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아고라, 미래를 연결하는 플랫폼, 현대차 양재 사옥 로비 리뉴얼
1년 11개월간의 공사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낸 현대차 양재 사옥 로비는 지나치는 공간이 아닌 기업 가치를 담은 중심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기업 로비는 공적 공간인 동시에 가장 전략적인 공간이다. 임직원의 일상이 교차하고 방문객의 첫인상이 결정되며 조직 문화가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 로비는 대개 통과를 전제로 설계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 양재 사옥의 로비 리뉴얼은 이 전제를 다시 묻는 프로젝트였다. 임직원 인터뷰와 사용자 리서치를 바탕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로비를 기업 가치를 담은 중심 플랫폼으로 재해석했다. 소통을 촉진하는 광장, 머무름의 가치를 높이는 환경, 로보틱스가 일상에 스며드는 경험까지. 그렇게 로비는 변화하는 업무 방식과 미래 비전을 품은 공간 언어로 번역됐다.

1967년 무교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현대차는 세운상가와 서소문, 계동을 거쳐 2000년 양재동에 정착했다. 양재사옥이 그룹의 시간을 축적하는 사이 일하는 방식은 공간이 따라잡지 못할 속도로 달라졌다. 부문 간 협업이 활발해졌고 고정된 조직 단위보다 프로젝트 중심 업무가 늘었으며 업무와 휴식의 경계는 과거보다 훨씬 유동적으로 변했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로비 리뉴얼의 출발점이었다. 설계에 앞서 약 1200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설문과 부문별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사 중에도 두 차례 전시를 열어 임직원과 직접 소통하며 의견을 모았다. 수집된 목소리는 예상보다 일관된 방향을 가리켰다. 접근하기 쉬운 공용 공간, 진정한 회복이 이루어지는 휴식 환경, 일상 속 새로운 영감을 얻을 가능성. 임직원들이 반복해 꺼낸 키워드는 광장의 풍경과 가까웠다.
소통과 협업을 위한 플랫폼
2024년 5월 착공, 1년 11개월간의 공사를 마친 로비는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까지 실내외 합쳐 약 3만 6000m2 규모에 달한다. 이 공간의 콘셉트는 ‘아고라(Agora)’.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시민들이 모여 토론하고 거래하던 광장의 개념을 차용한 것은 위계보다 수평적 교류를 지향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설계를 맡은 스튜디오스 아키텍처(Studios Architecture)는 이 콘셉트를 중심으로 커넥트 라운지, 오픈 스테이지, 카페, 옥외 정원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각 공간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지만 경계는 열려 있다.

1층은 동선과 성격에 따라 방문객을 맞이하는 어라이벌 존(Arrival Zone),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셰어 존(Share Zone), 활발한 교류를 이끄는 익스체인지 존(Exchange Zone)으로 구성했다. 아트리움 양옆을 막고 있던 높은 벽체를 철거하고 천장고를 확장한 것은 개방감을 확보하는 동시에, 각 층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시야에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2층과 3층에 걸쳐 자리한 그랜드홀도 주요 변화 중 하나다. 특정 행사에만 활용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방치되던 곳이 대형 스크린과 전문 음향·조명 설비를 갖춘 다목적 홀로 재편됐다. 가변형 무대와 좌석을 도입해 전시, 포럼, 타운홀 등 다양한 용도로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사람 중심 철학을 공간으로
이번 리뉴얼에서 주목할 지점 중 하나는 협업의 선택이다. 현대차는 라이브러리 조성을 위해 일본 츠타야 서점 운영사인 CCC(Culture Convenience Club)와 손잡았다. 츠타야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것은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큐레이션 문화다. 그 방법론을 기업 내부로 끌어들인다는 것은 임직원의 취향과 관심사를 공간 설계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라이브러리에는 직무와 관심사를 분석해 구성한 큐레이션 도서와 LP 청음 공간, 북마크 라운지를 마련했다. 따뜻한 느낌의 카펫과 목재 우물천장, 편안한 가구는 공간을 개인 서재에 가까운 분위기로 만든다.

