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에 진심인 디자이너와 큐레이터가 만든 전시, <쿵>
헤아릴 수 없는 도장의 매력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도장의 다채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 최초의 디자인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연구사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DDBBMM이 공동 기획해 눈길을 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도장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 전시 <쿵(Thump)>이 지난 5월 3일부터 오는 12월 29일까지 진행 중이다. 최근 미술관은 새로운 뮤지엄숍을 공개했는데 이번 전시는 바로 이와 연계된 전시다. 미술관 내 전시실이 아닌 뮤지엄숍과 로비 일대에서 진행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보다 더 흥미로운 건 미술관 최초의 디자인 전시를 기획한 최상호 학예연구사와 함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DDBBMM이 공동으로 기획했다는 점이다. 전시는 도장의 역사부터 조형성과 사용 사례까지 작고 소박한 도구인 도장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주목한다. 특히 전시는 일곱 개의 세분화된 주제로 구성을 갖췄다. ‘고무도장 이전의 도장’, ‘고무의 역사’, ‘고무도장의 등장’, ‘고무도장 제작 기술’, ‘고무도장과 예술’, ‘기념 도장’, ‘취미: 고무 도장’까지 오랜 시간 고무도장을 연구해 온 김강인 디자이너의 도움이 컸다고. 도장에 진심인 디자이너와 함께 전시를 만든 최상호 학예연구사에게 전시 전반의 콘셉트와 디자이너와의 공동 기획, 그리고 이번 전시의 감상 포인트를 물었다.
Interview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지난해 4월 부산현대미술관 최초의 디자인 전시 <부산현대미술관 정체성과 디자인>을 기획했다. 이 전시를 통해 미술관은 새로운 뮤지엄 아이덴티티(Museum Identity)를 정립했다. 최근 미술관의 뮤지엄숍 개장과 연계해 프로젝트 전시 <쿵>을 선보였다.
보통의 전시 공간을 벗어나다
이번 전시는 뮤지엄숍 리뉴얼과 연계된 프로젝트 전시인데요. 뮤지엄숍 공간을 활용한 만큼 기존 전시장과는 물리적인 규모에서 차이가 있더라고요. 전시 공간에 대한 고민도 깊었을 듯싶더라고요.
새롭게 생긴 공간이라 스케치업 파일도 없었고, 가구부터 바닥에 깔린 카펫까지 전시 시작 직전에서야 설치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감을 잡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죠. 직접 줄자로 하나씩 재어가면서 공간을 이해했는데요. 전시 공간 디자이너인 길종상가에서 스케치업을 정리해 주셔서 큰 도움이 됐어요. 비록 처음에 계획한 것과 조금 다르게 기물이 배치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합니다. 그보다는 전시실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들에 대한 걱정이 컸는데요. 도장이라는 작은 사물을 전시하다 보니 작품 도난이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 중입니다.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가구도 길종상가가 디자인했어요.
길종상가는 전시 <쿵(Thump)>을 위한 가구와 공간 디자인뿐만 아니라 참여 작가로도 함께 했는데요. 재료를 다루는 방식, 색에 대한 감각,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들을 보면서 기회가 된다면 함께 전시해 보고 싶다고 줄곧 생각해왔어요. 하나의 전시를 만들 때 다양한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으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요. 길종상가는 ‘디자이너로서의 자아’, 그리고 ‘작가로서의 자아’를 함께 지니고 유연한 소통이 가능했죠.
큐레이터x그래픽 디자이너
이외에도 그래픽 디자이너와 공동 기획한 전시라는 점에서도 흥미로웠어요. 국내 미술관에서 자주 있는 시도는 아니잖아요.
사실 전시실을 벗어난 새로운 공간을 다뤄야 했던 터라 개인적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래서 함께할 동료를 찾아 나섰죠. 특히 뮤지엄숍과 연계한 전시였잖아요. 디자인 전문가가 필요했죠. 전시를 여는 것도 중요했지만 새로운 뮤지엄숍을 알리고, 전시 연계 상품을 제작해야 했거든요.
길종상가와 마찬가지로 김강인, 이윤호 두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DDBBMM의 행보를 눈여겨 봐왔어요. 사실 처음에는 스티커에 관한 전시를 기획했는데요. 부산현대미술관이 추구하는 가치인 ‘지속 가능성’과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고요. 그때 DDBBMM이 도장으로 주제를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특히 김강인 디자이너는 도장을 깊게 연구해 오신 분이라 전시 기획에 큰 힘이 되었죠.
여러 가지 사물과 도구 중에서도 ‘도장’을 주목한 이유도 궁금해요.
도장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체에요. 그 매력에 끌렸던 것 같아요. 도장의 역사 또한 매우 오래됐고요. 도장 자체의 조형성도 주목할 만합니다.
공동 기획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배운 점도 있다면서요.
사실 공동 기획은 처음이라 낯설었어요. 여러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해 본 적이야 있지만 전시 기획을 함께 하는 건 처음이었죠. 특히 공공기관의 업무 방식과 디자이너가 일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고, 그렇기에 소통하는 방식도,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어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기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죠. 서로가 욕심을 덜어내니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자 일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간 안 보이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된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전시도 대세는 숏폼?
쇼츠, 릴스, 클립처럼 요즘은 짧은 콘텐츠가 대세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새로운 유형의 전시에 대한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프로젝트 전시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나 피드백은 어땠나요?
<쿵>은 관객의 감상 영역을 뮤지엄숍이나 로비처럼 일상의 공간으로 확장한 전시에요. 전시실이 알게 모르게 주는 일종의 중압감이 사라진 거죠. 보다 더 자연스러운 상황과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전시를 전시실에서 했다면 지금과 같은 관객의 호응을 얻었을지 잘 모르겠네요.
이번 전시를 기획하면서 그간 생각해 온 전시라는 콘텐츠의 고정관념이 바뀌었어요. 특히 도장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난해한 동시대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이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피로감을 느꼈을까 싶더라고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고요. 전시를 만드는 입장에서 비평가, 동료, 미술계 작가 등 관계자들의 반응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이번 전시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인 규모가 작은 만큼 관객을 오래 붙잡아두기 위한 전략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겠어요. 관객이 직접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브로슈어를 만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거든요.
단순히 도장을 찍으며 체험하는 전시였다면 관람객을 도장 찍는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과 다름없죠.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이 고민이 많았어요. 전시를 공동 기획한 DDBBMM이 도장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준비해 주신 덕분에 볼 거리, 읽을거리가 가득한 전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장 풍경을 보면 도장 모양의 가구들은 전부 도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예요. 빨강으로 칠한 가구에선 체험을 할 수 있고, 검은색 가구에는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했죠. 즉, 도장에 대한 정보와 체험, 작가의 작품이 한데 뒤섞인 건데요. 관객에 따라 자신만의 속도로 호흡을 조절하며 감상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보다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팁도 있을까요?
도장을 찍으며 그 다양한 활용성을 느껴보시면 좋겠어요. 도장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경험하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