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디자인 언박싱] 빅히트 뮤직 브랜드 디자이너 최세열의 〈minisode 3: TOMORROW〉 앨범 디자인 ①
약속의 증표로 구현한 앨범 디자인
케이팝 디자인 언박싱! 스트리밍 시대에 하나의 물성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케이팝 앨범을 주목하며, 디자이너와 함께 언박싱 하듯 앨범 디자인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낸다. 더불어 변화무쌍한 케이팝 씬에서 앨범 디자인의 현재를 기록한다. 두 번째 인터뷰이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minisode 3: TOMORROW〉 앨범을 디자인한 최세열 디자이너이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TOMORROW X TOGETHER)는 수빈, 연준, 범규, 태현, 휴닝카이 다섯 멤버로 구성된 보이 그룹으로, 2019년 데뷔했다. 동시대 청춘이 겪는 감정에 동화적 상상력을 결합한 이들의 음악과 콘셉트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데, 이것이 팀의 서사 하나로 이어진다는 데에서 독특한 지점에 있다. 지난 4월 1일 발매된 〈minisode 3: TOMORROW〉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여섯 번째 미니앨범. “과거의 약속을 기억해 내고, 함께 약속했던 ‘너’를 찾으러 가는” 청춘의 구원의 이야기를 그린다.
불안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내일로 나아가는 청춘을 ‘낭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 〈minisode 3: TOMORROW〉 앨범 디자인은 빅히트 뮤직 BX팀의 최세열 브랜드 디자이너가 진두지휘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그룹의 서사에 기반해 앨범의 테마를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콘셉트명과 로고를 비롯한 디자인 에셋, 프로모션 콘텐츠를 개발한 최세열 디자이너에게 〈minisode 3: TOMORROW〉 앨범 디자인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이번 앨범은 의외로 더 멀리서 왔다. 데뷔 이래 지난 5년간 3개 시리즈의 앨범을 통해 쌓아온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이야기가 이번 앨범 디자인에도 녹아 있다. 이 인터뷰를 마중물 삼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시간을 역으로 따라 올라가 보아도 좋을 것이다.
브랜드 디자이너 최세열은 브랜드 에이전시에서 5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2020년 빅히트 뮤직으로 이직해 현재 BX파트를 담당하고 있다. 정규 앨범 2집 〈혼돈의 장: FREEZE〉를 시작으로 이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모든 앨범 작업에 함께했다. 앨범의 로고, 그래픽, 디자인 등 원천 콘텐츠부터 다양한 프로모션 디자인 에셋에 이르기까지, 앨범 디자인과 제작 전반을 이끈다. 이외에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IP를 활용한 다양한 협업과 추가 사업에 대한 검수도 함께 진행한다.
모든 것은 로고 속에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앞서 구축해 온 서사를 이어나가는 팀이에요. 앨범 하나가 독립적인 콘셉트로 디자인되는 보통의 앨범과 접근이 다를 것 같아요.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서사는 앨범 디자인과도 연결돼요. 서사를 이어나가면서 단계별로 가장 주요하게 다뤄야 하는 메시지를 도출하고, 이를 테마로 앨범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각적으로 각 앨범이 독립적인 콘셉트를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앨범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점이 특징이에요.
그리고 앨범의 서사를 압축한 것이 로고이죠.
앞서 말씀드린 특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로고에 플렉서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어요. 일반적인 기호인 ‘+X+’를 활용한 로고는 디자인적 변주를 통해 매 앨범의 콘셉트를 반영해요. 이전 앨범의 로고에서 이번 앨범의 로고로 변하는 과정을 스토리로 담은 로고 모션을 통해 앨범의 서사를 그래픽적으로 표현하고 있고요. 이번 앨범의 로고 모션 역시 지난 앨범인 〈이름의 장: FREEFALL〉에서 시작해 완성되는 형태로 제작되었어요.
〈minisode 3: TOMORROW〉의 로고에서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요?
