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과 사유의 라이브러리, 타스테 리딩룸
책과 차, 사물을 매개로 감각을 정돈하는 경험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시청각의 자극에 무한히 빠져드는 시대. 쉴 새 없이 콘텐츠를 넘기게 만드는 알고리즘의 파도 속에서, 어느 순간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흐릿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무감각의 과잉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타스테의 존재가 더없이 반가울지도 모른다. 서울 연희동을 기반으로 한 타스테는 책과 차를 매개로 감각을 뾰족하게 다듬는 경험을 제안하는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타스테 리딩룸은 매 시즌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큐레이션한 서적과 차, 사물을 조합해 선보인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가 아닌, 천천히 사유할 수 있는 장면을 설계한 이 공간은 감각의 균형을 회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용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타스테 리딩룸이 특별한 이유는 일반적인 카페나 서점처럼 방문자가 음료와 책을 자유롭게 고르고 구매하는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세 단계로 구성한 프로그램을 따라가며, 타인의 낯선 감각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게 된다. 웰컴 티로 차분하게 감각을 여는 첫 번째 코스로 시작해 타스테의 시선을 따라 고요히 책을 읽는 본 코스, 클로징 티를 마시며 내면의 흘러가는 감정과 생각을 다듬는 마지막 코스로 마무리된다. 이 일련의 흐름은 예측하지 못한 감각을 수용하는 과정 속에서 깊은 몰입을 이끌어낸다. 타인의 큐레이션을 따르되,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취향을 확장하고 사유의 틈을 발견하게 되는 것. 타스테는 그 틈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표 같은 공간이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찻물을 따르는 행위, 사물의 질감과 온도를 인식하는 찰나까지. 타스테 리딩룸은 이 모든 감각의 순간을 또렷하게 환기하며, 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감각을 천천히 되짚는 느림의 미학을 전한다. 이 감각의 여정을 설계한 두 디자이너, 서지와 민우이안양을 만나 타스테가 만들어가는 세계와 그 이면의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Interview with
서지, 민우이안양

타스테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두 디자이너가 함께 이끌고 계시죠. 각자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지 저는 브랜드 디렉터이자 디자이너로서 일상의 감각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브랜드와 콘텐츠로 풀어내는 기획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어요. 현재는 타스테를 비롯해 욕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재해석하는 브랜드 ‘텔리엇(TelioT)’, 한국의 로스티드 티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티 브랜드 ‘사 르.(saar.)’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 브랜드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토론하고 영감을 나누는 커뮤니티 ‘브랜드 디깅 클럽’을 운영 중이며, 이 외에도 다양한 신규 브랜드와 콘텐츠 기획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민우이안양 저는 지난 5년간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WGNB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습니다. 국내 프로젝트들과 더불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런던, 파리 등 다양한 해외 프로젝트에서 파트 리드를 맡아 공간을 총괄하는 경험을 쌓았죠. 현재는 회사를 나와 개인으로 공간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를 여럿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타스테를 만들게 되었나요?
서지 타스테는 꽤 오랜 시간 머릿속에 그려왔던, 언젠가 꼭 실현해 보고 싶었던 브랜드였습니다. 구체적인 공간의 형태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민우이안양 디자이너를 만나면서부터였어요. 함께 사용할 작업실을 구상하던 중에 저희가 영감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디자이너인 만큼, 그 감각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죠. 타스테의 중심에는 제 삶의 모토였던 ‘모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라는 철학이 자리하고 있어요.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도 각자의 고유한 감각과 결을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브랜드입니다.
민우이안양 앞서 서지 디렉터가 언급한 것처럼, 타스테의 핵심 철학인 ‘개인의 모난 취향이 존중받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그동안 저는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에이전시 환경에 익숙했기에, 이 브랜드가 지닌 태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죠. 그렇게 저 또한 하나의 개인으로서 타스테를 함께 만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타스테의 공간은 찻집도, 서점도, 카페도 아닌 ‘리딩룸’이라는 명칭을 지녔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정체성을 지향하나요?
