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X INSIGHT OUT 4th]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일하는 방법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 전문 플랫폼 SHARE X는 네 번째 ‘SHARE X INSIGHT OUT’을 통해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의 현재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오는 7월 23일에 열리는 콘퍼런스에 앞서 5명의 디자인 리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SHARE X INSIGHT OUT 4th]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일하는 방법

네이버, LG생활건강, 토스, 한샘, 현대백화점. 누구나 알 만한 기업이지만 그 안의 디자인 조직이 어떻게 일하는지는 알기 어렵다. 이들 기업은 어떤 조직 구조와 문화를 갖고 있을까? 또 어떤 인재를 원할까? 월간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 전문 플랫폼 SHARE X는 네 번째 ‘SHARE X INSIGHT OUT’을 통해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의 현재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오는 7월 23일에 열리는 콘퍼런스에 앞서 5명의 디자인 리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간은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구직자는 물론 조직의 리더로 성장하고 싶은 디자이너에게도 좋은 인사이트를 선사할 것이다.

참여자

최지연 한샘 R&D본부 리모델링상품부 상무. 2002년 한샘에 입사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홈퍼니싱 가구, 홈 인테리어 분야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했다. 현재는 리모델링 상품 부서를 이끌며 주거 환경의 변화와 시장의 흐름을 연결하는 상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심준용 네이버 브랜드 총괄 VP. 애플과 구글 본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으며, 2022년 카카오스타일 디자인 총괄 VP를 거쳐 2024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현재 브랜드 익스피어리언스 조직을 이끌며 네이버의 주요 서비스와 사용자가 만나는 다양한 접점의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정희연 토스 CDO. 2018년 토스에 합류해 비주얼 디자이너, 플랫폼 디자이너를 거쳐 디자인 조직을 이끄는 CDO가 됐다. 토스 디자인 시스템과 리브랜딩, 금융 UX 전반의 방향성을 이끌며 현재 약 120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고 있다.

김도윤 현대백화점 디자인랩 랩장. 건축설계 사무소와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디자인 랩,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을 거쳐 2018년 현대백화점에 합류했다. 더현대 서울을 비롯해 공간, 인테리어, VMD, 연출, 조경, 조명 등을 아우르는 디자인랩을 이끌고 있다.

이병주 LG생활건강 디자인센터장. CDR어소시에이츠와 CJ제일제당을 거쳐 LG생활건강에 합류했으며, 현재 약 200명 규모의 디자인센터를 총괄하고 있다. 뷰티, 생활용품, 음료 등 다양한 사업군에서 브랜드와 제품, 고객 경험 전반을 아우르는 디자인 전략을 담당하고 있다.


다른 길, 같은 자리

내로라하는 기업의 디자인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은 어떤 커리어 패스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올랐을까? 서로 다른 산업에서 경험을 쌓은 다섯 사람은 각기 다른 프로젝트와 역할 속에서 자신만의 리더십을 만들어왔다. 그들이 걸어온 길에는 오늘날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이 요구하는 역량이 담겨 있다.

최지연 나의 첫 직장이 한샘이다. 입사 후 24년째 줄곧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공간의 기준을 만들어 모두의 일상에 가치를 더합니다’라는 경영 철학에 공감한 것이 이 회사를 계속 다니게 만드는 원동력 같다. 사실 계속 같은 회사에 재직했지만 디자인 조직 안에서 맡은 업무는 여러 번 바뀌어 다양한 회사를 전전한 기분이다.(웃음) 홈퍼니싱 가구 개발부터 수납 시스템, 리모델링 자재, 인테리어 디자인, 공간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등을 경험했는데, 운이 좋게 회사가 혁신이 필요했던 변곡점마다 새로운 역할을 맡았던 것 같다. 지금은 R&D본부 리모델링상품부를 맡아 28명의 팀원과 함께 일한다.

이병주 나도 올해 24년 차가 됐다. CDR어소시에이츠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약 4년간 일한 뒤 CJ제일제당을 거쳐 LG생활건강으로 옮겼다. 현재는 약 200명 규모의 디자인센터를 총괄하며, 7년째 센터장을 맡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뷰티, 생활용품, 음료 세 가지 사업을 운영하는데, 디자인센터 역시 각 사업부와 긴밀하게 연결된 브랜드 중심의 크리에이티브 유닛으로 구성돼 있다. 브랜드 전략부터 제품, 패키지, 디지털 콘텐츠, 공간 경험까지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는 주요 접점을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심준용 14년간 해외에 머물며 나이키, 애플, 구글 등에서 일했고, 네이버에는 2024년에 합류했다. 지금은 브랜드 익스피어리언스 조직을 맡아 네이버 브랜드 경험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전략가와 디자이너, 라이터, 모션 디자이너 등 50~60명의 구성원과 함께 사용자가 네이버와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일관되고 완성도 높은 브랜드 경험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정희연 두 차례 스타트업을 경험하고 세 번째 직장으로 토스에 합류했다. 2018년 비주얼 디자이너로 입사해 UI 디자인을 담당했고, 이후 디자인 시스템을 만드는 플랫폼 디자이너로 역할을 확장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 사람과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리더 역할을 맡겠다고 손을 들었다. 이후 토스뱅크, 토스증권, 토스플레이스 등 다양한 계열사가 생기고 각 조직에 리더가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CDO 역할을 맡게 됐다. 현재는 약 120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고 있다.

