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연여인 비주얼 아티스트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은 최근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포스터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HBO 드라마 <동조자>, 디즈니+ <나인 퍼즐>, 아리 애스터 감독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 등 영화와 드라마 작업은 물론, 케이팝 뮤직비디오와 국내외 브랜드 협업을 통해 예술과 상업을 넘나들고 있다. 오는 8월 30일, 그는 6년 만의 개인전도 앞두고 있다. 서로 다른 창작 환경 속에서 균형을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Creator+]는 Design+의 스페셜 시리즈입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프로젝트에 크리에이터의 일과 삶의 경로, 태도와 방식을 더해 소개합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1편과 프로젝트를 A to Z로 풀어내는 2편으로 구성되었으며, 격주로 발행됩니다. [Creator+]는 동시대 주목할만한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를 소개한 ‘오!크리에이터’를 잇는 두 번째 크리에이터 기획입니다.
editor’s note
연여인 작가는 오는 9월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공식 포스터 작업에 참여해 대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스테디(STEADY)’와의 협업 속에서 그는 삽화를 맡아 영화의 핵심 모티프를 섬세하게 시각화했는데요. 이 외에도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HBO 드라마 <동조자>, 윤종빈 감독의 디즈니+ 시리즈 <나인 퍼즐> 포스터,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스페셜 포스터 작업에도 참여하며, 영화와 드라마 영역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시각 언어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케이팝 아티스트들과의 활발한 협업도 눈길을 끌죠. SM엔터테인먼트의 걸그룹 레드벨벳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과 단독 콘서트 포스터 비주얼, JYP 밴드 데이식스(DAY6) <Maybe Tomorrow> 앨범 커버, 가수 비비(BIBI)의 <I’m good at goodbyes(안녕히)> 뮤직비디오 연출이 대표적입니다. 이 외에도 삼성전자(SAMSUNG) ‘서머 서스펜스’ 소셜 캠페인, 을지로 호랑이 커피, 젠틀몬스터(GENTLEMONSTER) ‘HAUS NOWHERE 선전’ 프로젝트, 케이스티파이(CASETiFY) 컬렉션 런칭 등 국내외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예술과 상업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죠.
한편, 연여인 작가는 오는 8월 30일부터 삼청동 디아컨템포러리에서 개인전도 앞두고 있습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에서의 개인전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로 15점의 신작 유화 작품을 소개할 예정이죠. 카멜레온처럼 창작의 쓰임을 자유롭게 확장해 온 연여인 작가에게,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시각적 언어를 펼쳐낼지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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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 1. 연여인, 영화의 얼굴을 그리다
오는 9월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은 13년 만에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한국 영화이자, 9월 17일 개막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도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포스터 삽화 작업에 참여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번 작업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스테디(STEADY)’(이하 스테디 크루)와 함께 시작했어요. 앞서 다른 프로젝트를 몇 차례 함께하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는데요. 스튜디오 측에서 대부분의 영화 포스터처럼 풀 사진 포스터로 가기 보다, 영화 캐릭터 스틸들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결합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하셔서 제가 합류하게 됐습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는 스테디 크루가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고, 저는 삽화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기획 스케치를 받아 종이에 펜 드로잉을 하고, 이를 스캔해 디지털 편집과 컬러링 작업을 더했는데요. 이후 제공된 사진 소스와 제 그림을 합성해 보내드리면, 디자이너 분이 전체 색감과 레이아웃을 조율하며 다시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치며, 제 회화적 스타일과 포스터 디자인의 완성도를 함께 살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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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과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더군요. 앞서 2024년 방영된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의 포스터 작업은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셨다고요. 아무래도 이번 프로젝트보다는 역할의 폭이 훨씬 컸겠네요.
맞아요. HBO 드라마 <동조자> 아트 포스터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서 콘셉트와 비주얼 방향을 함께 만들어갔어요. HBO로부터 자료를 받아 여러 버전을 직접 스케치하며 영화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어떤 그림 언어가 작품과 어울릴지를 스테디 크루와 긴밀히 논의했죠. 제 손을 더 많이 거친 작업이었고, 그만큼 제 역할의 범위도 넓었습니다. 반면, 이번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는 스테디 크루가 전체적인 기획과 디자인을 맡았고, 저는 삽화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제 작업이 쓰였지만, 과정과 역할의 무게감은 달랐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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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동조자> 포스터 작업으로 맺은 인연이 이번 신작 포스터 작업으로 이어지는 데에도 영향이 없진 않았겠네요?
<동조자> 포스터도 스테디 크루와 함께 했던 작업인데요. 제가 그린 아트 포스터를 감독님이 꽤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 아마 그때 받으신 인상이 이번 작품으로까지 이어지는 데 작게나마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작화 작업자도 여러 후보가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다행히 제 작업 스타일이 감독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사소한 소품 하나, 색의 뉘앙스까지도 의미를 부여하는 치밀한 미장센으로 유명한데요. 이번 포스터 작업에서도 감독님이 특별히 주문하신 디테일이 있었을까요?
