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형태를 갖춰 가는 과정,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

디자인 스튜디오 12팀의 창작 프로세스, 기획 전시 리뷰

어펜딕스(Appendix)는 책의 본문 뒤에 덧붙는 부록을 뜻한다. 디자인의 결과가 아닌 그 ‘뒤에 남은 흔적’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한 서울디자인위크의 기획 전시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2팀의 스튜디오가 각자의 실험과 사유, 제작의 과정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풀어냈다.

생각이 형태를 갖춰 가는 과정,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

형태 이전의 사유, 과정의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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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필

이번 ‘서울디자인위크 2025’에서는 특별한 기획 전시들이 열려 볼거리를 더했다. 그중에도 DDP 이간수문전시장에서 열린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12팀의 창작 프로세스를 조명하는 전시로 이목을 끌었다. 일반적인 디자인 전시가 완성된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이 전시는 하나의 디자인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디자인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생각이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 그 자체’라는 기획 의도 아래, 완성 뒤에 숨은 실천과 사유, 제작의 궤적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에는 김지윤스튜디오, 바래, 비밥, 비 포머티브, BKID, 슈퍼픽션, SF-SO, 유즈플워크샵, 워크스, 제이든 초, 최중호스튜디오, 클리오디자인 등 12팀이 참여했다. 각 스튜디오는 서로 다른 소주제를 중심으로 디자인의 과정을 아카이빙했으며, 개성 있는 시각이 어우러져 전시의 깊이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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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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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필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는 동시대 디자인 문화의 실질적 지형도를 그려내고자 했다. 그렇기에 활발하게 디자인 문화를 이끌어가는 창작 스튜디오를 초청했고, 디자인 실천을 위해 시작부터 결과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자 고민했다고. 가시화되지 않은 아이디어의 층위, 반복되는 실험으로 축적되는 물질의 언어, 그리고 완결의 형태를 향한 탐색적 시도를 주요한 장면으로 구성했다. 전시는 “디자인의 형태와 사유는 어떻게 생성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해 창작의 본질과 창의성의 근원을 찾아간다. 더불어 디자인은 단순한 생산이 아닌 끊임없는 사유와 조율, 감각적인 판단이 생성되고 경험이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현장을 제시한다. 참여한 디자인 스튜디오 12팀이 이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를 모았다.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의 여정, 그리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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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흔적 Traces of Process>, 김지윤스튜디오 Jiyoun Kim Studio
프로세스는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좋은 것’을 찾기 위한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대안을 직접 확인하며 남겨진 흔적들은 그 자체로 결정의 기록이 된다. 이번 전시는 바로 그 판단의 여정을 담았다. 비록 파편 같은 흔적일지라도, 그 속에는 각 프로젝트가 지나온 긴박한 순간들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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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Folly Exhibition@Congzip ⓒ이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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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Buoy Stool ⓒAhina Archive

<에어 폴리 Air Folly>, 바래 BARE
바래(BARE)는 농업과 어업 현장에서 쓰이는 멀칭 비닐, 플라스틱 부표에서 영감을 받아 대안적 플라스틱을 건축의 소재로서 실험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전시에서 생분해성 소재를 사출하여 만든 에어 부표(Air Buoy), 압출한 원단을 가공하여 만든 ‘에어 필로우(Air Pillow)’, 공기 주입식 ‘에어 리프(Air Leaf)’ 유닛 단위들이 각각 서로 연결되어 결합되는 공간 설치물을 선보였다. 부위별 생분해 속도를 달리한 재료는 사용 후 자연으로 돌아가며 제작부터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을 디자인한 지속 가능한 건축 실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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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딩 Blending>, 비밥 BEBOP
비밥(BEBOP)은 디자이너 간의 팀워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날것의 아이디어’에서 창의의 출발점을 찾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도 자유롭게 공유하며 그 속에서 서로의 장점을 발견해 발전시켜 나간다. 즉, 서로의 생각이 블랜딩되는 과정. 전시에는 완성된 결과물 이면에 쌓인 수많은 아이디어와 그 진화 과정을 담아냈다. 또 채택되지 못한 아이디어들을 3D 프린팅으로 구현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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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의 미학 The Aesthetics of the Process>, 비 포머티브 be formative
아이디어가 현실의 제품으로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부산물이 만들어진다. 이는 과정의 흔적이자 때로는 완성품보다 더 큰 조형적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 독립적인 오브젝트가 되기도 한다. 비 포머티브는 이에 주목해 각 프로젝트에서 탄생한 프로토타입과 부산물, 미완성의 흔적 속에 담긴 실험과 조형의 가치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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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e Refill ⓒ김권진

<어펜딕스 Appendix>, 비케이아이디 BKID
하나의 디자인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가 뒤따른다. 그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들은 스튜디오가 쌓아온 사유와 탐구의 기록이다. 8mm의 작은 와셔부터 11m 규모의 공간까지, 다양한 스케일과 재료로 완성된 리서치와 프로토타입을 통해 BKID는 완성품 뒤에 숨은 창작의 맥락과 디자인 부산물이 지닌 가능성을 드러낸다.

