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년 된 런던 시장의 로컬 브랜딩

지역 공동체와 만든 서리 스트리트 마켓 비주얼 아이덴티티

750년의 역사를 지닌 런던 서리 스트리트 마켓이 새로운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선보였다.

750년 된 런던 시장의 로컬 브랜딩

오래된 장소를 브랜딩하는 일은 대개 과거를 고르는 데서 시작한다. 어떤 시대를 대표로 세우고, 어떤 흔적을 덜어낼지 결정하는 일이다. 올해로 750년을 맞은 런던의 한 시장은 고르지 않는 쪽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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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esign

런던 남부 크로이던(Croydon)의 서리 스트리트 마켓(Surrey Street Market)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 시장 가운데 하나다. 1276년 시장 특허장이 내려진 지 750년을 맞아 새로운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공개했다. 프로젝트는 런던 기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밥 디자인(Bob Design)이 맡았다. 크로이던 카운슬이 추진하는 지역 재생 사업 ‘앰플리파잉 서리 스트리트(Amplifying Surrey Street)’의 일환으로, 녹지 인프라와 문화 프로그램, 공실 활성화 등을 아우르는 GLA(Greater London Authority) 지원 사업 안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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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esign

시장의 기억을 담은 모듈형 시스템

밥 디자인은 완성된 로고를 제안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나 조합하고 확장할 수 있는 모듈형 시스템, 이른바 ‘툴킷(toolkit)’을 만들었다.

출발점은 리서치였다. 크로이던 어반 룸(Urban Room)의 구술사와 헤리티지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공동 디자인 워크숍을 설계했고, 카운슬 플레이스메이킹팀과 지역 상인, 주민 액션 그룹이 참여한 공개 협의를 이어갔다. 참여자들이 어떤 역사적 레퍼런스에 크게 반응하는지 살피되,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 하나로 수렴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모은 단서는 서체와 형태, 컬러를 축으로 한 시각 언어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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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esign

아이덴티티의 재료는 모두 시장 안에서 찾았다. 새 서체는 아카이브에 남아 있던 시장 간판과 사인 페인팅에서 출발했고, 그래픽 형태는 거리의 건축 요소를 따랐다. 컬러는 석조 건축물과 고스트 사인(ghost signs), 스테인드글라스, 덥스텝 바이닐, 노점의 가격표 스티커에서 가져왔다. 750년의 역사뿐 아니라 크로이던이 2000년대 덥스텝이 태동한 지역이라는 문화적 기억까지 하나의 팔레트 안에 담았다. 중세 시장으로 향하는 가축 행렬도, 덥스텝을 상징하는 붐박스도 같은 시각 언어 안에서 계속 조합할 수 있도록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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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esign

그래픽에도 의도적으로 비정형성을 남겼다. 안내 화살표는 직선 대신 계단처럼 꺾이거나 뾰족한 파형으로 변주되고, 픽토그램은 손으로 오린 종이 조각에서 출발해 배너와 안내 사인, 세라믹 플라크 등 다양한 매체로 이어진다. 시장 특유의 즉흥성과 활기를 질서 안에 가두지 않고 시각 언어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이 모듈형 시스템은 평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밥 디자인은 처음부터 2차원 그래픽과 3차원 공간 모두에서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인쇄물과 소셜미디어 템플릿은 물론 새로 제작한 게이트웨이와 어닝, 거리 시설물까지 같은 언어로 연결된다. 매체와 규모가 달라져도 형태를 만드는 규칙은 그대로 유지된다.


공동체와 함께 확장하는 아이덴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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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esign

참여형 브랜딩은 늘 균형의 문제와 마주한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다 보면 시각적 일관성을 잃을 수 있고, 반대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 참여가 형식적인 과정에 머물 수 있다. 밥 디자인은 완성된 결과물을 제시하는 대신, 누구나 같은 규칙 안에서 자신의 해석을 더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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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0163322 BOB Design Surrey Street Market Students workshop
© BOB Design

그 가능성은 실제 협업 과정에서 확인됐다. 밥 디자인은 먼저 카운슬과 지역 상인, 주민 단체, 코프로덕션 컬렉티브(Co-production Collective)와 함께 기본 모티프를 만든 뒤, 크로이던 예술대학(Croydon School of Art) 학생들에게 키트를 건넸다. 강사 레비 고프(Levi Goff)가 이끄는 한 학년 전체가 참여해 주민이자 신진 창작자의 시선으로 새로운 모티프를 만들었다. 학생들이 제작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패턴, 문구는 새 게이트웨이와 시장 곳곳에 설치될 세라믹 플라크에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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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30163419 BOB Design Surrey Street Market Making Of 1
© BOB Design

밥 디자인은 오래전부터 아이덴티티를 낱개의 형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형태의 체계(families of forms)로 설계해왔다. 같은 뼈대를 공유하면서도 쓰임에 따라 유연하게 변주되는 방식이다. 이전까지 이 키트의 사용자는 클라이언트였지만, 서리 스트리트에서는 그 대상이 상인과 주민을 포함한 지역 공동체로 확장됐다. 스튜디오에 따르면 키트를 건네는 일은 공동 소유권(shared ownership)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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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B Design

‘앰플리파잉 서리 스트리트’는 3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다. 게이트웨이와 세라믹 플라크는 순차적으로 설치되고, 툴킷은 거리와 인쇄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속 활용된다. 이 시장의 아이덴티티는 완성된 형태로 남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기억과 함께 변해간다. 10년 뒤 서리 스트리트의 아이덴티티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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