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을 혁신하는 디자이너 김봉진
디자이너가 경영하는 기업은 어떻게 다른지, 디자이너가 리드하는 조직은 무엇이 특별한지,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는 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월요일 아침 10시, 분주해야 할 사무실이 적막 그 자체다. 모두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니 오후 1시 출근이란다. 야근이 잦은 업무 특성상 지치지 않도록 주 4.5일제 근무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회사가 있나’ 싶지만 나머지 요일에는 평일 9시 출근을 반드시 고수한다. 햇수로 6년째, 배달의민족 앱 서비스를 선보이며 우아한형제들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봉진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 경영자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명함에 적혀 있는 대로 ‘경영하는 디자이너’이다. ‘디자이너’가 김봉진을 가리키는 명사라면 ‘경영하는’은 그의 성질,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고 꾸며주는 형용사다. 배달의민족을 시작으로 배민라이더스, 배민프레시, 배민쿡 등 배달과 음식을 키워드로 한 브랜드의 확장에는 ‘기술로 음식 문화, 경험을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디자이너로서의 목표가 존재하는 셈이다. 디자이너가 경영하는 기업은 어떻게 다른지, 디자이너가 리드하는 조직은 무엇이 특별한지,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는 왜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지, 그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인터뷰: 전은경 편집장, 글: 김민정 기자, 사진: 김정한(예 스튜디오)
EK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BJ 6시쯤 일어나서 회사에는 7시~7시 30분 사이에 도착합니다. 중요한 미팅이나 업무 처리는 보통 오전에 하는 편이고요. 월요일에는 구성원 모두가 오후 출근을 하는데 스타트업 특성상 야근이 잦기 때문입니다. 물론 야근 수당은 지급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일하는 방식, 과정에서도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기업에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혁신을 강조하지만 회사 구조 자체에 대한 혁신은 하지 않잖아요. 요즘엔 경영자로서 운영, 복지, 인사 관리에 대한 많은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EK 예를 들면 어떤 시도인가요?
BJ 우아한형제들에는 평가 제도가 없는데, 그래서 인센티브도 없습니다. 평가하는 사람, 평가받는 사람 모두가 괴롭기 때문이죠. 대기업이 아닌 이상 인센티브로 많은 액수를 줄 수도 없는데 결국 이것 때문에 서로 마음이 상해요. 옆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지난해보다 덜 받으면 그것도 속상하고. 평가 기간 때는 거의 업무가 마비될 만큼 시간도 많이 소비되고요. 대신 우리는 인센티브를 시간으로 줍니다. 결혼기념일이나 아이들 입학식, 졸업식, 재롱잔치, 운동회, 소풍 때 연차 외에 추가로 휴가를 쓸 수 있어요. 보통 회사를 운영할 때는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저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5명의 멤버로 시작한 우아한형제들은 현재 500여 명의 구성원이 석촌호수와 롯데월드 매직랜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브랜드를 확장함에 따라 늘어난 인원으로 사무실은 물론 회의실이나 부대시설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바로 옆 건물 몇 개 층을 더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지만 아무리 만들어도 부족한 회의실이 문제였다. 이에 김봉진 대표는 회사 건물이 위치한 거리와 같은 선상에 있는 커피숍과 모두 계약을 맺고 직원들이 원하는 곳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회의실 임대료, 인테리어 비용과 직원들이 마시는 커피값이 비슷하다고 볼 때, 구성원들이 어느 쪽에 더 만족감을 느낄까 생각한 결과다.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문제와 불편함을 개선하고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솔루션을 연구하도록 훈련받은 디자이너에겐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한다. 김봉진 대표 역시 “단기적으로 실험해보고, 아니면 빨리 되돌린다”고 말한다.
EK 디자이너로 일하며 쌓은 실무 경험이 창업이나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나요?
