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의 뉴 프런티어, 대한제강의 신사업

70년 역사의 철강기업 대한제강이 최근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며 국내 철강업계에서 보기 드문 포지션을 선점했다. 디자인 관점으로 대한제강의 신사업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철강업계의 뉴 프런티어, 대한제강의 신사업

1954년에 창립한 대한제강은 보수적인 분위기의 철강업계에서 최근 잇따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선보이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22년부터 개인 보호 장비 브랜드 ‘아커드ARKERD’, 스마트팜 브랜드 ‘그레프GREF’, AI를 활용한 철 스크랩* 자원 순환 브랜드 ‘아이모스AIMOS’를 연달아 론칭한 것. 변수가 많아 수요 예측이 어려운 철근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세 사업 모두 철강업계에서 흔히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즈니스 아이템을 도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참신한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제대로 시각화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법. 브랜딩 전문 회사 샘파트너스가 로고 개발부터 네이밍, 전략과 방향성 수립 등 전천후 브랜딩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에 월간 〈디자인〉은 브랜딩과 디자인을 중심으로 대한제강의 신사업을 톺아보았다.

*고철, 쇠 부스러기 등을 일컫는 말. 철광석, 원료탄과 함께 철강 산업의 3대 원료로 불린다.

패션이 아닌 안전 솔루션, 아커드

아커드는 워크웨어와 안전화, 방염복 등을 제작하는 맞춤형 개인 보호 장비 전문 브랜드로,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안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지만 공장 내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현상에 주목한 대한제강은 직원들 스스로 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하고자 아커드를 론칭했다. 착용했을 때 자부심이 높아질 만큼 고품질의 개인 보호 장비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도록 유도한 것인데 비즈니스 자체가 인터널 브랜딩의 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아커드 2024년 제품 화보. 대한제강 현장 직원들이 직접 착용한 후 촬영했다.

올해 2월 을지로에 오픈한 쇼룸 ‘아커드 서울’은 고객사와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기획했다. 공간 디자인을 맡은 샘파트너스는 부지 자체는 넓지 않지만,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1층에는 감각적인 브랜드 홍보 영상을 상영하는 미디어 월을 배치했으며, 2층은 수장고 형태의 가구에 시제품을 보관해 방문객이 직접 입어볼 수 있게 했다. 3층은 상주 직원들의 업무 공간, 4층은 라운지 바로 설계했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클라이언트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라운지 바를 구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철과 관련된 산업 현장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로 아커드만의 분위기를 표현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커드 서울 1층. 감각적인 영상으로 브랜드의 분위기를 표현해 좁은 공간 안에서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사진 최용준
아커드 서울 2층. 수장고 형태의 가구에 시제품들을 보관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사진 최용준
아커드 서울 4층 라운지 바. 고객사와의 긴밀한 소통이 필요한 B2B 브랜드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 최용준

철근 공장에서 꽃피운 농업의 미래, 그레프

철근 제조업과 애그리테크, 얼핏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분야이지만, 대량의 열을 필요로 한다는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 철강 기업은 철을 생산·가공하면서 열을 발생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대기로 버려지는 열을 회수하고 활용하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대한제강도 이 점에 주목해 스마트팜 브랜드 ‘그레프’를 론칭했다. 철근 생산 공장에서 방출된 폐열을 회수해 에너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농산물 재배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공장 부지를 활용해 온도와 습도, 양분과 수분을 통제할 수 있는 온실을 4400㎡(약 1330평) 규모로 지었으며, 공장 굴뚝에서 온실까지 이어지는 파이프를 연결해 열이 대기 중으로 손실되지 않고 스마트팜으로 이동하게 했다.

폐열 회수 및 활용 과정을 표현한 시스템 개념도.

샘파트너스는 네이밍,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패키지·공간 디자인 등을 맡아 농업과 철강업의 결합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일례로 로고타이프에 브랜드의 지향점을 반영했으며, 특히 브랜드 네임의 스펠링 G와 R의 곡선을 활용해 에너지의 순환을 표현했다. 브랜드의 메인 컬러로는 그린과 실험실을 연상시키는 화이트를 접목하고, 레드·옐로 등 작물의 색과 연관된 서브 컬러를 설정해 패키지, 사이니지 등 각종 시각물에 활용했다. 그레프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표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으로 올해 iF 디자인 어워드 위너를 수상했다.