불확실하고 낯선 현실에 힘들어하면서도 희망, 내일과 같은 순수한 열망을 잃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로맨틱 루저(Romantic Loser)’라는 테마로 도출하고, 여리고 위태로운, 불안정한 모습 안에 불타오르는 듯한 무언가가 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결과적으로 스파클러의 형태적 특징에서 영감을 받아 휘갈겨진 듯하지만 빛을 내고 있는 행태의 로고로 완성했습니다.
2021년 발매한 〈혼돈의 장: FIGHT OR ESCAPE〉의 타이틀 곡명이 ‘LO$ER=LO♡ER(루저 러버)’임을 떠올려봤을 때, 팬분들은 ‘로맨틱 루저’라는 단어에서 친숙함을 느낄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의 로고 모션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로고에 담긴 스토리를 로고 모션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요. 낯선 현실에 〈이름의 장: FREEFALL〉의 로고가 지워지면서 시작되는 영상은 그동안 지나온 길을 떠올리게 하고 작지만 불타오르는 듯한 빛이 새로운 로고를 그리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매 앨범의 서사를 로고에 담고 로고로 커버를 장식하는 것이 굉장히 색다르게 느껴지는 한편, 쉽지만은 않은 작업일 것 같은데요. 이러한 기조를 이어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많은 아티스트가 컴백할 때마다 새로운 콘셉트로 다양한 앨범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투모로우바이투게더는 로고라는 일관성을 갖고 있어요. 앨범이 쌓여갈수록 기본 도형을 활용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말씀처럼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앨범의 서사를 보여주는 데 있어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고, 이렇게 그래픽을 쌓아가는 과정 역시 아티스트 브랜드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저희만의 차별점이에요.
우리의 약속과 내일이라는 낭만의 구체화
이번 앨범 작업 전반에 걸친 미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제작 단계에서의 목표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만의 아이덴티티를 최대한 잘 담아내 팬분들이 직관적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느끼게 하는 것이었어요. 서사에 따른 콘셉트를 표현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가장 ‘투모로우바우투게더스럽다’고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로맨틱 루저’라는 테마 아래 앨범 패키지를 3개의 버전으로 구성했는데요. 3개 버전을 하나로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이 있었을까요?
로맨틱 루저 테마에서 파생된 앨범 패키지만의 콘셉트가 있어요. ‘Loser’s own’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앨범의 서사 속 화자의 공간을 상상했고, 그 공간 속 ‘오래된 약속’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물건을 모티프로 각각의 앨범을 디자인했어요. 책장에 꽂혀 있던 오래된 책은 ‘이더리얼(Ethereal)’, ‘로맨틱(Romantic)’, ‘프로미스(Promise)’ 버전으로, 추억이 담긴 액자는 ‘라이트Light’ 버전으로, 부치지 못한 편지는 ‘위버스(Weverse)’ 버전(*)으로요. 이렇게 마치 한 공간에 놓여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 세 버전을 제작했고, 이는 각 앨범의 구성품 디자인에도 반영됐어요.
(*) 하이브가 제작한 스마트 앨범. 전용 앱인 ‘위버스 앨범’을 설치한 뒤 패키지에 포함된 QR코드로 정품 인증을 하면 피지컬 앨범과 동일하게 음원과 사진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타이틀 레터링에도 로맨틱 무드가 느껴져요.
로맨틱 필름의 타이틀 디자인 스타일을 차용했어요. 정제된 느낌보다는 손글씨의 자연스러운 러프함이 담긴 레터링이 잘 어울릴 것 같았고, 이를 통해 아날로그적 낭만을 표현했습니다.
로맨틱하면서도 가독성 높은 가사집의 폰트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트랙 타이틀의 경우 장식적인 요소를 가미해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부여했어요.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힘 있는 모습이 되길 바랐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세리프와 장식적인 곡선과 산세리프의 단순하고 명료한 선을 결합했는데 시각적으로 긴장감이 생기면서 완성도 있는 작업물이 나온 것 같아요.