BJ 요즘은 제품과 서비스 모두 고객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이윤을 창출하는 시대니까요. 디자이너로서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한 훈련이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대학 시절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천장이 낮을 때와 높을 때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또 소재에 따라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공부했는데 결국은 이 모두가 UX 관점이었어요. 졸업 이후에는 이모션에서 웹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나이키, 현대카드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브랜드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브랜딩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었죠. 네이버에서 근무할 때는 공간, 편집, UX, 광고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크리에이터가 영역 구분 없이 일하는 분위기에서 많은 영감과 자극을 받았습니다.
EK 배달의민족이 첫 번째 창업인가요?
BJ 직접 가구 디자인을 해서 판매하는 가구점을 운영했습니다. 대학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고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디자이너로서의 이상을 모두 담아 오픈했는데 결국은 실패했죠. 나름 잡지에도 많이 소개되고 반응도 좋았는데 잘 팔리지는 않더라고요. 당시엔 ‘내가 심혈을 다해 만든 멋진 가구를 왜 사람들이 사 가지 않나하고 속상해했지만 비즈니스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가격 책정에 문제가 있었고 직접 디자인을 하다 보니 작가주의에 빠져 자꾸 작품을 만들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도 저는 회사 디자이너들에게 작품을 만들지 말고 상품을 만들라고 해요.
EK 그럼 배달의민족은 어떻게 창업하게 됐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BJ 가구점 실패 후 네이버에 들어가 다시 디자이너로 일했는데요, 당시 저는 포토샵을 잘 다루는, 디자인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일 처리가 능숙한 디자이너였어요. 하지만 저보다 낮은 연차에 최신 정보에 밝고 감각 있는 디자이너와 비교했을 때 제 디자인이 딱히 더 나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속 멈추어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때가 마침 개인 앱 개발 바람이 불던 때라 이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배달의민족을 만든 것이고요. 처음부터 창업 아이템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응이 좋아서 정식 투자를 받게 됐습니다.
2010년 찌라시가 전부였던 배달 시장에 등장한 배달의민족은 사용자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일정 거리 내 배달 음식점의 정보와 리뷰를 제공하고 결제까지 할 수 있는 앱 서비스다. 스마트폰 안에 수십만 장의 전단지 정보를 담아낸 발상과 주문, 결제, 평가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이디어 그 자체였지만, 사실 비슷한 콘셉트의 웹사이트가 이미 존재했었다. 기발한 발상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배달의민족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브랜딩, 디자인 전략에 있다. 대개 야근 시 배달 주문은 팀의 막내가 한다는 데에서 착안해 이들을 직접적으로 공략한 ‘키치’, ‘패러디’ 콘셉트가 그야말로 ‘취향 저격’을 한 셈이다. 1970~1980년대 복고풍의 키치한 느낌이 나도록 삐뚤빼뚤, 엉성하게 디자인한 전용 서체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이를 모티브로 한 브랜드 제품도 제작했다. ‘이런십육기가’ USB, ‘다 때가 있다’ 때수건, ‘깨우면안대’ 안대 등 모두 중의적 의미를 활용한 언어유희가 콘셉트인 제품이다. 기능에 충실한 물건에 전용 서체로 그 문구를 적은 것이 전부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제품 개발의 가이드라인은 명확했다. ‘아~’ 하고 감탄하거나 ‘풋!’ 하고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것!
EK 배달의민족 브랜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쓰던데요.
BJ 사람들은 디자인이 예쁘다고 무조건 사지 않아요. 하지만 뭔가 엉성하고 이상해도 왠지 끌리는 느낌, 매력이 있으면 구매하죠. 브랜드에서 정체성이 식별 가능한 로고 같은 것이라면 성격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 페르소나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 페르소나가 있어야 고객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고요. 배달의민족은 ‘키치’와 ‘패러디’를 브랜드 콘셉트로 합니다. 낯설지만 개성 있고 조금 모자란 듯 보이지만 친숙하죠.
EK 한나체부터 최근의 연성체까지 배달의민족 서체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습니다.