감독님이 가장 강조하신 건 ‘배롱나무’였어요. 특히 그 껍질의 표현을 중요하게 보셨는데요. 나무 전체보다는 껍질의 질감, 색의 미묘한 변화 같은 디테일을 더 살려달라는 주문을 많이 주셨습니다. 배롱나무 껍질은 매끈하면서도 군데군데 벗겨진 자국이 있어 독특한 결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비주얼로 담아낼지가 관건이었죠.
처음에는 종이에 잉크로 그린 뒤 스캔해 후반에 그래픽적으로 편집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디지털 브러쉬가 아무리 정교해도 삽화는 삽화답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거칠게 표현했는데, 감독님은 배롱나무 껍질의 디테일을 더 살려 달라고 하셔서 결국 그 부분만 여러 번 수정했죠. 단순한 배경 요소가 아니라 영화의 정서를 끌어가는 장치처럼 보이도록 세심하게 다듬었습니다.
아울러 작가님께서는 이번 포스터 작업에서 어떤 분위기와 인상을 전하고 싶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단선적인 감정보다 서로 다른 감정들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오묘한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영화 포스터가 하나의 이미지로 모든 걸 규정짓기보다, 여운을 남기고 보는 사람마다 다른 감정을 꺼내보게 하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도 양가적인 감정, 오래 머무는 분위기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다만, 포스터는 결국 영화의 얼굴이자 마케팅 도구이기 때문에, 먼저는 감독님이나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방향을 충실히 반영하는 게 기본이에요. 그 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림체와 감성을 덧입히며 균형을 잡으려 했습니다.
PLUS 2. 심연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직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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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동조자>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작업 전반에는 오묘한 분위기와 양가적인 감정이 드러납니다. 매체의 틀이나 성격의 제약을 떠나서 말이죠. 특히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심연을 마주하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데요. 그래서인지 대학 시절 전공이 심리학이라는 사실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심리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사실 학교 공부와 현재 작품 활동과는 딱히 접점은 없어요. 오히려 혼자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제 작업에 더 많은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제 작품 속에 심리적인 깊이나 양가적인 감정 같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 같고요.
저는 늘 양가적인 감정을 좋아해요. 밝아 보이지만 꼭 밝지만은 않고, 어둡지만, 꼭 어둡지만도 않은 지점을 담고 싶어요. 예를 들어 ‘불안’ 같은 감정도 그렇죠. 흔히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만, 불안해서 더 사색하게 되고, 또 다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감정들이 삶에 늘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작업에서도 단선적인 감정보다는 서로 충돌하고 겹치는 감정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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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작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언제였나요?
글쎄요. 사실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그냥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거의 매일 그림을 그렸거든요. 이게 저한테는 자발적인 일이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미대에 꼭 가야 한다거나, 학교 공부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현실적인 ‘티핑 포인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대학 졸업반 때, 제 주변 친구들은 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아예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때 나름대로 결심했던 게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그림 그리는 길을 가겠다’라는 거였어요. 그림으로 돈을 못 벌면 알바를 해서라도 계속해 나가면 되니까요. 그게 오히려 저한테는 되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었고, 작가로서의 길을 선택한 현실적인 결심이었죠.
선택에 대한 불안감은 없으셨어요?
물론 불안했죠. 다른 사람들처럼 정해진 길을 밟아가는 게 아니라 혼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그게 저를 주저앉히기보다는 오히려 계속 그림을 붙잡게 만든 것 같아요. 솔직히 그 시기에 해외 유학이나 대학원을 가야 하나 고민도 했었어요. 애니메이션 쪽 대학원을 생각했는데, 사실 학문적 열망보다는 소속감을 통해 불안을 덜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가지 않길 잘한 선택이다 싶어요.
종이에 잉크로 세세하게 표현하는 스타일은 작가님의 시그니처잖아요. 작업을 위한 테크닉은 어떻게 익히셨어요?
저는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배워왔어요. 특별한 교육 과정을 거친 건 아니지만, 종이에 계속 선을 쌓고 시간을 들이다 보니 조금씩 나아졌죠. 꾸준히 앉아서 그리면 늘 수밖에 없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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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잉크 작업은 점묘 기법을 많이 쓰는데, 굉장히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행위예요. 그런데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치 수행을 하는 것 같은 몰입 상태에 들어가요. 저는 불안하면 오히려 작업을 붙잡는 편이에요. 작업 시간을 따로 재본 적은 없지만, 제 삶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게 작업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을 쏟아붓게 돼요.
“결국 어느 정도 물리적인 시간이 주는 결과물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계속 해야 늘더라고요.”