김도윤 나는 건축을 전공했다. 건축설계 사무소를 다니다 더 넓은 영역의 일을 해보고 싶어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디자인 랩으로 옮겼고, 이후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 디자인팀을 거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팀원으로 만난 디렉터들은 모두 훌륭한 분이었고 내가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국내 주요 기업들의 디자인 디렉터들은 대부분 그래픽 기반이었는데, 브랜딩 작업이 대체로 시각 디자인 작업을 기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만일 오프라인 경험이 중요한 기업이라면 공간을 기반으로 한 나도 조직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마침 현대백화점에서 제안을 받아 2018년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공간 담당자가 나 혼자였지만, 지금은 기존 조직을 흡수해 건축과 인테리어, VMD, 조경, 조명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35명 규모의 조직을 이끌고 있다.

시스템으로 일하는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

각기 다른 리더들이 이끄는 조직에는 서로 다른 일하는 문화가 있다. 그 안에서 전문성을 키워 가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디자인의 역할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그 문화는 각 조직을 대표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김도윤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일정과 예산이라는 큰 제약 속에서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에 대한 평가나 결정 역시 그 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단순히 미학적으로 뛰어난 결과물이 인하우스 디자이너에게 좋은 디자인일 수는 없다. 어떤 가치판단 기준을 갖고 일하느냐가 중요하다.

최지연 맞다. 한샘 디자인 조직의 KPI는 조금 독특하다. 디자인 조직이지만 KPI가 정량적 판매 수치이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제품 디자인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 전략 기획부터 시작해 어떻게 히트 상품으로 론칭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요소가 시장에서 선택받는지 치열하게 생각하게 된다.

김도윤 그런 고민들을 가지고 유관 부서와 함께 만들어낸 공간이 더현대 서울이다. 오픈 이후에는 새로움을 주는 방식을 고민하다 크리스마스 연출 전략의 대상지로 더현대 서울의 사운즈 포레스트를 선정했다. 제한된 조건 아래서 가장 효과적으로 고객들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고, 그 결과 더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시즌 연출은 현대백화점을 대표하는 행사 중 하나가 됐다.

최지연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지바스 프로젝트가 그렇다. 한샘은 원래 부엌과 수납처럼 모듈 시스템에 강점이 있는 회사다. 이지바스는 이런 인프라를 욕실로 확장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욕실이 앞으로 주거 환경에서 더욱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 그리고 한샘의 시공 인프라를 연결한 결과물이다. 결국 한샘이 잘하는 것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검토하고, 모든 조직이 함께 한 방향으로 시장의 흐름과 연결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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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샘의 모듈 시스템 역량을 욕실로 확장한 이지바스. 시장의 변화와 시공 인프라를 연결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심준용 그렇게 총체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에이전시와 인하우스 조직의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에이전시가 결과물을 전달하는 순간 프로젝트가 일단락된다면, 인하우스 조직은 론칭 이후가 진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사업부의 피드백과 비즈니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속 수정하고 육성하면서 브랜드 자산을 쌓아간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한다.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으로 네이버지도, 블로그, 쇼핑 등 주요 서비스의 리브랜딩을 비롯해 스포티파이, 넷플릭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공식 미디어 채널과 기업 사이트 운영 등 사용자와 만나는 다양한 접점에서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고 있다.

이병주 고객이 브랜드와 제품을 만나는 모든 터치 포인트를 디자인 센터가 책임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를 ‘360 크리에이티브 솔루션’이라고 부른다. 크리에이션뿐 아니라 제품화를 위한 디자인 디벨롭 조직과 디지털 영역까지 하나의 센터 안에서 운영하며, 고객 경험 전반을 설계한다. 최근에는 이런 접근을 바탕으로 선행적인 디자인 R&D 제안과 자사가 정한 핵심 리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디자인, 마케팅 전략, 제품 경험, 디지털 콘텐츠 방향까지 디자이너들이 함께 참여하며, 단순한 디자인 결과물이 아니라 브랜드가 고객에게 전달되는 전체 경험을 새롭게 설계했다.