그레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적용한 디스플레이.
대한제강 신평 공장 부지에 마련한 스마트팜. 사진 최용준

AI로 새롭게 보는 고철의 가치, 아이모스

철 스크랩은 철강 산업에서 철광석만큼이나 중요한 원료이지만, 그동안 수급과 분류 과정이 체계화되지 않아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한편 최근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철 스크랩의 수요와 공급 모두 지속적으로 동반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그에 따라 철 스크랩 회수 체계의 고도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2024년 대한제강이 LG CNS와 함께 아이모스를 출범한 배경이기도 하다. 대한제강 리사이클링 센터 천장에 부착된 카메라가 수급한 철 스크랩 더미를 스캔하면 AI가 등급을 판별해 분류한다. 전수 검사를 위해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을 압도적으로 줄여 업계 관행을 혁신하고, 철 스크랩의 체계적인 자원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철강 산업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브랜딩을 맡은 샘파트너스는 아이모스 시스템의 UI 디자인도 진행했는데, 첨단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도 시스템을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리사이클링 센터의 인테리어를 맡아 철 스크랩 보관 창고와 사무 공간을 디자인했다. 그중 사무 공간은 비교적 단순한 구성과 블랙과 그레이의 컬러 활용으로 날카롭지만 단단한 철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아이모스를 활용한 녹산 리사이클링 센터에 철 스크랩을 배송하는 모습. 사진 최용준
녹산 리사이클링 센터 사무 공간. 단순한 공간 구성과 그레이와 블랙의 활용으로 철의 날카롭고 단단한 이미지를 표현했다. 사진 최용준
아이모스 서비스의 UI 디자인. 사진 최용준


Interview 대한제강 오치훈 사장

오치훈 대한제강 사장

“대한제강을 ‘임팩트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철강업계에서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는 일이 드물다고 들었다. 신사업을 세 가지씩이나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철근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며 고민한 결과이다. 철근 시장은 2010~2015년은 비수기, 2016~2018년은 성수기였다가 팬데믹 와중에는 예상과 다르게 수요가 늘어났다.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불경기이다. 이처럼 부침이 심한 시장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직원들과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고민했고, 논의 끝에 도출된 아이디어들이 지금의 아커드와 그레프, 아이모스로 발전했다.

브랜딩 파트너로는 샘파트너스가 참여했다.

크로스포인트, JOH 등과 협업하며 브랜드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는 일보다 꾸준히 정체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한제강에게 필요한 브랜딩은 신사업의 정체성을 회사 안팎에 널리 알리면서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툴의 일종이라고 보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기업과 일하며 경험을 쌓아온 샘파트너스야말로 꼭 필요한 파트너라고 생각해 협업을 제안했다. 신사업 초창기부터 브랜딩 외에도 다양한 부문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신사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대한제강에게 ‘디자인’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번의 격언으로 설명하고 싶다. 대한제강을 위한 디자인은 미학보다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수많은 전문가들이 갈고 닦은 만큼,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좋다고 여기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다면 브랜딩의 역할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얼마 전 파트너사와 신사업 브랜드들의 홍보 영상을 함께 시청했는데, 영역은 제각기 다르지만 같은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다른 영역의 브랜드를 거의 동시에 론칭해 운영하면서도 방향성과 핵심은 얼추 일치하는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정신없이 중구난방 벌인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웃음) 이처럼 브랜드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브랜딩도 디자인도 모두 중요하다.

최근 철강업계의 화두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x단연 탄소 중립이다. 많은 철강 기업이 화석연료 대신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연구 중이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 세계 철강 시장이 공급 과잉인 상황이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해결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최근에는 탄소 배출량을 극도로 줄인 상태에서 만든 저탄소강 ‘그린 스틸’이 각광받고 있다. 철강 기업들이 그린 스틸을 활용한 자동차, 건축물 등의 브랜딩과 디자인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신사업에 대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사업을 새로 시작해서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10년은 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신사업은 준비 기간까지 합쳐도 시작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인내심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신사업을 통해 앞으로 대한제강을 ‘임팩트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우리의 일이 세상이 긍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길 바란다는 의미이다. 물론 신사업의 방향성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커드가 패션 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기업 문화 퍼실리테이션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그레프도 에너지 산업이나 부동산 서비스로 변화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역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며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오래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기업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이한 대한제강의 목표는 100년 기업이다.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앞으로의 30년을 잘 헤쳐나가며 임팩트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기업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52호(2024.06)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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