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를 해방하는 단 하나의 면, 이세이 미야케

2D에서 3D로, 이세이 미야케가 펼친 ‘면’의 혁명

서양 복식사가 재단으로 원단의 면(面)을 파괴했다면, 이세이 미야케는 이를 완결된 존재로 대우하며 저항했다. 그의 철학인 ‘A-POC’는 천 한 장을 그대로 활용해 신체를 구속하지 않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형태가 변하게 한다. 이는 의복과 신체의 관계를 유기적이고 유동적으로 재설정하며 패션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했다.

신체를 해방하는 단 하나의 면, 이세이 미야케

서구의 복식사는 면(面)을 파괴해 온 역사다. 인체의 곡선에 옷을 맞추기 위해 천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재단’은 역설적으로 원단이 가진 본래의 생명력을 거세했다. 일본 패션 디자인 거장 이세이 미야케는 이 지배적인 문법에 저항했다. 그는 천을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면’으로 대우했다. 이세이 미야케의 철학이자 프로세스인 ‘A piece of Cloth(이하 A-POC)’는 규정된 형태로 신체를 구속하는 대신 몸의 움직임에 따라 완성되는 옷을 구현하며 신체와 의복의 관계를 유기적이고 유동으로 재설정했다.

곡선을 없앤 평면의 미학

1970년대 파리 오트 쿠튀르의 문법 안에서 인체는 옷의 형상을 결정짓는 틀이었다. 인체의 선을 본뜨는 데 급급했던 재단법은 의복 고유의 조형성을 지워버렸고 옷은 그저 신체의 윤곽을 재현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는 인체와 독립적인 면을 제시하며 서구의 의복 관념을 뒤집었다. 1971년 뉴욕 데뷔와 1973년 파리 진출 무대에서 이세이 미야케가 선보인 건 몸에 고착되지 않은 독립적인 평면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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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파리에서 처음 선보인 플리츠 플리즈. 사진 Philippe Brazil

혁신의 출발점은 전통적 기능미를 현대적 공학으로 치환하는 데 있었다. 그는 작업복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천을 누비던 고졸한 자수 기법 ‘사시코’에 주목했다. 특유의 밀도와 질감을 현대적 방적 기술로 정교하게 직조해 투박한 전통 소재를 가볍고 유연한 텍스타일로 진화시켰다. 신체에 억지로 원단을 맞추는 서구식 패턴의 대안은 기모노에서 찾았다. 몸의 굴곡을 규정하는 서구 복식과 달리, 기모노는 직선으로 재단된 평면의 천이 인체를 느슨하게 감싸며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매 순간 새로운 실루엣을 빚어낸다. 이세이 미야케는 이 유연한 미학을 극대화하기 위해 천을 둥글게 파내던 서구식 곡선 재단을 과감히 배제했다. 대신 원단 한 폭을 온전히 보존하며 오직 직선으로만 자르는 ‘직선 재단’으로 인체를 수용하는 구조를 체계화했다.

완성에서 시작하는 제조 혁신

직선 재단은 소재 기업과의 협업을 거치며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이세이 미야케는 합성 섬유가 열에 반응해 형태가 고정되는 성질, 즉 열가소성에 주목했다. 이는 수공예 특유의 불규칙한 질감을 기계 공정의 규격 안에서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선택이었다. 이 시도는 1988년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전시 〈Issey Miyake A-UN〉을 통해 ‘가먼트 플리팅(garment pleating)’이라는 독자적인 제조 공정으로 구체화되었다. 단순한 소재 실험을 넘어 실제 양산이 가능한 시스템임을 증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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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이 돋보이는 플리츠 플리즈. 사진 Kazumi Kurigami

가먼트 플리팅은 옷의 형태를 먼저 완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실제 사이즈보다 2, 3배 크게 제작한 옷을 두 장의 종이 사이에 끼운 뒤 열기계에 통과시켜 압착한다. 열 반응성 소재가 고온에 수축하며 영구적인 주름을 형성하고, 인체의 움직임에 따라 확장하는 탄성을 확보한다. 평면의 천이 입체적인 신체에 대응하도록 의복 제조의 전통적인 선후 관계를 완전히 뒤집은 결과다. 기술적 가능성을 확인한 이세이는 이를 퍼포먼스 영역으로 확장했다. 1991년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의 무용극 〈작은 디테일의 상실(The Loss of Small Detail)〉 의상은 그 시험대였다. 격렬한 신체 움직임을 견뎌내는 탄성과 내구성을 확인한 이 작업은 곧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의 프로토타입으로 이어졌다. 이후 소재의 고도화와 양산 시스템 구축을 거쳐 1993년 브랜드를 공식 론칭했다. 개별 의복의 공정 혁신은 제조 시스템 전반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링으로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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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C Queen’. 애니메이션 Pascal Roulin

1998년 디자이너 후지와라 다이와 공동 개발한 ‘A-POC’는 의복 생산의 하향식 프로세스를 전면 재검토하며 등장했다.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혁신에 있다. 기존 산업용 직조 기계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식해 실 한 가닥이 원단으로 짜이는 동시에 상·하의의 형태를 갖추도록 설계했다. 원통형 원단에 의복의 형상을 심어 짜내는 이 방식은 전통적인 재단 공정을 생략해 원단 폐기를 원천 방지하고, 오늘날 필요한 수량만큼 생산하는 온디맨드(on-demand)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효율의 극단에서도 이세이는 아날로그적 감각을 유지했다.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의도적으로 사용자가 직접 가위를 들고 디자인의 최종 단계에 참여하는 공정을 남겨두었다. 사용자를 디자인의 완성자로 초대한 셈이다. 초기 트리코 니트tricot knit 구조의 ‘킹 & 퀸(King & Queen)’과 프라모델처럼 부품을 잘라 조립하는 우븐 방식이 대표적이다

보편적 인프라로서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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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접기와 비슷한 132 5.ISSEY MIYAKE. 사진 Hiroshi Iwasaki

이세이 미야케에게 디자인은 의복을 넘어 삶의 기반을 설계하는 행위다. 이는 리얼리티 랩(Reality Lab)이 론칭한 브랜드 ‘132 5. ISSEY MIYAKE’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재생 폴리에스테르 사각형이 오리가미 원리에 따라 3차원의 의복으로 펼쳐지는 과정은 2D와 3D 사이의 정교한 전환을 보여 준다. 완전히 접히는 평면 구조는 수납과 운송 효율을 극대화한다. 이는 물류 시스템 전반에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는 지속 가능한 제조 모델을 제시한다. 그의 평면 구조는 일시적인 유행에 좌우되지 않는다. 장소와 격식을 불문한 범용성으로 활동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한다. 장식을 배제하고 기능에 집중해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해답을 내놓는 것, 이것이 이세이 미야케가 평면을 통해 완성한 디자인의 본질이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5호(2026.05)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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