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생각한 디자인의 경험 〈드당: 집의 감각〉
〈Dedans: The Feeling of Home〉 디자인을 ‘감상’에서 ‘일상’으로
파리 디자인 위크 2026에서 디자인을 일상의 경험으로 풀어낸 전시 〈드당: 집의 감각(Dedans: The Feeling of Home)〉이 눈길을 끌었다. 마레 지구 세르비스 콩티뉘에서 열린 이 전시는 디자인을 감상 너머, 생활 안에서 체감하는 방식으로 제안했다.


지난 9월 10일부터 19일까지 파리 전역에서 펼쳐진 파리 디자인 위크(Paris Design Week 2026). 450여 개의 쇼룸과 갤러리, 기관 등이 참여한 올해 행사에서 디자인을 보다 친근한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마레 지구의 ‘세르비스 콩티뉘(Services Continu)’에서 열린 〈드당: 집의 감각(Dedans: The Feeling of Home)〉은 디자인을 감상하는 대상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바라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왜 디자인은 보는 대상으로만 제시되는가?”라는 질문을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은 ‘드당’은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 올리비에 르키에(Olivier Requier)와 티보 배스(Thibault Baes), 터키계 스페인 디자이너 파블로 시난 아크귈(Pablo Sinan Akgül), 한국인 건축가 박민규가 함께 기획한 첫 독립 프로젝트다. 네 명 모두 파리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첫 번째 에디션의 주제를 ‘집의 감각(The Feeling of Home)’으로 정했다.


약 150㎡ 규모의 공간은 일반적인 전시장과 달리 거실과 다이닝룸, 침실로 구성된 하나의 아파트처럼 꾸며졌다. 작품을 개별적인 피스로 분리해 보여주는 대신 의자에는 앉고, 테이블에는 물건을 올려놓고, 조명은 실제 공간을 밝히도록 했다. 관람객에게 정해진 동선을 제시하거나 작품을 받침대와 유리 진열장 안에 가두는 대신, 실제 사람이 생활하는 집처럼 여러 사물과 작품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도록 연출한 것이다.

공식 소개 역시 관람객을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공간의 ‘손님’으로 초대하고, 작품을 만지고 참여하며 그 맥락 안에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을 전시의 중요한 목표로 설명한다. 이러한 방식은 ‘드당’이 표방하는 접근성(accessibility)과도 맞닿아 있다. 디자인을 특정 업계나 전문가만을 위한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식 소개에서도 ‘드당’은 배경이나 직업, 예산과 관계없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자인 경험을 지향한다고 밝힌다.



이번 첫 에디션에는 11개국에서 온 42명의 디자이너와 아티스트가 참여했다. 신진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가구와 조명, 오브제, 세라믹, 텍스타일 등 다양한 작업을 한데 모았지만, 작품을 개별적으로 나열하기보다 생활 공간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도록 배치했다. 공동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참여한 박민규를 비롯해, 수납과 구조적 세라믹 제작에 주목하는 클레멍틴 롱(Clémentine Long), 지역의 재료와 제작 과정에 주목하는 플로리앙 메카(Florian Meca) 등 서로 다른 배경과 접근 방식을 가진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한 공간에 어우러졌다. 특히 재료의 물성과 촉각적 경험을 강조한 작업들이 일상의 가구와 오브제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이며, 하나의 집 안에서 각 작품이 독립된 존재이면서도 서로 관계를 맺는 전시의 성격을 만들어냈다.

