리온까지, 예술을 담는 네 개의 공간
2025년 하반기, 미국 곳곳에서 건축과 예술이 결합된 새로운 전시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적 건축가들과 로컬 스튜디오가 참여한 네 곳의 아트 스팟은 조각 정원, 투명한 파빌리온, 이야기 중심 박물관 등 다양한 형식으로 예술 경험을 확장한다.

2025년 하반기, 세계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이 공간을 통해 새로운 전시 경험을 제안하고 있다. 기술, 공동체, 자연, 감각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공간 실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곳곳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예술 공간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헤르조그 & 드 뫼롱, OMA, MAD 같은 세계적 거장부터 포틀랜드 기반의 로컬 스튜디오까지, 건축가들이 설계한 공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품는다. 조각 정원을 품은 미술관부터 도시를 연결하는 투명한 파빌리온, 이야기 중심의 박물관,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복합 공간까지. 건축과 예술이 함께 만들어낸 네 곳의 새로운 아트 스팟을 소개한다.
칼더 정원 x 헤르조그&드 뫼롱
미국의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를 기념하는 ‘칼더 가든(Calder Garden)’이 오는 2025년 9월 21일, 미국 필라델피아 벤자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에 문을 연다. 건축은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예술 공간에 특화된 스위스 건축 듀오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조경은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로 잘 알려진 조경가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맡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칼더의 대표작인 모바일과 스태빌, 회화 및 대형 조각 등을 자연 속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복합 예술 공간이다. 도시의 일상과 예술적 몰입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건축부터 조경, 예술까지 하나의 감각적 흐름으로 연결되는 공간을 지향한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건물을 세우기보다 땅을 파내어 예술을 위한 빈 공간을 조성한다”라는 개념이다. 건물 대부분이 지하로 숨겨져 있어 지상에는 야생초가 어우러진 산책로와 은은한 금속 외피의 파빌리온만 드러난다.

내부에는 자연광이 깊숙이 스며드는 갤러리·회랑·계단이 연속적으로 배치됐다. 관람 동선 자체가 하나의 ‘움직이는 전시’인 셈이다. 선큰 가든과 베스티지 가든을 비롯한 여러 정원은 실내외 시야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칼더의 모바일·스태빌과 계절별 식재가 만들어내는 색과 그림자를 실시간으로 변주하는데, 도시의 일상과 예술적 몰입을 잇는 이 복합 예술 공간에서는 칼더 작품의 역동성과 자연의 흐름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필라델피아 도심 한복판에 들어설 ‘예술적 오아시스’가 기대되는 이유다.
뉴 뮤지엄 x OMA

뉴욕 컨템포러리 아트의 심장, 뉴 뮤지엄(New Museum)이 오는 2025년 가을, 세계적인 건축 그룹 OMA의 확장관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연다.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시게마츠 쇼헤이(Shohei Shigematsu)가 설계한 이번 신관은 기존 SANAA 건물의 수직성과 대비되는 수평적 흐름과 투명성을 강조하는데 외부로는 간결한 유리 메쉬 파사드로, 내부로는 유기적인 전시 흐름을 유도한다.


특히 7층 규모의 신관은 전시 공간을 두 배로 확장하는데, 2~4층 갤러리가 기존 건물과 수평으로 연결된다. 아트리움 계단과 세 개의 엘리베이터, 옥상 테라스를 포함해 관람 동선 전반이 시각적 개방감을 지향하고, NEW INC를 위한 전용 공간, 아티스트 스튜디오, 포럼, 레스토랑, 북 스토어 등 공공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특히 입구 광장은 공공 설치미술과 지역 커뮤니티를 잇는 열린 무대로 작동한다.

