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다시 펼쳐지는 르메르의 〈Wearable Sculptures〉전
르메르 순회전시〈Wearable Sculptures〉 in Seoul
지난 3월 르메르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큰 호응 속에 끝난 순회전시 〈Wearable Sculptures〉가 서울로 무대를 옮겼다. 이번 전시는 칠레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공예가인 카를로스 페냐피엘(Carlos Peñafiel)의 반세기에 걸친 작업 세계를 집약해 보여준다. 르메르의 첫 해외 스토어인 한남 플래그십에서 이어져 그 의미가 더욱 뜻 깊다.

‘르메르(LEMAIRE)’라는 브랜드를 떠올리면 다양한 이미지가 머리 속을 스쳐지나간다. 미니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옷들부터 거리에서 누군가가 메고 있는 것을 한 번쯤 봤을 법한 크루아상 백까지. 여기에 조개껍데기를 닮은 ‘카를로스 백(Carlos Bag)’이나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이는 ‘에그 백(Egg Bag)’ 같은 가방들도 빼놓을 수 없다. 조형적 오브제를 닮은 형태이지만, 스타일링에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르메르가 패션을 통해 일상 속에서 예술적 감각을 실현하는 방식을 잘 드러낸다.

그렇다면 감각과 상상을 자극하는 이 가방들은 누가, 어떻게 디자인했을까?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전시가 지금 한국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르메르 파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큰 호응 속에 끝난 순회전시 〈Wearable Sculptures〉가 서울로 무대를 옮겼다. 이번 전시는 칠레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공예가인 카를로스 페냐피엘(Carlos Peñafiel)의 반세기에 걸친 작업 세계를 집약해 보여준다. 르메르의 첫 해외 스토어인 한남 플래그십에서 이어져 그 의미가 더욱 뜻 깊다.



칠레 출신의 아티스트 카를로스 페냐피엘은 브라질에서 가죽 공예를 처음 접하고, 1970년대 중반 파리에 정착한 이후 가죽, 목재, 청동을 재료 삼아 모자, 가면, 가방, 신발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을 조각의 관점에서 재해석해왔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몸과 결합하는 ‘입을 수 있는 조각’으로, 패션과 예술을 서로 확장시켜주는 매개체가 된다.

페냐피엘의 작업에서 핵심은 가죽 성형 기술이다. 물에 적신 가죽을 오랜 시간 틀에 압착하며 곡선을 얻는 과정은 섬세한 관찰과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이렇게 완성된 오브제는 껍질이자 신비한 부적, 혹은 대화를 시작하는 도구가 된다. 가죽이라는 소재가 지닌 유연함과 강인함은 그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를로스 백(Carlos Bag)’과 ‘에그 백(Egg Bag)’은 르메르와 함께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협업하며 브랜드의 상징적 오브제로 자리 잡았다. 가슴, 조개껍데기, 캐스터네츠를 모티프로 한 지갑 시리즈 역시 인간의 몸과 자연물,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상징적 작품군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 이 같은 협업 결과물은 물론, 작가의 개인 소장품과 미공개 작품을 함께 선보여 한층 다채로운 작업물들을 보여준다.


작업물과 더불어 이번 전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함께 공개된 단행본이다. 르메르 공동 아티스틱 디렉터 사라-린 트란(Sarah-Linh Tran)이 설립한 출판사 에디시옹 지겔바움-트란(Éditions Siegelbaum-Tran)의 창간물 《카를로스 페냐피엘(Carlos Peñafiel)》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 카를로스 페냐피엘의 행보를 풍부한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로 정리하며 예술, 공예, 패션을 아우르는 기록으로 완성됐다. 전시와 책, 두 프로젝트는 서로를 비추며 그의 예술 세계를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은 1980년대 피에르 가르뎅과의 협업부터 르메르와 이어진 긴밀한 연대까지, 패션이라는 무대를 통해 확장된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또한 평론가 클로에 브라운슈타인-크리겔과 파비앙 페티오는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독창적 기술을 조명한다. 그들은 도발적이고 유머러스한 작품 세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고 평가한다.


르메르의 상징적인 오브제들과 가방, 그리고 페냐피엘의 미공개 작업물들까지 볼 수 있는 특별한 이번 전시는 9월 3일부터 30일까지 키아프(KIAF)와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열린다. 갤러리들만 들르기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한남동 예술 산책 코스에 이 전시를 넣어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