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라픽스가 온실에 연 도서관 〈안쪽〉

안그라픽스의 안쪽, 책의 안쪽, 나의 안쪽··· 여러 ‘안쪽’을 탐험하는 팝업 전시

안그라픽스의 다양한 활동과 출판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이 열렸다. 안그라픽스 마케팅팀의 김세영 팀장과 〈안쪽〉의 시작과 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그라픽스가 온실에 연 도서관 〈안쪽〉


전시 공간 ‘피크닉’ 앞에는 온실이 하나 있다. 최근 이 온실이 그래픽 디자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안그라픽스의 작은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차(茶)를 통한 감각과 영감을 다루는 인투이션과 함께 팝업 전시를 기획하며, 출판물을 중심으로 한 도서관을 콘셉트로 가져온 것. 〈안쪽〉이라 불리는 전시이자 도서관은 지난 4월 5일 개관해 앞으로 3개월간 운영된다.

안그라픽스는 1985년 시각디자이너 안상수가 설립한 디자인 전문 출판사이자 디자인회사이다. 안그라픽스가 만들어내는 것들을 흥미롭게 따라가는 사람으로서, 안그라픽스 마케팅팀의 김세영 팀장과 〈안쪽〉의 시작과 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안그라픽스’라는 브랜드의 여러 면이 궁금한 이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대화.

Interview

김세영 안그라픽스 마케팅팀 팀장
올해 신설된 마케팅팀은 안그라픽스 내 다양한 사업을 보다 통합적인 전략으로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실행하는 일을 한다.

〈안쪽〉의 시작과 그 안에 펼친 것

어떻게 이곳 피크닉 온실에 도서관을 열게 되었나요?

사실 〈안쪽〉은 안그라픽스와 인투이션이 함께 운영하는 공간입니다. 도서관을 열게 된 피크닉 온실은 인투이션 랩으로 인투이션의 연구 공간인데요. 한국에서 잘 기르지 않는 허브의 재배를 시도하고, 그런 허브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차와 음료를 만들어 보고 함께 맛보는 곳이죠. 본질을 존중하며 여러 감각과 감정을 통해 균형과 영감을 찾는 인투이션에서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자 안그라픽스에 팝업 공간을 제안해 주셨어요. 안그라픽스 또한 도서를 다양한 방식과 공간에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안이 반가웠습니다.

〈안쪽〉 내부. 책장과 전시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안그라픽스
전시가 아닌 ‘팝업 도서관’이라고 명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인투이션과 공간 기획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책을 고르고 읽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같아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로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책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이곳에 옮겨온 것이죠. 공간 자체가 나무와 풀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어떻게 보면 작은 숲속 도서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안그라픽스가 1985년 설립되었으니, 내년이면 창립 40주년입니다. 작은 공간에 그동안 발행한 다양한 출판물과 도서를 펼치며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요. 〈안쪽〉에서 안그라픽스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나요?

많은 분에게 ‘안그라픽스’라는 이름은 출판사명으로 친숙하실 텐데요. 현재 대외적으로 안그라픽스는 디자인 에이전시 ‘AG’, 디자인 전문 출판사 ‘안그라픽스’, 글꼴 파운드리 및 플랫폼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 웹 콘텐츠 디자인 에이전시 ‘AG 랩’, 총 4개의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안그라픽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안그라픽스의 이름이 가지는 통일된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또한 안그라픽스의 역사 속에서 함께한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주고도 싶었습니다. 하나의 예로 〈서울 시티 가이드〉는 88 서울올림픽 당시 만들어진 책으로 서울을 다룬 최초의 영문 가이드북입니다. 〈보고서\보고서〉는 안상수 선생과 금누리 선생이 공동 기획한 잡지로 당시 파격적인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으로 유명한 잡지였습니다. 희귀한 도서의 경우 안전을 위해 전시대 안에 진열했습니다만, 이후 행사를 통해서 해당 도서를 실제로 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할 수 있도록 고려 중입니다.

최초의 영문판 서울 가이드북 ​〈서울 시티 가이드〉가 진열된 전시대 © 안그라픽스
그 의도를 공간에 어떻게 구현했는지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우선 책장의 도서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되어 있어요. 안그라픽스가 ‘만든 책’, ‘파는 책’, 그리고 ‘보는 책’, 이렇게요. ‘만든 책’은 말 그대로 안그라픽스가 디자인 에이전시로서 만들어온 책입니다. 문화예술 전반에서 다양한 기업 혹은 기관들과 책을 만들어 왔기에 그 성격을 비교하며 보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고, 또 외부에 판매되지 않았던 책들도 있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직접 펼쳐 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아요.

