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가면 모호한 전시공간이 있다, 모호주택

사진가와 디자이너 부부의 특별한 공간 운영

대구 북성로는 근대 상업과 철공업의 흔적이 공존하는, 도시의 시간이 축적된 장소다. 이곳에서 사진가와 디자이너 부부가 운영하는 ‘모호주택’은 전시, 클래스, 굿즈 숍이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대구에 가면 모호한 전시공간이 있다, 모호주택

도시는 그곳에 거주하고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살아나고 변화한다. 그런 도시의 형성 경로를 체감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대구 북성로다. 이곳은 읍성의 성곽이 헐리고, 일제 자본의 백화점이 들어서는 등 근대 상업의 중심지로 부흥했으며, 미군부대에서 유입된 폐공구를 바탕으로 철공업이 번성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재생과 문화 관광의 흐름이 더해지며,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도시의 시간이 이 골목에 축적되고 있다. 그러한 공간에서 특별한 장소를 운영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신생 대안공간 ‘모호주택’의 운영자 김영훈, 한수민이다. 사진가와 회화작가·디자이너인 이들 부부는 2023년부터 북성로에서 모호주택을 운영해왔다. 모호주택은 현대미술 전시장이자 문화 클래스가 열리는 공간이며, 굿즈 숍과 작업실까지 포함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두 운영자를 만나 공간 운영과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with
모호주택 김영훈, 한수민 대표

대안공간 모호주택 운영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희는 사진 및 영상 촬영, 디자인 스튜디오인 ‘북성로사진관’을 2017년부터 운영해왔어요. 하지만 2023년, 북성로 일대 재개발 공사로 인해 퇴거 통보를 받게 되었고, 갑작스럽게 새로운 공간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구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실험적 전시를 할 수 있는 독립공간이 거의 없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저희는 예전에 경기도 수원의 한 대안공간에서 각자 개인전을 한 경험이 있었어요. 작가 중심의 공간, 실패도 허용되는 전시장의 필요성을 생각해오기도 했죠. 그런 경험과 생각이 모호주택을 준비하고 시작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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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가 본 리모델링 전의 모호주택 전경.

모호주택은 본래 어떤 상태였나요?

이곳은 1974년에 지어진 100평 정도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상가 건축물의 3층 주인세대 양옥집이었습니다. 크게 손보지 않아도 내부 구조가 잘 남아 있었고, 시간이 쌓인 흔적들이 공간 곳곳에 남아 있어 저희에겐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이 집이 위치한 북성로 자체가 특별한 장소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역을 통해 일본 상인들이 유입되며 만들어진 상업 거리로 카바레, 다방, 수제화 골목, 공구상가 등 근현대 도시의 다양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거든요. 그만큼 이 장소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감정의 풍경’이 있었습니다.

기존 오래된 주택집을 대안공간으로 리모델링했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요?

최대한 기존의 구조와 흔적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했어요. 벽지 하나, 창틀 하나에도 이전 사람들의 시간이 남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기억이 머물 수 있게, 너무 깔끔하게 비워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가구나 소품도 저희가 직접 주운 물건이나 남겨진 것들을 활용했고요. 이 공간이 정해진 기능을 가진 완성된 전시장이 아니라, 계속 변하고 채워지고 실패할 수 있는 구조였으면 했어요.

모호주택의 공간 내부는 어떤가요?

모호주택은 전시공간은 1전시실, 2전시실, 홀 전시실이 있고요. 아트숍과 굿즈존, 그리고 저희의 사무실 겸 작업실까지 총 6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전시룸은 설치, 사진, 회화, 사운드 작업까지 두루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고, 굿즈 숍은 한수민 작가의 캐릭터 브랜드 ‘안녕난요정’과 지역 작가들의 소품을 판매하는 공간이며, 사무공간에서는 김영훈 작가의 사진 및 영상 작업, 한수민 작가의 디자인 작업이 이뤄집니다. 문화 클래스나 워크숍은 소규모로 수시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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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그래픽스 2025》 전시 전경.