민우이안양 타스테 리딩룸은 어떠한 ‘경험’을 전하는 공간에 가깝다고 느껴요. 네이버 지도상에서는 ‘도서관’으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기존에 존재하는 카테고리 중에 저희의 의도에 가장 가까운 정체성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간혹 지나가시는 분들이 “여기는 어떤 공간인가요?”라고 물으실 때면, “책을 읽고 차를 마시는 리딩룸이에요”라고 답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다소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실 때면, 그 모호함이 오히려 타스테의 정체성을 설명해 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서지 타스테는 책과 차를 매개로 일상에서 감각을 뾰족하게 다듬는 경험을 제안하는 브랜드입니다. 리딩룸은 그 철학이 가장 밀도 높게 구현되는 공간이고요. 여기서 읽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책을 넘기는 것을 넘어서, 차의 온도와 향, 공간의 결, 자기 내면을 함께 읽어내는 감각의 행위 전반을 포함해요. 그래서 저희의 큐레이션 프로그램도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차를 맛보고, 큐레이션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세 단계로 구성했어요.

첫 번째 시즌에서는 도쿄를 주제로 한 책과 차를 소개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앞으로도 특정한 도시를 주제로 삼을 예정인지도 궁금해요.
서지 도쿄는 저희에게 모난 감각이 숨지 않아도 되는, 가장 자유로운 도시처럼 느껴졌어요. 전통적으로 일본 사회는 ‘튀지 않음’과 ‘집단 조화’를 미덕으로 삼아왔지만, 도쿄만큼은 ‘몰입의 과잉’을 허용하는 도시였거든요. 각자의 뾰족한 취향이 어떤 방식으로든 받아들여지는, 그 도시의 밀도 높은 자유로움이 타스테가 바라는 감각의 태도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직접 도쿄를 방문해, 주제에 맞는 책과 차 그리고 다구들을 하나하나 고르고 공수해 왔습니다. 타스테 리딩룸의 첫 번째 코스가 도쿄의 공기처럼 각자의 감각이 더는 숨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게 펼쳐지는 경험이 되기를 바라요.
민우이안양 첫 주제를 ‘도쿄’로 잡았다 보니, 다음 주제는 어떤 도시냐고 묻는 분들이 계시는데, 사실 도시 자체에 특정한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도쿄 다음에는 ‘오렌지’가 될 수도 있고요. 제품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무난한 것을 고르기보다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조금은 특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골랐어요. 쉽게 말해, ‘오, 이상한데’ 하면 장바구니에 넣었죠. (웃음) 타스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모남이 새로운 경험이자 영감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알고리즘과 같은 맞춤형 서비스가 만연한 초개인화 시대에 ‘안티 알고리즘’을 표방한 공간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나요?
서지 타스테 리딩룸은 선택보다 수용의 감각에 집중하는 공간이에요. 오늘날 대부분의 콘텐츠는 ‘나에게 맞는 것’을 알고리즘이 빠르게 추천해 주고, 우리는 점점 익숙하고 안전한 감각만을 반복하게 되죠. 타스테는 그 흐름에 잠시 쉼표를 찍고 싶었어요. 이곳에서는 차의 종류도, 책의 제목도 직접 고를 수 없죠. 방문자는 그 조합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낯선 감각을 기꺼이 통과하며, 자신도 몰랐던 취향이나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용’은 개인의 감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감각이 흔들리고 낯설어지는 순간을 통해 더 선명해지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저희는 타스테를 통해 ‘지금 나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을 마주할 수 있는 여유를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낯섦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자기만의 감각을 더 깊이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믿어요.
