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의 대표 건축물 6

레스토랑 메스티소부터 서펜타인 파빌리온까지

스밀랸 라디치의 철학은 파격적인 재료 실험과 치밀한 구조를 통해 비로소 실체화된다. 거대한 자연석이 지붕을 떠받치는 레스토랑부터 안데스의 풍경을 투영하는 물 거울의 와이너리까지. ‘취약함의 미학’을 물리적 실체로 구현해 낸 그의 대표 프로젝트 6선을 통해, 라디치가 우리에게 제안하는 가냘프지만 단단한 ‘정서적 안식처’를 탐험한다.

2026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의 대표 건축물 6

▼ 기사는 1편에서 이어집니다
2026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


2026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스밀랸 라디치는 건물을 기능적인 구조물 이상의 정서적 현존감을 지닌 장소로 탈바꿈시킨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구체적인 부지의 조건에서 출발하며,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의 취약함과 경험을 최우선으로 둔다. 라디치의 건축은 확신에 찬 주장보다는 조용한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이 재료의 질감을 느끼고 빛의 흐름을 보며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재고하게 만든다. 그의 프로젝트는 문화 시설부터 공공 공간, 개인 주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듬어온 그의 독보적인 건축 언어는 칠레를 넘어 전 세계에 깊은 영감을 전하고 있다. 라디치의 철학이 집약된 여섯 가지 대표 프로젝트를 통해 그가 말하는 ‘취약함의 미학’을 짚어본다.


레스토랑 메스티소

칠레 산티아고, 2006

resize Restaurant Mestizo 1 1
Restaurant Mestizo, photo courtesy of Gonzalo Puga

산티아고 비센테나리오 공원 한복판에 위치한 레스토랑 메스티소는 라디치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초기 대표작이다. 그는 건물을 지면 위에 올려두는 대신 부분적으로 땅에 매립하는 전략을 택했다.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현대적인 검은색 목재 지붕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자연석(Boulders)들이다. 가공되지 않은 묵직한 돌과 정교한 콘크리트 보의 대비는 라디치가 추구하는 ‘영구성과 일시성 사이의 긴장’을 완벽하게 시각화한다.

resize Restaurant Mestizo 3 1
Restaurant Mestizo, photo courtesy of Gonzalo Puga

이곳에서 돌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건물의 하중을 직접 견디는 핵심적인 구조체로 작동한다. 라디치는 매끈하게 정제된 인공의 건축물과 거칠고 육중한 자연의 재료를 의도적으로 충돌시킨다. 이를 통해 건축이 대지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일부로서 어떻게 조화롭게 머물 수 있는지를 신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resize Restaurant Mestizo 5 1
Restaurant Mestizo, photo courtesy of Gonzalo Puga

특히 콘크리트, 돌, 목재, 유리가 서로 정교한 관계를 맺으며 무게와 빛, 소리를 조율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인근에서 공수한 거대한 자연석들이 주는 원시적인 무게감은 수평적으로 길게 뻗은 지붕의 경쾌함과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한다. 공원의 자연 풍경을 향해 넓게 열린 이 개방적인 구조물은 투박한 재료의 물성을 극대화하면서도 고도의 정밀함과 우아함을 동시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라디치 건축 철학의 정수가 담긴 프로젝트다.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영국 런던, 2014

런던 켄싱턴 가든(Kensington Gardens)에 세워졌던 제14회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라디치의 실험적 면모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결정적인 프로젝트다. 거대한 천연석들이 도넛 모양의 반투명 섬유유리(fiberglass) 쉘을 아슬아슬하게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알이나 원시적인 은신처, 혹은 숲속에 불시착한 미확인 비행물체를 연상시킨다. 이 구조물은 공개 당시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원시적인 형태”라는 찬사를 받으며 라디치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렸다.

resize Serpentine Gallery Pavilion 7
Serpentine Gallery Pavilion, photo courtesy of Iwan Baan

라디치는 이 파빌리온을 통해 ‘빛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필터링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얇은 섬유유리 외피를 투과한 부드러운 빛은 내부 공간에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방문객들이 도심 속 공원의 소음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게 유도했다. 인근에서 공수한 거친 화강암들은 인위적인 가공 없이 그 자체로 하중을 견디는 기둥이 되어, 예민하고 가냘픈 상부 구조물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공간에 팽팽한 시각적 긴장감을 부여한다.