그동안 모호주택이 기획한 전시와 행사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모호주택은 아직 3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 공간이지만, 총 11회의 전시를 꾸준히 이어오며 다양한 시도들을 실천해왔습니다. 매년 자체 기획 프로그램과 전시를 통해, 디자인과 예술, 감정과 지역,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실험하는 창작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시리즈는 디자인 기반 기획 전시인 《모호 그래픽스》입니다. 2024년에 시작해 올해로 2회를 맞이했고, 그래픽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중심으로, 디자인의 기능성과 예술의 자율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업해온 디자이너·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시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모호 그래픽스》는 단순히 결과물을 감상하는 자리를 넘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실천의 장이자, 대구라는 지역 안에서 정체성의 경계를 고민하는 창작자들이 모이는 의미 있는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시리즈는 《우리 이웃의 미술》입니다. 이 전시는 2023년부터 매년 이어지고 있는 지역 기반 작가 발굴 프로젝트로, 전시 경험이 부족하거나 활동을 잠시 멈췄던 작가들에게 다시 작업할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모호주택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 감정의 공간화, 지역 예술 생태계라는 핵심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현재는 김영규 작가의 개인전 《여전히 아름다운지》가 진행 중입니다. 이 전시는 수도권 집중화, 교육열, 성공 신화 같은 구조적 현실을 유쾌하게 비틀며, 지역이 주변화되는 상황을 질문하는 작업이에요. 『우리아이 성공한 미술작가 만들기』라는 책자를 비롯해, 출판물, 설치, 텍스트가 유기적으로 얽힌 구성으로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그곳은 여전히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공간과 삶, 정답과 실패, 중심과 주변을 재구성하는 감각적인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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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 개인전 《여전히 아름다운지》 전시 전경.

MZ 세대가 많이 방문하는 것 같은데 실제 관람객 반응이 어떤가요?

생각보다 정말 많은 MZ 세대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저희도 매번 놀라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이나 타 지역에서 대구로 여행 온 관람객들 중에, 전시나 독립공간 탐방을 목적으로 일정에 모호주택을 일부러 넣고 오셨다는 분들도 많았고요. 요즘은 전시나 예술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일종의 문화적 감각이자 취향 표현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라, 이 작은 공간까지 찾아와 사진도 남기고, 블로그나 SNS에 정성껏 후기를 올려주시는 걸 보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이런 공간이 대구에도 있었냐’는 반응과 함께, 저희가 특별히 설명하거나 연출하지 않은 조용한 전시에도 관람객들이 각자의 해석과 감정으로 반응해 주시는 점이 인상 깊어요. 공간을 오랫동안 천천히 둘러보신 분들이 “이런 멋지고 재미있는 공간을 대구에서 운영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건네주시거나, “이런 곳이 오래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남겨주실 때는, 단지 전시가 아니라 공간 그 자체가 감정을 머물게 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만큼 지금의 젊은 관람객들은 감정을 감각하는 방식이 다양하고 유연하며, 그 감각을 수용해 주는 공간을 찾고 있었다는 갈증이 있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모호주택이 그런 틈새에서 하나의 감정적 정류장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 저희에게도 앞으로 계속 이 공간을 지켜가야겠다는 큰 동기이자 위로가 됩니다.

두 분은 사진가와 디자이너이기도 하시잖아요. 이런 예술가적 정체성은 기획과 운영에 어떻게 녹아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기획자나 운영자로서만이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으로 예술가와 소통하는 대안공간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각자 작가로서 전시를 준비하고 진행해 본 경험이 있고, 대안공간에서의 전시가 작가에게 어떤 감정과 기대를 주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전시 진행할 때 항상 작가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것, 놓치기 쉬운 지점을 먼저 고민하려 합니다. 또한 이전에 운영했던 저의 사업 공간인 ‘북성로사진관’에서 사진, 영상, 디자인 등의 기술적 경험을 현장에서 충분히 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진 및 영상 제작으로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해왔고, 아내(한수민 작가)는 본인의 디자인 브랜드 ‘안녕난요정’를 운영하며 기획부터 실행까지의 전 과정을 실무적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이런 경험 덕분에 모호주택에서는 단지 전시 기획만이 아닌, 작가들이 필요로 하는 사진 촬영, 영상 기록, 홍보물 디자인, 프린트 기술, 전시 설치 등 기술적인 지원까지 작가의 성향과 작업에 맞춰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는 거죠. 예술가로서의 감각과 현장 경험이 결합되어,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함께 고민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협업자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 부부의 작가적 정체성은 모호주택의 운영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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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엄마의 방, Archival pigment print_40x60cm, 2014

그렇다면 두 분의 작업도 보여주세요.

