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크리에이티브 ⑦ 김지원 석운동 대표

막 도착하고, 막 움직이고, 막 부딪히는 몸. 석운동은 그런 몸들을 만나면서 당연하게 여겨온 기준에 질문을 던졌다. 특정한 몸을 전제로 만든 공간과 사물, 그 사이에 남겨진 빈칸. 석운동에게 ‘막’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계속 질문하고, 관찰하고, 수정할 수 있는 태도에 가깝다. 장애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몸과 만나고 그들과 함께 만드는 실천을 이어온 석운동에게 ‘막’의 의미를 물었다.

막, 크리에이티브 ⑦ 김지원 석운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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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전시와 상업 공간 인테리어, 가구 및 구조물 제작을 통해 공간 구성과 사용 방식을 탐구하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카페 ‘페쿨리’, ‘높은산’ 등 상업 공간을 비롯해 리움미술관, 일민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다수의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접근성과 신체적 감각, 제작 과정을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2021년부터 세미나 ‘짓기와 거주하기’를 진행하며 공간의 확장성에 대한 담론을 이어오고 있다. seokundong.kr
디자인하우스 50주년 문화 캠페인 ‘막, 크리에이티브!’를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막’이라는 키워드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한국적인 것을 해석하고 시각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지만, ‘막’의 개념에는 한국 사회가 겪어온 급격한 근대화 과정과 그 안에서 형성된 다양한 경험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시대적·역사적 맥락뿐 아니라 한국 디자이너와 창작자들이 처한 조건,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만들어 진 고유한 창의성을 포착하기에 적절한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석운동에게 ‘막’은 어떤 의미인가?

일반적으로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표현이지만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창의성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장애와 다양한 몸에 관심을 가진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막’이라는 단어가 늘 헐레벌떡 움직이고, 무언가를 겨우 해내며, 어설퍼 보인다고 여겨지는 몸과 연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늘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막’은 동시대 사람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을 함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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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오민·카밀 노먼트의 2인전 〈어긋난 파동, 흔들리는 시간〉의 공간 조성과 기술, 아트 프로덕션. 재료를 자르고 조합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작가와 함께 설치 작업을 완성했다. 사진 최용준
장애학을 공부하고 디자이너로서 가장 크게 바뀐 전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기준이 사실은 특정한 몸을 전제로 하며,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몸을 자연스럽게 배제해 왔다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건축 공간에서 흔 히 이야기하는 ‘시퀀스’에도 특정한 몸이 전제되어 있다. 좁은 길을 지나 갑자기 넓은 공간을 마주하거나, 높은 계단을 올라 새로운 장면을 경험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시각을 사용할 수 있고 두 다리로 이동할 수 있는 몸을 기준으로 한다. 디자이너들이 관성적으로 만드는 750mm 높이의 테이블과 450mm 높이의 벤치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적합한 기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몸과는 불화한다. 장애학을 공부하며 우리가 만든 공간과 사물이 누군가에게 장벽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후회와 반성으로 출발했지만, 고민을 이어가면서 다른 몸을 고려하는 일이 단순히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20세기 이후 건축과 디자인은 인간의 몸을 특정한 기준으로 표준화하고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발전시켜 왔지만 장애학은 바로 그 출발점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여성의 몸, 어린이와 노인의 몸, 나아가 비인간 존재와 생태까지, 우리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다양한 존재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에게 장애학은 다른 몸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입구였던 셈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작품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전시 〈우리의 몸에는 타인이 깃든다〉에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 다. 그 과정에서 어떤 한계와 가능성을 봤나?

작년 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첫 전시에서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동선을 따라 촉감이 있는 몰딩을 붙이고 나무 타일을 조각해 다음 작품의 감상에 필요한 감각을 안내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전시를 오픈한 지 며칠 뒤 시각장애 예술인 그룹 ‘힘빼고컴퍼니’의 두 멤버가 전시장을 찾았는데, 우리가 오픈 직전까지 다듬은 몰딩을 만지며 걷던 한 사람이 갑자기 주저앉아 세심히 타일과 점자를 읽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점자의 높이가 낮아 어쩔 수 없이 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순회전이 된 이 전시에서 우리는 막 시도했다. 높이와 각도를 바꾸고, 재질을 바꾸고, 보조 장치를 거치할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매번, 새로운 문제를 마주했다. 접근성은 한 번의 설계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몸을 만나며 끊임없이 수정하고 배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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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 오피스 공간 디자인 및 시공. 스튜디오의 포스터를 전시하는 입구 파티션과 보관·열람·작업 공간을 조성했다. 사진 홍기웅
그렇다면 사용자와 함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진다고 생각하나?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라 목공 일을 하면서 이 일을 시작한 나는 클라이언트와 대등한 관계에서 대화하는 것에 익숙하다. 작은 목공방을 찾는 사람들은 전문가의 고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싱크대 사이의 좁은 틈에 수납장을 넣고 싶다는 식의 명확한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온다. 하지만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니 경험과 지식에 기대어 전문가가 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기 어렵더라. 클라이언트도 디자이너에 게 정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디자이너와 사용자가 동료나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 가깝다고 느낀다. 사용자가 어떤 감각과 경험으로 공간을 마주하는지 구체적으로 묻지 않으면 결국 자기 복제식 디자인밖에 할 수없게된다. 그래서 프로젝트마다 사용자와 함께 질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가 가능했던 것도 그런 질문을 기꺼이 함께 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도 법적으로 접근성 기준을 지켜야 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먼저 제안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 필요성을 함께 확인해 가고 있다.

석운동에게 디자인은 완결된 답을 제시 하기보다 질문을 이어가는 과정에 가까 운 것 같다.

디자인은 결국 태도라고 생각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일 수도 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일 수도 있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 흔히 디자인을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 표현이 오히려 자기 반복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내가 문제를 정의하고,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결국 나 자신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마치 스스로 만든 완결된 동그라미 안에서 계속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의 권위와 권력이 만들어진다. 사실 그 구조를 끊을 수 있는 질문은 많다. 무언가 단언하는 말을 들 을 때면 ‘어떤 주체와 대상을 상정했을 때만 가능한 말일까’ 하고 의심하곤 한다. 그러한 관계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완결된 답처럼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폭력적일 수 있다. 그래서 디자인은 언제나 질문을 남기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질문을 남긴다는 것은 논리적 완결성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미완결성이야말로 디자인의 필연적인 속성이다. 이러한 태도는 ‘막’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막 한다”라는 말에는 서툴고 정리되지 않았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완성된 답에 도달하기보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려고 한다”, “이 질문을 함께 이어가고 싶다”고 말하는 태도야말로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든다고 믿는다.

‘빈칸을 남겨놓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정해진 일정과 예산 안에서 일정한 결과물을 요구한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고 있나?

물론 현실은 쉽지 않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일정도 있고 잔금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는 돈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관계와 가치가 개입한다. 디자인하우스가 지난 50년 동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를 쌓아온 것처럼, 디자인도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신뢰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왜 이런 요소들이 디자인 과정에 개입돼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지, 오히려 그 질문을 던지는 편이 더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콘텐츠는 월간 〈디자인〉 578호(2026.08)에 발행한 기사입니다. E-매거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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