정희연 토스는 여타 기업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토스 디자인 조직에는 별도의 컨펌 과정이 없다. 컨펌이 반복될수록 아이디어의 차별성과 혁신 포인트가 조금씩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스템과 충분한 논의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모듈형 시스템으로 일정 수준의 품질을 확보하고, 그 위에서 끊임없이 토론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간다. 이런 문화는 토스 리브랜딩을 비롯해 토스 디자인 시스템(TDS), 공인인증서 없는 간편송금, 토스증권의 사용자 경험, 최근의 얼굴 인식 결제 등 금융 경험을 바꾸는 다양한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협업의 묘미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은 결국 혼자 일할 수 없다. 조직 안팎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 리더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연결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다.

최지연 우리는 디자인을 상품화하고, 히트 상품을 만드는 책임을 지며 일하다 보니, 좋은 상품은 디자인 조직 혼자서는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매 순간 경험한다. 영업, 마케팅, SCM, AS 서비스 등 다양한 조직이 함께, 한 방향을 지향하며 맞물렸을 때 비로소 히트 상품이 나온다. 그때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방향성을 실체화하는 조직이기 떄문이다. 구매에서는 무엇을 원할까, 영업에서는 무엇을 원할까, 스토어에서는 무엇을 원할까, 강력한 마케팅 메시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회사 내 다양한 조직이 얻고자 하는 것을 하나의 메시지로 정리해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인하우스에서 일할 때는 그런 센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김도윤 맞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항상 ‘우리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강조한다. 개인의 감각만으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답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래서 보고 자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의사 결정권자들이 봤을 때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심준용 회사 전체 조직에서 디자이너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결국 극소수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요한 건 ‘Why’를 이해하는 것이다. 설득은 상대방 입장에서 접근해야 가능하다. 디자인의 완성도나 높은 퀄리티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다. 프로젝트가 왜 시작됐고,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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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밴드의 리브랜딩 디자인. 네이버는 고객과 만나는 다양한 접점에서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다.

이병주 제조업 기반의 회사라 우리도 생산, 마케팅, 구매, IMC, MI 등 다양한 조직과 함께 일한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영역의 전문성만큼이나 비즈니스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마케터들은 가장 좋은 결과물을 가장 짧은 시간 안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퀄리티(Quality), 코스트(Cost), 딜리버리(Delivery), 이른바 QCD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큰 도전이자 성장의 기회이기도 하다. 결국 인하우스 디자인 조직은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넘어,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 브랜드와 비즈니스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희연 다양한 조직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모두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잘되는 것이다. 서로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에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오히려 그 다양성이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하되, 끝까지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때는 결정권자(DRI)가 판단한다. 모두가 그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최지연 리더 역할을 하다 보니 경영자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더라. 시장 환경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경영 전략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때 회사의 경영 관점에서 필요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비즈니스 관점을 키우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김도윤 외부 파트너와 함께 일할 때도 결국 중요한 것은 상황을 읽는 능력이다. 프로젝트의 규모와 일정, 예산 상황에 따라 역할도 달라진다. 어떤 프로젝트는 에이전시와 함께 리딩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내부에서 대부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상황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준용 프로젝트를 의뢰할 때는 명확한 방향성과 원하는 바가 정리돼 있어야 한다. 우리조차 갈피를 못 잡는데 남에게 그 길을 찾아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최대한 명확한 RFP를 쓰고, 정말 명확한 숙제를 주려고 노력한다.

김도윤 공감한다. 외주사와 일할 때 중요한 것은 핵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킥오프 단계에서 별도의 디자인 브리프를 만든다. 어떤 접근이 필요한지, 어떤 사례를 참고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멋있는 것 만들어주세요’라는 추상적인 요청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결국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적어도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에이전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의 전문성을 최대한 끌어내며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리더의 감각

많은 팀원들을 이끄는 디자인 조직의 리더지만, 그들 역시 처음부터 리더였던 것은 아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정답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도 늘어난다. 이들은 어떤 지점에서 고민하고, 또 무엇으로 중심을 지켜나갈까.

이병주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시대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변화를 가장 빨리 이해하고 확신을 가져야 구성원과 공유하고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변화의 속도를 단순히 따라가기 보다,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심준용 특히 AI가 등장한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 기술 변화가 너무 빠르다 보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나 디자인의 논리가 그 속도에 자꾸 덮여 버린다. 지금 이 속도의 시대에 우리가 어떤 포지셔닝을 해야 하는지, 브랜드의 역할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이병주 가장 어려운 것은 결국 리더십이다. 그런데 실무자일 때 디자인 결과물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면, 리더가 된 이후에는 사람과 조직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해졌다. 특히 200명 가까운 조직에서는 한 번의 지시나 선언만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방향을 반복해서 공유하고, 시스템을 만들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마치 거대한 열차를 이끄는 일과 같다. 엄청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쏟아부어야 간신히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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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 디자인센터가 매해 발간하는 〈디자인 애뉴얼 북〉. 한 해 동안의 주요 프로젝트와 디자인 연구 성과를 기록하고 아카이빙한다.