BJ 이 역시 배달의민족의 정체성과 페르소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에요. 폰트를 만든다고 배달의민족을 이용하는 고객의 숫자나 주문량이 단숨에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달의민족 폰트를 무료 배포한 것도 서체로 표현된 친숙하고 아마추어적인 정서, 그 페르소나를 사람들이 자주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도적으로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바로 브랜딩이잖아요. 길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상점 간판에서 우리 서체를 다운받아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어요. 책 표지나 웹사이트, 심지어 경쟁 업체에서도 사용하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따라 하는 브랜드도 생겼고요. 모두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우아한형제들의 광고인 셈입니다.
EK 지난해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 씨와 한글을 모티브로 한 패션도 선보였죠. 최근에는 프랑스 예술가 베르나르 프라와 세종대왕을 주제로 한 아트 프로젝트도 기획했고요.
BJ 한글은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유산이지만 이를 보여주고 사용하는 방식이 꼭 경건하거나 전통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달의민족’이라는 이름 역시 중의적 의미를 가진 언어유희지만 민족 정서로 말한다면 그게 해학이잖아요. 디자이너라면 한 가지 정서에 매몰되기보다는 새로운 실험을 해야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배달의민족을 통해 사람들이 한글을 더 자주, 재미있게 쓰게 됐다는 점이에요. 배민의류는 외국인들에게 한글이 일종의 그래픽 문양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는데, 제가 패션을 잘 몰라서 전문가인 패션 디자이너 계한희 씨와 함께했습니다. 베르나르 프라는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글을 만들었다는 데에 굉장히 감동을 받더군요. 저는 이러한 모든 활동이 단기적으로는 배달의민족 매출에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업에도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유의 정서와 분위기, 소통 방법, 작은 배려까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이 모두의 복합적 화학작용이니까요.
우아한형제들 사무실에는 김봉진 대표의 책상이 따로 없다. 홍보팀장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원래부터 없었다고 한다. 그럼 대표는 어디에 앉아서 일하느냐고 물어보니 이곳저곳 빈자리에 앉는다고 한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우아한형제들을 방문한 날, 실제로 김봉진 대표는 여기저기 다니며 구성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옆에 다가가서 잡담도 나누고 또 혼자 가만히 앉아 아이패드 프로로 무언가 보며 열심히 끄적이기도 했다. 그가 있는 사무실 한쪽 벽에는 ‘드레스 코드 핫핑크, 초대 가수는 비밀’이라고 명시한 2016 우아한송년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박명수였다). 그리고 또 다른 벽에는 ‘우아한 버킷리스트’가 붙어 있었다. 회사 비전을 거창하게 세우는 대신 구성원들에게 만들고 싶은 회사가 무엇인지 묻고 그 리스트를 실행하며 하나하나 지워가도록 창립 초기, 김봉진 대표가 만든 것이다.
EK 우아한형제들에 입사 지원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분위기랄지 사내 복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을 것 같은데요.
BJ 그 기대가 충족되는 부분도 있고, 충족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사실 왜 4.5일제 근무를 하겠어요. 그만큼 치열하게 일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 배려해주자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K 우아한형제들에서는 어떤 디자이너를 뽑나요?
BJ 타고난 자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 재주를 계속 갈고 닦을 마음의 자세가 됐는지 봅니다. 밝고 긍정적이라면 더 좋고요. 디자인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얘기할 때부터 눈빛이 반짝거리니까 아무래도 그런 걸 보게 되지요.
EK 스스로 디자이너이다 보니, 디자인과 관련해서 많이 관여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사내 디자인팀과는 어떻게 소통하는지 궁금합니다.
BJ 사안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때는 방향만 제시하고 또 어떤 때는 아주 깊숙하게 관여하기도 해요. 블랙 프라이드 데이 포스터의 경우 제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1970~1980년대 포스터 느낌을 내고 싶어도 디지털 포토샵으로만 작업하는 디자이너들은 그 방법을 모르니까 직접 나섰죠. 우선 1차로 디자인하고 출력한 다음에 다시 사진을 찍어서 작업했는데 덕분에 잡광이 들어가서 뭉개진 부분도 있고 디테일이나 마무리가 깔끔하게 안 됐어요. 모두가 의도된 낯선 디자인입니다.(웃음) 우아한형제들의 디자이너는 현재 32명인데 분야나 영역에 관계없이 함께 일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자부터 유학파까지 디자이너들의 출신과 배경도 다양한데,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고 학벌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지난해부터는 한명수 이사가 CCO를 맡으며 크리에이티브와 커뮤니케이션, 컬처까지 우아한형제들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진두진휘하고 있는데요. 저희끼리는 우아한형제들이 우리나라 디자인의 명맥을 잇는 회사가 되어서 훌륭한 아트 디렉터, 크리에이트 디렉터를 많이 배출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만들기 위해 한명수 CCO가 디렉터로서 디자이너들을 잘 이끌고 있죠.
