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소백 대표·디자이너 박민아: 신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근간으로 삶을 디자인하다

박민아 소백 대표·디자이너

생활과 오브제, 공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디자이너 박민아. 브랜드 소백(So_back)을 이끌며 전통 미학에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더한 디자인으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신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구축하고 있다.

[Creator+] 소백 대표·디자이너 박민아: 신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근간으로 삶을 디자인하다

editor’s note

경북 영주, 큰 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마을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브랜드가 있습니다. 소백(So_back). 종이의 질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하얀 각 티슈에서 출발해, 오브제와 패션 그리고 식음까지 확장해왔죠. 브랜드를 이끄는 박민아 디자이너에게 소백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담긴 이름이자, 무한한 평안의 상징입니다. 단아한 형태와 절제된 감각으로 완성된 ‘달항아리 쿠션’은 BTS 멤버 RM의 공간에 놓이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브랜드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전환점이 되었죠.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더현대서울,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 더콘란샵 재팬 등 국내외 고감도 채널을 통해 한국적 미학이 담긴 제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최근 서울 성수동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 ‘소백 서울(So_back Seoul)’을 열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시간이 한국적이다”라는 철학 아래, 기존 건물의 구조와 흔적을 그대로 살린 공간은 전통 한옥이 아니어도 한국적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존재감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 박민아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브랜드의 설계부터 협업, 그리고 디자인을 철학으로 확장해온 그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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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에 자리 잡은 소백 서울 공간에서 만난 디자이너 박민아

PLUS 1. 소백의 안전가옥

온라인 기반으로 전개해오던 소백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여러 팝업을 진행하면서 “실물로 봐야 더 좋다”, “소백은 촉감의 브랜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때부터 온라인에만 머무는 무형의 존재가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물리적으로 실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단순히 스토어를 위한 공간은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브랜드가 확장되면서 팀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사무실이 필요해졌거든요. ‘그럼, 물건을 팔아서 사무실을 유지하자’라는 현실적인 결론에 닿았죠. 지상층과 지하층을 함께 쓰고 있는데요. 현재는 아래층에서 제작과 작업을, 위층은 고객 응대와 업무를 병행하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상점이면서 동시에 사무실이기도 한 공간, 이런 형태를 택한 이유를 듣고 싶어요.

일과 브랜드가 공존하는 ‘집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해외의 소규모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대부분 매장과 스튜디오가 함께 있고, 디자이너가 직접 손님을 맞이하죠. 그런 구조가 가장 효율적이에요. 고객이 찾아와 제품을 만지고 입어보며 남기는 피드백이 곧 디자인의 기준이 되니까요. 디자이너가 책상 앞에만 앉아서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객이 직접 들려주는 말 속에 제품의 문제와 가능성이 다 들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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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서울 매장 지상층. 집 같은 공간에서 HOM, NEO, CHA의 제품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 정멜멜_melting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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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서울 매장 지하층 공간 © 정멜멜_meltingframe
이 아름다운 곳을 누가 디자인했을까 궁금했는데 직접 맡으셨다고요.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잡은 키워드나 방향성이 무엇인가요?

소백의 첫 플래그십을 어느 스튜디오가 맡을지 다들 궁금해 했어요. 하지만 첫 공간인 만큼 제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곳은 저에게 제품 디자인의 확장 버전이에요. 사람이 그 안에 있을 뿐, 구조와 골조는 모두 실용적인 기반 위에서 설계됐어요. 인위적으로 한국적인 요소를 더하기보다 제 기억 속 풍경을 끄집어내고 싶었죠. 어릴 적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바둑 기원이 가장 큰 모티프였어요. 바둑판의 그리드를 공간 구조로 옮기고, 입구 손잡이와 피팅룸 행거까지 모두 바둑알에서 출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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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이 아니어도 한국적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디자인 과정에서 주요하게 생각한 지점이 무엇인가요?

이 집은 원래 두 가구가 살던 연립주택이에요. 벽을 털어낸 흔적과 낡은 벽지를 그대로 남겼어요. 덮기보다 드러내고 새로 짓기보다 이어가는 방식이죠. 본래 있던 H빔 구조를 한옥의 대들보처럼 해석했어요. 소재는 한지, 청유리, 철, 오죽. 이 네 가지가 공간의 전부예요. 특히 청유리는 철분이 많은 한국산 모래에서 비롯한 녹빛 유리인데, 그 탁한 녹빛이 오히려 더 한국적이라고 느껴졌어요. 땅의 성질이 만들어낸 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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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멜멜_meltingframe
공간을 운영하면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변화가 있을까요?

