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소품부터 집까지 짓는 제품 디자이너가 있다?
공예와 산업 디자이너의 접점을 다루다. 디자인 스튜디오 '비 포머티브'의 첫 번째 독립전.
김예진 디자이너와 이기용 디렉터가 결성한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 ‘비 포머티브be formative’. 2020년에 결성해 어느덧 3년 차에 이르렀다. 오는 12일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진행해 온 이들의 프로젝트를 살펴볼 수 있는 독립전이 연희동 BKID 사옥에서 진행 중이다. 흥미로운 건 두 디자이너가 다루는 소재와 물성의 성격이 정반대라는 점. 김예진 디자이너는 패브릭을, 이기용 디렉터는 나무와 메탈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디자인한 제품은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독특한 인상을 자아낸다. 공예와 산업 디자이너 사이를 오가는 이들을 만났다.
interview with 비 포머티브
김예진 디자이너 & 이기용 디렉터
*공동 답변
일상과 전통에서 영감을 얻다
프로젝트 면면을 보면서 공예와 산업 디자인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자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 포머티브가 추구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비 포머티브be formative’는 가구, 공간, 제품, 조명 디자인 등 산업과 공예가 만나는 접점에서 다양한 디자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사물이 가진 조형과 맥락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죠. 주로 일상과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전개하고 있고, 다양한 재료와 산업 제조 공정 및 공예 기법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러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기획합니다.
디자인스튜디오 크래프트 콤바인Craft Combine 출신의 두 멤버(김예진, 이기용)가 팀을 이뤘는데요. 두 분이서 새롭게 팀을 결성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크래프트 콤바인은 김예진, 이기용, 조준익 3명의 디자이너와 박윤 포토그래퍼로 구성된 디자인 팀입니다. 2014년 학부 수업 중에 서로가 만나 지금까지도 작업을 함께 하고 있어요. 오랜 기간 작업을 해왔기에 크래프트 콤바인의 작업 방향과 경험이 지금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 업무가 생기더라고요. 현재 박윤은 ‘박윤미술촬영’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포토스튜디오에 집중하고 있고, 조준익은 크래프트 콤바인에서 만든 ‘clear b’ 유리 오브젝트 브랜드를 맡아 디렉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디자인 작업에 보다 더 집중해 둘만의 컬러를 담은 비 포머티브 스튜디오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비 포머티브 활동 중 이기용 디자이너는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ECAL로 유학을 다녀왔다고요.
크래프트 콤바인 팀 활동 중에도 유학을 고민했는데 일을 핑계로 계속 미루게 되더라고요. 일을 하는 도중에 다녀오기 쉽지 않았지만 다양한 해외 럭셔리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는 수업 과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22년도에 다녀오기로 과감히 결정했죠. 아무래도 8~9시간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일을 진행하기 쉽지 않았어요. 오전에는 주로 학교 수업을 진행하고, 저녁에는 한국에 있는 스튜디오 일을 하면서 정신없이 1년을 보냈던 것 같네요. 예진 디자이너가 스위스와 한국을 오며 가며 제작 컨트롤과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해 고생했죠. 그래도 코로나 이후라 온라인으로 일 처리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되어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데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이기용 디자이너는 메탈과 목재 등 차가운 재료를, 김예진 디자이너는 패브릭이라는 따뜻한 소재를 다루는데요. 서로가 다루는 물성이 다른 점이 팀으로 일할 때 시너지로 작용하는지도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재료를 다룰 수 있는 폭이 넓어지다 보니 보다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특히 최근 진행 중인 섬유 및 텍스타일 관련 프로젝트 예진 디자이너가 리드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나 콘셉트에 대한 회의는 함께 진행하지만, 서로의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성향에 맞춰 프로젝트를 적절히 배분해 진행 중입니다.
비 포머티브의 존재감을 알리다
이번 전시는 비 포머티브의 첫 번째 독립전인데요. BKID 사옥 내 전시장에서 진행하게 된 배경도 궁금합니다.
유학을 다녀오고 BKID 송봉규 실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요. BKID 전시 공간을 제안해 주셨어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간 단체와 페어 전시 경험은 많았지만 단독 전시는 처음이었거든요. 막상 공간을 다 채우려고 하다 보니 꽤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만큼 고민도 많았고요. 비 포머티브는 소품부터 가구까지 리빙의 범주 아래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해오고 있는데요. 각각의 프로젝트를 한 공간 안에 모아서 함께 보여주면 우리만의 디자인 언어를 명쾌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클라이언트들과 미팅하면서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했는데 모두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지원도 많이 해주셨고요. 아울러 전시 일정에 맞춰 비 포머티브 자체적으로 진행한 의자 시리즈를 선보이고, 이번 전시를 계기로 판매도 진행하게 됐습니다.
전시 공간의 구획과 동선은 어떻게 기획했나요?
