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4>, <기생수> 비주얼 구현한 두 스튜디오의 만남
입사부터 실무까지, VFX 업계 현직자가 전하는 팁이 궁금하다면?
글로벌 VFX 스튜디오 '웨타 FX'와 '덱스터스튜디오'가 만났다. VFX 업계를 꿈꾸는 예비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한 <크리에이터스 토크>에서 나눈 이야기 핵심을 요약했다.
오는 5월 8일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개봉을 앞두고 시각 효과 제작에 참여한 글로벌 VFX 스튜디오 ‘Wētā FX(이하 웨타 FX)’의 제작진이 한국을 찾았다. 웨타 FX는 영화 <반지의 제왕>시리즈, <아바타: 물의 길>, <엑스맨>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명작들의 시각 효과를 작업해 온 세계적인 명성을 갖춘 스튜디오다. 지난 24일 웨타 FX 제작진은 연남 CGV에서 시각특수효과 산업의 예비 크리에이터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크리에이터스 토크’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웨타 FX의 에릭 윈퀴스트 시각효과 감독, 김승석 시니어 페이셜 모델러, 순세률 모션 캡처 트래커 3인과 국내 유명 VFX 스튜디오인 ‘덱스터스튜디오(DexsterStudios)’의 진종현, 제갈승 슈퍼바이저 2인도 함께 자리했다. 국내외 최고의 VFX 제작진이 함께한 ‘크리에이터스 토크’에서는 현직자들의 제작 비하인드부터 VFX 업계에 뛰어든 계기, 플레이어로서 바라보는 업계의 동향, 그리고 관련 직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과 스튜디오 합류를 위한 팁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크리에이터스 토크에서 이들이 나눈 대화를 정리했다. VFX 업계를 꿈꾸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인사이트가 될 수 있을 터.
Interview
에릭 윈퀴스트 웨타 FX 시각효과 감독
김승석 웨타 FX 시니어 페이셜 모델러
순세률 웨타 FX 모션 캡처 트래커
진종현 덱스터스튜디오 슈퍼바이저
제갈승 덱스터스튜디오 슈퍼바이저
나의 꿈, 시작은 000이었다?
첫 번째 챕터는 VFX 산업에 몸담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다. 시각 특수 효과에 매력을 느끼게 된 계기와 글로벌 VFX 스튜디오에 합류하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에릭 윈퀴스트 사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꿨는데요. 영화 <어비스>, <터미네이터2>, <쥬라기 공원> 등을 보면서 가슴에 불이 지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 이 직업이야말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아트 스쿨에 진학해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사진을 공부했고, PDI 드림웍스에서 4년간 일을 했죠. 이후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고 나서 웨타 FX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중간에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ndustrial Light & Magic, ILM)에서 슈퍼바이저 데니스 뮤렌(Dennis Muren)과도 잠시 일을 했는데요. 웨타 FX로 돌아오고서는 지금까지 일을 해오고 있는데 벌써 22년이나 됐네요.
김승석 저 또한 어릴 적 꿈이 지금과는 달랐어요. 당시는 국내에 VFX와 CG의 개념이 없었거든요. <드래곤볼>, <슬램덩크>를 보면서 만화가가 되고 싶었죠. 대학에 진학해 만화가를 졸업했고, NC 소프트를 비롯해 여러 회사와 조직에서 일을 경험했어요. 그러던 중에 영화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 나오는 ‘골룸’ 캐릭터를 처음 보고서 강한 충격을 받았어요.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돈을 안 받아도 괜찮으니 골룸을 만든 웨타 FX에서 일해보고 싶었어요. 이후 미국, 싱가포르, 캐나다에서 게임 아티스트, 캐릭터 아티스트, 페이셜 모델러로 일을 해오면서 경력을 쌓았고, 웨타 FX의 포지션 공고를 보고 지원해 지난 2019년에 입사했습니다.
순세률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전공은 시각 효과지만 부전공은 모션 캡처를 선택했어요. 마침 뉴질랜드에 모션 캡처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밖에 없었거든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이때부터 모션 트랙킹을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서는 교수님이 웨타 FX에 포지션이 생겼으니 지원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는데요. 올해로 벌써 4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진종현 저도 시작점은 영화 <반지의 제왕>시리즈인데요.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VFX 업계에서 일을 할 거라곤 생각 못 했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처음 도전한 작품이 <미스터 고>(2013)였고, 국내에서 크리처 장르가 시도하기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이걸 기점으로 지금까지 관련 일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갈승 제 경우는 영화와 영상이 지닌 매력에 매도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업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찾은 게 컴퓨터 그래픽스(Computer Graphics)였고요.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아마 국내에서 소수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아닐까 싶어요. 앞서 웨타 FX 제작진도, 진종현 슈퍼바이저도 오랜 시간 이 업계에서 일을 해오고 있는데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영화(그리고 영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많은 작품을 보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자극을 받기도 하는데요. 그런 걸 보면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거 아닐까 싶네요.