한편, 독특한 작품의 분위기는 비주얼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영향도 있다고 보이는데요. 작업 구상은 어떻게 시작하세요?
스토리를 미리 짜놓고 작업을 하진 않아요. 대신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고, 또 저를 상징하는 캐릭터들도 있어요. 이게 그림책의 문법이랑 닮아 있는데, 예를 들어 저를 상징하는 ‘작은 대머리 사람(tiny bald human) 같은 캐릭터가 등장하면 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조금씩 구축해 나가죠. 그림책 한 페이지를 그린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 안에서 캐릭터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여러 요소가 어떤 식으로 어울릴 수 있는지 상상하면서 작업을 풀어나가요. 저는 보는 사람이 각자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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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목표가 있는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나 브랜드 협업과 달리 개인 작업은 성격이 또 다르잖아요.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으세요?
저는 외부에서 주제를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개인 작업은 일기장 같은 느낌이 강하거든요. 결국엔 다 제 이야기이고, 제가 겪는 상황이나 감정들을 한 페이지씩 기록하는 식이에요. 그래서 일상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해 두거나, 그림으로 간단히 적어 두기도 하죠. 나중에 그걸 발전시켜서 작품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PLUS 3. 상업과 예술, 그 틈에서 찾은 균형점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 몇 년간은 상업 작업에 집중해 오셨잖아요.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요?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하우스 노웨어 선전(HAUS NOWHERE SHENZHEN)에서 소개한 미디어 월 작업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단순한 브랜드 광고를 위한 협업이라기보다 전시에 가까운 개념으로 참여했거든요. 제가 늘 작업에 사용하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대머리에 새 가면을 쓰고 파란 옷을 입은 남자인데, 그 캐릭터를 활용해 대형 LED 월에 작업을 올렸어요. 제 캐릭터가 그렇게 큰 스케일로 걸려 있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사실 그 캐릭터를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의 중심에 둔 건 처음이었는데, 제 작업의 일부가 브랜드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아 의미 있는 경험이었죠.
젠틀몬스터 하우스 노웨어 선전(HAUS NOWHERE SHENZHEN) 미디어 월은 영상 작업이라는 점도 흥미로운데요. 영상도 직접 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툴도 활용하세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기 전부터 애니메이션이나 영상 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술을 익혀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여러 가지 영상툴을 배우기도 했고, 실제로 클라이언트 작업을 하면서 활용했죠. 요즘에는 다들 인공지능 툴도 많이 쓰시잖아요. 아직 인공지능을 작업에 활용해 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 제 작업에 결합할 수 있을지 배워보고 싶어요.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 더 가치 있느냐가 아니라, 제 작업에서 본질이 무엇이냐인 것 같거든요. 저한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본질이고, 그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과 수행적인 태도가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결국 회화에 기반을 두고, 디지털 툴은 어디까지나 보조 도구로만 사용하는 편입니다.
![[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10 resize DSC02336](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08/resize_DSC02336-832x554.jpg)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작가님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기준이나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클라이언트 프로젝트가 들어오기만 해도 무조건 했었죠. 대학을 갓 졸업하고 처음 그림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했을 때라, 금액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정작 제 개인 작업을 할 여유는 없고, 남는 것도 없더라고요. 일만 많고 결과적으로는 소진되는 경험이었죠. 그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프로젝트나 협업을 선택하는 기준도 조금씩 생겼어요. 지금은 어떤 프로젝트가 제 작업 세계와 맞는지, 또 장기적으로 작가로서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제 작업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할지를 먼저 고민하고 프로젝트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클라이언트가 먼저 찾아올 수 있도록 스스로 브랜딩을 잘하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제가 선천적으로 전략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의도적으로 브랜딩을 잘해서 클라이언트가 찾아온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흐름을 잘 탄 것 같아요. 예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그림체와 주제를 다뤘는데, 그때는 이런 그림으로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취향이 다양해지고, 니치(niche)한 시장들이 생겨나면서 제 그림 스타일도 설 자리를 얻게 된 거죠. 특히 2020년쯤부터는 제 작업에 대한 수요가 시장에서 확실히 체감되기 시작했어요.
PLUS 4. 6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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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작업에서는 주로 본인의 경험이나 감정에서 주제를 가져온다고 하셨는데요. 오는 8월 30일부터 열리는 개인전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건가요?
네, 맞아요. 이번 전시는 제 유년기 정서와 저를 쌓아온 벽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어릴 적 환경이나 그림책에서 받은 영향 같은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뿌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그림으로 풀어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전시 제목도 <The House That My Mother Built>이라고 지었어요.