브랜드의 카테고리가 다양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층 분리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아래층은 관광객이나 소백을 처음 접하는 분들이 편하게 들어와 브랜드를 가볍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위층은 소백의 옷을 오래도록 좋아해온 오리지널 팬들이 조용히 머물며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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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우_chalkak__
소백 서울이 브랜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나요?

소백 서울은 저에게 일종의 ‘안전가옥’이에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형태나 감도가 변하지 않는 힘을 가진 공간이길 바랐죠. 전 세계 어디에도 아직 소백의 오프라인 스토어는 이 한 곳뿐이에요. 한국에서 ‘이 골목 안에 소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동시에 이곳이 소백이 세계로 나아갈 때의 둥지이자 중심이 되길 바라요. 어디를 향하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집처럼요.

PLUS 2. 취미에서 확장한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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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의 라이프스타일 라인 HOM, 조용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생활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 소백 So_back
소백의 첫 시작이 궁금해요. 원래부터 개인 브랜드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모든 제품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 꿈꾸는 일일 거예요. 저 역시 지금도 다른 브랜드의 디자인을 병행하고 있어요. 여러 브랜드의 색을 구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안의 색이 점점 옅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균형을 되찾기 위한 일종의 ‘명상’처럼 시작한 게 소백이에요. 처음엔 브랜딩 과정도 취미에 가까웠죠. 첫 제품은 ‘달항아리 보습 티슈’였어요. 투박한 포장 대신 종이 본연의 질감을 살리고 싶었죠. 또 티슈를 선물하면 일이 술술 풀린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이 브랜드도 그렇게 잘 풀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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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카페인이 들어 있는 아침 발효차 © 소백 So_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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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숙면을 돕고 몸을 따듯하게 하는 양기차 © 소백 So_back
플래그십 오픈과 함께 F&B 라인 ‘CHA’를 론칭하셨죠. 카테고리 확장할 때 어떤 기준을 두고 있나요?

처음부터 브랜드 설계안에 명확하게 적혀 있었어요. ‘카테고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국인의 의식주를 디자인한다’,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만들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소백의 기본 원칙이에요. 달항아리 오브제나 티슈 같은 작은 생활용품에서 시작했지만, 입는 것과 먹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어요. CHA 역시 공간을 찾은 손님에게 제가 원래 즐기던 유기농 차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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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의 패션 라인 NEO. 대구산 유기농 면 소재의 리추얼 셔츠와 바지
지금 입고 계신 셋업도 그런 필요에 의해 직접 만드신 건가요? 

맞아요. 파리 출장을 앞두고 남의 옷은 입고 싶지 않았어요. 한국적인 수트를 입고 싶어서 이 셋업을 제작했죠. 생각보다 현지에서 반응이 좋아 그 계기로 ‘NEO’ 라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름은 제가 좋아하는 SF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Neo)’에서 착안했어요. 한국어로는 ‘새로운(neo-)’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죠. 디자인은 한국적인 선(線)을 기반으로 하되 영화 〈스타워즈〉 의 제다이나 〈듄〉 속 인물들이 입는 옷에서 영감을 받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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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 화보 이미지 © 소백 So_back
브랜드 설계안에서 계획했던 목표를 이루고 계신가요?