새로운 시대, 그 뒤에는 우리가 있었다
두 번째 챕터는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선보여 온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작업자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은 무엇일까? 국내 1,2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청룡영화상 기술상을 수상한 작품 <신과 함께>와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 크리처>를 제작한 덱스터스튜디오의 진종현 슈퍼바이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진종현 사실 모든 작품이 다 애착이 가죠. 그 당시 작업했던 기억들이 다 고스란히 남아 있거든요. 그럼에도 의미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면 <미스터 고>입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크리처 장르 작업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이 작품으로 저 뿐만 아니라 회사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후 많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고, <신과 함께>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갈승 국내와 해외의 시스템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감독님으로부터 스크립트를 받으면 저희 나름대로 분석한 이후에 피칭을 하는데요. 이후 제작 참여가 결정되면 그때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요. 사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콘셉트를 하나하나 그려 나가면서 만들어가는 거죠. 최근 가장 길게 작업한 건 1년 넘게 촬영을 진행했어요. 촬영 및 제작 기간 동안은 스태프들과 가족 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같아요.
김승석 이전에 싱가포르에 있을 때 4년 정도 제작 기간에 매달렸던 작품이 있어요. 감독님도 바뀌고, 스토리 라인도 바뀌면서 애초에 1~2년 정도 예상했던 제작 기간이 배가 늘어났죠. 특히 컴퓨터 그래픽의 경우 그 몇 년 사이에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까 처음부터 다시 제작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였죠.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작품을 완성했고,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웃음)
순세률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무래도 <아바타: 물의 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입사해서 맡은 작품이었거든요. 약 2년간 작업했고 그만큼 애착이 가는 작품이에요. 다른 하나는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2022)를 꼽고 싶은데요. 저희 팀이 맡은 작품이 아니었는데 저희가 담당하게 됐어요. 처음에 4명이 두 달 가량의 제작 기간을 두고 작업하던 중에 2주 안에 끝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던 작품이라 기억에 아주 오래 남습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작> 속 시각특수효과는?
세 번째 챕터는 웨타 FX가 참여한 최신작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 관한 이야기다. 크리에이터스 토크에 앞서 약 40분 분량의 푸티지 영상이 공개되었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시각 특수 효과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일련의 작품 과정과 작품에 적용된 시각 효과 기술에 대해 물었다.
에릭 윈퀴스트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프로젝트에 대해서 2019년에 처음 들었고, 실제로 2022년 중반에서야 촬영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이 호주 시드니와 그 주변에서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되었죠. 사운드 스테이지는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퍼포먼스 캡처 기술입니다. 모션 캡처 기술이 한 단계 발전되어 보이는 거죠. 덕분에 영화 속 유인원 캐릭터를 더욱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진종현/제갈승 푸티지 영상을 보고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다음 시리즈가 궁금하다’였습니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전작에 비해서 한 단계 또 올라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캐릭터 표정과 질감, 손가락 움직임 모션 등 자칫 소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디테일에도 신경을 쓴 점이 인상 깊었고요. 신scene을 구성하는 라이팅과 레이아웃까지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컴퓨터 그래픽스로 만든 유인원이 스크린 안에서도 동기화되어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VFX 업계를 꿈꾼다면? 주목!
마지막 챕터는 이번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크리에이터스 토크는 단순히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다. 가까운 미래 VFX 업계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 예비 크리에이터들과 함께하는 세션이다. 현장에서는 글로벌 VFX 스튜디오에서 활약 중인 5인이 전하는 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리를 고쳐 앉고, 기록으로 남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VFX 산업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과 기술, 필요한 경험과 포트폴리오 준비를 위해 건넨 5인의 조언들을 만나보자.
에릭 윈퀴스트 포트폴리오 준비를 하기 앞서 자신이 규모가 큰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싶은지, 아니면 작은 스튜디오에서 일을 경험하고 싶은 지를 알아야 합니다. 스튜디오의 규모가 큰 곳이라면 한 기술 분야에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를 원할 테고요. 반대로 업계의 다양한 일과 기술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상대적으로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테죠. 그에 따라서 포트폴리오도 다르게 준비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포트폴리오에서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순세률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스튜디오에 대한 리서치가 필수입니다. 그에 맞게 인터뷰를 준비해야 하고요. 또, 동료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른 분야와의 협업이 중요한 일인 만큼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배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종현 슈퍼바이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카메라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장면에 대한 이해를 하는 거죠. 라이팅이 오면 레이아웃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왜 이러한 그림이 나오는지,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어요. 기본기를 갖추고 내가 만들고자 하는 그림에 가까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갈승 저 역시 포트폴리오를 받는 입장에서 말씀드릴게요. 최근에도 많이 느끼는 점인데요. 포트폴리오가 너무 획일화되어 가고 있어요. 비슷한 구도, 상황, 느낌… 변별력을 찾기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진종현 슈퍼바이저의 말씀처럼 카메라의 구도와 이해도가 높은 사람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포트폴리오 속에서 나만의 차별점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승석 해외 취업에 대한 궁금증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일을 바로 해야 하니까 영어 준비도 정말 많이 필요해요. 경험이 많지 않다면 포트폴리오가 가장 중요한데요. 당장 프로덕션에서 쓸 수 있는 퀄리티를 꾸준히 만들어 두는 게 좋습니다. 스페셜리스트를 타깃으로 특정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남들보다 잘 만들어 둔다면 기회가 찾아왔을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