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메르가 그린 ‘느림’이라는 미학의 영화

옷과 영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필름 프로젝트 〈NINE FRAMES〉

르메르(LEMAIRE)가 옷과 영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필름 프로젝트 〈NINE FRAMES〉를 공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5 FW 컬렉션의 실루엣을 중심으로 인간의 감정과 제스처를 포착하며,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옷이 지닌 표현적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르메르가 그린 ‘느림’이라는 미학의 영화

르메르(LEMAIRE)가 옷과 영화의 관계를 탐구하는 새로운 필름 프로젝트 〈NINE FRAMES〉를 공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5 FW 컬렉션의 실루엣을 중심으로 인간의 감정과 제스처를 포착하며,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옷이 지닌 표현적 가능성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NINE FRAMES〉는 제목 그대로 아홉 개의 롱테이크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편 영상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인물의 움직임과 감정의 변화를 담아내며, 비선형적인 구성으로 관객에게 열린 감상 경험을 제안한다. 35mm 필름으로 촬영된 작품은 아날로그 영상 특유의 색감과 질감을 유지하며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삶의 한순간을 보는듯한 인상을 준다. 롱테이크 기법은 시간, 공간,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며, 의상이 인물의 내면과 행동을 드러내는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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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배두나가 출연한 <Le Havre>

르메르는 패션이 강요하는 속도에 맞서기 위해 이미 존재하는 옷을 다시 바라보고 다듬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매 시즌 새로운 콘셉트를 만들어내기보다, 전형적인 아이템을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을 자신들만의 ‘느림의 미학’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번 〈NINE FRAMES〉의 촬영 방식 역시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편집을 배제한 긴 호흡의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삶의 한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듯한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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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배두나가 출연한 <Doona>

이번 프로젝트는 감독 ‘루카 루츠키(Lucca Lutzky)’가 연출을 맡았다. 그리고 르메르의 공동 디렉터인 ‘크리스토프 르메르(Christophe Lemaire)’와 ‘사라-린 트란(Sarah-Linh Tran)’이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담당했다. 촬영감독은 토비아스 블릭클(Tobias Blickle), 사운드 디자인은 ‘센얀 얀센(Senjan Jansen)’이 참여했다. 스틸 사진은 다닐 코틀리아르(Daniil Kotliar), 스타일링은 레오폴드 뒤슈맹(Léopold Duchemin), 캐스팅은 슈아이브 아리프(Chouaïb Arif), 헤어는 톰 라이트(Tom Wright), 메이크업은 ‘카린 웨스터룬드(Karin Westerlund)’가 각각 담당했다. 이들은 모두 유럽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로, 르메르가 추구하는 미학을 완성하는 팀으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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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배우 주시 바타넨(JUSS I VATANEN)이 출연한 <Studio 6>

프로젝트의 출연진들은 르메르의 철학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패션브랜드들이 사랑하는 한국의 배우 ‘배두나(Doona Bae)’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자연스럽고 진솔한 태도를 대표한다. 이외에도 프랑스 배우 에르완 케포아 팔레(Erwan Kepoa Falé), 탄즈테아터 부퍼탈의 상임 무용수 줄리 앤 스탠작(Julie Anne Stanzak), 핀란드 배우 주시 바타넨(Jussi Vatanen), 세네갈 출신 배 마메 비네타 사네(Mame Bineta Sané), 러시아 배우 빅토리아 미로시니첸코(Viktoria Miroshnichenko) 등이 출연한다. 각자의 국적과 배경, 신체 언어는 옷이 담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르메르의 미학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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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즈테아터 부퍼탈의 상임 무용수 줄리 앤 스탠작(Julie Anne Stanzak)이 출연한 <Julie Anne>

르메르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영화의 서사보다는 장면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감정의 결에 주목했다. 그는 배우의 표정, 옷의 질감, 조명의 움직임, 음악의 흐름 등 각각의 요소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하나의 정서를 완성한다고 본다. 시나리오의 틀을 최소화해 배우와 관객이 각자 자신만의 해석과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구상했다. 아홉 개의 영상은 느슨하게 이어진 모자이크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의 여백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 새로운 서사를 완성하도록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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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배우 주시 바타넨(Jussi Vatanen)이 출연한 <Vata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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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배우 에르완 케포아 팔레(Erwan Kepoa Falé)와 탄즈테아터 부퍼탈의 상임 무용수 줄리 앤 스탠작(Julie Anne Stanzak) 출연한 <Cut>

〈NINE FRAMES〉는 웹뿐만 아니라 파리 엘제비르(Elzévir), 서울 한남(Hannam), 도쿄 에비스(Ebisu) 세 곳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도 공개된다. 매장에서는 영상을 비롯해 프린티드 북이 함께 전시되어, 작품 속 무빙 이미지를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한다. 관객은 이를 통해 영상과 오브제, 공간이 결합된 형태로 르메르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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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출신 배우 마메 비네타 사네(Mame Bineta Sané)가 출연한 <Mamé And Barb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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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배우 빅토리아 미로시니첸코(Viktoria Miroshnichenko)와 프랑스 배우 에르완 케포아 팔레(Erwan Kepoa Falé)이 출연한 <D161>

〈NINE FRAMES〉는 ‘패션 필름’이라는 장르를 초월한 르메르식의 철학적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옷이 지닌 기능적 역할에 더해, 감정을 드러내고 삶의 리듬을 기록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아홉 개의 프레임은 각각 하나의 독립적인 장면이자, 동시에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지며, 옷이 지닌 서사적 잠재력을 영화라는 형식 속에서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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