브랜드를 설계할 때부터 ‘이 사람의 공간에 소백의 물건이 놓여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BTS RM의 집과 리움을 떠올렸죠. RM의 공간에 소백이 있다면 브랜드가 검증받았다는 뜻일 거라 생각했고, 리움 뮤지엄 스토어에 입점한다면 이 카테고리 안에서 정점이라 여겼어요. 그 두 목표가 2년 안에 모두 실현됐어요. RM이 자발적으로 올린 브이로그 속 거실에 소백 쿠션이 등장했고, 리움에서는 〈조선백자전〉 협업 파트너로 초청받아 소백의 방식으로 달항아리 오브제를 복각해 선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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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 달항아리 명상 오브제 © 최근우_chalkak__
리움, 간송미술관, 프레쉬, 웨스틴조선 등 브랜드와 기관을 넘나들며 다양한 협업이 이어졌어요. 파트너를 선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이 협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먼저 생각해요. 특히 소백이 지향하는 친환경성과 한국적 맥락이 맞닿아 있는 브랜드와 함께하려고 해요. 이를테면 웨스틴조선호텔의 110주년 프로젝트는 한국 최초의 호텔이라는 상징성과 맥락이 있었기에 진행했죠. 반면 소백이 사용하지 않는 비친환경적인 방법이나 소재를 활용한 제안은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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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틴조선호텔 110주년 프로젝트 © 소백 So_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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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요.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글로벌 시장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 뮤지엄 숍과 일본 더 콘란샵 재팬(The Conran Shop Japan) 등 감각 있는 셀렉션으로 알려진 공간들에 입점되어 있습니다. 내년에는 파리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부티크에서 전시 제안을 받아 논의 중이에요. 한국 브랜드로는 처음 초청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 해외에서 공통적으로 듣는 말은 ‘한국적인데 세련됐다’는 평가예요. 많은 분들이 전통적인 한국 브랜드에 대해 다소 무겁고 장식적인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하더라고요. 반면 소백은 절제된 감도와 여백의 미학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미적 기준에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해외에서는 규모보다 세계관이 분명한 브랜드를 더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PLUS 3. 박민아의 떼루아(terr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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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창호의 그림자를 담은 소백 한옥 가림막 © 소백 So_back
소백을 두고 ‘한국적 미니멀리즘 브랜드’라고 명명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표님은 스스로 브랜드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세요?

처음부터 한국적인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작업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되게 한국적이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 아파트 문틈을 보다가 문득 한옥의 가림막이 떠올라 그걸 디자인으로 풀었죠. 한옥에서 살다 보면 늘 창호 너머로 그림자가 비치거든요.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아, 내가 한옥에서 자라서 이런 감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구나. 너무 익숙해서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던 거죠.

한옥에서 유년 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지금의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그 시절 기억은 언제나 따뜻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자연과 가까이 지내는 삶이 좋았고요. 그래서인지 소백을 작업할 때도 자연스러운 소재와 친환경적인 공정을 최대한 지키려 해요. 다른 브랜드를 디자인할 땐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그 원칙을 온전히 실천하기 어렵지만, 소백만큼은 제가 믿는 방식을 지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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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 2층에 자리했던 소백 부티크 공간. 택배 박스와 한지로 직접 조립하고 칠하며 약 80만 원의 자재로 완성했다. © 소백 So_back

“와인을 빚을 때 ‘떼루아’를 중요하게 이야기하잖아요.
어느 지역의, 어떤 품종으로, 누가 만들었는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나를 둘러싼 환경과 시간이 결국 지금의 나를 구성하니까요.”

그렇다면 대표님이 생각하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은 무엇인가요?

제가 자란 한옥과 닮아 있어요. 영주는 화려함보다 절제를 미덕으로 삼던 선비의 고장이죠. 집 안의 색은 백색, 나무색, 세월이 스민 검은색뿐이었어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상태예요. 절제와 균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아름다움. 그게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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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막사발의 형태를 재해석하여 입체적인 라인 드로잉으로 표현한 막사발 쿠션 © 소백 So_back
산업디자인에서 출발해 지금의 ‘소백’까지 이어진 흐름이 흥미로워요. 전공과 지금의 작업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이 있을까요?

저는 제품 디자인과 지금의 작업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산업디자인의 기본 원칙은 ‘선 두 개로 표현될 수 있는 디자인이 가장 좋다’예요. 형태가 단순할수록 생산 효율도 높고, 오래 봐도 질리지 않으니까요. 여러 재료를 덧붙이기보다 하나의 소재 안에서 최대한의 기능을 찾아내는 방식이죠. 그게 소백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근간이에요.

졸업 후 다녔던 회사에서 배우셨던 것들이 많이 도움이 되셨다고 했는데 거기서는 어떤 것들을 주로 하셨나요?