민우이안양 디자이너라면, 혹은 창작자라면 ‘기존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껴야 한다.’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벗어나려는 시도는 멀리 가지 못했어요. 제 기준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건, 역설적으로 제가 이미 ‘예상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뜻이니까요. 타스테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서지 님만의 개인적인 취향이 주는 의외성이 저에게 우연한 영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매일 하고 있는 공간 디자인을 새로운 시각으로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요. 이제는 저희가 꽤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껴서, 다시 개인으로서 더욱 뾰족해지고자 합니다. 그 점에서 ‘안티-알고리즘’은 타스테를 운영하는 저희에게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라고 느낍니다.
타스테의 공간을 구성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나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혹은 레퍼런스가 되어준 공간이 있다면 말씀해 주셔도 좋습니다.
서지 타스테 리딩룸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사람이 머물고 싶어지는 적정한 온도’였습니다. 시각적으로는 덴마크 왕립 도서관의 반복되는 책상과 조명에서 느껴졌던 절제된 압도감, 청각적으로는 한적한 골목 어귀를 스치는 맑은 새소리, 그리고 차가 우러나는 소리처럼 아주 작은 소음을 품은 정적을 상상했어요. 그런 감각들이 쌓여 공간 전체가 낮은 톤으로 흐르기를 바랐고, 머무는 동안 감정과 생각이 천천히 가라앉는 ‘내려가는 감각’을 설계하고 싶었습니다. 민우이안양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공간은 제가 상상한 정서의 밀도를 훨씬 더 깊고 아름답게 완성해 주었어요. 덕분에 타스테 리딩룸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민우이안양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요. 타스테 리딩룸은 반지층부에 위치해 앞마당에서 공간이 내려다보이는 게 버드아이 뷰(bird-eye view) 같았어요. 두 공간을 좌우로 나누던 벽을 허물고, 하나의 긴 테이블로 공간을 연결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수용인원을 고려하여 테이블에 의자를 빽빽하게 채우겠지만, 과감하게 테이블 뒤쪽으로만 사람들이 앉아 있도록 고집했어요. 밖에서 지나가며 타스테 리딩룸을 바라보았을 때, 그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보이기를 바랐습니다.

브랜딩부터 공간 디자인, 운영까지 모두 두 분께서 전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계시는데, 주로 어떤 역할을 각각 맡고 계시나요?
민우이안양 시각 디자인과 공간 디자인이라는 뚜렷하게 다른 베이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요. 서로 날것의 아이디어들을 던지고, 각자의 분야에서 실현 가능하도록 전문성을 더하는 형태로요. 예를 들어, 저는 공간과 가구 디자인은 물론, 동선, 의자의 방향 등을 ‘구현’하는 일을 하지만, 도서관을 모티브로 잡은 것은 서지 님입니다. 서지 님이 기획한 타스테의 이미지 중 나비를 모티브로 만든 테이블도 협업의 예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서지 저는 브랜드 디렉션과 비주얼 콘셉트 기획, 콘텐츠 개발, 언어의 결을 다듬는 일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지만, 모든 과정에서 의견을 조율하며 함께 결정합니다. 정해진 역할보다 중요한 건 서로의 관점을 충분히 들어주고,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준비 과정에서 마찰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긴장을 함께 다듬어가는 시간을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요. 타스테 리딩룸은 저희가 함께 축적해 온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든 공간이자, 함께 사유하고 성장하는 방식으로 완성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각별히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민우이안양 리딩룸의 공간은 층고가 낮은데, 특히 보 아래로는 170cm가 조금 안 되다 보니 그사이를 걸어 다니며 머리를 부딪힐 수 있어요. 그래서 고객들이 공간 내부에서 너무 많이 움직이지 않도록 동선을 구획했습니다. 맞은편 자리의 부재는 고객분들이 앉아서 밖을 응시하고 여유를 느낄 수 있기 위함이었어요. 타스테를 방문했을 때 개인의 시간이 보장되기를 바랐고, 빈 앞마당과 하얀 벽을 바라보며 비워내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테이블 역시 낮은 공간에 어울리도록 높이를 설정했어요. 또한 리딩룸은 차를 마시고 책을 읽는 공간이기에 각 자리의 구역이 좀 더 명확했으면 했습니다. 큰 책과 차를 함께 두기에 충분하도록 넓게 디자인했고, 답답하게 파티션을 두는 대신 상판의 모서리를 꺾어 구획을 나눴죠. 테이블의 중앙에는 짙은 검정 유리를 올렸는데, 첫째로는 유리에 반사되는 하늘을 통해 공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로는 뜨거운 차를 올려두는 걸 고려해 테이블에 유리를 올려 코스터 없이 사용 가능하도록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동시에 테이블의 외곽에는 나무 소재를 사용하여, 살이 닿는 면은 너무 차갑게 느껴지지 않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렇다면 각자가 공간에 투영한 ‘사적인 취향’을 꼽는다면요?
