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크리에이티브 ⑧ 한승재 푸하하하프렌즈 공동대표
유머러스한 발상과 치밀한 계획은 푸하하하프렌즈의 건축을 이루는 두 축이다. 익숙한 재료를 낯설게 사용하고 공간의 관습적인 문법을 뒤집으면서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에서는 집요하게 완성도를 좇는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직감에 따라 새로운 답을 찾기도 한다. 계획과 직감, 완성도와 우연 사이에서 그가 생각하는 ‘막’의 자리를 물었다.


디자인하우스 50주년 문화 캠페인 ‘막,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하고 싶다.
‘막’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무엇이든 금방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남은 천으로 커튼을 만들고, 집에 비가 새면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항아리와 물레방아를 놓았다. 천장에 생긴 빗물 자국에는 나비와 개구리, 기린을 그려 넣기도 했다.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황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반전시키는 재능이 있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것이 내가 건축가가 되는 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긍정적인 영향이었나?
꼭 그렇지는 않다. 어머니의 임기응변이 싫어서 계획대로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가가 됐다. 순발력이나 재치보다 철저하게 계획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긍정하는 측면도 있다. 계획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우연성과 다양성 역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완성도를 추구하다 보면 일정한 규칙이 생기는데, 때로는 즉흥적인 방식에서 그 규칙을 깰 단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막’은 완성도의 반대편에서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


건축가와 계획성은 불가분의 관계일까?
건축은 완결성을 기본으로 계획해야 한다. 실제 공사는 콘크리트 뼈대를 세우고 단열재와 배관 등을 설치한 뒤 외장재를 붙이는 순서지만, 설계는 반대다. 먼저 완성된 모습을 상정하고 거기서부터 안으로 들어가며 각 요소를 계획한다. 뼈대부터 생각하고 필요한 것을 그때그때 덧붙여 생긴 불규칙성을 우연성이라고 포장하는 건 완성도를 지향하는 태도가 아니다. 처음부터 임기응변 자체를 가치로 두면 계획의 빈자리를 수많은 변명으로 채우게 된다. 그건 전문가다운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푸하하하프렌즈의 건축을 유머러스하고 즉흥적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실제 작업에서 임기응변은 얼마나 허용하나?
건물의 개념이나 형태가 특이할 수는 있지만 완성도를 높인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임기응변이 개입하는 건 주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다. 예를 들어 ‘집 안의 골목’은 완공 후 한쪽에 빗물이 고이는 문제가 생겼다. 배관을 설치하면 보기 싫을 것 같아 굵은 쇠사슬을 달아 빗물이 타고 내려가도록 했다. 마치 배가 닻을 내린 듯한 모습이 됐는데 이런 임기응변은 꽤 멋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건물의 개념을 잡을 때는 자유롭게 생각하지만 방향이 정해지고 나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그러다 예상 못 한 문제를 만나면 다시 한번 유머러스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우리의 임기응변, 즉 ‘막’은 설계의 처음과 끝에만 존재하는 셈이다.
설계의 처음을 어떻게 떠올리는지도 궁금하다. 최근 완공된 잼 실용음악학원은 어떤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나?
연남동과 연희동에서 오래 살았고 사무실도 줄곧 이 근처에 있었다. 이 동네를 지나다니며 상업 건축이 무조건적인 소통과 연결을 미덕으로 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도로와 접하는 면이 많을수록 임대에 유리하다 보니 창문과 유리가 많아지고, 그 모습이 내게는 조금 정신없게 느껴졌다. 그림에도 여백이 있듯 이 동네에도 여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흔히 쓰는 알루미늄 패널이 빛을 뿌옇게 반사하는 모습을 보고, 창이나 간판을 덜어낸 채 이 재료를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실용음악학원이라는 조건도 고려했다. 복도나 휴게 공간을 넓히면 연습실 수가 줄고 결국 학원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습실은 모서리까지 온전히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각 방을 사선으로 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생긴 자투리 공간을 학생들이 머무는 여유 공간으로 만들었다. 방음 때문에 모든 연습실에 창을 내기 어려운 문제는 여러 방이 하나의 창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 건물에도 ‘막’이 녹아 있나?
마지막에는 가구 제작에 많은 비용을 들일 여유가 없어 직접 디자인했다. 각 파이프 같은 저렴한 재료로 벤치를 만들었는데, 3개의 의자가 테트리스처럼 맞물려 하나가 되기도 하고 따로 떼어 사용할 수도 있다. 반대로 막 작업한 것처럼 보이지만 철저히 계획한 것도 있다. 마트나 미용실에서 흔히 쓰는 저렴한 비닐 시트를 오혜진 디자이너와 작은 조각으로 잘라 모자이크처럼 재구성했다. 얼핏 무작위로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층마다 색과 패턴을 정해 모두 도면화했다. 건물 자체가 각이 서고 힘이 들어가 있는 만큼 내부에서는 의도적으로 힘을 빼고 싶었다. 저렴하고 실용적인 재료를 쓰면서도 전체 계획에 어울리게 만드는 것, 이 정도가 이 건물에서의 ‘막’이다.


