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파베르 (Homo Faber)

2018년 시작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예 비엔날레 ‘호모 파베르’가 긴 공백을 깨고 두 번째 행사를 열었다.

호모 파베르 (Homo Faber)
후쿠사와 나오토가 일본 장인 12명의 공예

2018년 시작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예 비엔날레 ‘호모 파베르’가 긴 공백을 깨고 두 번째 행사를 열었다. 지난 4월 10일부터 열린 행사에는 350명 이상의 장인들이 참여해 850여 점의 작품을 총 15개 전시에 걸쳐 선보였다.

호모 파베르는 이탈리아 베니스로 장인들과 전 세계 관람객을 불러 모아 멋진 쇼케이스를 제공하는 한편, 작업을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자리 잡고자 여타 공예·디자인 전시와 차별화된 기획과 구성을 선보여왔다. 팬데믹으로 계획에 없던 휴식기를 가졌던 이 행사는 올해 오랜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유럽의 모든 공예 기술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 2018년과 달리 올해는 자동차나 복원 기술 전시는 제외했고, 대신 공예로 인식하기 어려운 요리와 화훼 장식을 포함시켰다. 귀빈국으로 일본을 선택한 것도 유럽 관람객에게는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의 큐레이션으로 완성한 〈12개 돌의 정원(12 Stone Garden)〉에서는 대나무 직조, 옻칠, 기모노, 섬유 염색 장인을 포함한 국보급 인간문화재 12명의 작품을 기하학적 형태의 흰색 스탠드 위에 질서정연하게 배치했다. 독립된 섬처럼 한 작품씩 떨어진 구성으로 360도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고, 벽면에서는 사진작가 린코 가와우치가 촬영한 작업 과정 영상이 상영돼 지구 반대편의 작업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디자이너의 명성에 비해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전시 디자인이라는 비평과 함께, 짧은 영상으로는 장인 12명의 제작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무대미술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큐레이팅한 〈평화와 어둠을 기다리며(Waiting with Peace and Darkness)〉는 모두가 입을 모아 호모 파베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시라 평했다. 일본에서 영감을 받은 가구와 자신의 연극에 사용하려고 제작한 의상, 평생 수집한 일본 공예품이 1960년대 수영장을 아름답게 채웠다. 일본 전통 무용 안무가 스즈시 하나야기의 얼굴과 손, 발을 담은 사진이 걸린 터널을 지나면 눈앞에 넓은 수영장이 펼쳐져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세심하게 계산된 푸른 조명과 로버트 윌슨이 작업한 음향 효과가 더해져 1993년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일본 현대 세라믹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다이조 구로다의 도자기들이 놓인 전시장은 명상을 위한 공간으로도 손색없어 보였다. 정해진 동선 없이 자유롭게 공간을 거닐며 오감으로 현대 공예의 아름다움과 중요성, 동서양 문화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시너지까지 느낄 수 있었다. 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으로 친숙한 이탈리아 디자인 듀오 자넬라토/보르토토Zanellato/Bortotto가 큐레이터로 참여한 〈트레이싱 베니스Tracing Venice〉는 금속 가구 전문 제조 회사 데 카르텔리De Castelli와 협력해 베니스 산마르코 대성당의 훼손된 모자이크 바닥 패턴을 재현한 의미 있는 전시였다. 구리, 황동, 강철을 사용해 약 50가지의 산화 및 붓질 기법으로 처리했는데, 중간중간 패널이 떨어진 듯한 빈자리는 얼핏 미완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실제 대성당 바닥이 홍수로 인해 침식되었다는 것을 전하기 위한 의도다. 그 자체가 오랜 세월을 견뎌낸 대성당에 대한 찬사였던 것. 젊은 학생과 장인의 협업도 호모 파베르에서 빠뜨릴 수 없다. 올해는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 학생들이 시계 무브먼트 제작 장인과 함께 만든 5점의 조각을 선보였다. 〈기계적 경이(Mechanical Marvels)〉는 석사 연구 프로젝트의 일부로, 국적이 다른 4명의 학생이 2년간 스위스 쥐라 지역 장인들과 협업해 완성한 결과물을 발표하는 전시였다. 시각·음향 효과를 결합하고 간단한 크랭크를 감아 다양한 자동 장치에 생명을 불어넣어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미래적 디자인이 특징으로,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인 오르골과 시계 제작 장인의 기술에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합쳐져 전통을 넘어선 미래 장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전시관 밖에서도 전시를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베니스의 공방과 쇼룸 등 100여 곳이 전시 기간 동안 특별히 문을 열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특수한 공예 기술을 홍보할 기회를 얻었다. 누구나 앱을 통해 방문을 예약할 수 있으며, 곤돌라 제작 공방이나 베니스의 유일한 섬유 제작 공방 등 평소에 갈 수 없었던 곳의 방문이 가능했다.

올해 호모 파베르는 일본을 초대함과 동시에 다양한 공예 관련 기관과 협력을 통해 영역의 확장을 꾀했다. 저명한 디자이너, 큐레이터, 건축가로 구성된 팀은 장인 정신의 또 다른 측면과 다양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homofaber.com
글 양윤정 통신원 담당 박종우 기자 자료 제공 미켈란젤로 재단

미켈란젤로 재단과 무라노를 대표하는 유리공예 회사 베니니Venini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개화의 미(Blossoming Beauty)〉전. 10명의 플로리스트가 2~3일마다 꽃을 교체해 전시 내내 생화의 아름다움이 유지된다.

주최 미켈란젤로 재단(Michelangelo Foundation), hmichelangelofoundation.org
전시 감독 미켈레 데 루키, 후카사와 나오토, 주디스 클락, 세바스찬 헤르크너, 로버트 윌슨 등
기간 4월 10일~5월 1일
장소 폰다치오네 조르조 치니Fontacione Giorgio C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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