약속의 증표로 구현한 앨범 디자인
이제 본격적으로 각 버전의 앨범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이더리얼, 로맨틱, 프로미스 버전은 말씀 주신 것처럼 앨범이라기보다는 잘 제본된 한 권의 책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가벼운 진(Zine)이 아니라 실제 책장 깊숙한 곳에 다른 책과 함께 오랫동안 꽂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느낌을 구현하고자 일반적인 책 형태를 활용했어요. 일정 수준 이상의 두께감을 주기 위해 페이지수도 늘려서 제작했고요. 또 오래된 책의 느낌이지만 그 책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이 마법 같은 순간이 되길 바라며 패키지에 홀로그램박을 활용해 반짝임을 더했습니다. 반짝임을 활용한 마법 같은 순간의 표현은 라이트 버전의 패키지에도 동일하게 적용됐어요. 빛에 비추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노출 제본과 각각의 키 컬러와 같은 색의 실, 가름끈처럼 보이는 띠 등의 디테일이 돋보이더군요.
리본 북마크(가름끈)는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는 책 형태 앨범에서 하나의 포인트예요. 북마크 역할 뿐만 아니라 앨범을 소유한 팬분들이 일상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며 경험을 확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노출 제본은 책 형태를 반영함과 동시에 내지의 사진을 보는 데 있어 불편함이 없도록 기능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한 제본 방식이었고요.
사실 키 컬러와 같은 색의 실을 쓴 것은 디자이너의 욕심이 반영된 디테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소한 부분이고 또 숨겨져 있어 바로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이러한 디테일에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책 버전 앨범의 ‘책등’을 보면 알파벳이 하나씩 쓰여 있는데, 이전 앨범(〈이름의 장: TEMPTATION〉, 〈이름의 장: FREEFALL〉)의 옆면과 연결해서 보면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키 컬러는 어떻게 선정하셨나요?
처음 ‘로맨틱 루저’라는 테마를 잡으면서 상상한 이미지를 반영해 컬러를 선정했어요. 낯선 도시 속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바라본 하늘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그렸고,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얼굴에 반사된 노을빛을 오렌지 컬러로 옮겼죠. 이와 함께 현실의 색을 반영하거나 반짝이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컬러를 조합해 지금의 오렌지, 네이비, 골드, 3가지 키 컬러로 좁히게 되었습니다.
라이트 버전은 뒤집으면 액자가 되는 리버서블 방식으로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셨어요?
그간 앨범 커버에 초상을 활용하기보다 로고 그래픽을 활용해 앨범의 이미지를 전달해 왔어요. 라이트 버전 또한 앨범의 콘셉트를 은유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그래픽을 제작해 적용했는데, 그와 동시에 앨범의 콘셉트인 액자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다 가장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형태로 리버서블 패키지를 떠올렸습니다. 패키지 자체를 뒤집어서 앨범 스탠드를 활용하면 액자처럼 둘 수 있고, 이를 통해 팬분들이 직접 원하는 방향으로 앨범 패키지를 설정해 함께 앨범을 완성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했어요.
CD에는 여우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요. 라이트 버전은 다섯 멤버에 따라 5종으로 구성되었죠. 여우의 모습에 멤버들의 특성이 담긴 걸까요?
여우 자체가 멤버를 표현하는 메타포는 아니었기 때문에 멤버들의 특성을 반영하기보다는 여러 모습의 여우를 통해 소장하는 재미를 주고자 했어요. CD뿐만 아니라 라이트 버전 패키지를 뒤집어서 순서(수빈-연준-범규-태현-휴닝카이) 대로 옆면을 붙이면 여우가 달리는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디테일도 숨겨놓았습니다.
위버스 버전 디테일도 소개해주세요.
위버스 버전은 편지봉투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안이 보이는 트레이싱지를 활용해 그래픽에 레이어를 만들었어요. 형태도 일반적인 편지봉투가 아닌 날개를 둥근 형태로 제작해 활짝 열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세열 디자이너의 작업 후기는 2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아티스트의 성장에 디자인으로 함께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