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깬 숟가락 디자인?

디자인 스튜디오 BKID <진화하는 숟가락Evolving Spoon> 프로젝트

산업 디자이너 송봉규 디렉터와 그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BKID 소속의 박성제, 정재필 디자이너가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32가지의 진화된 숟가락을 선보인다. '숟가락'을 찰스 다윈의 진화론 관점으로 재해석해 선보인 일명 <진화하는 숟가락> 프로젝트를 진행한 세 명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금기를 깬 숟가락 디자인?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도구 중 하나인 숟가락. 만약 이 숟가락에 생명이 부여되어 마치 인간처럼 진화를 거듭한다면? 이러한 발칙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32가지의 진화된 숟가락을 선보인 이들이 있다. 바로 산업 디자이너 송봉규 디렉터와 그가 이끄는 디자인 스튜디오 BKID 소속의 박성제, 정재필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 일명 <진화하는 숟가락> 프로젝트는 지난 6일부터 오는 10월 29일까지 문래예술공장 M30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전시 깨끗한 석판》을 위해 제작했다. 해당 전시는 사물을 새롭게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데 세 명의 디자이너는 ‘숟가락’을 찰스 다윈의 진화론 관점으로 재해석해 선보인 것. 산업 디자이너의 발칙한 상상력이라고 마냥 가볍게 보기에는 이들이 전한 디자인 스토리가 꽤 진지하다. 산업 디자인계에서 도전의 영역처럼 평가되어 온 숟가락 디자인을 선보인 세 명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진화하는 숟가락>프로젝트 메인 포스터 (사진 제공. BKID)

interview with BKID

송봉규 디렉터(BK), 박성제 디자이너(SJ), 정재필 디자이너(JP)

산업디자이너가 가장 디자인하기 어려워하는 사물

<진화하는 숟가락> 프로젝트는 문래예술공장에서 진행 중인 전시 《깨끗한 석판》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품인데요. 산업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계기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숟가락이 진화한다’라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의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BK) 전부터 ‘Eating Tool(먹는데 사용하는 도구)’에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어요. 일부 산업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인하기 가장 어려운 사물을 꼽으라면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길이와 형태 등이 사용자에게 이미 최적화되어버려 새롭게 디자인하기 어려워요. “디자인한다”라는 건 다분히 사람 중심의 형태를 만드는 방식인데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 또는 유전자가 조합되는 과정에서 랜덤하게 발생하는 돌연변이 현상 등 생물학에서 바라보는 “진화Evolution”의 관점이라면 숟가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즉, 화석을 통해 고생대 동·식물을 연구하듯 진화론을 바탕으로 숟가락의 형태에 대해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죠.

<진화하는 숟가락>프로젝트 메인 포스터 (사진 제공. BKID)

디자인하기 어려운 사물은 숟가락 이외에도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숟가락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BK) 일단 숟가락 형태의 구성이 재밌었어요. 손으로 잡는 막대기 형태의 손잡이 부분과 실제 음식을 담는 머리 부분이 있는데 이 형태가 마치 강낭콩에서 싹이 나서 자란 것 같아 보이잖아요. 게다가 각 문화권 별로 이미 다양한 재료와 미묘하게 다른 비례를 지녔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수저는 주로 스테인리스를 많이 사용하고, 납작하고 크기가 큰 편입니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음식을 먹을 때 젓가락을 주로 사용해요. 따라서 숟가락의 크기는 작아지고, 국물을 떠먹는 보조적인 기능을 하고 있죠. 또한 청동기 시대의 수저는 칼과 같이 음식을 잘라먹는 기능도 있어 그 끝이 뾰족하고 길이가 긴 편이에요.

(SJ) 포크, 나이프, 젓가락은 각 지역과 시대에 따라 사용 여부가 갈려요. 하지만 숟가락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식기죠. 어느 관점에서나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식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진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퍼서 먹는다”라는 원초적인 행위가 손에서 숟가락이라는 인공적인 사물로 전이되었는데, 만약 숟가락이 생명체였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진화하는 숟가락> 영상

재조합, 돌연변이, 자연선택, 핸디캡 등 찰스 다윈의 4가지 진화 원리를 기반으로 <진화하는 숟가락>을 완성했다고요. 각 원리를 대표하는 숟가락을 소개해 주시자면요?

(SJ)&(JP) : 먼저 ‘재조합’은 메타포적인 형상의 DNA와 결합된 숟가락입니다. ’04.Roly Poly’ , ’13.Finger’는 각각 오뚜기와 손가락의 형상이 결합된 숟가락이죠.

‘돌연변이’는 숟가락이 부분적으로 늘어나거나 자라나며 일반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형태로 변이된 종들입니다. ’07. Tumor’, ’15.Uvula’가 대표적이고요. ‘자연선택’원리는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 숟가락을 말합니다. ’09.Leaf’, ’10.Flower’, ’11.Branch’는 그 이름처럼 자연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한 개체들이죠. ’26.Hook’는 주방이라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점점 손잡이 부분이 갈고리처럼 말리게 된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핸디캡’ 원칙은 진화론에서 불리한 부분들을 지닌 채 진화한 숟가락들을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으로 ’08.Pelican’은 많은 음식을 담기 위해 과도하게 머리가 커져서 일반적인 숟가락처럼 바르게 놓일 수 없게 된 사례입니다. 반대로 ’18.Link’는 숟가락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조차 없는 진화 형태이지만 현대 사회의 ‘다이어트’ 트렌드와 만나 핸디캡을 극복한 개체입니다.

