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or+] 고소미의 A to Z: 나비의 탄생을 담은 조명부터 변화하는 자아를 표현한 설치 작품까지

섬유 아티스트 고소미

고소미 작가의 작품은 작은 공간을 비춰주는 조명부터 거대한 전시장을 채우는 설치 작품까지 다채롭다. 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와 개념은 하나다.

[Creator+] 고소미의 A to Z: 나비의 탄생을 담은 조명부터 변화하는 자아를 표현한 설치 작품까지

한지로 만든 실로 엮은 고소미 작가의 작품은 여행의 한 끗을 완성하는 스테이에서, 혹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자 하는 우리 집에서, 예술적 감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에는 모두 작가만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프로젝트 A to Z

Coc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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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스테이 느긋한 시절 인스타그램(@good._.season)

제주 스테이 ‘느긋한 시절’에는 고소미 작가의 다양체에서 발전한 조명 ‘Cocoon’이 설치되어 있다. 스테이의 주인장인 부부는 결정에 신중한 사람들이었다. 혹자는 ‘느리다’라고 표현했을 텐데 고소미 작가는 그들과 소통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방법을 아직 정하지 못했을 뿐, 안으로는 엄청난 내공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그러한 모습에서 작가는 나비가 될 시기를 기다리는 누에고치를 떠올렸다.

“누에고치의 형태는 아름답지 않지만, 그 안에는 훨훨 날아다닐 나비가 숨어있죠.”

다양체와 동일한 방법으로 제작했으나, 형태만 누에고치에서 영감받아 타원형으로 달라졌다.

Hin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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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고소미 작가의 첫 프로젝트는 희녹과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작가는 좋은 재료를 위해 고민하는 희녹의 브랜드 정신을 한지를 한 겹씩 쌓고, 한 땀씩 바느질한 한지 패브릭 바구니로 표현했다.

“한지 패브릭의 바늘땀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보면서 고객들이 좋은 재료와 제품을 위해 진심 어리게 노력하는 희녹의 모습을 봤으면 했어요.”

작고 촘촘하게 쌓인 바늘땀은 작가와 브랜드의 진실한 태도로 치환된다. 이와 함께 작가는 작은 소원 돌탑도 만들었다. 희녹의 하나, 하나 쌓아가는 모습에서 우리가 소원을 빌 때 쌓는 소원 돌탑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를 크게 제작한 작품은 희녹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에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번 콜라보레이션을 기념하기 위해 1월 20일까지 북촌 레이어아틀리에에서 그동안 고소미 작가의 작품을 한곳에 모은 전시가 진행되었다. 한옥을 가득 채운 작품들을 보며 지난 시간 동안 고소미 작가의 작품 세계가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변화하고 있는지를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Janw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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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잔월 홈페이지

제주 스테이 ‘잔월’에 설치된 조명은 고소미 작가의 첫 조명 작품이다. 우연히 고소미 작가의 작업을 본 주인장은 작가에게 기존 작품에 전구를 넣어 조명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거절했지만, 스테이가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준 주인의 인내심에 승낙했다.

“시범으로 설치한 사진을 보니까 저 스스로 이해되었어요.”

이후 조명을 본 스테이 손님들이 문의를 하면서 알려지게 되어 공간 및 건축 협업, 더 나아가 공예 분야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Multiplicity
M

다양체는 고소미 작가의 주요 시리즈 중 하나다. 와이어로 구의 형태를 만들고, 그 위를 소미사로 감싸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한 줄의 와이어가 끊기지 않고 하나의 형태를 만드는 과정은 한 사람의 시간, 즉 인간이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그 중간 단계를 뜻한다.

“실을 엮는 과정은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만나 서로 이어지고 얽혀지는 과정을 뜻해요. 결국 다양체 한 덩어리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들어가 있는 거죠.”

다양체에 담긴 메시지는 작가 자신과 그를 보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것이다. 다양체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그를 보고 사람들이 위로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ONE by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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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설치 작품, 한 사람의 사람들, 연속_배넷저고리에서 수의2025 | 사진 : shotbook film

