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바 캘린더 시리즈

정보 디자인 전문 회사 아메바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온 그래픽 캘린더 프로젝트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최근 이를 결산하는 아카이브 북 〈空空間 empty space〉를 선보였다.

아메바 캘린더 시리즈
아카이브 북 겸 포트폴리오 〈空空間 empty space〉.

정보 디자인 전문 회사 아메바가 2010년부터 2021년까지 이어온 그래픽 캘린더 프로젝트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최근 이를 결산하는 아카이브 북 〈空空間 empty space〉를 선보였다. 12년간의 장기 프로젝트를 선두에서 지휘한 박효신 아메바 고문이 지난 작업을 하나하나 되짚어주었다.

아카이브 북 겸 포트폴리오 〈空空間 empty space〉.

현재 정보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아메바는 원래 그래픽 디자인 전문 회사였다. 모바일 UX 디자인이 새로운 서비스 디자인 산업으로 등장하면서 전문 영역이 바뀌게 된 것이다. 대기업 협력 업체로 일하는 것이 UX 디자인 회사의 주된 업무 방식인데, 조직적이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늘 새로운 작업에 목말라 있었다. 마침 오세훈 서울시장이 ‘디자인 서울’을 강조하면서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었고, 이때 수주한 건축·문화예술 디자인 지도 개발 사업은 학구적인 리서치와 창의적인 제안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서울시에 제안한 프로젝트는 정보 문양을 활용한 지도였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이 프로젝트는 관광객들에게 좋은 시각적 가이드가 되었고 도시 환경 개선에도 이바지했다.

아메바가 개발한 정보 문양은 그래픽을 구성하는 시각적 요소가 정보와 미학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실험적이었다. 이를 활용해 2010년 천연기념물을 주제로 캘린더를 처음 디자인했다. 서울시를 위한 정보 지도와 마찬가지로 시각적 범례 개발이 매우 중요했고, 해당 천연기념물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 또한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이었다. 같은 시기 아메바는 ‘껌북Gumbook’이라는 자체 출판 브랜드를 시작했는데, 첫 작품이 그래픽 북 시리즈 ‘프렌토Friento’였다. 이 시리즈를 위해 만든 캐릭터들을 활용해 이듬해인 2011년에는 ‘Go Global’이라는 주제로 캘린더를 제작했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미국, 인도 등의 문화와 풍습을 담았는데 모듈을 그래픽 요소로 사용해 ‘가장 적은 요소로 가장 많은 변화를 추구한다’는 비주얼 시스템 이론을 적용했다. 포유류, 곤충, 나무, 광물 등을 자연도감 형식으로 디자인한 2012년을 지나 2013년에는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여러 도구를 표현했다. 도구야말로 형태가 기능을 만들기도 하고, 따르기도 하는 독창적인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2014년의 주제는 ‘민예 정신’이었다. 일본의 전설적인 그래픽 디자이너 가메쿠라 유사쿠가 〈이조의 민화〉라는 책을 만들 때 ‘산에서 보석을 캐는 기분’을 느꼈다는 한국의 민화를 재현했다. “버들가지가 바람에 휘날려 녹색의 물결처럼 보이는 한국의 오솔길. 군데군데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주위엔 연분홍 꽃들이 만발해 있다. 흰옷을 입은 그림쟁이가 물감 상자를 등에 지고 그 길을 따라 힘없이 다음 마을을 향해 걸어간다”라는 구절이 생각나는 민화 화가의 운명적인 처절함과 평민들의 소박한 생활화生活畵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2015년에 다룬 시계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정밀하고 미학적인 구조물이 시계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윤년을 계산해 보여주는 퍼페추얼 캘린더perpetual calendar, 지구 중력을 최소화하는 투르비용tourbillon 등 시계 속 초정밀 기계장치는 그래픽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대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정교함의 매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노력은 2016년 주제인 ‘돈’에도 이어졌다. 화폐 디자인만큼 권위와 상징성, 정교함을 같이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도 드물 것이다. 화폐의 그래픽 패턴과 음·양각의 촉감을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2017년의 주제는 ‘지도 미학’. 지도는 정형적인 정보 다이어그램으로 다양한 형태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래픽 디자인이 구성주의 시대를 지나 본격적으로 정보 디자인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은 1953년 헤르베르트 바이어Herbert Bayer의 ‘세계지도(World Geo- Graphic Atlas)’였다. 이 책 속의 다양한 지도가 캘린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2018년에는 건축 그래픽이었는데, 여러 건축가들의 건축 철학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곡선의 미, 대칭적 침묵, 고전적 모더니즘 등을 콘셉트로 삼았다. 2019년에는 드라마, 음악, 한글 등에서 발견되는 한류 미학을 구현했다. 칸딘스키Kandinsky와 한글,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와 한국 건축,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와 케이팝 등 세계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한류를 매칭하고 시각적 위트를 더했다.

2020년에는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달력으로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일력으로 전환해 365일을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2020년은 ‘사랑’을 주제로 일력을 디자인했고, 달마다 소주제로 나누어 디자인했다. 매달 같은 키워드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도 연계되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미각, 꿈, 시, 도시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표현했다. 현대 타이포그래피와 독일·스위스의 구성주의 디자인은 20세기 초 미래파 시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들의 구체시(concrete poetry)는 구체 미술과 구체 미술적 그래픽을 탄생시켰으며, 지금까지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특성으로 남아 있다. 이 점에 주목해 2021년에는 시각시(visual poetry)를 토대로 디자인했다. 눈, 움직임, 씨앗, 빛 등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다른 키워드로 구성했다. 이 캘린더는 계절감을 표현한 디자인으로 감성적이지만, 그래픽의 운용 방법은 비례, 수열, 대칭 등 매우 수학적인 방법론을 지향해 이성적이기도 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지막 작업인 2022년 〈空空間 empty space〉는 ‘A space of emptiness and fullness’라는 콘셉트로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는 12년간의 작업 끝에 도달한 결론과도 같다. 미국의 디자이너 폴 랜드Paul Rand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내 작품의 텅 빈 뒷장’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비춰볼 때, 비워져 있는 공간을 채워가는 방식과 방법이 우리가 지금까지 실험해온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강물과 구름처럼 빠른 듯 느린 듯 지나가는 시간에 줄을 긋고 채색을 하는 것도 디자인 행위이고, 흐르는 물, 떠 있는 구름을 관조하며 자연이 만들어가는 조화를 즐기는 것 또한 디자인인 셈이다.
글 박효신 아메바 고문 담당 박종우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박효신
홍익대학교와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디자인학 박사를 받았다. 쌍용그룹 홍보실 디자인팀, 삼성전자 해외 본부 디자인팀을 거쳐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사디SADI와 삼성전자디자인연구소에서 멀티미디어 디자인 교수로 근무했다. 1999년 정보 디자인 회사로 출발한 아메바 디자인은 2022년 현재 UX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개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2년간 아메바 캘린더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그래픽 실험을 진행했다. 현재는 아메바 고문이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다. amoeb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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