resize Serpentine Gallery Pavilion 3
Serpentine Gallery Pavilion, photo courtesy of Iwan Baan
resize Serpentine Gallery Pavilion 8
Serpentine Gallery Pavilion, photo courtesy of Iwan Baan

이는 건축이 일시적인 구조물일지라도 어떻게 인간에게 깊은 정서적 안식을 제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지적인 해법이었다. 내부 공간은 완전히 폐쇄되지 않아 주변 공원의 풍경과 소리가 은밀하게 스며들며, 방문객은 외부 자연과 단절되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보호받는 듯한 기묘한 안도감을 경험한다. ‘취약함’을 건축의 핵심 가치로 삼는 라디치의 철학이 런던의 유서 깊은 공원 한복판에서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발현된 순간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카르보네로 하우스

칠레 쿨리프란, 1998

칠레 쿨리프란(Culiprán)의 한적한 풍경 속에 자리한 카르보네로 하우스(Carbonero House, 또는 ‘숯 굽는 사람의 집’)는 라디치가 자신의 독창적인 건축 언어를 정립해 나간 가장 상징적인 초기작 중 하나다. 예산이 한정된 시골 마을의 숯 굽는 사람을 위해 설계된 이 작은 집은, 건축이 추구해야 할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가치인 ‘인간을 위한 보호’에 온전히 집중한다. 라디치는 여기서 화려한 스타일을 내세우는 대신, 소박한 재료와 정제된 부피감을 통해 대지와 거주자의 삶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

resize Carbonero House 1
Carbonero House, photo courtesy of Smiljan Radić
resize Carbonero House 2
Carbonero House, photo courtesy of Smiljan Radić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건축이 대지의 지배자가 아닌 ‘손님’으로서 머무는 태도에 있다. 그는 주변 풍경을 거스르지 않는 단순한 박스 형태를 취하면서도, 개구부의 위치와 크기를 세밀하게 조율하여 내부 거주자가 자연의 흐름을 평온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는 이후 그가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보여준 ‘부지에 대한 인류학적 인식’과 ‘검소함의 미학’이 이미 이 시기부터 그의 건축적 DNA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resize Carbonero House 4
Carbonero House, photo courtesy of Smiljan Radić

카르보네로 하우스는 건축의 위대함이 값비싼 자재나 거대한 스케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공간이 품고 있는 인간적 척도와 진정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비록 화려한 랜드마크는 아닐지언정, 거주자에게 단단한 보호막과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이 은신처는 “가장 소외된 곳에서도 가장 고귀한 건축적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라는 라디치 특유의 낙관주의를 투영한다.


비오비오 지역 극장

칠레 콘셉시온, 2018

비오비오 지역 극장은 강변의 끝자락에서 절제된 부피와 외피의 구성을 통해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강철 프레임 위에 정교하게 설계된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마감재를 겹겹이 입힌 외피 시스템이다. 라디치는 이를 통해 단순히 건물의 겉면을 쌓는 것이 아니라, 빛을 조율하고 음향 성능을 극대화하는 지적인 건축 장치를 완성했다.

Teatro Regional del Bio Bio 10
Teatro Regional del Biobío, photo courtesy of Iwan Baan
resize Teatro Regional del Bio Bio 2
Teatro Regional del Biobío,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이 외피는 내부를 완전히 숨기지도, 그렇다고 노출하지도 않는 묘한 경계를 형성한다. 낮에는 외부의 강한 빛을 필터링하여 내부의 눈부심을 최소화하고 평온한 환경을 조성하는 반면, 밤이 되면 건물 내부의 빛을 밖으로 발산하며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의 실루엣(Luminescent glow)을 자아낸다. 거친 산업 도시 콘셉시온의 풍경 속에서 이 건물은 스스로를 과시하기보다 빛을 머금고 내뿜는 정적인 등대의 역할을 수행한다.

resize Teatro Regional del Bio Bio 5
Teatro Regional del Biobío, photo courtesy of Iwan Baan

건물 내부 역시 치밀한 비례로 설계된 기능적 블록들의 집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공연장과 리허설 룸 등 각각의 공간은 명확한 부피를 가진 유닛으로 나뉘어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외피 안에서 구조적인 질서를 형성한다. 라디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 건축이 반드시 거대하거나 권위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그 위엄과 현존감을 확보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resize Teatro Regional del Bio Bio 9
Teatro Regional del Biobío, photo courtesy of Hisao Suzuki

그는 과잉된 장식 없이도 구조적인 견고함을 보여주었으며, 시각적인 전시에 치중하지 않고도 빛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기념비성 없는 현존감’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이 집약된 이 극장은 재료와 빛의 물성만으로도 시민들에게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전하는 새로운 차원의 공공 건축을 제시한다.


