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어로우 양윤선 대표

좋은 삶을 생각하는 철의 여제

레어로우는 국내 철제 가구 브랜드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철의 여제' 양윤선이 있다.

레어로우 양윤선 대표

물성과 신념으로 쌓은 12년의 시간, 그것은 단순히 철제 가구의 진화를 넘어 한 사람의 신념이 만들어낸 궤적이다. 용접의 불꽃에서 미학을 발견하고, 산업의 구조에서 삶의 질서를 모색해온 레어로우의 양윤선 대표. 그는 철이라 는 가장 차가운 재료에 디자인을 더해 가장 따뜻한 일상을 설계한다. 뉴욕의 MoMA에서, 공장 한편에서, 그리고 의자와 선반 위에서 그녀는 같은 질문을 던진다.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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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로우 대표. 철물점을 운영한 할아버지, 철제 가구 회사 심플라인을 설립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서 공간 디자인을 공부한 뒤
귀국해 2014년 레어로우를 설립했다. 심플라인의 제조 기술에 디자인을 접목한 이 브랜드는 ‘시스템000’ 등을 성공시키며 국내에서
생소했던 철제 가구를 대중화하는 데 이바지했다. 2023년 ‘레어로우 워크’로 오피스 가구 영역으로 확장한 데 이어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rareraw.com

국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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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소호의 MoMA 디자인 스토어. 뉴욕의 MoMA 디자인 스토어 중 가장 오래된 매장이다. 25년 만에 진행한 첫 리뉴얼에서 이들은 레어로우의 시스템 선반을 선택했다.
최근 뉴욕 출장을 다녀왔더군요.

뉴욕 소호에 있는 MoMA 디자인 스토어의 리뉴얼에 레어로우가 참여하게 됐어요. 25년 만의 첫 리뉴얼인데 레어로우의 선반으로 채우게 됐죠. 직접 시공 현장을 둘러 보고 싶어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굉장히 뜻깊은 프로젝트네요. 그런데 MoMA에서 어떻게 레어로우를 알았죠?

2023년에 참가한 메종 & 오브제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프랑스의 커트러리 브랜드 사브르와 연을 맺었어요. 이후 사브르의 전 세계 매장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죠. 그런데 MoMA 디자인 스토어 관계자가 사르브 뉴욕 매장을 둘러본 모양이에요. 레퍼런스 체크 차원에서 우리 브랜드에 대해 공식 문의를 남겼는데 사브르의 대표들이 강력 추천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만나러 MoMA 관계자들이 직접 서울을 찾기도 했는데 마침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기간이라 함께 레어로우 부스를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까지 연결이 됐죠. 참, MoMA 관계자들이 올해 서울디자인페스티벌 기간에 한 번 더 행사장을 찾는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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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000 STS 버전을 매장 3면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한 사브르 파리 매장.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특별히 느낀 바가 있다면요?

사실 해외 시공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앞서 말한 사브르 매장도 그렇고, 지난 9월에는 일본의 대표적인 편집 매장 빔즈에 납품을 하기도 했죠. 그때마다 현지인의 피드백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실제로 다들 한국에 이런 브랜드가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해요. 이 브랜드가 아직 12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더욱 놀라고요. 한국 디자인과 브랜드는 분명 저력이 있어요. 우리뿐 아니라 국내 리빙 브랜드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습니다.

