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강이연의 A to Z: NASA & Google 협업 프로젝트부터 신세계스퀘어 초대형 파사드까지

강이연 미디어 아티스트·KAIST 산업디자인과 교수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은 기술과 감각, 예술과 연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왔다. NASA, Google, V&A 뮤지엄 등과 협업하고, 현재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과 교수이자 XD랩 디렉터로도 활약 중이다. 작가이자 교육자인 강이연의 세계를 A부터 Z까지 키워드로 따라가본다.

[Creator+] 강이연의 A to Z: NASA & Google 협업 프로젝트부터 신세계스퀘어 초대형 파사드까지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은 언제나 경계의 바깥에서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회화에서 출발해 영상을 거쳐, 지금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움직이는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로 활동하며, 기술과 감각이 만나는 접점을 실험합니다. 동시에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학과에서 교수이자 XD 랩의 디렉터로 교육과 연구를 병행 중이죠. V&A 뮤지엄, NASA, Google, BTS, 예거 르쿨트르 등 다양한 기관 및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오며, 강이연은 늘 “왜 이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집요하게 천착해 왔습니다. 스케일보다 밀도, 결과보다 맥락. 복잡한 시스템을 감각적으로 번역하고, 기술이라는 언어를 예술의 형태로 풀어내는 그녀의 작업은 관객의 몰입을 이끌고, 동시에 질문을 남깁니다. 작가로서,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세 가지 정체성을 오가며 만들어낸 작업의 축적은 곧 그녀만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 유산을 다시 들여다보며, 강이연이라는 창작자를 A부터 Z까지 키워드로 소개합니다.

프로젝트 A to Z

Anthrop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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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1일부터 8월 21일까지 서울의 PKM 갤러리에서 열린 강이연 작가의 개인전 <Anthropause>는 팬데믹이라는 전 지구적 멈춤의 순간을 ‘생산적 멈춤(productive pause)’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전시에는 대형 프로젝션 매핑 작업 <무한(Infinite)>과 <유한(Finite)>, 그리고 이들의 설계 과정을 담은 드로잉이 함께 소개되었다. 강이연 작가는 팬데믹 기간을 단순한 정지 상태로 보지 않았다. “과학자들에게는 오히려 그 기간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자연이 회복되는 걸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어서요.”라는 말처럼, 인간의 활동이 멈췄을 때 비로소 드러난 생태계의 움직임과 변화는, 강이연에게 중요한 감각적 계기이자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전시와 별개로도 ‘Anthropause’라는 개념은 작가에게 오랫동안 머문 사유의 대상이었고, 인간 존재의 위치와 영향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중요한 키워드였다.

Betw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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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Seoul Emerging Artists Program, Seoul Museum of Art, Seoul, South Korea, 2009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강이연 작가가 2009년 UCLA 재학 시절 발표한 초기 작업 시리즈 <Between>은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였다. 이 시리즈의 대표 작업 중 하나는 흰색 천을 뚫고 나오려는 인물을 영상으로 촬영한 뒤, 대형 캔버스 위에 투사한 작품으로, 물리적 구조와 움직이는 이미지가 충돌하며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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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Seoul Emerging Artists Program, Seoul Museum of Art, Seoul, South Korea, 2009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이 시기 강이연은 현실과 가상,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인공 등 이분법적 구조에 의문을 품고, 그 사이에 질문을 밀어 넣는 작업을 이어갔다. <Between>은 이후 작가가 천착하게 되는 프로젝션 매핑, 움직이는 이미지, 구조와 시지각 간의 관계 등 주요 개념들의 출발점이 된 작업이다. 또한 이미지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서 공간을 구성하는 조형적 언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계기이기도 하다.

Connect,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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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연 작가는 2020년 글로벌 프로젝트 <Connect, BTS>에 유일한 한국 작가로 참여해, 서울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대형 프로젝션 매핑 설치 작업 <Beyond the Scene>을 선보였다. 방탄소년단(BTS)의 메시지가 아미(ARMY)와 연결되고, 이를 통해 전 세계로 확장되는 현상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업은, 대중문화의 에너지가 사회적 전환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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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Seoul Emerging Artists Program, Seoul Museum of Art, Seoul, South Korea, 2009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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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WEEN,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Seoul Emerging Artists Program, Seoul Museum of Art, Seoul, South Korea, 2009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작품은 BTS 안무에서 추출한 움직임을 추상화해, 공간 전체를 감싸는 몰입형 시청각 환경으로 구현되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과 실시간 프로젝션이 결합한 이 환경은 관객에게 아날로그와 디지털, 실재와 가상 사이를 유영하는 경험을 제공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이분법적 사고를 해방하는 감각을 제안한다. 특히 <Beyond the Scene>은 단순히 팬덤의 확장을 넘어, 현재의 위기 속에서 연결과 공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관객, 공간, 작품이 얽힌 구조를 통해, 팬덤과 예술, 기술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접점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이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Connect, BTS>는 너무 잘 받아들이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그러더라고요. ‘예술은 안 되는데 BTS는 된다’라고. 결국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잖아요.”