서지 저는 누군가의 손길이 머문 공간, 그 안에 사람의 온기가 스며 있는 공간을 좋아합니다. 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작은 선택과 손의 온기로 채워진 그런 결을 가진 공간이요. 타스테 공간은 앞쪽은 리딩룸, 뒤쪽은 워킹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둘을 나누는 벽을 직접 손으로 제작했어요. 스펀지를 자르고, 리넨 천을 덧대며, 빈틈을 하나하나 메워갔죠. 그 과정 전체에 사람의 손길로만 가능했던 밀도가 있었고, 저는 그런 휴먼 터치 안에야말로 공간을 향한 애정이 촘촘히 스며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공간에 그런 마음이 고루 깃들기를 바랐습니다. 사용자에게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조율하면서,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머물고 싶은 안락한 장소가 되기를 바랐어요.
민우이안양 아무래도 지금 시점에는 리딩룸의 테이블에 제 취향이 가장 많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테이블은 사선을 사용한 듯하다가도 둥글고, 매트하면서도 또 글로시해요. 단일 가구임에도 사용한 소재가 네 가지가 넘고요. 셀렉한 톤(TON)의 의자까지 포함하면 더 맥시멀합니다. 아마 클라이언트를 위해 디자인하고 제작했다면, 모서리를 둥글게 깎거나 여기서 더 덜어냈을 거예요. 리딩룸이 여러 다기와 책들로 채워졌을 때, 테이블이 시각적으로 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소소한 바람이 있었어요.
이 공간이 자리한 연희동과는 어떤 방식으로 어울린다고 느끼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서지 연희동은 고요하면서도 다정한 정취가 있어 예전부터 좋아하던 동네예요. 독립하고 처음 작업실을 꾸렸던 곳도 이곳이었고요. 그래서 타스테 리딩룸을 구상하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 중 하나가 자연스럽게 연희동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던 공간은 어딘가 급하지 않고, 도시 안쪽에 숨어 있는 조용한 방처럼 느껴지길 바랐어요. 그런 의미에서 연희동이라는 장소는 타스테 리딩룸과 너무도 잘 어울렸습니다. 익숙하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 오래된 집들과 새로운 감각이 겹쳐진 이 동네의 결은 타스테 리딩룸이 지향하는 정서와도 많이 닮아 있었거든요. 연희동에서도 지금 타스테 리딩룸이 자리한 골목은 유독 조용하고, 오후의 빛이 천천히 머무는 곳이에요. 타스테 리딩룸이 서울이라는 큰 도시 안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하나의 쉼표 같은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타스테는 두 대표님의 작업실로도 이용되고 있어요. 티룸을 운영하지 않는 때의 일과를 각각 들려주신다면요?
