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사실을 넘어선 조형 언어, 20년 만에 시드니로 돌아온 거장 론 뮤익
론 뮤익 개인전, <Ron Mueck: Encounter>
극사실주의 조각의 거장 론 뮤익이 고국 호주에서 20년 만에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오는 4월 12일까지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에서 열리는 <Ron Mueck: Encounter>이 바로 그것. 이번 전시는 파격적인 스케일의 변주를 통해 인간의 실존적 질문과 신체적 경험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특히 신작 ‘Havoc’(2025)을 포함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그의 압도적인 조형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극사실주의 조각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진 호주 예술가 론 뮤익(Ron Mueck)이 고국을 찾았다. 오는 4월 12일까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이하 AGNSW,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Ron Mueck: Encounter>는 시드니에서 20여 년 만에 열리는 그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인간의 몸을 통해 동시대 조각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론 뮤익의 작품 세계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제인 ‘출생과 죽음’, ‘관계와 고독’, ‘신체와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자기 몸의 크기와 움직임, 시선의 높이를 끊임없이 조정하게 된다. 이는 조각이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람객의 신체 경험을 전제로 완성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순간을 포착한 조각
1958년 멜버른에서 태어난 론 뮤익은 미술 교육보다는 영화와 광고 산업에서 인형 제작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러한 독특한 배경은 그의 작업 방식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 그의 조각은 조형적으로 완결된 인체라기보다 특정한 순간에 포착된 장면처럼 보인다. 인물들은 포즈를 취하거나 서사를 연기하지 않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거나, 무언가를 견디듯 몸을 웅크린 채 존재한다. 이 정지된 순간들은 오히려 관람객의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며 조각을 하나의 심리적 장면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그의 조각 앞에 서면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의식하게 된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보다 같은 공간 안에 또 하나의 몸으로 서 있다는 인식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의 조각은 관람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지만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론 뮤익의 작업은 단순히 실제처럼 보이는 극사실주의 조각이라는 범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실리콘, 레진, 유리섬유, 실제 머리카락을 사용해 피부의 주름과 모공, 잔털까지 집요하게 재현하지만, 그의 인물들은 결코 현실적인 크기를 갖지 않는다. 지나치게 크거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작게 제작된 신체는 관람객의 시각적 판단을 교란하며, 조각을 바라보는 우리의 위치와 태도 자체를 흔든다.


낯선 크기, 뒤바뀐 시선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은 압도적인 크기로 시각적 충격을 준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이번 전시에는 실물보다 훨씬 작게 제작된 인체 조각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작은 몸들은 전시장 안에서 유난히 연약해 보이며 관람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시선은 곧 불편함으로 바뀐다. 작아진 몸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선 우리는 무심코 관찰자이자 우위에 선 존재가 된다. 론 뮤익의 조각은 이처럼 ‘본다’라는 행위 자체에 내재한 권력과 윤리까지 함께 질문한다.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론 뮤익의 대표작 ‘Pregnant Woman'(2002)이다. 임신한 여성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표현한 이 작품은 2002년, 발표 당시 호주에서 다양한 논쟁이 오갈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과정을 낭만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이 작품은 무거운 배를 지탱하는 다리, 약간 굽은 자세, 긴장된 표정 등을 통해 임신이라는 상태가 지닌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현실을 강조한다. 이 작품은 출산과 모성을 추상적인 상징이 아닌, 구체적인 몸의 경험으로 환원시키며 생명의 시작이 지닌 무게와 불안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편, 인간관계를 다룬 작품들 또한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대표적으로 하나의 우산 아래 함께 있는 노부부를 묘사한 ‘Couple under an umbrella'(2013)를 꼽을 수 있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두 인물은 서로를 향하고 있지만 표정과 시선에서는 침묵과 긴장이 감지된다. 이 작품은 커플의 관계를 이상적으로 시각화하지 않고, 오랜 시간 함께한 삶 속에서 축적된 감정의 층위를 조용히 드러낸다. 관람객은 이 장면 앞에서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신작과 함께 돌아온 거장

이번 전시에서 론 뮤익은 신작 ‘Havoc'(2025)도 선보인다. 관람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두 무리의 개들이 마치 고대 신화 속 지하 세계를 지키는 수호자처럼 위압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날카롭게 드러난 이빨과 으르렁거리는 입, 곤두선 털과 단단히 긴장된 근육은 공격 직전의 찰나를 포착하며 공간 전체를 전율로 채운다.

점토로 빚어 레진으로 마감된 이 조각은 여전히 사실적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뮤익은 표면의 극사실주의를 넘어 ‘행동’ 그 자체에 집중한다. 정지된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두 무리의 개들은 마치 다음 순간 관람객을 향해 뛰어들 듯한 역동성을 지닌다. 이 강렬한 움직임과 응축된 형태는 최근 그의 작업 변화, 즉 세밀한 재현을 넘어 보다 근육질의 조형성과 압축된 형식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보여준다.

론 뮤익의 작품 ‘Havoc’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다. 인간의 진화적 기억 깊숙이 자리한 포식자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을 자극하는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체감하는 생태적·사회적 불안과도 맞닿는다. 위협적인 규모와 집단적 공격성은 불확실한 시대의 불안을 은유하는 장면처럼 읽힌다. 뮤익은 이 ‘지옥의 사냥개들’을 통해 묵직한 경고를 던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계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고.
한편, AGNSW는 이번 전시가 단순히 작품 감상에 머무르지 않도록 신체와 감정, 웰빙을 주제로 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예술이 인간의 몸과 정신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탐구하는 이 프로그램들은 론 뮤익의 작업이 자기 인식과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뮤익의 조각은 유난히 느리고 무거운 느낌이다. 그의 작품은 절대 화면으로 소비될 수 없으며 반드시 같은 공간 안에서 마주해야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피부의 질감, 압도적인 규모, 침묵 속에서 전달되는 감정은 오직 실제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Ron Mueck: Encounter>는 인간의 몸이 여전히 동시대 미술에서 가장 강력한 주제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그리고 그 몸은 언제나 타인의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몸이다. 론 뮤익의 조각 앞에서 관람객은 결국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몸으로 이 작품을 마주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