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배경을 디자인하는 든든한 조력자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건축 문외한이 보더라도 한눈에 읽히는 명쾌한 덩어리, 오래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은 독특한 감각, 가벼움 뒤에 은근하게 숨겨놓은 치밀한 논리와 공법이 포머티브식 건축 언어다.
전문가’로 정평 난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이하 포머티브)의 작업을 보면 ‘건축가는 관계를 형성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끄집어내게 된다. 고영성, 이성범을 단순히 건물 짓는 인물로 바라보는 건 협소한 시각이다. 이들은 사람, 자연, 건축, 땅, 장소 등 복잡하게 얽힌 그물망을 더듬어 아름다움과 인간다움을 추구한다. 자칫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두 건축가가 작업하는 일련의 과정과 사람 냄새 짙게 밴 결과물은 ‘관계의 발현’이라는 지향점이 결코 근거 없는 말이 아님을 방증한다. 파사드를 열어 안팎으로 즐거움을 연결한 ‘벽락재壁樂齋’, 고르지 못한 땅에 다양한 시점을 끌어들인 ‘더스테어’, 오름이 보이지 않는 사이트에 그 형태를 고스란히 구현한 제주 ‘삼달오름’ 등. 포머티브의 건축 어휘는 과감하면서도 친절하고 직관적이면서도 정교하다. 이는 사무소 이름에 담긴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포머티브formative는 ‘(사람의 성격 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이란 뜻이다. “이 단어에 내재된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니 무언가가 발달하는 시간 그 자체에 귀중한 가치가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결과물 못지않게 과정을 중요시하는 저희의 철학과도 같은 맥락이지요. 형태(form)를 통해 건축에 조형성과 예술성을 담겠다는 포부를 중의적으로 함축한 것이기도 하고요.”
실제로 ‘조형’은 포머티브가 회자될 때마다 함께 언급되는 키워드다. 하지만 조형성에만 치중하면 공허함만 남는다는 것이 두 건축가의 지론이다. 이들에게 조형이란 기능과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건축을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간명한 도구 중 하나다. 건축 문외한이 보더라도 한눈에 읽히는 명쾌한 덩어리, 오래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은 독특한 감각, 가벼움 뒤에 은근하게 숨겨놓은 치밀한 논리와 공법이 포머티브식 건축 언어다. “동업을 결심할 때부터 쉽고 재미난 건축을 도모했어요. 어렵고 현학적인 말을 늘어놓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특정 스타일을 고집하지도 않아요. 일관성이 없지 않느냐고 물으면 주변 환경도, 머무는 사람도 각기 다른데 어떻게 비슷한 건물을 짓느냐고 반문합니다.” 고영성과 이성범이 가장 자신 있게 내미는 프로젝트는 단독주택과 스테이. 두 공간의 성격은상반되지만 포머티브가 작업하는 방식에서는 공통된 태도가 보인다. 절대 과한 욕심을 강요하거나 헛된 망상을 심지 않는다. 주거가 일상이라면 스테이는 여행이고 이는 결국 모두 삶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건축가는 삶의 배경을 디자인하는 든든한 조력자인 셈이다. 때로는 사업성을 담보해야 하는 스테이 프로젝트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대지 조건과 예산이 제한적이더라도 완결된 공간 경험으로 수익성을 보장한 선례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올해는 작업 범주가 더 다양해질 예정입니다. 어린이집, 카페, 도시 재생 프로젝트, 골프 아카데미 등을 맡게 됐는데 신기하게도 클라이언트 대부분이 스테이 프로젝트를 보고 찾아왔더라고요. 저희의 건축을 경험하고 완전히 새로운 공간 프로그램을 의뢰한다는 점에서 포머티브식 표현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듯해 기쁩니다.” 유쾌함과 진중함을 넘나드는 두 건축가가 어디까지 영역을 확장할지 예측할 순 없지만 어떤 환경에도 유연하게 스며들 건축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글 정인호 기자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한 고영성, 이성범이 운영한다. 2011년 고영성이 디자인 연구소 이엑스에이를 열고 2013년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성범은 2016년 합류해 감성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고 과정과 본질에 초점을 맞춘 건축을 지향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참건축의 의미를 실현하고자 한다.
formativearchitects.com
(우) 가분수 형태의 지붕으로 화제를 모은 와인 바, 수리코. 직선과 곡선이 조화로운 완충 공간을 통해 날렵하면서도 부드러운 조형을 선보였다. ©고영성
디자이너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
바다, 골목, 유화 냄새. 유년 시절 접했던 자연의 감성과 미적인 감각.
AI 디자이너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이해하고 만들어내는 것.
요즘 가장 좋아하는 곳.
고영성 머리 복잡할 때 내 집 하나 뚝딱 지으며 환기할 수 있는 각흘계곡캠핑장.
이성범 새벽에 바라보는 잠수교의 소실점.
2022년 활약이 기대되는 디자이너 또는 디자인스튜디오는?
없다. 활약이 기대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비슷비슷하게) 잘하는 팀이 너무 많아서다.
최근 거슬리기 시작했거나 지긋지긋한 단어가 있다면?
재해석(너무 자주, 안일하게 쓰인다. 해석이 선행되지 않은 재해석이 지나치게 많다), 한국성(한국 사람이 이토록 한국성을 자주 거론하는 흐름은 강박으로 보인다), 시안(얼마 전에도 이 말을 듣고 폭발했다. “시안 좀 보여주세요.” 건축 전체를 아우르는 초기 콘셉트는 절대 공짜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
올해 새로운 다짐.
일도 좋지만 적당히 쉬면서 하자 vs 놀면 뭐 해, 할 수 있을 때 일하자. 두 마음이 늘 교차하지만 좀 더 두각을 나타내는 2022년이 되기를.
디자인업계에서 고쳐야 할 관행이 있다면?
말과 글로 결과물을 과대 포장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 건축가의 직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클라이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