‘파는 책’은 안그라픽스가 출판사로 그동안 직접 만들고 유통한 도서들 중 50권 정도를 선정해 모아두었습니다. 〈디자인과 디자인〉 같은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뿐 아니라, 더 많은 분께 소개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도서들도 함께합니다.

마지막으로 ‘보는 책’은 말 그대로 안그라픽스 구성원들이 평소, 혹은 일을 하며 참고하는 도서들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출판 지침〉처럼 일하며 보게 되는 도서들이죠. 실제로 사무실에서 보는 도서들을 가져왔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손때, 어쩌면 피, 땀, 눈물이 함께 서려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그라픽스의 다양한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책장 © 안그라픽스
책장의 도서들은 자유롭게 꺼내 볼 수 있다. © designpress

전시대는 총 6가지의 구성으로 큐레이션 했어요. 첫 번째 ‘원서와 한국어판’에서는 안그라픽스가 소개했던 해외의 여러 좋은 책을 한국어판 책과 함께 비교합니다. 한국어판의 제목과 디자인 뿐 아니라 종이나 제본, 판형, 후가공 등 세세한 요소까지 비교해 살펴보실 수 있어요.

두 번째 ‘초판과 개정판’은 책의 수명과 시간을 보여주는 구성입니다. 숏폼이 유행하는 시대지만 책의 생명력은 깁니다. 안쪽의 본질은 유지하며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기도 하죠. 초판과 개정판을 함께 전시해 책 표지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디자인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안그라픽스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14년 동안 만들어온 타이포그래피 학술지 〈글짜씨〉를 소개하는 ‘글짜씨 시리즈’입니다. 〈글짜씨〉는 가벼운 에세이부터 글자 연구자들의 심도 있는 논문까지 다양하게 공유함으로써 글자와 타이포그래피 연구의 학술적 성취에 이바지해왔습니다. 호별로 다양한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참여해 그 차이를 보는 즐거움도 있어요.

네 번째 ‘글꼴과 글꼴보기집’은 위에서 말씀드린 안그라픽스의 ‘AG 타이포그라피연구’를 조명하는 자리입니다. AG 타이포그라피연구소가 디자인한 글꼴의 모양과 활용 방법 등을 이야기하며 글꼴이 어떻게 디자인되며 어떤 균형미를 가졌는지 등에 대한 답을 줍니다.

1988년 〈보고서\보고서〉 창간호 © designpress

다섯 번째 ‘보고서\보고서와 안팎’은 1988년 창간되어 파격적인 한글 타이포그래피 실험으로 유명했던 〈보고서\보고서〉를 이정표 삼아 2023년에 새로이 발행된 〈안팎〉을 소개합니다. 〈안팎〉은 안그라픽스의 새로운 인터뷰 웹진으로, 웹사이트에서도 〈안팎〉의 다양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어요.

​여섯 번째는 ‘안그라픽스 여행 시리즈’입니다. 이 부분을 제일 새롭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디자인 전문 출판사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안그라픽스는 여행책에도 늘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론리플래닛〉의 한국 발행처로서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ASIANA〉를 통해 국내외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했습니다. 〈스위스 디자인 여행〉을 비롯한 디자인 여행 시리즈는 당시 생소했던 디자인 강국의 디자인을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고요.

〈안쪽〉 내부 © 안그라픽스

마지막으로 이런 책 주위에는 온실의 편안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도록 계절에 맞는 꽃을 심어두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좋은 것을 보실 수 있도록 안그라픽스와 인투이션이 준비한 작은 배려입니다. 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려 있듯 이 공간 또한 모두에게 열려 있어요. 잠깐 앉아 가실 수 있도록 곳곳에 의자를 내어 두었습니다.