EK 디자이너로서 역할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BJ 저는 경영하는 디자이너잖아요.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디자이너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보편적 가치로 디자인의 개념 자체가 넓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디자이너만 소유해선 안 돼요. 책상 위에 연필을 잘 놓고 배치하는 행위도 일종의 디자인이니까요. 산업이 발달하고 문화가 성숙할수록 사람들의 안목과 취향이 높아져서 미적 감각 역시 디자이너만의 특권이 될 수 없고요. 이제 디자인은 단순히 조형적, 시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에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명확한 전략과 비전을 기획하고 크리에이티브를 발현하는 브랜딩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죠. 마스다 무네아키가 쓰타야 서점을 경영하며 책 읽는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한 것처럼 말입니다.
EK 경영학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나요?
BJ 정식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경영 관련 책을 보는데, 실무는 봐도 모르니까 경영 철학서를 읽어요. 대학원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며 들었던 수업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김양수 교수님 수업인데요, 한 학기 동안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어요. 하나의 물건을 두고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좋은 디자인이 무엇인지 얘기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크리틱을 하는 거죠. 그렇게 토론을 하다 보면 좋은 디자인에 대한 정의가 처음과 달라지기도 하고 더욱 공고해지기도 해요. 결국 그 수업은 사람의 관점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좋은 디자인의 개념과 정의가 달라진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셈이죠. 지금도 저는 이 방법론을 회사 운영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신입 사원 면접에서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 묻고 입사 뒤 3개월이 지난 다음에 또 물어요. 3년 차 디자이너, 7년 차 엔지니어에게도 묻습니다. 그러면 대답이 다 달라요. ‘좋다’는 것은 하나의 태양과 같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죠.
EK 그럼에도 ‘경영하는 디자이너’로서 좋은 디자인, 좋은 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어요?
BJ 사실 이 질문을 구성원들에게 계속 반복하다 보니 대답이 많이 겹치기도 하고 패턴화가 되더라고요.(웃음) 굳이 말하자면 좋은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끊임없이 묻고 실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디자인 역시 사람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고정된 관점을 갖지 않고 유연한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죠.
“디자인은 본질적 가치다. 기업은 모두 디자이너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 기업은 앞으로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없다.” 우아한형제들 사무실 한쪽에는 배달의민족 연성체로 작성한 마스다 무네아키의 <지적 자본론> 중 일부가 포스터로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도현체로 쓴 로저 마틴의 <디자인 씽킹>이, 또 그 옆에는 주아체로 쓴 도날드 노먼의 <감성 디자인>과 한나체로 쓴 빅터 파파넥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나란히 붙어 있다. 모두 김봉진 대표가 월간 <디자인> 독자와 디자이너를 위해 추천한 책 목록으로 우아한형제들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김봉진 대표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CEO로도 유명하다. 일주일에 평균 2~3권씩 읽고 직원들 역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도록 도서비를 무제한으로 지원해준다.
EK 가장 최근에는 어떤 책을 읽었나요?