실제로 최근 레어로우가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사업가들은 아마 모두 공감할 것 같네요. 국내 시장에서 일종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레어로우가 국내의 기성 대형 가구 브랜드와 차별화된 디자인 가구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다 보니 내수에 국한해선 수요층을 넓히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업에서 매출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락한다는 말이거든요. 제조 원가나 인건비 상승 등을 고려해보면 말이죠. 10% 성장을 목표로 하면 2% 성장하는 것이 사업의 특징입니다. 그러다 보니 성장을 추구하게 되고 더 넓은 시장을 바라보게 되더군요. 앞서 말한 빔즈 입점 외에도 싱가포르, 대만, 중국 등지에 이미 대리점 형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스리데이즈오브디자인3daysofdesign 참가도 계획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우리만 단독으로 참여할 생각이었는데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을 보고 마음을 바꿨어요. ‘K’를 붙여서 참가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여러 브랜드의 대표들에게 연락을 돌렸죠. 그렇게 모집한 5개의 브랜드가 함께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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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즈 Cultuart 다카나와 매장. 예술과 문화의 즐거움을 전하는 ‘빔즈 Cultuart’ 프로젝트의 첫 단독 매장이다. 아트, 애니메이션, 음악, 그래픽 등 다양한 콘텐츠를 브랜드 고유의 시선으로 선별하고 믹스한 이 공간에서 레어로우의 시스템000과 포 스태킹 쉘프 등을 만날 수 있다.

브랜드의 시작과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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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로우 워크 시리즈. 2023년 코리아디자인어워드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수상했다.
레어로우 역사에서 B2B 철제 가구 제작 회사 ‘심플라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문득 브랜드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인 양경철 대표의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예전부터 아버지가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어요. 정말 다행이죠. 제조업을 한다고 모두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와 브랜드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사실 디자인에 너무 관심이 많다 보니 자꾸 설계에 참여하려고 하시긴 했는데…(웃음) 결론적으로 이런 관여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어떻게 가업을 이을 생각을 했나요? 사실 국내 제조업이 이제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을 텐데요.

돌이켜보면 일종의 사명감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레어로우를 시작할 때 제 나이가 고작 20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사명감이라는 것조차 몰랐지만 말이죠.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버지 공장을 둘러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100여 명 정도의 직원들이 공장에서 근무하는데 땀을 흘리며 용접을 하고 절곡하는 모습에 매료되었어요. 진정한 노동 현장이잖아요. 이들의 구슬땀이 결국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고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국내 제조업이 예전 같지 않았어요. 심플라인의 비즈니스는 대량 납품이나 연단가 입찰 위주였는데 점점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 힘들어지던 시기였죠. 어떻게 하면 그 가치를 이어갈 수 있을까 고심하다 만든 게 레어로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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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로우의 대표 가구 중 하나인 시스템000.
심플라인과 달리 레어로우는 B2C가 중심입니다.

맞아요.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가업’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요. 그만큼 심플라인과 레어로우는 완전히 다른 사업이었어요. 처음부터 그걸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도, 아버지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연단가로 대량 납품을 하는 가구와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제품을 전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더군요. QC(Quality Control)부터 배송까지 모든 것이요. 사업 초기에는 같은 생산 라인을 이용했는데 어려움이 많아 이젠 아예 이것도 분리시켰습니다.

말만 들어도 고행길이었던 것 같군요.(웃음)

물류부터 문제였습니다. 물론 심플라인도 배송 팀이 있지만 B2B에서 패키징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빨리빨리’ 문화가 일반화된 한국에선 고객들이 배송되는 가구가 어디까지 왔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어하죠. 그전까진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니 새로 체계를 새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내적 갈등은 따로 있었어요. 저는 이전까지 줄곧 저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정체성의 혼란이 오더군요.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디자인일까, 제조일까?’ 누구보다 디자인에 진심인 사람이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냉정하게 보자면 5% 남짓이더군요. 사실 사업가를 꿈꾸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착각을 해요. 내가 디자인한 제품이 예쁘면 사람들이 구매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실상 타협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머릿속으로 구상한 디자인은 정말 획기적일 수 있어도 제조 프로세스나 단가를 고려하면 하나씩 포기해야 할 때가 있어요. 사실 아직도 이 부분은 균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실험·도전·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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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미술도서실 프로젝트. 푸하하하프렌즈와 협업했다.
레어로우는 날것(raw)과 본질(rare)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물성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엿보입니다. 철제의 매력을 꼽아본다면요?