![[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12 20250820 093019](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08/20250820_093019-832x833.jpeg)
![[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13 20250820 093042](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08/20250820_093042-832x831.jpg)
아무래도 전시 준비를 하다 보니 그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거의 1년 가까이 준비를 했거든요. 여기서 말하는 ‘마더’가 꼭 저에게 엄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라온 환경 전반을 지칭하는 개념에 가까워요. 엄마가 저를 위해 조성했던 공간일 수도 있고, 그 영향을 받아서 쌓아 올려진 ‘집’ 자체가 지금의 저일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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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작업은 제 창의성의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왜 제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탐구라고도 할 수 있어요. 자연스럽게 유년기의 경험, 그때 접했던 그림책과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정서들이 주요한 단서가 되었고, 이번 전시는 그런 ‘나를 만든 벽돌들’을 하나씩 꺼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SeMA 벙커에서의 첫 개인전 이후로는 상업 작업에 집중해 오셨잖아요. 개인전이라는 무게감 때문이었을까요. 이번 두 번째 개인전까지는 6년의 공백이 있었어요.
공식적인 회화 개인전으로는 6년 만이에요. 그 사이에 잉크 작업만 모은 전시를 한 번 열긴 했는데, 이번처럼 본격적으로 페인팅 중심으로 제 작업을 보여주는 건 정말 오랜만이죠. 첫 개인전 이후 상업 작업에 집중하게 된 건 결국 경제적인 이유가 컸어요. 창작을 꾸준히 이어가려면 현실적인 기반이 필요하다는 걸 일찍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매달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꾸준히 작업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상업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펀딩해 온 셈이고, 덕분에 지금은 조금 더 안정된 상황에서 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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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16 20250820 093317](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08/20250820_093317-832x525.webp)
상업 작업에 집중했던 시간이 단순히 생계뿐만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태도나 정체성을 만드는 데도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해 오셨나요?
늘 그 경계를 의식했어요. 상업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일러스트레이터로만 보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거든요. 실제로 상업적인 의뢰를 많이 하다 보면 그냥 상업 작가로만 인식되기가 쉬운 거 같아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제 아이덴티티가 필요로 한 작업들을 골라하고, 제 작업 세계를 병행해서 보여주려고 했어요.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는 아주 얇지만, 분명한 균형점이 있어요.
그걸 잃지 않는 게 창작자로서 지속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개인전에서 특별히 기대하거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작품 판매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제 작품들이 너무 ‘내 새끼’ 같아서, 차라리 안 팔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거든요. 어차피 저는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창작을 롱텀으로 보려면 작품도 순환이 돼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계속 안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고 느껴져 미련을 버리게 된 거죠. 지금은 내 새끼들이 자기를 아껴줄 다른 터전을 찾아 멀리 떠나면 좋겠습니다.
PLUS LIST
연여인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그림책 3
– Oh, the Places You’ll Go! / Dr. Seuss
연여인 작가가 “새로운 챕터를 맞이하는 이들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꼽은 작품. 삶에는 고점과 저점이 있지만 결국 너는 강인함으로 지나갈 수 있고 멀리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전한다.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모던한 감각을 지녔다며, 작가는 “50대 지인에게도 선물한 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 The Sleep Book / Dr. Seuss
잠이라는 소재를 끝없이 확장하며 다양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낸 책. 연여인 작가는 이 작품의 일러스트레이션을 특히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는 “삽화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작가의 창의성을 실감할 수 있다”라며, 단순한 그림책이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작품집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 The Lorax / Dr. Seuss
과잉 개발과 환경 파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고 재치 있는 그림과 글로 풀어낸 책.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에서 연여인 작가는 “교훈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결코 교훈처럼 느껴지지 않게 풀어낸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추구하는 오묘한 지점”이라며, 자신의 회화에도 큰 영향을 준 그림책으로 꼽았다.
TIPPING POINT
연여인에게 전환점은 거창한 순간이 아니었다. 대학 졸업반, 주변이 모두 취업 준비에 몰두하던 시기에 그는 오히려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그림을 그리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불안은 늘 따라왔지만, 그 불안은 오히려 그를 책상 앞으로 불러내는 힘이 되었다. 종이에 잉크를 찍고 선을 쌓아가는 반복 속에서 그는 수행처럼 몰입했고, 그 결과 고유의 회화적 언어가 쌓여갔다. 시대가 변하며 니치한 감각이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그의 그림은 영화와 드라마, 브랜드 협업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외부의 기회가 아니라 내적인 태도였다. 그는 기술을 보조 도구로만 두고, “그리는 행위 자체”를 본질로 삼았다. 단순하지만 단단한 이 신념이 불안과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힘이 되었고, 그렇게 연여인은 비로소 ‘창작자’로 설 수 있게 됐다.
![[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17 20250820 082546](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08/20250820_082546.jpg)
![[Creator+] 비주얼 아티스트 연여인: 예술과 상업의 틈에서 나만의 균형점을 만들다 18 20250820 082547](https://design.co.kr/wp-content/uploads/2025/08/20250820_08254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