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을 채운 빛의 조각들, 이사무 노구치 전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정원에 펼쳐진 이사무 노구치의 세계. 조각들은 시간과 계절의 빛을 머금고, 관람자가 걷고 머무는 순간마다 다른 장면을 선사한다.

지금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Rijksmuseum) 정원에서는 〈Isamu Noguchi in the Rijksmuseum Gardens〉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세기 조각과 디자인을 대표하는 거장,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를 조명하는 이번 야외 전시는 국립미술관이 매년 선보이는 야외 조각 프로젝트의 열두 번째 시리즈로, 5월 28일부터 10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정원에 설치된 대형 조각을 비롯해 아트리움, 아시아관, 전통적인 암스테르담 운하 주택을 재현한 베닝(Beuning) 룸까지 미술관 전역에서 노구치의 다채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정원 속 빛과 조각

이번 전시는 대형 조각에서 조명과 세라믹, 가구 디자인까지 아우르며, 노구치의 폭넓은 작업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원에는 돌과 청동으로 제작된 대형 조각 25점이 놓여 있다. 단단한 물성과 자연 풍경이 대비를 이루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다른 장면을 만들어낸다. 노구치는 전통적인 조각 개념을 넘어 빛과 공간, 자연의 상호작용 속에서 ‘총체적 경험’을 추구했다. 그에게 조각은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인간과 공간 그리고 시간을 잇는 매개였다.


한편, 실내 공간에서는 노구치 작업물의 또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아트리움에는 일본 전통 와시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아카리(Akari)’ 조명 약 30점이 설치돼 부드러운 빛을 발한다. 단순한 생활 조명에 그치지 않고, 공간 전체를 연출하는 예술적 장치로 기능한다. 아시아관에는 도자기 작품이 전시되며, 대표작으로는 기능성과 조형성을 결합한 1952년작 ‘Face Dish (Me)’가 있다. 베닝 룸에는 초현실주의 미술가들과 교류 속에 제작한 희귀한 체스 테이블이 놓여, 조각가로서 경계를 넘어선 그의 실험 정신을 보여준다.
일상에 스며든 예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2013년 재개관 이후 매년 여름 정원을 열어 세계적인 조각가의 작품을 무료로 소개해 왔다. 헨리 무어(Henry Moore),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 바버라 헤프워스(Barbara Hepworth), 이우환 등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올해는 노구치가 그 계보를 잇는다. 마침 2025년은 뉴욕 노구치 재단 설립 40주년이 되는 해다. 국립미술관은 이 시점을 맞아, 공공과 생활 속 예술을 탐구해 온 노구치를 올해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전시는 양 기관의 협력으로 성사됐다.

국립미술관 정원은 암스테르담 예술 문화의 중심지인 뮤지엄플레인(Museumplein)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반 고흐 미술관, 스테델릭 미술관과 나란히 놓인 이곳은 도시의 문화적 심장이자,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노구치가 추구한 ‘공공 속의 예술’이라는 가치는 이 장소성과 자연스럽게 맞닿으며, 이번 전시는 그 철학을 현장에서 구현한다.

큐레이터 프리츠 숄턴(Fritz Scholden)은 “노구치의 작업은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공간 전체를 새롭게 구성한다”라고 말한다. 공동 기획자 알프레드 파크망(Alfred Pacquement)은 “그의 정원은 실험실이었다. 암스테르담 정원에 그의 작품을 두는 것은 관람객을 그 실험에 초대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두 기획자의 언급처럼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예술과 공공 공간의 미래를 펼쳐 보인다.

전시는 시간대에 따라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한낮에는 조각의 질감과 그림자가 선명히 드러나고, 저녁이면 아카리의 빛이 정원을 감싸며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람자는 작품과 함께 빛·공간·시간이 맺는 관계를 직접 체감한다. 사진을 남기는 일보다 걷고 머무는 순간이 오래 기억된다. 그렇게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의 정원은 노구치의 예술로 채워진다. 이번 전시는 예술이 어떻게 공공과 만나는지를 묻는다. 노구치가 평생 탐구한 그 질문은 오늘날 도시와 우리 일상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About 이사무 노구치

이사무 노구치는 1904년 일본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평생 동서양을 넘나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했고, 동양의 미학과 서양 모더니즘을 결합해 두 세계의 교차점을 만들었다. 일본과 미국에서의 경험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가구와 조명, 무대, 놀이터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히며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었다. 이러한 보편성과 독창성 덕분에 그의 예술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뉴욕의 ‘레드 큐브(Red Cube)’, 파리 유네스코 본부 정원, 삿포로의 모에레누마 공원, 그리고 아카리 조명이 있다. 그의 작업은 과거의 유산에 머물지 않고, 도시와 공공예술을 논의할 때 중요한 지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