제가 철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성 자체가 인더스트리얼 속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그대로 보이는 정직한 디자인이란 뜻이죠. 이 분야에선 구조를 잘 푸는 것이 합리성과 결부되고, 지속 가능성과 직결돼요. 그런데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뀐 부분이 있어요. 물론 저는 ‘철수저’이고 우리 공장은 철밖에 다루지 않는 것은 맞는데, 소비자들이 철제 가구라서 구매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브랜드 초기에는 철제 가구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홍보했는데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 제품이 얼마나 편하고 예쁘고 실용적인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소재에 대한 강박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저는 레어로우가 끝없이 확장하고 도전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알아봐주셔서 고맙습니다.(웃음) 도전이 우리 브랜드의 핵심 가치 중 하나거든요. 시스템 가구로 시작했지만 소파, 테이블, 의자 등 일반 가구로 영역을 넓혀갔죠. 오피스 가구에도 도전했고요. 최근에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서 파티션 등을 개발하며 공간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기반, 모듈 기반이라는 지향점이 생기자 모든 게 명료해지더군요. 실제로 레어로우의 제품을 잘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모듈형 가구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성수동에서 운영하던 쇼룸 ‘레어로우 하우스’도 그 도전의 일환이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직업군의 뮤즈를 선정해 매장에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한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성수동 쇼룸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듈 가구로서 사용자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하고 싶었죠. 그래서 여러 전문가를 섭외해 그 가능성을 시각화하고자 했습니다. 체험형 공간을 운영했던 것은 금속 가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여전히 철제 가구를 집 안에 들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좀 더 일상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죠. 실제 주택을 개조해 쇼룸을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어로우 하우스 자체는 운영을 종료했지만 뮤즈 프로젝트는 지금도 레어로우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어가고 있어요.

디자인에 많은 힘을 기울이는 것도 레어로우의 특집입니다. 사내에 디자인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죠.

회사에 10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근무하고 있어요. 사실 디자인 직군 외의 직원을 채용할 때도 디자인 전공자를 선호하는데 문제점을 파악하는 시선이 디자이너가 제일 좋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레어로우 디자이너들은 힘들게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웃음) 이것 또한 철을 다루는 레어로우의 특징과 맞닿아 있습니다. 철제는 절곡 방식이나 용접 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재입니다. 결국 설계 도면을 풀어야 디자인이 완성돼요. 디자이너 업무가 3D 도면을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설계까지 풀어내야 하다 보니 목재 등 다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디자이너조차 이곳에서 버티기 어려워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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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스탠다즈와 협업한 포 스태킹 쉘프.
외부 디자인 스튜디오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국내 사례를 참고하기 어려웠어요. 기성 가구 중에 우리만큼 디자인에 방점을 둔 브랜드가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해외 케이스를 참고하게 됐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글로벌 가구 브랜드의 경우 디자이너를 무척 존중하고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늘 강조하죠. 단순히 기능성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디자인이 어떤 사유와 창작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디자인인지 심도 있게 다룹니다. 그런데 당시 저희 회사에 디자이너가 저를 포함해 4명밖에 없었어요. 우리 이름을 걸기는 좀 남사스럽잖아요(웃음). 그래서 외부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적극적으로 협업을 추진해보기로 했어요. 이때 브랜드는 철저히 생산자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초점은 ‘우리가 디자인을 이렇게 잘한다’가 아니라 ‘우리가 저들의 디자인을 이렇게 잘 구현할 수 있다’가 되어야 하죠. 앞서 내가 디자이너인지, 제조업자인지 혼란스러웠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때가 마음을 정한 순간이었어요. 세상에 좋은 디자이너가 이미 많으니 우리는 그들이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제조에 초점을 맞추자고 결심했어요. 그렇게 포스트 스탠다즈와 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디자이너들과 합을 맞추게 되었죠.

협업이 가장 빛을 발했던 것은 지난해 10주년 기념 컬렉션 ‘10 Colors’가 아닐까 싶습니다.

