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신과 설화가 작품이 될 때, 도예가 김지현

평안을 기원하는 오브제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예가 김지현. 한국 민속과 설화에서 비롯된 소금 단지, 금줄, 터주가리 등 토속 신앙의 상징은 그의 도자 오브제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주된다.

한국의 미신과 설화가 작품이 될 때, 도예가 김지현

기운이 좋다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고, 현관 한켠에 소금 단지를 두며, 새해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운을 점쳐보는 일. 어쩌면 이는 가장 한국적인 생활 풍경이자, 오랜 시간 일상 속에 스며든 토속 신앙의 단면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한 믿음과 안녕을 기원하는 이러한 관습은 지금도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남아 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접해온 미신과 설화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는 이가 있다.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예가 김지현이다. 불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이 담긴 ‘소금 단지’, 집을 보호하는 상징인 ‘금줄’, 터주신에게 바치던 ‘터주가리’ 등 한국 민속과 설화에서 비롯된 요소들이 그의 도자 오브제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주된다. 전통적 상징은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되며 낯선 조형 언어로 확장된다.

20260403 062602
© Jihyun Kim

김지현은 이러한 한국적 서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영국 도자기 비엔날레에서 신예 도예가로 선정된 데 이어, 최근에는 컬렉트 아트 페어(Collect Art Fair) 2026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현재는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함께한 전시 <2126: A Ceramic Odyssey>를 통해 작업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이다. 언뜻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는 그의 도자는 싱그러운 색감과 주얼리 같은 섬세한 장식을 더해 묘한 사랑스러움을 자아낸다. 믿음과 상상력이 교차하는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김지현과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김지현 도예가

20260403 062700
© Jihyun Kim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은 한국 민담과 미신이 작업의 중요한 영감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깊이 남아 있는 기억 혹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늘 가족의 안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저와 동생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을 위해 지켜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들을 가르쳐 주셨죠. 제사 문화부터 문지방을 밟지 않는 것, 밤에 손톱을 깎지 않는 것, 집안의 풍수에 따라 물건을 두는 방식까지 일상의 아주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하나의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 당시에는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때론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영국에서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제가 그 습관들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과 이야기들이 지닌 따뜻함과 정서적 힘을 다시 경험하면서, 이를 저만의 디자인 언어로 재해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중에서도 ‘소금’에 관한 믿음이 가장 깊이 남아 있어요. 좋지 않은 일을 겪거나 불편한 기운이 느껴질 때 소금을 사용하는 행위는 제게 의식처럼 자리 잡았고, ‘소금 단지’ 시리즈의 출발점이 되었죠.

20260403 062720
© Jihyun Kim
지금의 작업 세계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나요? 한국의 민속적 상징과 서사가 작업 안에서 어떤 형태와 의미로 번역되는지 궁금합니다.

영국 왕립예술학교 석사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제 뿌리와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작업 세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작업은 주로 한국의 민속 신앙과 미신, 설화 속에서 형태와 쓰임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상징들을 도자라는 물성과 조형 언어로 번역해 하나의 오브제로 구체화하죠. 이야기 속에 머물던 상징이 입체적인 형태로 전환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작업의 중요한 일부예요. 개인적인 기억과 서사에서 출발한 작업이지만, 결국에는 각자가 지닌 믿음과 기억을 비춰볼 수 있는 매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관객들 역시 자신의 방식으로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해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대표 시리즈인 <Salty Fairy> 시리즈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특히 드로잉과 스케치가 작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집 안의 평안과 안녕을 지키기 위한 매개체로 사용되던 소금 단지를 저만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하여,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세라믹 오브제로 발전시키고 있어요. 이 시리즈를 작업할 때 저는 단순히 형태를 바꾸는 데에 그치지 않고, 크기, 색감, 그리고 도자 기법까지 함께 확장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 “이 유약을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 형태가 구현된다면 어떤 인상을 줄까”와 같은 질문을 바탕으로 스케치를 진행해요. 이 드로잉이 실제 작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스케치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형태로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죠.

20260403 062845
© Jihyun Kim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꼽는다면요?

