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뉴 앙상블’
렌초 피아노에서 피터 춤토르로 이어진 철학
1997년 렌초 피아노의 설계로 문을 연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모습으로 확장했다. 피터 춤토르가 설계한 세 개의 신축 건물은 각기 다른 재료와 기능을 바탕으로 예술과 건축, 자연의 조화를 이어간다. 기존 정원과 역사적 건물까지 새롭게 단장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Fondation Beyeler)이 개관 3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모습으로 확장했다. 1997년 스위스 바젤 인근 리헨에 문을 연 이곳은 1950년대부터 바젤에서 갤러리를 운영한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와 힐디 바이엘러(Hildy Beyeler)의 근현대미술 컬렉션에서 시작됐다. 자신들이 오랜 시간 모은 소장품을 대중과 나누고자 미술관을 구상하던 이들은 당시 파리 퐁피두센터와 휴스턴 메닐 컬렉션을 설계한 렌초 피아노(Renzo Piano)의 작업에 깊은 인상을 받아 별도의 공모 없이 설계를 맡겼다. 이들이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예술과 건축, 자연의 조화였다. 피아노는 건물을 공원의 풍경 속에 낮게 배치하고, 자연광이 스며드는 전시실과 외부를 향해 열린 창을 통해 이들의 비전을 건축으로 구현했다.

사진 Iwan Baan / Louise Bourgeois, Maman (1999) © The Easton Foundation / 2026, ProLitteris, Zurich

이번 확장은 2016년 세계 각국의 11개 건축팀이 참여한 설계 공모에서 피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안이 만장일치로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춤토르는 하나의 거대한 건물을 증축하는 대신 서로 다른 기능과 물성을 지닌 세 개의 건물을 풍경 속에 배치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예술과 건축, 자연의 관계를 중시해 온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정체성을 이어받아 미술관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새롭게 들어선 것은 와이스 뮤지엄(Wyss Museum)과 암만 파빌리온(Ammann Pavilion), 토어하우스(Torhaus)다.

와이스 뮤지엄은 3개 층에 걸쳐 1,500㎡의 전시 공간을 갖춘 새로운 미술관이다. 기존 미술관과 함께 재단 소장품과 주요 개인 컬렉션의 대여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춤토르는 주변의 오래된 나무를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설계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오래된 은행나무와 거대한 세쿼이아, 플라타너스 군락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평면을 Y자 형태로 설계했고, 전시실의 커다란 창은 그 사이로 펼쳐지는 풍경을 프레임처럼 담아냈다.



재료에서도 장소와의 관계가 이어진다. 건축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현지에서 조달한 쥐라 석회암이다. 같은 돌을 벤치와 계단에는 자연석으로, 바닥에는 테라초로, 벽에는 플라스터로 사용하고 외벽에도 활용했다. 하나의 재료를 서로 다른 질감과 형태로 변주하며 공간 전체를 연결한 것이다. 렌초 피아노가 빛과 시선을 통해 미술관 내부와 자연의 경계를 열었다면, 춤토르는 기존의 나무와 지역의 돌을 건축을 결정하는 요소로 끌어들였다. 자연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이 처음부터 지켜 온 철학은 그대로 이어진다.

와이스 뮤지엄이 돌의 묵직한 물성을 강조한다면, 암만 파빌리온은 유리와 나무로 한층 가볍고 열린 공간을 만든다. 두 미술관과 역사적 건물 사이에 자리한 파빌리온은 낮에는 누구나 머물 수 있는 라운지로, 저녁에는 콘서트와 아티스트 토크, 영화 상영, 퍼포먼스가 열리는 문화 공간으로 기능한다. 공원을 향한 유리 파사드는 따뜻한 계절에는 열 수 있으며, 내부에는 목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공연에 적합한 음향 환경을 조성했다. 단순히 전시 공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까지 미술관의 경험으로 끌어들였다.


세 번째 신축 건물인 토어하우스는 공공 공간과 미술관을 잇는 관문이자 작품의 반입과 전시 준비, 업무를 담당하는 지원 시설이다. 지하로 와이스 뮤지엄과 연결되며, 지역의 농업 건축을 연상시키는 목조 프레임과 착색한 참나무 외관으로 주변 풍경 속에 자리를 잡는다.


The expanded Ensemble of the Fondation Beyeler, Ammann Pavillon by Atelier Peter Zumthor. 사진 Katalin Deér
이번 확장은 건축뿐 아니라 미술관을 둘러싼 풍경과 기존 공간까지 아우른다. 2015년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기존 부지와 맞닿아 있던 사유지인 ‘에를렌가르텐(Erlengarten)’을 확보했다. 19세기 초 조경가 장 프랑수아 카이야(Jean-François Caillat)가 영국식으로 조성한 이곳은 약 200년 된 나무와 연못, 초지가 보존된 정원이다. 재단은 정원을 보존하면서 연못 위에 피터 춤토르가 설계한 다리를 놓고, 기존 바이엘러 파크와 연결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열었다. 두 정원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공원의 면적은 거의 두 배로 넓어졌고, 미술관의 경험 역시 건물 밖으로 한층 더 확장됐다.

기존에 있던 역사적인 건물들도 새롭게 단장했다. 암만 아틀리에(Ammann Atelier)는 예술 교육을 위한 스튜디오와 음악을 감상하는 살롱으로 바뀌었고, 오랑주리(Orangerie)는 디자이너 인디아 마다비(India Mahdavi)의 손을 거쳐 온실과 식물 애호가를 위한 상점이 결합된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작은 신전을 닮은 폴리(Folly)는 실험적인 전시를 위한 프로젝트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The expanded Ensemble of the Fondation Beyeler, Orangerie. 사진 Mark Niedermann
1997년 렌초 피아노가 구현한 예술과 건축, 자연의 조화는 30년이 흐른 지금 피터 춤토르와 다시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시대의 건축과 자연을 하나의 풍경으로 잇고, 전시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머물고 경험하는 곳으로 미술관의 영역을 넓히는 것. 이것이 오늘날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이 지향하는 ‘뉴 앙상블(The New Ensemble)’이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뉴 앙상블(The New Ensemble)’
프리뷰 기간 2026년 9월 26일 – 2027년 1월 14일
전면 개관 2027년 1월 15일
홈페이지 fondationbeyeler.ch
글 장수연 해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