파리 디자인 위크가 10일간 파리 곳곳에서 수백 개의 장소를 연결하는 대규모 디자인 행사라는 점에서, ‘드당’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독립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직접 만지고 공간에 머물며 예상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 기획자들이 의도했던 ‘디자인과 실제 생활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경험’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됐다. 전시를 시작한 지 불과 며칠 만에도 긍정적인 반응과 작품에 대한 문의가 이어졌다는 것이 박민규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이렇게 ‘드당’의 첫번째 에디션은 디자인을 소개하는 또 하나의 전시라기보다 보여주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과 작품을 사용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전시장을 잠시 자신의 집처럼 경험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실험을 시작한 네 명의 큐레이터 가운데 한 명인 박민규 건축가를 만나 ‘드당’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집의 감각’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하나의 공간으로 구현됐는지 들어봤다.
Interview
박민규 건축가·디자이너
‘왜 디자인은 보는 대상으로만 제시되는가?’라는 질문이 전시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했다. 실제 전시를 기획하면서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고자 했나?
사물 자체로서의 존재 외에 반드시 사용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직접 사용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해석해야만 디자인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본다. 그러니 작업물이 박물관의 유물처럼 전시된다면 그런 본질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방문객이 실제로 만져보고, 앉아보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디자인이 실제 생활과 맞닿아야 비로소 그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집의 감각’은 네 명의 큐레이터가 공유하는 이주 경험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 파리로 온 본인에게 ‘집’은 어떤 의미이며, 그 개인적인 경험이 이번 전시에 어떻게 반영됐나?
처음으로 온전히 나의 공간이라고 느낀 곳은 침대와 책상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작은 공간과 공유 부엌이 있었던 파리의 첫 기숙사였다. 책상이 작업대이자 식탁이 되기도 했고, 물건들은 침대와 책상을 옮겨다니며 공간의 기능을 확장시켰다. 이는 개인적 경험을 넘어 네 명의 큐레이터를 포함해 파리에 사는 많은 젊은 이주자들의 당연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시는 특정 아파트를 재현하기보다 우리가 살았던 과거와 현재 살고 싶은 미래를 함께 아카이빙하는 공간으로 정했다.

약 42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했다. 작품을 선정하고 배치할 때 큐레이터들이 공유했던 기준은 무엇이었나?
전시의 주제가 ‘집’인 만큼, 이 공간을 실제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도록 하는데 집중했다. 그래서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카펫을 찾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작품 배치에도 매일 변화를 줬다. 실제 집에서도 가구나 소품들을 재배치 하니까 말이다. 어떤 날은 옷을 침대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책이나 신문을 아무 곳에나 두기도 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데코까지 고려해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처럼 느껴지는 공간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금 젊은 세대의 디자이너들에게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금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무모함’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무모함으로 이번 전시를 시도한 것 같다. ‘일단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1년도 안되는 사이에 전시를 기획하고 갤러리와 디자이너들을 직접 컨택하면서 결과를 만들었다. 참여한 디자이너들도 금전적 보상보다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함께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태도가 현재 젊은 디자이너들이 가진 공통점인것 같다. 일단 한번 해보려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요함을 이번 경험을 통해 느꼈다.


그런 태도 외에 작업의 스타일이나 방향성에서도 공통적인 흐름이 있는지?
‘물성’의 중요성이다. 각자 사용하는 매체는 다르지만 이번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보면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소재에서 오는 시각적, 촉각적 경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천에 우레탄을 코팅해 화병을 만드는 이흥열 작가의 작품들은 독특한 물성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유연함을 관람객들이 재미있어 했다. 구슬을 이용해 작업한 김신재 작가의 작품 역시 빛이 산란되는 모습 때문에 흥미로운 반응을 얻었다. 이런 식으로 재료에 대한 실험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물성이 관람객과 만나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신진 디자이너 플랫폼과는 어떤 차별점을 만들고 싶나?
매년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 안에서 신진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잘 선별해 보여주고 싶은 바램이다. 다만 기존의 디자인 페어 형식이 아닌 소규모 갤러리와 대규모 페어 사이의 중간 지점을 생각한다. 작품이 실제로 어떻게 공간에 녹아들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인큐베이팅 플랫폼이면서, 관람객에게는 디자인을 일상 생활 속에서 경험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느끼는 두 국가가 가진 디자인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가 있나?
한국 디자인의 특징은 전통적인 문양이나 형태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고유의 방식으로 응용하려는 태도에 있다. 그런 점은 유럽의 디자이너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다른 부분이라고 느꼈다. 디자이너 개인의 역량이나 작업 자체만 본다면 한국과 유럽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한국 디자이너가 가진 장점이 더 많다고 느낀다.
다만 그것을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시스템이나 관객의 환경에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유럽 시장에 더 많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파리에서 활동한다는 장점을 활용해 앞으로 개인 작업 외에 이런 기획을 통해 한국의 이머징 디자이너들을 프랑스에 알리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