유약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글룹 글레이즈(Gloop glaze)’는 점성이 강하면서도 흐르는 성질을 지닌 유약으로, 단순한 표면 마감이 아니라 구조적인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어요. 저는 이 유약을 서로 다른 조형 요소를 연결하고 결합하는 데 활용하며, 형태의 일부처럼 다루고 있죠. 결과가 유약의 비중이나 소성 온도, 구조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를 시도할 때마다 그에 맞는 조건을 다시 설정하고 반복적으로 실험합니다.

각기 다른 서사를 품은 작품일지라도, 형태와 컬러의 측면에서는 어떤 공통점이 보이기도 해요.

형태적으로는 주로 버섯의 생김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제겐 버섯 역시 주요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유럽에서 버섯이 마법적이고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종이 많다는 점 또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흥미와 경외를 불러일으켰죠. 한국의 민속 신앙과 버섯이 ‘마법성’과 ‘미지성’이라는 감각 안에서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러한 요소들을 작업에 녹여내며,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유영하는 세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제 작업이 지닌 ‘미지성’과 ‘마법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싶어 비교적 사이키델릭한 컬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형태에서 오는 낯섦과 유기적인 감각, 그리고 컬러에서 느껴지는 경쾌함이 결합되면서, 제 작업은 다소 기묘하면서도 동시에 사랑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20260403 062943
© Jihyun Kim
슬립 캐스팅과 램프워킹이라는 두 가지 기법을 주로 활용하고 있죠. 각각의 기술이 작품의 형태와 표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슬립 캐스팅은 석고 몰드를 활용해 동일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제작하는 도자 기법으로, 작업의 기본 구조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제가 특히 이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는 백자 슬립에 안료를 섞어 매우 선명하고 강렬한 색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같은 형태라도 색과 표면 장식에 변주를 주면서 서로 다른 분위기와 개성을 만들어낼 수 있죠.

램프워킹의 경우 최근 새롭게 익힌 유리 기법이에요. 강한 화염으로 보로실리케이트 유리를 녹여 형태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유리 요소를 통해 기존 도자 작업에 보다 영적이고 마법적인 분위기를 더하고자 해요. 결과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법은 각각 구조와 색, 그리고 물성의 확장을 담당하며, 제 작업이 지닌 실험성과 조형적 가능성을 넓혀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작품에는 금 러스터, 유리 비즈 등 다양한 재료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재료 조합은 조형적으로 어떤 효과를 의도한 것인가요?

금 러스터, 유리 비즈, 금속 와이어 등의 재료들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 제 작업이 지닌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감각’을 강화하는 중요한 조형적 장치예요. 서로 다른 물성과 광택을 지닌 재료들을 의도적으로 결합해, 작업 안에 보다 환상적이고 이질적인 감각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20260403 063121
© Jihyun Kim
대부분의 작업은 한국 설화에서 출발했어요. 그중 <Fingernail Fungi> 시리즈는 손톱과 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죠.

<Fingernail Fungi> 시리즈는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그것을 먹고 사람으로 변한다”는 한국의 흥미로운 미신에서 출발했어요. 여기에 인간의 손을 닮은 형태와 강렬한 붉은색을 지닌 독버섯 ‘Coral Fungi’의 이미지를 결합해, 쓰임이 있는 도자로 발전시켰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손톱을 보관할 수 있는 세라믹 함입니다. 버섯의 유기적이고 돌출된 구조를 바탕으로, 표면의 질감과 색 역시 독버섯에서 영감을 받아 구현했습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신을 동시대의 오브제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60403 063159
© Jihyun Kim
또 다른 예로 <Terracotta Loop>는 금줄의 상징성과 물성을 조형적으로 번역한 작업입니다.