우리가 디자인하는 제품들이 일상에서 사용되는 물건인 만큼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나오는 샘플과 프로토 타입도 함께 전시했는데요. 이를 통해 제품이 가진 스토리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다양한 제품군을 하나의 공간 안에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데 주력했는데요. 전시장 가운데 의자를 배치함으로써 직접 체험해 보고 이 가구가 놓인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중간중간에 조명을 배치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공간에 생기를 주고자 했고, 전시품 높이를 사람의 시선 보다 낮게 배치해 보는 이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
쓰임으로 완성되는 일상 제품들인 만큼 전시를 찾아주는 이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중요하겠네요.
맞아요. 전시를 찾아주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제품을 만지고, 체험하면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호기심을 갖고 즐기면 좋겠어요. 만약 이 제품들이 우리 집에 있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상상해 보며 관람하길 추천합니다.
자체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는 이유
개인부터 기업과 공공기관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어요. 클라이언트를 선별하는 비 포머티브만의 기준점도 있나요?
반대로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정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대부분이 저희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보고 찾아오거든요. 서로 추구하는 색이 일찍이 맞아떨어진 상태랄까요. 저희 작업을 알고 있거나 지켜본 클라이언트가 많아요. 이는 내부적으로도 자체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선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전시장 한 편에 영상으로 선보인 집 프로젝트도 눈길을 끌더군요. 개인 클라이언트가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면서요?
집 면적은 24제곱미터로 욕실, 주방, 생활 공간으로 이루어진 원룸을 의뢰받았어요. 서울에 거주 중인 노부부의 제안으로 진행됐죠.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해 채소밭도 가꾸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서 작은 농막(農幕)의 개념이었습니다. 집이라는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그 과정 자체만으로도 큰 경험이 되겠다 싶었고, 집 건축부터 내부 공간까지 비 포머티브의 디자인으로 채울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같이 작업한 홍석영 디자이너가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어서 저희가 협업을 제안했고 셋이서 집을 짓게 된 거죠.
목재를 이용한 모듈식 구조의 집으로 목공소에서 외부 벽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뼈대와 지붕을 올린 후 외부 마감재 부착과 내부 단열재 마감 시공을 했고, 공간이 협소한 만큼 가구로 내부 공간을 나누어 배치했어요. 전기, 수도 설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과정을 저희 세 명에서 진행했습니다. 거리가 멀어서 한 달에 3~4회 방문해 제작을 진행하다 보니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실상 건축이잖아요. 산업 디자이너로서 집을 짓는 건 처음이었을 텐데. 과정 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처음부터 허가를 받기 위한 시간 소요가 많았어요. 시작은 4월 초였지만, 삽을 뜬 건 9월이었거든요. 초반의 당찬 디자인 포부는 우리가 가진 예산안에서는 어림도 없었고, 이런 작업에 대한 경험이 없다 보니 예산이나 일정 가늠이 어려웠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로 인해 초반에 잡았던 재료 비용이 많이 올라서 인건비나 재료 선택지도 많이 없었고요. 결과적으로 직접 모듈 구조물을 만들었고, 가구를 설치하는 과정까지 모두 참여하게 된 거죠. 기간도 오래 걸리고 쉽지 않았던 프로젝트입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계기로 집에 대한 개념과 이해도가 높아진 건 분명해요. 값진 작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비 포머티브의 최애 전시품은?
다시 전시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 전시품 중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비 포머티브가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세 개의 의자. 직접 앉아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어요. 네모난 의자는 스몰 하우스 프로젝트에 사용된 가구 중 하나로 지금 사무실에서도 사용하고 있어요. 세모난 의자는 기용 디자이너가 스위스 유학 중 진행한 워크숍에서 디자인하고 사용한 의자인데요. 한국에 와서도 생산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선보이고 있습니다.
다시금 물리적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비 포머티브는 사람의 쓰임으로 완성되는 공예와 산업 디자인의 접점을 다루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제품 디자이너로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사용자들이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질수록 자기만의 스타일과 가치 있는 디자인을 보다 더 다양하게 소비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요?
영역을 구분하고 있진 않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한 곳에서 자주 사용되는 제품들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실제로 직접 사용하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또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소재와 의미를 반영한 디자인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간 독립 제품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느낀 건 운영에 있어서 밸런스를 유지하며 작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자체적으로 판매도 진행하고, 진행한 작업을 기반으로 지속해서 브랜드와 작업자들과 협업하고자 합니다.
Information
비 포머티브 독립전
기간 | 2023년 11월 4일 ~ 11월 12일
장소 | BKID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 11길 45-6 B1)
기획 및 총괄 | 비 포머티브(김예진 디자이너, 이기용 디렉터)
포스터 디자인 | 김민종
사진 | 박윤미술촬영
장소 지원 | BK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