10년 동안 축적한 제조 테크닉을 유감없이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내부에선 글로벌 진출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때였죠. 사실 메종 & 오브제에서 빅게임을 만난 게 발단이 됐어요. 협업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10 Colors’로 기획이 확장됐죠. 솔직히 기획을 하고도 빅게임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었어요. 세계적인 인지도가 있는 만큼 ‘원 오브 뎀’이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흔쾌히 승낙을 했어요. 이후로 SWNA, BKID, 최중호스튜디오 같은 국내 유명 디자이너와 ‘폼 어스 위드 러브Form Us with Love’ 등 해외 디자인 스튜디오까지 합류하게 됐죠.

최근에는 최중호 디자이너를 아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습니다.

앞으로 디자인에 더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데에는 정말 많은 요소를 두루 다뤄야 해요.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죠. 그러다 보니 디자인만큼은 이미 검증된 디자이너에게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레어로우가 성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최중호 디자이너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군요.

먼저 국내에 가구를 전문으로 하는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어쩌면 전자 기기를 중심으로 성장한 국내 산업의 특징 때문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금속을 잘 다루는 디자이너가 최중호 디자이너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2021년 리브랜딩을 단행할 때 합이 잘 맞았습니다. 한국 디자인 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나 관점에도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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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새롭게 문을 연 레어로우 청담 플래그십. 모듈 시스템을 기반으로 저층부에는 레어로우의 B2B, 2층과 3층에는 B2C 제품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레어로우 청담 플래그십을 기대했던 이유도 그의 합류 후 처음 선보이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매장에서 각별히 공들인 부분이 있나요?

일단 브랜드의 정체성에 맞게 인테리어에선 날것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어요. 여기에 레어로우의 솔루션으로 구조를 다 풀었죠. 레어로우 하우스 때처럼 모듈 솔루션의 가능성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같은 제품을 층층이 다른 모습으로 연출했어요. 또 일반 벽체가 아니라 우리의 모듈로 벽을 세우는 시스템도 시도했어요. 이건 지속 가능성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선 사무실 이사가 잦은 편이잖아요. 인테리어를 철거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폐기물이 나오고요. 계약상 원상 복구를 해야 한다는 사항도 있다 보니 모듈에 기반한 레어로우의 공간 솔루션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점을 플래그십 안에서 부각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좋은 삶을 채우는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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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로우 랙. 컬러 커스터마이징으로 취향을 드러낼 수 있다.
확실히 오늘날 모듈형에 기반한 디자인이 늘어난 것 같아요. 그 배경이 무엇일까요?

취향이라는 말에 좀 물리긴 했지만(웃음) 그럼에도 이 현상은 개인화 이야기를 빼놓고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용도와 크기를 규정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구성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가 커진 것이죠. 개성을 표출하고 싶은 니즈도 커졌고요. 수납형 위주의 가구 디자인이 오픈형으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용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경향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초 구매시 특정 용도를 염두에 뒀다고 해도 생활하다 보면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레어로우의 제품도 사용성을 정해두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유니버
설한 접근을 추구하죠. 지금은 주방에서 사용하지만 서재에서 써도 무방하고, 집에서 쓰려고 구매했지만 필요하면 사무실로 가져가도 되는, 모듈 디자인 고유의 다양한 사용성을 메리트로 느끼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5년, 10년 후 레어로우가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기를 바라나요?

솔직히 저는 먼 미래를 계획하진 않아요. 당장 내일 화산이 폭발할 수도 있고 지진이 날 수도 있잖아요.(웃음) 다만 요즘 들어 생각이 좀 변한 부분이 있어요. 불과 1, 2년 전만 해도 판매를 최우선 가치로 두었는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각자 ‘좋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그리고 그 좋은 삶에 걸맞은 제품을 만들고 싶고요. 그러다 보니 어떤 제품의 수요가 있다는 말에 많이 휘둘리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이게 지금 진짜 필요한 제품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 불필요한 제품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꼭 필요한 제품을, 이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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