민우이안양 리딩룸을 운영하지 않는 날엔 공간 안쪽의 워킹룸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데요. 저는 보통 도면과 모델링 툴, 마감재 등을 다루며 공간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가끔 현장에 방문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매일 한 번씩은 리딩룸에 앉아 차를 마시며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곤 합니다. 저희도 리딩룸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리딩룸이 열려 있는 시간에는 나와 있지를 못하니 손님들이 안 계실 때 부지런히 나와 있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서지 저는 주로 브랜드 기획안이나 콘텐츠를 쓰는 일, 아카이빙 작업을 합니다. 책을 정리하거나 글을 다듬고, 차를 마시며 다음 큐레이션을 구상하는 시간도 많아요. 공간이 조용해서, 천천히 집중력을 쌓아가기 좋은 환경입니다. 리딩룸은 저희에게도 일상을 정돈하고 감각을 조율하는 장치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이 공간이 방문자분들에게도 비슷한 작용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픈 전 소프트 오프닝 기간 동안 타스테를 처음 마주한 손님들과의 교류도 있었죠. 그 시간을 통해 얻은 인상이나, 특히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다면 공유해 주세요.
민우이안양 소프트 오프닝 기간은 저희에게도 일종의 ‘감각 실험’ 같은 시간이었어요. 리딩룸이라는 이 다소 낯선 형태의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했고, 조심스럽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진지하게, 그리고 깊게 공간을 받아들여 주셨어요. “서울에 있는데, 제주도에 와 있는 기분이다.”, “크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조용히 채워지는 기분이다.” 이런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타스테 리딩룸이 저희의 의도를 넘어 어떤 ‘기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 깊었어요. 공간을 설계한 사람보다, 그 공간을 처음 마주한 사람이 더 정확하게 본질을 짚어줄 때가 있다는 걸 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브랜드 디렉터이자 디자이너로서 그동안 다양한 공간과 브랜드를 기획해 오셨는데요. 타인의 취향이 아닌 ‘자신의 감각’으로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두 분에게 타스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서지 그동안은 늘 타인의 세계를 설계하고, 누군가의 감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방식을 고민하며 일해왔어요. 그런 저에게 타스테 리딩룸은 오랜만에 제 안의 감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도 있게 펼쳐볼 수 있었던 ‘첫 번째 공간’입니다. 무엇을 보여주기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먼저 떠올리며 만들었기에 어쩌면 브랜드라기보다 삶의 연장선 같은 존재예요. 브랜드 디렉터로서 쌓아온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이 공간의 결을 무너지지 않게 지켜내는 기술로 작용했고,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은 타인의 감각을 설계하던 손으로, 내 취향의 방향을 더듬어가는 용기로 작동했던 것 같아요. 타스테 리딩룸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매일 조용히 되묻는 공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운영하고 있는 입장이면서도, 저희 역시 이 공간에 방문하는 감각으로 하루하루를 마주하고 있어요.
민우이안양 지금까지 진행해 왔던 공간 프로젝트들은 누군가의 브랜드나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었기에, 타인의 취향을 위해 나의 취향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과 장르를 이해하고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반대로 타스테는 ‘리딩룸‘과 ‘워킹룸‘, 그 이후의 공간까지 타스테 레지던트들의 취향이 발산될 플랫폼이에요. 정해진 스타일이나 장르 없이 그저 ‘개인의 감각’을 허용하는 자유, 그리고 대신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깊은 감도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타스테가 나만의 취향을 다시 심도 있게 개발하는 워크숍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이 프로젝트가 어떤 면에서는 저에게 해방감과 동시에 미션을 주기도 했습니다.

곧 선보일 로스티드 티 브랜드 ‘사 르.’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어떤 종류의 차를 다루시나요?