<Terracotta Loop>는 한국 민속에서 부정을 막고 신성한 대상을 구분 짓는 경계로 사용되던 금줄을 모티프로 삼은 작업입니다. 저는 여기서 금줄이 지닌 상징성과 물성을 조형적으로 번역하는 데 집중했어요. 상단의 접시를 지탱하는 하단 구조는 금줄의 꼬임과 질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는 금줄 형태의 요소를 가마 안에 거꾸로 매달고, 아래에 놓인 접시 형태의 피스와 유약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시도했어요. 소성 과정에서 유약이 녹아내리며 두세 개의 구조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방식입니다. 형태와 중력, 유약의 흐름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실험적인 과정이지만, 그만큼 독특한 긴장감과 연결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20260403 063244
© Sara Howard
런던 크리에이티브 아츠 스튜디오 ‘Golden Earth Studi’와의 협업으로 <Teoju>가 탄생하기도 했어요.

‘Teoju’ 작업은 전통적으로 터주신에게 바치던 ‘터주가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집의 뒤뜰이나 장독대 근처에 두었던 항아리 위에 짚단을 얹어두는 형태에서 출발해, 그 구조와 짚의 질감을 현대적인 조형으로 재해석했습니다. ‘Golden Earth Studio’와의 협업이 특별했던 이유는, 건설 현장에서 나온 흙이 다시 그 공간을 위한 작업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적 개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점에서 영감을 받아, 해당 장소를 보호하는 상징적 오브제를 만들고자 했고, 그 결과 <Teoju>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기존의 정제된 재료가 아니라 현장에서 채취한 흙, 즉 ‘found clay’를 직접 가공해 사용했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기까지 여러 차례 실험과 테스트가 필요했죠. 그 과정을 통해 재료를 이해하고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특정 장소와 재료가 지닌 서사를 제 작업의 언어로 확장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어요. 개인 작업이 제 내면의 기억과 서사에서 출발한다면, <Teoju>는 외부의 맥락과 장소성을 바탕으로 작업 세계를 넓혀간 경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20260403 063330
© Jihyun Kim
작가님이 작업하시는 공간도 궁금해요. 런던 코크핏 스튜디오에서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코크핏 스튜디오(Cockpit Studios)는 런던에 두 개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으로, 서로 다른 분야의 메이커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어요. 저는 2024년 ‘Rosalind Stracey Ceramic Award’를 받으며 1년간 무료 스튜디오를 지원받아 입주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같은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보통은 스케치나 실험으로 하루를 시작해 실제 제작과 테스트를 병행하며 시간을 보내요. 여러 작가들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자극을 받고, 서로의 작업 과정을 공유하며 배우는 점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가마를 들이게 되어, 이전보다 더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어요.

20260403 063406
© Jihyun Kim
최근 <2126: A Ceramic Odyssey>에 큐레이터이자 작가로 참여하셨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님의 작업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프로젝트였나요?

현재 런던 중심부의 카운티 홀 포터리(County Hall Pottery)에서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2126: A Ceramic Odyssey>는 제가 처음으로 기획한 세라믹 그룹 전시로, 개인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바이오 퓨처리즘(Bio-futurism)’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창의성, 유기체, 기술이 서로 얽힌 2126년의 세계를 상상하며 도자의 미래를 탐구한 작업이었어요. 여러 나라의 작가들을 초대해 각자의 작업 위에 ‘2126년’이라는 서사를 덧입히고, 이를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엮어내고자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제 작업을 보다 미래적인 맥락에서 다시 바라보게 한 계기이기도 했어요. 특히 과학기술과 자연, 그리고 마법적 요소가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도자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을지, 또 어떤 믿음과 기능을 가질 수 있을지를 확장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20260403 063436
© Jihyun Kim
앞으로는 어떤 세계를 더 탐구해 보고 싶으신가요? 작가로서 다음 단계에 대한 생각도 들려주세요.

앞으로도 도자라는 매체를 통해 한국에 존재하는 다양한 믿음과 이야기를 저만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제 작업이 하나의 오브제를 넘어 서로 다른 문화와 만나며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업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제게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 담긴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20260403 063511
© Belle Morizio

동시에 저는 공예가를 단순히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재료와 기술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연구자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지금 다루고 있는 기법과 재료에 대한 연구를 계속 이어가며, 도자라는 매체가 지닌 가능성을 더 넓게 확장해 보고 싶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