첫 직장은 스웨덴의 작은 문구 브랜드 ‘북바인더스 디자인’이었어요. 1800년대부터 이어져온 장인 브랜드였는데 그곳에서 유일한 디자이너로 제품 제작부터 포장, 패키지, 디스플레이까지 전 과정을 경험했죠. 지금 소백이 하고 있는 일의 거의 모든 기반이 그때 배운 거예요. 이후에는 이탈리아의 수도사들이 운영하던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경험을 했고, 한국의 대중 브랜드에서는 세일즈와 마케팅을 배웠어요. 이런 경험이 합쳐져서 지금의 소백을 완성한 거죠.

PLUS 4. 경계 없는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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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 So_back
요즘 특별히 관심 두고 있는 소재나 주제가 있나요?

전통적인 누비 소재에 기능성을 더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누비는 원래 사람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드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나라만 세로선을 중심으로 한 고유한 구조를 가지고 있대요. 그게 참 흥미롭더라고요. 지금은 컴퓨터로 구현되기도 하는데, 그 자체가 전통과 현대 기술이 만나는 지점이죠. 그래서 누비를 현대적인 테크 소재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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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플러스와 인터뷰 중인 박민아 디자이너
창작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자기 색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자기 색이라는 건 철학이니까요. 저는 시각적인 이미지보다는 책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아요. 다른 디자이너의 결과물을 참고하면 그 사람의 색이 내 안에 묻어 나오거든요. 그래서 글로 타인의 생각을 읽고, 그 사고를 제 방식으로 소화하려고 해요. 그렇게 해야 근본적인 게 나와요. 남의 방식을 흉내 내면 껍데기만 남죠. 이 공간을 만들 때도 그랬어요. 어설프더라도 내 방식대로 하고 싶었죠. 그게 진짜 제 디자인이니까요.

그런 철학은 작업 범위나 디자인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디자인에는 경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단지 물성과 스케일의 차이일 뿐이에요. 옷도 사람이 입는 제품이고, 구조와 그리고 도면이 있잖아요. 기능이 있는 모든 것은 디자이너가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각이 아니라 사고의 문제예요. 언어의 통일이 된다면 그 어떤 경계 없이 디자인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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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 신원동 작가와 협업한 달항아리 스피커 © 소백 So_back
앞으로 소백을 어떤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으세요?

브랜드가 확장한다고 해서 소백의 고유함이 흐트러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소백이 ‘근본이 있는 브랜드’로 기억되길 바라요. 유행보다 오래가는 태도, 조용하지만 단단한 세계관을 가진 브랜드요. 투굿(Two Good), 비즈빔(Visvim), 마리메꼬(Marimekko)처럼 디자이너의 철학 하나로 여러 카테고리를 아우르는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어요.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세계 어디서나 “그건 소백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되길 바랍니다.

PLUS LIST

박민아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책 3

– 〈여백의 예술〉 이우환

예술을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주는 책.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 작가가 일본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쌓아온 사유가 담겨 있다. 거장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겸손해지는 책이라고 표현한다. 한국적인 미감에 대한 깨달음 역시 이 책을 통해 더욱 명료해졌다고.

–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슬라보예 지젝

가장 좋아하는 영화 〈매트릭스〉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책. 불교, 기독교, 마르크스주의 등 다양한 사상이 얽혀 있는 가운데 언어 유희와 의미 결합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박민아 디자이너는 제품 이름을 짓거나 오브제를 디자인할 때도 의미의 결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백(白)〉 하라 켄야

‘소백(So_back)’이라는 브랜드명과 가장 닮은 책. 색으로서의 흰색뿐 아니라, 공간적 여백과 침묵의 미학을 탐구한다. “공백, 침묵, 말하지 않는 상태의 아름다움까지도 여백이라 부를 수 있잖아요. 여백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제 디자인의 근본이 되었어요.”

TIPPING POINT

박민아에게 디자인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제품이 공간 안에서 두드러지기보다, ‘말이 되는’ 상태로 존재하길 바란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존재감. 전통을 장식처럼 드러내지 않고 익숙한 비례와 여백 속에서 감각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다. 그는 빠른 완성보다 시간의 밀도를 선택한다. 브랜드의 성장도 마찬가지. 단숨에 커지는 대신 한 겹씩 쌓이며 단단해지는 방식을 고집한다. “좋은 브랜드는 설계가 잘 되어 있으면 그 도면대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결국 소백의 도면 위에서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시간이다. 느린 철학은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빠르게 변하는 서울의 풍경 속에서 ‘소백 서울’은 조용히 한 자리를 지키며 브랜드의 안전가옥으로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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