서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원료를 직접 덖어 만든 로스티드 티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티 브랜드인데요. 이름은 ‘향을 사르다’, ‘불을 사르다’는 뜻의 순우리말에서 왔으며, 불의 열기로 찻잎을 덖는 행위,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향의 층위를 담고 싶었어요. 전통적으로 호지차는 고급 녹차를 제조한 뒤 남는 줄기, 굵은 잎, 늦게 수확된 잎 등을 덖어 만든 차로, ‘녹차로서의 고부가가치에서 벗어난 잎과 줄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출발했대요. 사 르.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했어요. 가치 없다고 여겨졌던 찻잎에 불이라는 감각을 더해, 새로운 깊이와 향,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하고 있죠. 그 ‘불길의 전환’을 하나의 철학으로 삼아 모나고 외면받는 것들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시간을 들여 감각을 다시 덖어냅니다. 이 과정은 타스테의 전개 방식과도 깊이 닮아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올해 하반기, 타스테 리딩룸에서 사 르.의 론칭 이벤트를 앞두고 있으며, 기본적인 로스티드 티 외에도 시트러스 계열, 플로럴 계열의 블렌딩 로스티드 티를 함께 선보일 예정입니다.
타스테의 지향점과 결이 닿아 있는 브랜드를 ‘타스테 페이퍼’라는 프로젝트로 소개하고 있어요.
서지 타스테 페이퍼는 타스테의 지향점과 결이 닿아 있는 브랜드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뾰족하게 감각을 갈고닦아온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큐레이터이자, 그들이 더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마케터의 역할을 하고 있어요. 현재는 주로 온라인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고 있지만, 연 2~4회 정도는 물성을 가진 래핑 페이퍼 형태의 오프라인 매거진도 기획 중입니다. 이 래핑 페이퍼는 타스테 리딩룸에서 책을 감싸는 북 커버링 서비스에도 활용될 예정이며, 콘텐츠와 감각이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는 방식들을 계속해서 실험하고자 합니다.

타스테의 공간이 향후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기를 바라시나요? 물리적 장소를 넘어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형태는 어떤 모습인가요?
서지 앞으로는 저희 두 사람의 감각을 기반으로 브랜드의 고유한 결을 살리고 맥락을 입히는 에이전시의 형태나, 감각을 다듬는 도구와 같은 또 다른 형태로 구현해 보고 싶습니다. 또한 저마다의 취향과 예리한 감각을 지닌 창작자를 위한 워킹룸, 여러 브랜드가 자신만의 결을 선명히 드러낼 수 있는 쇼룸 등 또 다른 공간으로의 확장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타스테가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감각의 기록이 차곡차곡 축적되는 플랫폼처럼 작동하길 바라요. 책과 차, 사물, 공간을 통해 감각을 정리하고 사유하는 이 방식이 언젠가는 타스테만의 언어로 자리 잡는 것, 그것이 저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우이안양 앞으로 타스테 워킹룸이 커뮤니티화되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는 열린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저희 두 사람만의 공간이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창작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어 각자의 취향과 작업물을 나누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길 기대해요. 그 안에서 이루어질 교류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감각이 탄생하는 순간들을 꿈꾸고 있습니다. 또한 타스테 리딩룸이 연희동이라는 물리적 장소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의 ‘큐레이션 프로젝트’로서 외부 전시나 플랫폼 등 다양한 맥락에서 유연하게 펼쳐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타스테의 공간이 오래도록 남기 위해 지키고자 하는 태도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서지 타스테가 오래도록 ‘위안의 공간’으로 남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감각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예요.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고 판단되는 시대지만, 타스테에서는 조금 더 느리고 조용한 감각의 흐름을 지켜가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이 ‘익숙한 감동의 방식’에 길들여지는 것을 경계하려고 해요. 타스테는 매 순간 새롭게 감각을 민감하게 읽어내야만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스스로도 늘 이 공간을 운영자가 아닌 방문자로 마주하려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합니다.
민우이안양 앞으로는 타스테 리딩룸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그간 구축해 온 감각의 결을 다양한 장소와 매체로 확장해 볼 계획이에요. ‘공간’ 혹은 ‘매거진’과 같은 특정한 형태에 묶이지 않고, 보다 유연하고 유기적인 구조로 감각을 나누는 실험을 이어가려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모난 감각을 어여삐 바라보는 마음’이 단단히 자리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