BJ 어젯밤에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어요. 주로 경영 관련 책을 많이 보기 때문에 고전이나 문학은 일부러 찾아 읽는 편입니다. 책을 읽으면 SNS에 리뷰를 하고, 인터뷰에서도 좋아한다고 여러 번 밝혔더니 요즘엔 신간을 보내주는 출판사도 많아졌어요. 저는 이 역시 브랜딩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제가 책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회사를 경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의식적으로 그런 모습을 노출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있잖아요. 일부러 그런 모습을 만들려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나에게 그런 이미지가 생기고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저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했기 때문에 다른 경영자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하기 위해선 지적인 이미지가 필요했어요.(웃음)
김봉진 대표가 추천하는 디자이너를 위한 책 5
빅터 파파넥 <인간을 위한 디자인>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힘 중에 하나가 디자인입니다. 디자인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 수도 있지만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디자이너는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도날드 노먼의 <감성 디자인>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디자인은 디자이너만 해야 한다는 건데요, 디자인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다’라는 도날드 노먼의 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 짧은 문장 속에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담겨 있습니다.”
로저 마틴의 <디자인 씽킹>
“디자인 씽킹이란 분석적 사고를 바탕으로 직관적 사고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 같은 창의적인 활동은 논리적 사고보다 직감이 중요할 것 같지만 이 책을 보면 분석적 사고와 직관적 사고를 모두 해야 훌륭한 디자인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스다 무네야키의 <지적 재산론>
“우리는 디자인은 부가적인 가치라고 배웠지만 일본 쓰타야 서점 창립자 마스다 무네아키는 디자인은 본질적 가치라고 선언합니다. 어떤 사업이든 디자인은 본질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개인적으로 무인양품은 가장 완벽한 디자인을 구현하는 브랜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무인양품을 만드는 하라 켄야의 디자인 철학은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K 대표님을 보면 늘 같은 스타일인데 이 역시 의도한 것인가요?
BJ 검은색 상의에 리바이스 511을 입습니다. 지금 입은 상의는 유니클로 것인데 여름에는 반팔, 겨울에는 긴팔, 뭐 이 정도로 다를 뿐이에요. 디자이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보여줄 수 있도록 스스로 외모부터 디자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예쁘게 꾸미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연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지금의 옷차림에 빡빡머리와 뿔테 안경을 고수한 지 13년쯤 됐는데, 제가 생각했을 땐 이게 가장 디자이너다운 모습이기 때문이에요.(웃음) 겨울에는 머리가 시려워서 모자를 쓰기도 하는데 그러면 구성원들도 잘 못 알아봐요.
EK 배달의민족은 팬클럽이 있을 만큼 고객의 충성도가 높은 브랜드잖아요. 개인적으로 어떤 브랜드를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BJ 매해 몰스킨 다이어리를 씁니다. 물론 이보다 싸고 예쁜 다이어리도 있겠지만 그 브랜드는 몇 년 있다가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몰스킨은 200여 년 전에 생겼는데 여전히, 세계 어딜 가도 존재하는 브랜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요. 카시오 시계 역시 꽤 오랫동안 비슷한 모델로 착용하고 있는데 저에게는 초심을 잃지 않게 하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한비자>를 보면 왕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한 신하가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떠났다는 내용이 나와요. 그 이유가 상아 젓가락으로 먹는 음식은 얼마나 산해진미일 것이며, 그것을 담는 그릇은 얼마나 진귀한 것일지, 또 그런 상차림을 받는 왕의 옷차림과 왕실은 얼마나 호화로울지 뻔하다는 것이죠. 남자들은 비싸고 좋은 시계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저에겐 카시오 시계가 상아 젓가락의 위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자동차는 미니를 타는데 오직 한 가지 이유, 외관 때문입니다.(웃음) 사실 미니를 타면서 느끼는 사소한 불편함이 많은데 그럼에도 미니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이게 브랜드가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봉진 대표가 즐겨 쓰는 소지품에는 몰스킨과 아이패드, 스테들러의 옐로 펜슬과 애플 펜슬이 함께 있다. 스스로도 이야기했듯 그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두 문화를 모두 경험한, 현장에서 드라마틱한 전환을 생생하게 느낀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배달의민족이 O2O 서비스의 성공적인 사례에만 머물지 않고 ‘푸드 테크’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에서 주요하게 작용한다. 