Entang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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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ANGLEMENT, Kinetic audio-visual installation, The Heritage Museum, Shinsegae, Seoul, South Korea, 2025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2025년 7월 10일부터 9월 5일까지 신세계 더 헤리티지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강이연 작가의 전시 <ENTANGLEMENT>에서 작가는 기술 진보의 시대에 인간, 기계, 데이터, 생명체와 비생명체 사이의 복잡한 ‘얽힘’과 ‘교차’에 주목한다. 이 작업은 두 겹의 대형 움직이는 스크린을 기반으로 한 몰입형 미디어 설치로, 이미지, 빛, 사운드가 실시간으로 중첩되고 확산하며 공간 전체를 감각적으로 감싼다.

작가는 이를 통해 ‘Moving += Image’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하고, 물리적 매체에 기반한 설치, 이분법적 사고의 해체,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세 가지 ‘유산’을 전면에 드러낸다. <ENTANGLEMENT>는 동시대 사회와 기술 시스템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탐색하며, ‘얽힘’이라는 감각을 통해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시한다.

Google x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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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AGE OF WATER, Real-time, data-driven Interactive audio-visual installation, combining satellite data, generative visuals, and spatial sound, was exhibited both online and offline. In collaboration with NASA and Google, Offline exhibition presented at COP28 Dubai, UAE, 2023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강이연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나사(NASA)와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가 공동 주최한 프로젝트에 참여해, 몰입형 설치 작업 <Passage of Water>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2023년 12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두바이) 기간에 공개되었으며, 나사의 그레이스(GRACE) 및 스왓(SWOT) 위성으로부터 수집된 담수 자원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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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AGE OF WATER, Real-time, data-driven Interactive audio-visual installation, combining satellite data, generative visuals, and spatial sound, was exhibited both online and offline. In collaboration with NASA and Google, Offline exhibition presented at COP28 Dubai, UAE, 2023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작가는 수문 위성 데이터, 디지털 기술, 게임 엔진, 사운드, 프로젝션 등을 융합해 감각적이고 몰입적인 시청각 환경을 구성했다. <Passage of Water>는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데이터를 감각의 리듬으로 변환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기술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게 한다. 미디어 아트가 사회적 상상력과 공감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Jaeger-LeCoul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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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3D video sculpture, Commissioned by Jaeger-LeCoultre for Made of Makers, 2023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강이연 작가는 지난 2023년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 ‘메이드 오브 메이커스(Made of Makers)’에 한국인 최초로 참여했다. 그녀는 이 협업을 통해 설치 작품 <Origin>을 제작했다. 작품은 2023년 6월 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월드파크 잔디광장에서 열린 <The Golden Ratio Art Show>에서 공개되었고, 뉴욕, 취리히, 시드니, 청두, 싱가포르 등에서 전시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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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3D video sculpture, Commissioned by Jaeger-LeCoultre for Made of Makers, 2023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작품 <Origin>은 예거 르쿨트르의 아이코닉 한 리베르소(Reverso) 시계의 디자인 원천인 ‘황금비율(golden ratio)’에 주목한다. 작가는 자연에 내재한 대칭 구조와 아르데코 양식의 기하학적 패턴 사이의 유사성을 서사적으로 풀어냈는데, 감각적이고 몰입적인 미디어 설치로 시각화 한 점이 인상적이다.