고소미 작가는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전 <현대 트랜스로컬 시리즈: 엮음과 짜임>에 초청되어 <ONE by ONE>이라는 대형 작품을 선보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작품은 여러 장이 원단을 접고 꽉 묶은 형태로, 원단의 주름은 각 개인이 축적한 시간이자 고유성을 뜻한다. 작가는 느슨하고 힘없는 원단이 주름을 쌓음으로써 자립해서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 뒤에 길게 늘어진 2장의 원단에는 바코드처럼 보이는 가로선을 염색했다. 염색할 때마다 다르게 물들어지는 색으로 한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했다. 전시장 안쪽에 설치된 작품은 긴 행거에 배넷저고리부터 수의까지 총 35벌의 옷을 걸어두었다. 이는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과정을 옷으로 나타낸 것으로, 관람객은 그중 한 벌을 꺼내볼 수 있다. 그 행위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일부만을 보고 겪는 순간을 뜻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일시적인 순간일 뿐, 절대적인 내가 아니거든요. 한 부분만을 가지고 한 사람의 전체를 평가하는 게 모순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 옆에 거울이 달린 작품은 타인에게 영향받으며 쌓아가는 나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Ryehaeng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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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지문화상품개발 아이디어 공모전의 대상작. 고소미 작가는 한지의 새로운 쓰임을 찾는 이 공모전에서 반려동물 수의라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분유보다 사료 판매량이 높다는 기사를 보고, 이제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이 얼마나 특별하고 가까운 존재인지를 깨달았고, 그들을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순간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수의를 디자인했다. 일반 폴리에스테르로 제작된 수의는 화장하면 잔재가 남는 반면, 한지와 한지 실로 만든 수의는 깨끗하게 태워진다. 반면, 심사위원들은 슬픈 의미가 있는 제품이라 선뜻 평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상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상을 받아서 놀랐다고. 한편, 전주와 안동에서도 한지와 포를 이용한 수의 제작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각 지역은 우리 전통 소재를 활용한 다채로운 방법을 고안하고 개발 중이다.

Stay Si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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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경주 스테이 시래에 설치된 조명 이미지 출처: 시래 인스타그램(@stay_sirae)
(우) 쌀겨를 결합해서 만든 조형물

경주 스테이 ‘시래’를 위해 작업한 조명은 그곳만의 이야기를 담아 더 특별하다. 시래의 건물은 과거 정미소였던 곳으로, 부모님의 공간을 이어받은 부부가 스테이로 개조했다. 원래 부부의 니즈는 앞서 소개한 제주 스테이 ‘잔월’의 조명을 그대로 쓰는 것이었는데, 공간 한편에 쌓인 쌀겨를 본 고소미 작가가 새로운 제안을 하며 이곳만의 역사가 담긴 조명이 탄생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한옥을 세울 때, 볏짚과 흙을 섞어 회벽을 세웠던 것을 기억한 작가는 쌀겨와 닥섬유 죽을 섞어 조명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재료의 특징이 잘 보일 수 있게 조명의 형태는 단순하게 디자인했다. 이 조명을 제일 좋아한 사람은 정미소를 운영했던 부부의 아버지였다. 자신의 시간이 다 사라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남겨졌다는 사실에 작가에게 매우 고마워했다고 한다.

Tra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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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미 작가는 지역의 전통 소재가 유지될 수 있게 함께 방법을 찾고 상생할 기회를 만든다. 강화도의 연순직물과 협력하여 소창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목화 순면으로 만드는 소창은 아기 기저귀 원단으로, 과거 강화도에만 공장이 90곳이 있을 정도로 수요가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단 3곳만 남아 겨우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사실, 강화도의 소창 공장은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면방적 공장이다. 특히 3대째 소창만을 제작해 온 연순직물은 토요타 방적기(원래 토요타는 배틀과 재봉틀을 만드는 회사였다.)를 사용하고 있어 우리의 아픈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이다. 소창이라는 원단, 일제 강점기라는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모두 지키고자 고소미 작가는 협력하여 소창을 사용한 다양한 제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원래 건축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일시적으로 제작한 거였는데 이후에도 계속 찾는 사람들이 있어 본격적으로 함께 하기 시작했다고. 연순직물과 함께 만든 제품은 소미당에서 구매할 수 있다.

Waterc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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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작품 <워터크라운>은 물방울이 수면 위로 떨어졌을 때 왕관 형태로 튀어오르는 현상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고소미 작가는 하나의 물방울이 여러 물방울로 다시 떠오르고 튀어 오르는 과정에서 우리 삶의 질문과 대답이 떠올랐다고.

“그 물방울 중에서 어떤 것이 수면으로 들어간 물방울인지 모르죠. 그 모습에서 변화하고 발전하고 때로는 퇴보하기도 하는 제가 떠올랐어요.”

사람이란 매 순간 변하기 때문에 ‘절대 변하지 않는 나’라는 건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고소미 작가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인간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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