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인프라를 짓는 타이포그래피, 브랜드톡 코리아 2026
7월 13일 서울 강남구 가빈아트홀에서 브랜드톡 코리아 2026이 열렸다.

글로벌 폰트·타이포그래피 기업 모노타입 코리아가 주최하는 브랜드톡 코리아는 타이포그래피와 브랜드의 관계를 다각도에서 살피는 행사다. 지난 7월 13일에 열린 브랜드톡 코리아 2026 주제는 ‘지속되는 브랜드 경험의 구조’. 브랜드 접점이 늘어날수록 브랜드가 동일한 목소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타이포그래피를 브랜드 경험을 운영하는 핵심 기제로 다뤘다.

메인 연사로 나선 모노타입의 수석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찰스 닉스Charles Nix는 헬베티카 나우Helvetica Now의 리드 디자이너이자 발바움Walbaum, 호프 산스Hope Sans 등을 디자인한 타입 디자이너다. 세미나에는 모노타입 크리에이티브 타입 디렉터 김초롱과 인터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장준호도 함께했다. 이들은 자신이 참여한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플랫폼과 시장, 파트너가 달라져도 브랜드의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타입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 왔는지 보여 줬다.



이날 세미나에서 특히 눈여겨볼 지점은 닉스가 짚은 ‘타이포그래픽 생태계’라는 키워드였다. 그는 디자이너가 만든 글자 형태가 실제로 작동하는 폰트 소프트웨어로 제작되고, 라이선스 조건을 갖춘 상품으로 유통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유통 플랫폼이나 에이전시를 통해 선택된 폰트가 브랜드에 도입되면 가이드라인과 거버넌스의 관리 대상이 된다. 이후 사내 디자인팀과 마케팅팀, 외부 에이전시와 제작 파트너에게 전달되면서 파일은 여러 사본으로 복제되고, 웹사이트와 앱, 패키지 등 다양한 접점에 적용돼 소비자와 만난다. 닉스는 하나의 서체가 수많은 조직과 제작 환경에서 복제되고 사용되는 이 구조를 ‘타이포그래픽 생태계’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체가 여러 접점에 적용됐다고 해서 이 여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만드는 일보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다. 라이선스와 파일 사용 현황을 추적하고, 제작물이 가이드라인에 맞게 구현되는지 살피며, 새로운 플랫폼과 환경에 맞춰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러한 관리가 뒷받침돼야 서로 다른 접점에서도 같은 브랜드 이미지와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관리해야 할 접점은 이미 조직이 온전히 통제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났다. AI로 생성되는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하나의 서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시스템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는지 추적하기도 어려워졌다. 서체 선택이라는 단발적 결정으로 브랜드의 목소리를 지킬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그 목소리가 흩어지지 않도록 서체가 배포되고 사용되는 흐름 전체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일이 타이포그래피의 다음 과제가 됐다.

팀과 플랫폼, 시장이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브랜드의 목소리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브랜드는 아이덴티티를 넘어 존재한다. 아이덴티티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자산과 그것을 사용하는 규칙으로 이뤄져 있다. 브랜드는 그러한 자산과 규칙이 왜 존재하는지를 드러내는 표현이며, 회사와 제품의 성격과 존재 이유를 담고 있다. 또한 브랜드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조직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조직을 이루는 사람, 자산, 제품, 서비스 혹은 지적 재산이 변하면 브랜드 또한 필연적으로 변한다. 탄탄한 브랜드는 자신의 가치와 고객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팀과 플랫폼, 시장이 변하더라도 그 변화를 견뎌낼 수 있다. 여기서 타이포그래피는 브랜드의 자산이면서 동시에 브랜드를 떠받치는 기반이다. 내외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브랜드 접점에 존재한다. 그것은 브랜드의 시각적인 목소리이며, 잘 관리된다면 변화 속에서도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서체를 디자인하고 연구했다.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글자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나?
타이포그래피는 기술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성취다. 가장 아름다운 글자는 ‘가라몽Garamond’의 소문자 g와 ‘바스커빌Baskerville’의 소문자 n이다. 또한 거의 모든 대문자 R이나 소문자 a는 인류가 최근까지 걸어온 진화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통로와도 같다. 타이포그래피는 과거의 언어와 사상을 보존하고 전달한다. 동시에 우리를 그것이 디자인된 시대와 장소로 데려간다.

헬베티카 나우는 세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서체 가운데 하나를 오늘날의 환경에 맞게 다시 해석한 프로젝트다. 유산을 존중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려웠던 결정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대중은 디지털 환경에서 사용된 ‘싱글 마스터single master’ 버전의 헬베티카에 익숙해져 있었다. 싱글 마스터란 모든 크기에 동일한 하나의 드로잉을 사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활자 크기에 따라 각각 따로 설계하던 디자인이라는 유산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가치를 다시 서체 패밀리에 되돌리기로 결정한 것은 최근의 관행과 결별하는 일이기도 했다.



디지털 환경이 인쇄에서 모바일, 웨어러블, AI 인터페이스까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플랫폼과 함께 타입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입 디자이너는 가장 작은 디테일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작은 결정들이 쌓여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모인다. 앞으로 타입 디자이너는 작은 것들을 더 큰 것과 연결해야 한다. 그리고 더 큰 것들을 가장 큰 맥락과도 연결해야 한다. 우리의 작업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반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당신은 동시대 타입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동시대 타입 디자인은 결국 뒤를 돌아보며 정의된다. 아주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지만, 여전히 과거를 연구함으로써 정의된다. 현재는 혼란스럽고, 정확하지 않으며, 수많은 실험과 실패로 가득 차 있다. 예전에는 ‘보면 안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시대를 반영하는 디자인에는 다른 말이 더 어울린다. ‘알게 되면 보게 될 것이다’ 혹은 ‘잘 모르겠다. 어디 한번 지켜보자’. 판단의 기준이 먼저 눈앞에 있고 그것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방식으로 뒤바뀌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미래 자체가 신비롭고 난해하기 때문에 이치에 맞는다. 우리는 이미 유행을 넘어서는 시대에 들어섰다.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 변화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먼 미래까지 생각해야 하는지를 탐색하며 디자인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오래 지속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브랜드 아이덴티티 너머에서 그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를 먼저 물을 것. 브랜드는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와 고객, 관객, 공동체 사이에서 이어지는 하나의 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