로고를 비롯한 그래픽 작업들

책갈피가 실제 과거의 도서 카드를 연상케 해요. 작지만 이곳을 도서관이라는 장소로 경험하도록 알차게 설계하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요즘의 도서관 풍경과는 사뭇 다르지만, 여전히 도서관 하면 마지막 책장에 붙어있던 도서 카드가 생각나요. 〈안쪽〉에서 책을 읽는 순간이 물리적인 매체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자연스레 도서 카드를 책갈피로 제작하게 되었고요. 책갈피는 〈안쪽〉에서 사용하시거나 집에서 좋아하는 도서에 편하게 쓰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로고는 〈안쪽〉의 초성인 ㅇ과 ㅉ을 조합해 구성했어요. 도서관이라는 콘셉트가 잘 드러나도록 종잇장이 겹친 책의 옆면을 연상시키는 줄무늬를 각각 넣었고요. 어디서든 눈에 띄는 주황색은 전시가 진행되는 봄과 여름, 계절에 맞는 밝은색을 찾다 가장 어울릴 법한 색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안쪽〉 로고 © 안그라픽스
〈안쪽〉을 찾는 분들이 이곳을 어떻게 즐기고 경험했으면 하나요?

어떻게 보면 〈안쪽〉이라는 개념의 출발과도 맞닿아 있는 질문인 것 같아요. ‘안’은 공간적 개념을 나타내며, 온실 안은 작은 도서관이죠. 책꽂이와 전시대를 비롯한 가구로 둘러싸인 공간에 몰입하면, 외부 세계를 벗어나 고요와 사색을 만끽하실 수 있어요. ‘쪽’은 책의 쪽을 의미합니다. 책을 펼쳐야 볼 수 있는 내지 페이지처럼 〈안쪽〉은 입장해야 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서가에 꽂힌 책들은 방문자를 무궁무진한 지식과 상상력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그렇게 두 단어가 결합한 ‘안쪽’은 자기 내면세계로의 여행입니다. 방문자는 조용히 독서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며, 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할 기회를 가져요. 결국 어떻게 보면 〈안쪽〉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을 둘러보며 책을 고르고, 책장을 한 장씩 넘겨보며 스스로의 경험을 찾아가야 하죠. 이때 인투이션의 차 한 잔과 함께하면 더욱 도움이 될 거고요.

물론 이외에도 인투이션과 함께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세요. 여담으로 〈초예술 토머슨〉의 출간과 함께 운영했던 가상의 단체 ‘한국노상관찰회’의 오프라인 모임도 이곳에서 기획 중입니다.

〈안쪽〉 전시 포스터. 앞면에는 안그라픽스의 책 커버가 뒷면에서 이들이 추천하는 해당 책의 쪽 번호가 적혀 있다. © 안그라픽스

안에서 나와 다시 연결되기

안그라픽스의 웹진 〈안팎〉을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안팎’과 ‘안쪽’이 비슷한 뉘앙스로 읽히는 것에 대한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마케팅팀이 신설된 이유와 비슷할 것 같아요. 사실 안그라픽스는 이전에도 다양한 ‘안-‘의 이름을 사용해왔습니다. 안그라픽스 목요강연 ‘안목’, 안그라픽스 파주 본사 ‘안집’ 등 여러 이름이 존재했죠. 또 ‘안’이라는 낱말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재밌는 이름이 나올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안팎’이든 ‘안쪽’이든 서로를 맞춘다는 어떠한 특정적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안그라픽스가 지닌 다양한 헤리티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겠다는, 안그라픽스 내부의 기조와 더 맞닿아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쪽〉에서 〈보고서∖보고서〉, 〈안그라픽스 30년: 1985 2015 30〉을 보며 안그라픽스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안그라픽스에 대한 이러한 관심을 이어나갈 수 있는 장소나 방법이 있다면.

먼저, 안그라픽스의 역사와 시간을 살펴볼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또 내부에서도 이번 기획을 통해 한국 디자인의 유산들을 더 다양한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어요. 〈보고서∖보고서〉 같은 도서의 디지털 아카이빙을 준비 중이기도 하고요. 〈안팎〉, 안그라픽스의 도서, 그리고 서체를 통해 안그라픽스의 현재를 계속해서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안그라픽스 도서관 〈안쪽〉 © designpress
전시 종료 이후 〈안쪽〉을 다른 장소에서도 만날 수 있을까요?

공간은 7월까지 운영할 예정이라 아직은 이른 고민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안그라픽스는 이후에도 또 다른 공간에서 많은 분들을 맞이할 기획을 생각 중입니다. 더 재밌고 다양한 기획들을 기대해주세요.

〈안쪽〉의 안쪽에서 보이는 피크닉 © 안그리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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