음식 배달 산업에 IT를 접목해 새로운 산업 분야로 확장함으로써 ‘좋은 음식을 원하는 장소에서 먹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미션은 결국 음식을 즐기는 문화, 이를 통한 정서적 경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EK 배달의민족 브랜드가 여러 가지로 확장됐죠? 가장 최근에 출시한 ‘배민쿡’은 직접 요리를 하게 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BJ ‘매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한다’는 콘셉트로 반조리 제품을 주말마다 배달하는 서비스예요. 단품 구매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선 진입 장벽이 높지만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 일정 기간 강제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요리에 대한 일종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죠.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고 약속도 잡지 않게 되니까 자연스레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제가 배달의민족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은 좋은 음식을 원하는 장소에서 먹게 함으로써 음식과 관련한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거예요. 배민프레시가 ‘모바일 푸드마켓’을 통해 구매한 신선하고 건강한 가정식을 집 안까지 배달해준다면 배민쿡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요리가 그 미션을 충족시키는 것이죠. 우아한형제들은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환영의 의미로 저와 임원들이 직접 요리를 해줍니다. 더 맛있는 걸 사 먹을 수도 있지만 추억을 공유하는 것, 나만을 위해 누군가가 수고스럽게 요리를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지점에서 더 큰 만족을 줍니다. ‘좋은 디자인’처럼 ‘좋은 음식’도 정의는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 밖에도 브랜드를 확장하는 데에 다양한 접점이 생길 수 있겠죠.
EK 예를 들면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사업이 있나요?
BJ ‘배민키친’은 일종의 공유 키친인데 보통 오너 셰프들이 본점 외에 새로운 지역에 진출해서 2호점, 3호점을 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런 분들에게 조리 공간을 빌려주는 겁니다. 손님을 받지 않으니까 홀이 필요 없고 위치도 큰 대로변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한마디로 부동산 비용이 절약되는 것이죠. 음식의 맛과 품질은 주방에서 본점의 셰프, 직원들이 직접 관리하는 가운데 조리가 완료되면 ‘배민라이더스’가 주문자에게 배달해주는 시스템입니다. 또 파워 블로거랄지 요리를 즐겨 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를 등록하면, 해당 요리의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음악 저작권료처럼 로열티를 지불하는 ‘배민셰프’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EK 최근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홍성태 교수가 대표님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배민다움>이라는 책을 펴냈지요. 직접 ‘배민다움’을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요?
BJ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전략,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집중해서 하는 것이 자기다움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EK 그렇다면 김봉진다움은요?
BJ 창의적인 것이오. 저는 창의적인 사람이고 싶고 창의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이 되거나 영감을 주는 일을 했을 때 확실히 즐겁기 때문이죠. 다만 이 창의적이라는 게 꼭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기발한 발상이나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크리에이티브는 꾸준함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도 해요. 더 탄탄한 창의성이라고 할까요. 배달의민족 브랜드 역시 처음에는 신선하지만 10년 정도 하다 보면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꾸준히 할 예정이에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좋은 부분, 좋지 않은 부분을 끊임없이 다듬고 개선하면서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나갈 겁니다.
홍성태 교수는 <배민다움>에서 배달의민족이 ‘자기다움’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웹 디자이너로 일했던 김봉진 대표의 경험이 주효하게 작용했다고 말한다. ‘나이키는 나이키스럽게 디자인해주고, 현대카드는 현대카드스럽게 만들어주며, 국민은행은 국민은행답게 만들어줬던 경험’이 배달의민족 을 기획할 때부터 고유의 ‘다움’을 창출하게 했다는 평가다. 디자이너로서 늘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하던 버릇과 다양한 방법론의 사용, 창의적이기 위해 꾸준히 했던 훈련 역시 ‘배민다움’을 만드는 주요한 요소였을 것이다. 김봉진 대표는 앞으로 ‘경영하는 디자이너’에서 더 나아가 ‘경영을 혁신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모든 기업이 제품, 기술, 서비스의 혁신을 말할 때 기업 자체가 혁신할 수 있도록, 경영의 방식을 새롭게 디자인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신의 방법이 정답이 아닐 수 있지만 또 다른 하나의 사례로, 새로운 실험으로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