공연예술센터 NAVE

산티아고, 2015

칠레 산티아고의 유서 깊은 융가이 지역에 위치한 NAVE는 자연재해로 손상된 20세기 초의 유서 깊은 주거 건물을 현대 공연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워크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다. 라디치는 기존의 구조를 지워버리는 대신, 집의 형태를 한 외피를 보존하고 그 내부에 새로운 볼륨들을 삽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연습실, 워크숍, 개방형 공연 공간이 이전 주거 공간이 가졌던 기억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다층적인 내부 공간을 완성했다.

resize NAVE Performing Arts Center 1
NAVE, Performing Arts Center,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이러한 건축적 개입은 단순한 복원이나 대체가 아닌, ‘규모와 용도의 세심한 재조정’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육중한 벽과 폐쇄적이었던 방들은 움직임과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모임을 흡수하는 빈 공간들에 자리를 내주었다. 묵직한 역사적 유산의 틀 안에서 현대적인 공연 예술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흐를 수 있도록 공간의 질서를 새롭게 재편한 것이다.

resize NAVE Performing Arts Center 2
NAVE, Performing Arts Center,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이 프로젝트의 백미는 단연 옥상 테라스를 덮고 있는 서커스 천막이다. 이 천막 구조물은 지면과 맞닿은 하부 공간의 차분하고 친밀한 분위기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예기치 못한 가벼움과 일시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이 열리는 이 공간은 건축이 과거의 기억을 보존하는 동시에, 어떻게 현재의 활기찬 공동체 활동을 담아내는 그릇이 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resize NAVE Performing Arts Center 6
NAVE, Performing Arts Center,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라디치는 NAVE를 통해 과거의 층위를 지우지 않고도 현대적 쓰임에 맞게 공간을 변모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육중한 역사와 가벼운 축제성, 폐쇄적인 기억과 개방적인 활동이 한 건물 안에서 절묘하게 교차하는 이 공간은, 건축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수용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한 훌륭한 답안을 제시한다.


빅 밀리에 와이너리

칠레 밀리에, 2013

안데스 산맥의 장엄한 능선과 포도밭이 펼쳐진 계곡 사이에 자리한 빅 밀리에 와이너리는 건축이 풍경의 지배자가 아닌, 가장 정중한 ‘손님’으로서 어떻게 대지에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조형적 서사다. 2007년 국제 공모전 당선을 통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라디치가 대규모 산업 시설을 설계하면서도 자신의 핵심 철학인 ‘장소에 대한 존중’과 ‘재료의 물성’을 어떻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resize Vik Winery 1
Vik Millahue Winery,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빅 밀리에 와이너리 건축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건물의 진입로를 가득 채운 거대한 ‘물 거울(Water mirror)’이다. 라디치는 조각가이자 아내인 마르셀라 코레아(Marcela Correa)와 협업하여, 물이 찰랑이는 넓은 바닥 위로 거친 자연석들을 점점이 배치했다. 이 돌들은 마치 태고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을 형성하며, 인공적인 건축물과 안데스의 거친 자연 사이를 잇는 정서적 완충지대가 된다. 물 거울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증발 냉각을 통해 와인 저장고의 온도를 조절하는 지극히 기능적인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한다.

resize Vik Winery 4
Vik Millahue Winery,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건물의 상부를 덮고 있는 반투명 패브릭 지붕(PTFE)은 라디치가 추구하는 ‘가냘프고 취약한 외피’의 미학을 대규모 스케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낮에는 안데스의 강렬한 햇살을 부드럽게 여과해 내부 저장고에 경건하고 고요한 빛의 대기를 조성하며, 밤에는 내부의 불빛을 머금어 어두운 계곡 사이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지상의 별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resize Vik Winery 6
Vik Millahue Winery, photo courtesy of Cristobal Palma

빅 밀리에 와이너리는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재료의 질감과 빛의 변주를 통해 방문객에게 압도적인 공간적 체험을 선사한다. 이는 기능적 요구를 충족하는 산업 시설을 넘어, 자연과 시간이 건축과 어떻게 교감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25년 ‘세계 최고의 포도밭(World’s Best Vineyards)’에 선정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라디치만의 건축적 진정성이 자리한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