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산업의 교차점에서의 집,〈하우스비전 2022 코리아 전람회〉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5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하우스비전〉이 한국과 손잡고 선택한 주제는 ‘농農’이다.
니폰 디자인 센터의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총괄하는 〈하우스비전 2022 코리아 전람회(HOUSE VISION 2022 KOREA EXHIBITION)〉(이하 〈하우스비전〉)은 2011년 일본을 시작으로 중국, 대만 등에서 주거 관련 문제를 해결하고자 진행한 전람회다. 집을 ‘산업의 교차점’으로 바라보고 에너지, 통신, 물류, 커뮤니티, 식문화 등을 연결해 산업의 추세를 전망하고 구조를 개선하고자 시작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5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하우스비전〉이 한국과 손잡고 선택한 주제는 ‘농農’이다. 개최 파트너인 만나CEA와 함께하며 영향을 받은 것인데, 만나CEA는 평소 농촌의 생활 인프라를 확보하며 체계화된 농업 교육을 제공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만나CEA의 목표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도시를 향해 일방적으로 흘러가던 인구 이동 추세가 농촌을 향하는 현재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기도 한 것이다. 이번 〈하우스비전〉에서는 건축가 최욱·민성진·김대균, 디자이너 조기상·나훈영 등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이 근미래 교외 산업으로서의 농업과 지역민의 생활, 커뮤니티 등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를 테마로 자신만의 해법이 담긴 집을 설계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는 여느 전람회와 다르게 전시 기간에만 선보이고 사라지는 건축물이 아닌, 전시가 끝난 후에도 지역을 위한 생활 플랫폼으로 사용할 예정이라 더 의미 있다. 여기에 모형 전시를 병행해 실물 스케일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건축물들은 전원생활을 위한 집과 일과 생활이 공존하는 집, 문화 공간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건축가 최욱이 지은 ‘작은 집’은 주변 환경에 순응하며 한국 전통 주거 방식에 따라 계획한 집으로, 자연 그대로의 지형이나 기복에 맞춰 작은 공간 모듈을 수평 혹은 수직 방향으로 전개해간 것이 특징이다. 도심에 비해 여유로운 농촌의 대지 조건에 확장성으로 대응하는 집이라 1~2인 가구, 어린이가 있는 가족 등 각각의 형태에 맞게 자유롭게 확장이 가능하다.
하라 켄야가 무인양품과 함께 제안하는 ‘양陽의 집’은 현재 서울 외곽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이들의 모습과 언뜻 닮았다. 벽면에는 수납 선반이 설치되어 있는데 미니멀하지만 실제 수납 용량은 넉넉하다. 방 안 가구는 벽에 고정시키지 않고 어떤 방향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건축가 민성진의 ‘메타팜 유닛Meta-Farm Units’은 IT 기술을 접목한 유리 온실 속 주거 형태로, 일과 주거가 함께하는 집이다. 예로부터 농경지 주변에 자재 관리와 휴식을 위해 간이 공간인 농막을 지었는데 메타팜 유닛에서는 농막이 거주지로 변신한다. 온실에서는 기후나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간을 쉽게 정비할 수 있어 적은 에너지로 원하는 실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농촌에서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집에서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결국 지역에 정을 붙이고 정착하게 만드는 것은 문화생활의 유무에 달렸다. 문화생활이 도시와 농촌의 가장 큰 격차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러한 갈증을 해결하고자 건축가 김대균은 ‘컬티베이션 하우스Cultivation House’, 디자이너 나훈영은 ‘100% 키친’을 제시한다. 컬티베이션 하우스는 온실을 활용해 농촌에 문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목적이다. 서점이나 카페, 미술 전시 같은 문화와 교육의 장소, 결혼식 같은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 등의 요소가 교차하는 곳이다. 앞으로 만나CEA는 농업, 홈 가드닝, 음식 관련 콘텐츠의 팝업 스토어나 원데이 클래스 등을 정기적으로 열어 활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다. 인근 지역의 아티스트들을 초대해 전시나 공연을 여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평소 식문화에 관심이 많은 디자이너 나훈영은 식품 손실 문제에 한발 다가간 레스토랑을 선보인다. 스마트 팜을 활용해 신선한 채소로 식당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디자인했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모두 재활용한다는 의미도 있다.