3D프린팅에 담긴 진화론적 사고

다양한 개체의 숟가락을 제조한 과정도 궁금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제작하셨나요?

(SJ) 3D 프린팅은 적층 구조로 한 층씩 쌓아나가며 최종적이 형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인데요. 저희는 이러한 생산 방식을 일종의 진화로 생각했습니다. 원형에서 진화된 32가지 형태 역시 ‘진화’로 볼 수 있지만, 개별적인 형태가 생산되는 방식에도 진화론의 관점이 담겨 있으면 싶었거든요. 그뿐만 아니라 <진화하는 숟가락>에 대한 저희의 생각을 제약 없이 전하고 싶어 3D 프린팅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진화하는 숟가락> 프로젝트 디자인 스케치 (사진 제공. BKID)

전시장 한 편에 레퍼런스 북이 놓여 있더라고요. <진화하는 숟가락> 프로젝트 브로슈어 밖에 보질 못했는데 혹시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참고로 삼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BK)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론적인 부분에서는 당연히 다윈의 진화론 4가지 법칙을 참고했고요. 디자이너 제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의 「Book of Spoon」이나 「Japanese Spoons & Ladles」와 같은 책들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SJ) 동식물부터 곤충, 바이러스까지 다양한 개체의 진화 방식을 참고했어요. 한편으로는 산업 디자이너 관점에서 기존 숟가락들의 재질, 형태, 사용성 등 제품 성격에 대해서도 많이 찾아봤어요. 이번 프로젝트는 숟가락스럽지 않은 숟가락을 디자인하기 위해 숟가락부터 보게 되는 역설적인 과정이었어요. 사실 32개 숟가락은 저희 팀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스토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이러면 어떨까?”라는 상상들이 한편으로는 프로젝트의 가장 큰 레퍼런스였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산업 디자이너가 ‘상상력’이라는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BK)호기심과 관찰, 그리고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 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디자인 분야 이외에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고요. 개인적으로 최근 피터 아우돌프Piet Oudolf의 조경에 관심이 생겨 리서치를 하고 있는데요. 그라스를 포함한 외떡잎식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산업 디자인’에 대한 정의

개인적으로 《깨끗한 석판》전에 참여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놀란 감이 없지 않았어요. 시각예술에 가까운 전시라고 생각했거든요. 산업 디자이너가 ‘디자인’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도전 같기도 했고. 디자인 범주가 넓어진 오늘인 만큼 ‘디자인’, ‘산업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하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BK) 산업 디자인을 다소 보수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대량 생산의 보조적인 역할만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산업 디자이너가 지닌 다양한 지식과 다룰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기준으로 본다면 충분히 조각이나 순수 예술 분야가 지닌 담론을 산업 디자이너만의 방식으로 제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D 프린터 등 형태를 빠르게 만들어 볼 수 있는 장비도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산업 디자인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새로운 접근들이 단순히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BKID에서 추구하는 새로운 산업 디자인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는데도 분명 도움이 되거든요. 산업 디자인을 무엇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기 보다 디자이너가 지닌 여러 경험과 창의적 생각이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가지 담론을 만들기를 기대하는 입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진화하는 숟가락> 프로젝트로 소개한 숟가락 중에서 실제로 사용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BK) ’15.Uvula’. 적당한 불편함으로 음식의 양을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요?

(SJ) 저는 ’13.Finger’. 손에 잡고 쓰는 숟가락의 사용 방식을 손가락에 끼워서 썼을 때의 경험이 궁금합니다. 손이라는 인체의 작은 범위에서 위치 변화로 사용성이 얼마나 크게 변할지 궁금합니다.

(JP)’ 22.Chopoon’으로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동시에 해보고 싶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2개의 기능이 함께 있기에 불편할 것 같거든요. 실제로 그럴지 궁금하네요.

​information

​​진화하는 숟가락

기획 | 송봉규

제작 | BKID

디자인 | 송봉규, 박성제, 정재필

영상 | 박성제

인스타그램 @bkid.co​​

<깨끗한 석판>전

일자 | 2023년 10월 6일 ~ 10월 29일 (12:00 ~ 18:00, 월요일 휴무)

장소 | 문래예술공장 M30 갤러리 1층(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1가 30)​

참여 작가 | 김현석, 송봉규+BKID(박성제, 정재필), 윤현학, 이해련, 전민제

연구 | 김제희, 이정은

기획 | 이정은

그래픽 디자인ㅣ윤현학(메이저마이너리티)

공간 디자인ㅣ컨트리뷰터스

후원ㅣ서울시, 서울문화재단 ​

갤러리 M3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88길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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