조경에 서안조경의 정영선 조경가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현대 조경을 개척한 1세대 인물과 협업한 배경에는 어떤 철학으로 자연을 공간 안에 들여올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1층부터 3층까지 아트리움 곳곳에 배치한 나무를 비롯한 식물은 장식보다 여백으로 기능한다. 자연광과 어우러진 실내 조경이 공간 전체에 부드러운 리듬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머무름의 조건을 물리적으로 설계한 결과다.

2층의 17개 미팅 룸과 포커스 룸 중 일부에는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토일렛페이퍼(Toiletpaper) 특유의 비주얼을 적용했다. 강렬한 색채와 예상을 비껴가는 이미지는 회의 공간에 의도적 긴장을 조성한다. 익숙한 업무 환경에 낯선 자극을 끌어들여 창의적 사고를 공간 언어로 유도하고자 했다. 지하 1층 다이닝 공간은 파리 마레 지구의 거리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식, 일식, 이탤리언, 샐러드 바 코너가 이어지고 중앙의 피아자(piazza)가 사람들을 연결한다. 지하라는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천장 패널 조명의 밝기를 높이고 다양한 식물과 아웃도어 스타일의 가구를 배치해 실내지만 야외에 머무는 듯한 분위기를 구현했다.




3층에는 교육, 강연,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할 수 있는 도심형 연수원 러닝 랩이, 4층에는 트랙과 철봉, 계단식 좌석을 갖춘 야외 정원이 들어섰다. 지하에는 피트니스 시설과 스포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등도 자리한다. 각 공간의 성격은 다르지만 소재와 디테일의 일관성을 유지해 전체가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연결되도록 했다.
기술이 풍경이 될 때
많은 기업이 미래 비전을 전시물이나 미디어 콘텐츠로 시각화하지만 현대차는 다른 접근을 선택했다. 기술을 보여 주는 대신 ‘작동’시키는 쪽을 택한 것이다. 1층 로봇 스테이션에 배치된 관수 로봇 달이 가드너(DAL-e Gardener), 배송 로봇 달이 딜리버리(DAL-e Delivery), 의전·보안 로봇 스팟(SPOT)은 운영 시스템의 일부다. 달이 가드너는 실내 조경에 물을 공급하고 달이 딜리버리는 임직원에게 음료와 디저트를 배달하며 스팟은 공간을 순찰하고 안내한다. 구성원들은 별도의 프로그램이 아닌 일상에서 로봇과 마주친다. 로봇이 동료에 가까워지는 경험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 브랜드마케팅본부에서 공간 개발을 담당하는 스페이스디자인실은 설계 초기부터 사내 로봇 개발 조직인 로보틱스랩과 함께 움직였다. 바닥 높이부터 충전 스테이션 위치, 이동 경로와 체류 포인트까지 세밀하게 조율했다.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는 1층부터 3층까지 연결돼 층간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사람과 로봇의 동선이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한 설계는 기술을 별도의 전시 공간에 격리하지 않고 일상의 풍경으로 스며들게 한다.

비전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에서 작동할 때 그 힘은 선언보다 훨씬 강하다. 현대차 양재 사옥 로비 리뉴얼의 성과는 누구나 무심코 지나치던 장소를 조직의 가치와 미래 전략을 경험하는 무대로 전환했다는 데 있다. 현대차의 지향점은 광장과 정원, 라이브러리와 로봇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선언이 아닌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총괄 기획·디자인 현대자동차 브랜드마케팅본부
공간 콘셉트·설계 스튜디오스 아키텍처
라이브러리 콘텐츠·큐레이션 CCC
조경 서안조경
주소 서울시 서초구 헌릉로 12
사진 최용준
웹사이트 hyundaimotorgro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