50년 후를 생각하며 현재를 이어간다는 〈하우스비전〉의 목표가 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크리에이터들이 제안한 가능성이 가시화된 현장을 보면 상상 속 이야기가 가깝게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제안하는 농촌의 삶이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를 통해 소비 형태나 자원의 이용 방식, 일상생활 등이 건강하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house-vision.kr
하라 켄야
니폰 디자인 센터 디자이너
“ 현실적인 결과물을 통해 공감을 얻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하우스비전〉의 주제는 ‘농’이다.
처음 한국에서 〈하우스비전〉 개최가 논의되었을 땐 서울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했다. 그러다 개최 파트너로 만나CEA가 손을 잡아주면서 주제가 ‘농’으로 결정되었다. 만나CEA는 물고기 양식과 수경 재배를 연결한 최첨단 기술을 이룬 기업이다. 이들의 활동은 기존의 농업 이미지와는 매우 다르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등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 주거 환경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생활의 혁신을 위한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농업에 관심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일본 돗토리 대학교의 ‘지구 건조 지역 연구소’를 취재한 적이 있다. 건조한 사막에서 멜론 재배를 연구하는 대학교수에게 ‘농업은 식물의 힘을 빌려 태양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때 물보다 태양에너지가 농업에 더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온실에서 하이테크놀로지와 최소한의 물로만 토마토를 키우는 ‘스파르타식 재배’를 취재한 적이 있다. 물이 필요한 토마토는 공기 중의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열매 표피에 가는 솜털을 가득 만들어낸다. 이렇게 키운 토마토는 매우 달아서 채소라기보다 과일 같다. 아직 농업과 관련된 산업 프로젝트를 담당한 적은 없지만 앞서 언급한 경험으로 ‘농’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농업은 미래의 주요 산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싶었다.
이번 전람회는 여느 해와 다르게 코로나19로 몇 차례 연기되었다가 열리는 것이다. 진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코로나19는 여러 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적으로 단독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건축자재 수요도 증가하는 ‘우드 쇼크’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당초 예산으로 지을 예정이던 건물 몇 채를 짓지 못했다. 서울과 도쿄의 왕래가 불가능해지면서 현지 시찰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어려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고 일본 스태프가 한국에 상주하며 연락을 주고받는 등 여러 방법을 강구해 끊임없이 의사소통을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개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서울과 도쿄의 강한 의지가 있어 전람회 개최가 가능했다.
(우) 메타팜 유닛 내부.
한국에서 열리는 〈하우스비전〉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개최한다고 해도 〈하우스비전〉의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 집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도 아니고 건축적 야심의 발로도 아니며 부동산 상품도 아니다. 〈하우스비전〉이 말하는 집은 ‘산업의 교차점’이다. 에너지, 통신, 이동, 물류, 커뮤니티, 저출산, 고령화 사회, 농업, 식재료 등 모든 것이 집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즉 〈하우스비전〉은 21세기 중용을 향한 산업의 추세를 전망하는 전람회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고 50년 후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그럼에도 특징을 꼽으라면 〈하우스비전〉 책에 실린 ‘Stories-집을 통한 공상·가상 스토리’다. 건축가들이 제안한 집에서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상상하며 짧은 이야기를 써 넣었다. 건축가와의 새로운 대화법 중 하나라 이해하고 그들의 해설문과 함께 읽으면 좋겠다.
앞으로 농촌 인프라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하나?
도시에 집약된 생활을 교외로 시선을 돌려 새로운 관점으로 미래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부동산값이 폭등한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가 푸드 마일리지다. 이산화탄소를 대량 소비하며 식재료를 운반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지역에서 자체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각 가정마다 직접 채소를 키워 소비하는 방법 등을 고민해봐야 하고 쓰레기양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레스토랑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음식과 관련된 문제를 방관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디자인이 농업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디자인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가시화하는 것’이다. 〈하우스비전〉에서 ‘농’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미래 ‘농’의 형태와 라이프스타일, 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결과물을 통해 공감을 얻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트 식단이 아닌 메인 요리로도 충분한 채소 요리, 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과 유통 서비스 등을 제안하는 것도 디자인이다.
글 박은영 객원 기자
담당 박종우 기자 사진 이동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