​김영훈 작가의 사진 작업 ‘애착사진’은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기억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시작됐습니다. 사진을 통해 과거의 상처와 그리움을 마주하고, 그 감정을 천천히 다루며 치유의 시간을 만들어가고자 했어요. 이 작업은 단지 개인적인 회고에 머무르기보다는, 정신분석학의 오브젝트 릴레이Object Relations 개념을 바탕으로 ‘애착의 대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탐구해 보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저에게 단순한 기록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매개하고 정서적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매체였습니다. 저는 과거의 아픔을 지금 이 시간 속으로 데려와, 그 감정과 다시 관계 맺는 작업을 통해 삶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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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유혹의 요정, oil pastel, 22.5x25cm, 2020

한수민 작가는 회화와 설치를 기반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와 내면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요정에 대한 상상과 감정을 토대로, 일상 속에서 포착되는 미묘한 정서와 무의식의 흔적을 그림과 오브제로 표현합니다. 요정은 작가에게 감정의 은유이자, 잊고 지낸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존재로 자리하며, 작업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적 풍경을 구성합니다. 익숙한 세계의 틈에서 신비로운 순간을 발견하고, 그것이 지닌 감정의 층위를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협업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두 분만의 협업 철칙이 있나요?

저희는 부부이자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로서, 서로의 능력을 깊이 신뢰하고, 역할을 분명히 나누어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습니다. 기획부터 전시 구성, 설치, 홍보물 제작, 운영까지 전 과정을 함께하지만, 각자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정확히 알고 맡는 것이 저희 협업의 핵심이에요. 그 덕분에 전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 전시의 질도 더 높아지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무리하게 모든 걸 함께하려 하기보다는,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필요할 때는 언제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구조가 지금까지 협업을 지속해온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 균형감이 모호주택 운영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모호주택 굿즈 숍에서 볼 수 있는 캐릭터 브랜드 ‘북성로사진관’과 ‘안녕난요정’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북성로사진관을 운영하던 중에 코로나19로 인해 일이 급격히 줄어들자, 그때 북성로사진관에 함께 지내던 고양이 슈슈와 동동이를 활용해 굿즈를 제작하게 되었어요. 슈슈와 동동의 사진과 일러스트를 활용해 스티커, 포스터, 엽서 등을 만들기 시작했고, 단순히 월세를 벌기 위해 시작했던 시도가 좋은 반응을 얻어 지금까지 이어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본래의 사진·영상 작업뿐 아니라 고양이 굿즈도 함께 제작·판매하고 있으며, 쇼룸, 지역 소품 숍, 자체 홈페이지,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같은 행사에서 고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안녕난요정’은 디자이너 한수민의 개인 작업 주제에서 출발한 브랜드입니다. 내면에 존재하는 요정이라는 테마를 굿즈로 풀어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기존 북성로사진관의 고양이 굿즈 중심에서 확장된 브랜드이기도 합니다. ‘안녕난요정’은 마음속 요정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티커, 인형, 문구·팬시 상품 등을 제작하여 선보이고 있습니다. 대표 캐릭터는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밤 토끼입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지방에서 대안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지 전시장을 하나 여는 일이 아니라, 지역성과 예술, 삶과 감정을 연결하는 실천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방의 대안공간이 서울을 모방하는 작은 미술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대안’이라는 말이 유효하려면, 지역에서만 가능한 감각과 속도, 관계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예술의 조건을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 모델의 복사판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은 대안이 아니라 제도 바깥에 있는 또 하나의 제도일 뿐. 모호주택은 지방이라는 위치성이 결핍이 아니라 감각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중심을 향한 열망이 아니라, 중심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감각을 키우는 장소. 빠른 성공보다는 느린 축적과 긴 호흡으로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거점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부부만의 힘으로가 아닌, 지방 예술인과 예술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함께 많은 전시 또는 콘텐츠들을 만들어 가면서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성장해갈 수 있게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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