KAIST
K

강이연 작가는 2022년 12월부터 현재까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XD 랩(XD Lab)을 운영하고 있다. 이 랩은 단순한 제작 공간이 아니라 ‘감각이 어떻게 구조화될 수 있을까?’ ‘기술과 감각의 접점에서 어떤 경험을 설계할 수 있을까?’를 실험하는 교육 및 연구 공간이다. 학생들과는 디자인보다는 미디어, 예술, 기술 철학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공이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융합 기반의 실험적인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Non-Human
N

강이연 작가의 작업 세계는 Non-Human(비인간)에 대한 질문이 핵심 축을 이룬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기계(AI, 로봇), 자연(동물, 식물), 그리고 이들 사이의 얽힘을 다루며, 특히 팬데믹 이후로 ‘인류가 잠시 멈추자, 자연이 회복된 현상’을 보며 인간-비인간 관계 재설정에 대해 진지한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저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말보다, 인간과 비인간(Non-Human)이라는 표현을 써요. 그 안에 자연도, 기술도 함께 들어있거든요.” 

Re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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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연 작가는 연구 기반의 작업 방식을 중시한다. 나사(NASA),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와의 협업 프로젝트에서는 실제 위성 데이터와 과학자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수문학적 리서치를 수행했고, AI 기술과 기후 데이터를 접목해 몰입형 아트워크를 구현했다.

“카이스트 교수님들 쫓아다니면서 자문을 구했어요. 그분들께 위성에 대해 묻고, 또 물에 대해서 계속 배웠죠.”

또한, 전시 기획 단계에서는 한 장짜리 리서치 스테이트먼트와 시뮬레이션 이미지 자료를 테크 팀에 제시해 협업을 끌어낸다. 이때 기술 구현팀을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어렵고, 그만큼 리서치 스테이트먼트를 얼마나 명확하게 작성하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테크팀 설득하는 게 제일 어렵고, 또 그만큼 중요해요. 그래서 한 장짜리 스테이트먼트가 정말 중요하죠. 그걸 얼마나 잘 정리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갈리거든요.”

Seoul Design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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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10월 17일부터 10월 27일까지 DDP에서 열린 <서울디자인 2024>의 주제전에 강이연 작가는 단독으로 참여해 신작 ‘라이트 아키텍처(Light Architecture)’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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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ARCHITECTURE, Massive-scale kinetic audio-visual installation, Commissioned for Seoul Design 2024, DDP, Seoul, South Korea, 2024, Red Dot Award: Brands & Communication Design 2025 – Winner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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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ARCHITECTURE, Massive-scale kinetic audio-visual installation, Commissioned for Seoul Design 2024, DDP, Seoul, South Korea, 2024, Red Dot Award: Brands & Communication Design 2025 – Winner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이 작업은 ‘AI 아키텍처’를 빛과 어둠, 두려움과 계몽의 구조로 표현하며, 인류와 AI의 공진화를 상상하는 시청각 설치 작품이다. 전시는 AI 시스템의 구조적 설계(architecture)를 시각화한 미디어 아트로, 관객은 프로젝션, 사운드, 움직이는 스크린을 통해 복잡성과 가능성이 얽힌 AI의 미래를 체험할 수 있다.

Victoria and Albe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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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연 작가의 글로벌 활동을 본격화한 가장 중요한 계기는 바로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Victoria and Albert Museum, V&A)과의 협업 프로젝트다. 작가는 당시 V&A의 레지던스 프로그램 공모에 지원해 선정되었으며, 이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작업 세계를 국제적 규모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V&A 뮤지엄이 저를 믿고 기회를 줬고, 제가 가진 리서치 능력과 기술적 상상력을 최대치로 펼칠 수 있었던 작업이었어요. 그 이후로 제 작업의 스케일과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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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ING, Site-Specific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UK, 2016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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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ING, Site-Specific Projection Mapping Installation,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UK, 2016 (제공: 강이연 스튜디오)

당시 구상한 프로젝트는 V&A 내 전시 공간인 ‘캐스트 코트(Cast Courts)’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이 공간은 유럽 각지의 유명 조각·건축물 등을 실제 크기로 본뜬 석고 모형(캐스트)으로 재현한 장소로, ‘진짜가 아닌 진짜처럼 보이는 것’, 즉 실재와 재현, 실물과 모사 사이의 감각적 긴장감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강이연 작가는 이 전시실에 프로젝션 매핑을 활용해 디지털 이미지를 겹쳐 입히는 설치 작업을 구상했다. 기존의 고정된 모형 위에 움직이는 빛과 영상, 패턴, 시뮬레이션 된 데이터가 덧입혀지며, 공간은 고전성과 현대성, 정지된 역사와 살아 있는 감각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복합적 체험의 장으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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