첫 전시로는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New Humans: Memories of the Future>전이 열린다. 기술과 인간 존재에 대한 예술적 사유를 통해 새 시대의 감각을 펼칠 예정이다. 예술, 건축, 커뮤니티가 유기적으로 얽히는 뉴 뮤지엄은 도시 속 새로운 창조의 플랫폼으로
루카스 내러티브 아트 뮤지엄 x MAD Architect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로 알려진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George Lucas가 설립한 내러티브 아트 뮤지엄(Lucas Museum of Narrative Art)이 2025년 말, 로스앤젤레스 엑스포 파크에 문을 연다. 건축은 마 얀송(Ma Yansong)이 이끄는 MAD Architects가 맡았으며, 거대한 나무 아래 모인 사람들의 풍경에서 착안한 유기적 조형으로 설계되었다. 약 8,500평 규모의 건물은 중앙부가 아치형으로 들어 올려져 그 아래가 자연스러운 광장으로 기능하고, 1,500개 이상의 곡면 패널로 이루어진 외피가 미래적 곡선을 형성하는 점이 특징이다.


조경 설계 전문 스튜디오 Studio-MLA는 11에이커 규모의 공원과 정원을 계절마다 변화하는 식재와 수로, 커뮤니티 광장, 야외극장, 보행교 등으로 구성했다. 단순한 조경을 넘어 지역과 긴밀히 연결된 예술적 인프라로 작동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한편, 내부에는 대형 전시실 외에도 2개의 극장, 교육 공간, 상점, 식음 공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오른쪽) Jaime Hernandez, Cover for the Village Voice (portrait of Margarita Luisa “Maggie” Chascarrillo), 2010, Lucas Museum of Narrative Art, Los Angeles. Image courtesy of Heritage Auctions/HA.com
한편, 이곳의 전시 콘텐츠는 스토리, 즉 서사 예술에 집중한다. 로버트 콜스콧, 캐리 제임스 마셜, 존 싱어 사전트부터 그래픽 노블, 아동도서 일러스트, SF 영화 관련 아카이브까지 고대 로마 모자이크부터 현대 회화, 만화, 사진, 영화 미술을 아우르는 폭넓은 수집을 자랑한다. 시각 스토리텔링을 통해 시대·문화를 넘어선 공감과 토론을 이끄는 것이 이곳 미술관의 핵심 취지다.
로스코 파빌리온 x 빈츠 햄프 아키텍츠&헤네베리 에디 아키텍츠
2025년 11월, 오리건 포틀랜드 아트 뮤지엄(Portland Art Museum)은 두 개의 본관을 잇는 새로운 공간, ‘로스코 파빌리온(Rothko Pavilion)’을 개관한다. 건축은 빈치 햄프 아키텍츠(Vinci Hamp Architects)와 헤네베리 에디 아키텍츠(Hennebery Eddy Architects)가 협업으로 맡았으며, 약 2,200㎡ 규모의 유리 건물이 메인 빌딩(1932)과 마크 빌딩(1927)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건축가는 두 역사적 건축의 비례감과 재료를 존중하면서 도시와 예술, 사람을 투명하게 잇는 구조를 제안했다.
파빌리온은 단순한 연결 통로를 넘어, 시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미술관’을 지향한다. 동서측 입구 모두 평탄한 진입로와 촉각 유도 타일, 자동문, 수직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으며, 모든 층에 젠더 뉴트럴 화장실과 유연한 가구 배치를 적용했다. 실내외를 잇는 테라스, 커뮤니티 라운지, 스카이 데크 등은 도시 공간 속 예술의 체류감을 확장한다. 유리 외피는 열과 빛을 조절하는 프리트 글라스로 마감되었고, 자동 블라인드, 고효율 조명, 절수 설비 등 지속 가능한 설계도 돋보인다.

한편, 새롭게 재편된 약 9,000㎡ 규모의 갤러리에서는 2000년 이후 수집한 300여 점의 주요 작품을 중심으로, 시몬 리Simone Leigh, 제프리 깁슨Jeffrey Gibson, 웬디 레드 스타Wendy Red Star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이 주제별로 소개된다. 원주민 예술, 흑인 커뮤니티, 이민과 정체성, 지역성과 자연을 다룬 전시가 다층적으로 구성되어 새로운 예술적 관점과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