심준용 나는 내 자신이 코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업무의 배경과 목적은 명확하게 공유하되, 해결 방식은 팀원들의 자율성에 맡기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흥미롭게 본 것이 에어비앤비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체스키의 인터뷰였다. 그는 ‘파운더 모드’를 이야기하며 오히려 실무에 깊게 개입하고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더라. 좋은 의도로 권한을 위임했지만, 어느 순간 회사가 자신이 생각한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다는 것이다.

이병주 그래서 더 어렵다. 보통은 포용과 경청, 권한 위임을 이야기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리더가 더 깊이 관여해 방향과 기준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 가지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구성원의 성숙도, 프로젝트의 중요도에 따라 리더십의 방식이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지연 맞다. 나 역시 내가 믿었던 리더십이 정말 맞는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는 리더가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디테일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로운 조직을 맡으며 모든 것을 다 아는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팀원들이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더 넓고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지금의 리더십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야 하는 것이 리더십이고, 그러다 보니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자기만의 근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도윤 그 부분에선 조금 다른 의견이다. 적어도 내가 맡은 분야만큼은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리더가 구성원보다 전문성이 떨어지면 명확한 디렉션을 줄 수 없고, 구성원의 제안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한다. 또 그런 태도가 조직 전체에 시너지를 만든다고 믿는다.

정희연 디자인 조직에서 가장 높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은 결국 리더라고 생각한다. 내가 꾸는 꿈 이상으로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 얼마나 더 탁월해야 하는지, 얼마나 더 아름다워야 하는지, 그 기준을 정하고 조직을 움직이는 일이 결국 내 역할이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혼자 만들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진화하는 세계, 변화하는 인재상

AI 시대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지우기보다 오히려 다시 묻고 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는 시대, 앞으로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

심준용 과거에는 디자인 조직이 사업부의 요청을 받아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실행 조직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기획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 방향성을 함께 잡아가는 전략 조직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디자인 조직이 원하는 인재상 역시 달라지고 있다. 이제 디자인 툴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는 기본에 가깝다. 오히려 데이터와 비즈니스 맥락을 읽고 입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시야가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

정희연 AI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디자이너의 테이스트가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취향이나 미감을 개인 영역으로 치부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AI 역시 하나의 팀원처럼 활용하는 시대가 되면서, 무엇이 더 좋은 결과물인지 판단할 수 있는 감각과 취향이 더욱 중요해졌다. 디자인 조직 역시 더 자신 있게 미감과 테이스트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최지연 공감한다. 최근 3년 내에 다양한 디자인 심사를 경험하면서 변화의 속도를 실감했다. 특히 학생들은 AI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활용하며 진화하고 있고, 전체적인 수준은 분명 높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탁월한 사람을 발견하기는 더 어려워진 것 같다. 결국 상향 평준화된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시선과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해질 것이다.

김도윤 나는 아직까지는 AI를 스킬의 영역이라고 본다. 그래서 AI 때문에 모든 것이 상향 평준화됐다는 느낌도 별로 없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 지원하는 구직자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생각보다 편차가 크다. 평가자 입장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이 어떤 고민을 했고 프로젝트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보여야 하는데, 의외로 결과물만 나열하거나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AI를 활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개별 장표의 퀄리티는 올라갈 수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논리적인 설명 능력이다. 자신의 성과를 어떻게 엮고 설명하느냐가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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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 5층 사운즈 포레스트에서 매년 선보이는 현대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연출. 공간 경험에 집중한 대표적인 연말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정희연 사실 나는 포트폴리오 자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마다 원하는 포트폴리오의 형태도 다르고, 지원자 입장에서는 그것을 하나하나 맞추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원자들이 덜 고민하도록 우리가 원하는 포트폴리오 형태와 질문을 콘텐츠로 꾸준히 공개했다. 덕분에 우리가 보고 싶은 내용은 대부분 담겨 있다. 오히려 변별력은 직무 인터뷰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결과물을 만들었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깊게 고민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물보다 그 과정에 담긴 사고라고 생각한다.

이병주 AI뿐 아니라 사람과 일하는 방식 자체가 모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좋은 것을 잘 만드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였다면, 앞으로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지 판단하고, 다양한 사람과 기술, 자원을 하나의 방향으로 조율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결국 앞으로 디자이너는 굿 메이커를 넘어 굿 큐레이터, 나아가 오케스트레이터가 되어야 한다. 디자인 리더 역시 결과물을 관리하는 역할뿐 아니라 조직의 창의성이 비즈니스 성과와 브랜드 가치로 연결되도록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7호 (2026.07)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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