SF 6
SUPERFICTION


<원형과 변형 Origin and Transformation>,
슈퍼픽션 SUPERFICTION
슈퍼픽션의 이야기는 한순간에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상상과 시도의 과정을 통해 다듬어진 여정이다. 캐릭터 스캇, 프레디, 닉, 잭슨, 테오는 그렇게 태어나고, 다시 변주되며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이번 전시는 그 변화의 궤적을 따라가며 원형의 형성부터 확장된 세계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기까지의 실험과 흔적 속에서 슈퍼픽션이 추구하는 지속적인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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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SO
H beam Lamp Series

<씬 쉘브 Thinn Shelf>, 에스에프에스오 SF-SO
씬 쉘브(Thin Shelf)는 SF-SO가 2018년부터, 디자인 개념과 이론을 바탕으로 자체 브랜드로 상용화한 첫 제품이다. 이 과정은 스튜디오가 실험적 아이디어를 실제 산업 제품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동시에 그들의 디자인 철학을 세계와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파생된 다양한 프로토타입과 실패의 기록을 통해 하나의 가구가 세계 시장에서 상업적 가치로 이어지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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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FUL WORKSHOP

<프로토타이핑 매터스 Prototyping Matters>, 유즈플워크샵 USEFUL WORKSHOP​
디자인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류를 줄이고 사용에 가장 적합한 해법을 찾는 과정이다. 과정은 언제나 반복적인 검증과 실험의 연속이며 이를 통해 기능적 완결성을 높이고 동시에 외형의 간결함과 비례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유즈플워크샵은 재료와 감각에 대한 연구 또한 병행되며, 구조와 표현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을 찾아간다고 말한다.

<작업 진행 중 WORKS IN PROCESS>, 워크스 WORKS
‘작업 진행 중(Works in Process)’은 하나의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쌓인 시간과 흔적에 대한 이야기다. 완성 이전의 시안과 제안, 그리고 지나간 흔적들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고민하고 선택해 온 여정의 일부다. 이번 전시는 9년 전 시작된 실험의 이름을 다시 꺼내 그동안의 과정의 경험과 앞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손바닥과 손가락 PALMS AND FINGERS>, 제이든 초 JADEN CHO
손은 우리가 세상을 느끼고 생각을 형태로 옮기는 가장 섬세한 도구다. 제이든 초(JADEN CHO)의 세 번째 컬렉션의 제목이기도 한 ‘PALMS AND FINGERS’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우리의 손이 만들어낸 특별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손끝의 감각에 집중해 만들어진 정교한 소재와 컬러, 이를 통해 완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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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GHOCHOI STUDIO

<슬릭 시스템 000 SLICK SYSTEM 000>, 최중호스튜디오 JOONGHOCHOI STUDIO
<슬릭 시스템 000(SLICK SYSTEM 000)>은 브랜드 레어로우의 system 000에서 출발해 레일 구조를 하나의 독립 개체로 발전시킨 기둥형 시스템 가구. 전시는 그 변형의 과정이 단순한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문제 정의부터 프로토타입, 하드웨어 스터디, 통합 설계, 제품화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판단의 축적임을 보여준다. 기둥의 비례와 구조, 브래킷의 공차, 베이스의 무게와 형상까지 수차례의 검증과 테스트를 거쳐 얻은 결과물은 ‘왜 이 형태인가’에 대한 근거의 기록이자 아이디어가 구조로 완성되어 사용 경험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MULE by KLIO 01 Open design through simplicity
KLIO DESIGN

<뮬 MULE by KLIO DESIGN>, 클리오디자인 KLIO DESIGN
뮬(MULE)은 완성된 자동차가 아니라 누구나 만들고 고치며 함께 진화할 수 있는 오픈 모빌리티의 출발점이다. 클리오 디자인은 모빌리티를 결과물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플랫폼’으로 바라보며 단순한 구조 안에서 사람과 자원, 지역을 잇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빠른 속도보다 오래 머무는 가치, 화려한 외형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선택하며, 전시는 뮬이 걸어온 여정과 그 속에 담긴 참여와 공존의 문화를 되짚는다.

Appendix Poster RGB Web

Information
전시 〈어펜딕스: 실천, 사유, 제작〉
참여 스튜디오 | 김지윤스튜디오, 바래, BEBOP, be formative, BKID, SUPERFICTION, SF-SO, USEFUL WORKSHOP, 워크스, JADEN CHO, 최중호스튜디오, 클리오디자인
기획 | 이정은, 송봉규
그래픽 디자인 | 워크스
공간 디자인 | 컨트리뷰터스
사진 | 이상필
주최 |​ 서울시
주관 | 서울디자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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