1층을 과감하게 비워놓은 ‘서교동 콘크리트 상가’도 푸하하하프렌즈다운 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상업 건물은 도로와 맞닿은 가장 좋은 자리에 임대 공간을 두고 계단이나 복도 같은 공용 공간은 뒤편으로 밀어낸다. 하지만 건물을 경험한다는 건 실내에 들어선 뒤부터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건물을 떠올려 보면 복도나 계단의 경험도 좋았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건물에서는 사람이 많이 지나는 도로 쪽에 계단과 공용 공간을 배치했다. 밖에서 보면 창도 거의 없는 답답한 콘크리트 덩어리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 사이의 빛 우물을 통해 하늘이 보인다. 농담처럼 ‘밖에서는 절망, 안에서는 희망’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런 공간 구성은 철저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이 어떤 미감과 경험을 만들어낼지까지 모두 알고 설계한 것은 아니다. 형태를 계속 정제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손이 이끄는 대로 가기도 한다. 절반은 의도, 절반은 직감으로 설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직감이 설계 방향을 결정한 또 다른 사례가 있나?
성수연방이 그렇다. 처음 현장에 갔을 때 건물보다 두 동 사이의 빈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보자마자 ‘여기는 무조건 공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물은 배경으로 두고 발코니와 브리지가 가운데 공원을 바라보도록 계획했다. 법적으로는 차도와 주차장이지만 사이사이에 나무를 심었다. 지금은 나무가 많이 자라 성수동에서 보기 드문 그늘을 만들어준다.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나무를 키우는 것도 있으니까(웃음). 기존 건물을 증축할 때는 오래된 벽의 미세한 굴곡을 바로잡지 않고 새 발코니가 그대로 따라가도록 했다. 막 작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공은 오히려 더 어려웠다.

사실 푸하하하프렌즈의 공모전 작업을 좋아한다. 뾰족한 아이디어와 특유의 과감함 때문이다. 요즘에도 공모전에 자주 참여하나?
요즘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큰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서 공모전에 많이 참여했는데, 결국 여러 조건을 두루 만족하는 적절한 안을 뽑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날 선 아이디어나 과감한 제안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물론 우리가 그 필요성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공모전의 의미는 다양한 안을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1등은 안전하고 관리하기 쉬운 안이어도 괜찮다. 대신 다른 제안을 살펴보며 불편함이나 필요, 감정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면 한다. 그런데 기대했던 만큼 사람들의 말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당선되지도 않아서 요즘은 잘 안 한다. 삐졌다.(웃음)
요즘 건축적으로 관심을 두는 화두가 있나? 앞으로 푸하하하프렌즈가 어떻게 나아갈지도 궁금하다.
요즘 관심 있는 화두는 ‘용기’다. 무모하고 과감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무모한 척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진짜 용기란 무엇인지 자주 생각한다. 푸하하하프렌즈 안에서 내 역할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가 실험적인 시도를 주도했지만 지금은 팀원들이 그 역할을 많이 맡는다. 위험해 보이는 시도를 해도 일단 가보게 한다. 그걸 말리지 않는 게 지금의 내 역할이다. 내가 원하는 것만 고수하다 보면 어느새 옛날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덕분에 우리 설계도 계속 젊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웃음) 이제 14년 했는데 이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나. 멋지고 큰 프로젝트도 해보고 싶다.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