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무한, 쿠사마 야요이를 만나는 세계의 장소 5

미술관부터 호텔, 전용 갤러리까지

쿠사마 야요이는 평생에 걸쳐 점과 그물, 호박 등의 모티프를 집요하게 반복하며 '자기 소멸'과 무한의 세계를 구축했다.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암스테르담의 회고전과 나오시마의 노란 호박 등 세계 곳곳에 남아 영원히 이어지고 있다.

끝나지 않는 무한, 쿠사마 야요이를 만나는 세계의 장소 5

지난 8월 14일,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가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쿠사마 야요이 미술관과 재단은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작업을 이어갔다고 전했다. 점과 그물, 호박과 거울. 쿠사마는 평생 몇 개의 모티프를 집요하게 반복하며 회화에서 조각, 퍼포먼스, 공간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1950년대 말 뉴욕에서 발표한 ‘Infinity Nets’에서 시작된 반복은 장식에 머물지 않았다. 거울과 빛을 만나 끝없는 공간으로 확장됐고, 결국 작가 자신과 관객의 경계마저 지우는 ‘자기 소멸(Self-Obliteration)’로 이어졌다.

그가 남긴 무한은 지금도 여러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암스테르담에서는 70여 년의 작업을 아우르는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나오시마의 바닷가에는 노란 호박이 서 있다. 덴마크에서는 거울과 빛이 작은 방을 끝없이 확장하고, 인천에는 거대한 호박 조각이, 브라질에는 쿠사마 야요이만을 위한 갤러리가 자리한다. 다섯 곳에서 이어지는 쿠사마의 세계를 살펴본다.

점에서 우주까지, 쿠사마의 70년

장소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
기간 2026년 9월 11일 ~ 2027년 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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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eter Tijhuis © YAYOI KUSAMA

쿠사마의 70여 년을 펼쳐놓은 대규모 회고전이다. 고향 마쓰모토에서 그린 초기 드로잉부터 1950~60년대 뉴욕의 ‘Infinity Nets’와 소프트 스컬프처, 퍼포먼스, 그리고 도쿄에서 이어온 최근 회화까지. 회화와 조각, 설치, 패션을 넘나들며 점과 그물, 반복과 증식이라는 언어가 어떻게 확장됐는지 보여준다. 스위스 바이엘러 재단과 독일 루트비히 미술관을 거친 유럽 순회전의 마지막 무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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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ark Niedermann © YAYOI KUSAMA

스테델릭과 쿠사마의 인연은 60여 년 전으로 이어진다. 그는 1960년대 이곳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1963년작 ‘Aggregation: One Thousand Boats Show’ 역시 미술관 컬렉션에 남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 실험과 함께 2025년 제작한 새로운 ‘Infinity Mirrored Room’도 만날 수 있다. 노란 촉수처럼 뻗은 형태와 물방울무늬가 거울 속에서 끝없이 복제되며 관객까지 반복 속으로 끌어들인다. 작은 점에서 출발한 세계가 캔버스를 넘어 사물과 방, 관객의 몸까지 점유해온 과정을 한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다 끝에서 만나는 호박

장소 일본 나오시마
기간 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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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Garrett Ziegler

나오시마에서는 섬을 이동하는 동안 쿠사마의 주요 작업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미야노우라항에는 거대한 ‘Red Pumpkin’이 서 있고,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앞 부두 끝에는 노란 ‘Pumpkin’이 바다를 향해 놓여 있다. 1994년 야외전 〈Out of Bounds〉를 위해 제작된 ‘Pumpkin’은 전시 이후에도 자리를 지키며 나오시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두 호박 모두 쿠사마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점과 반복을 입체로 옮긴 작업이지만, 관람 방식은 사뭇 다르다. ‘Red Pumpkin’은 내부로 들어갈 수 있고, ‘Pumpkin’은 바다와 부두를 배경으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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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asatomo Moriyama

섬 안쪽의 밸리 갤러리(Valley Gallery)에서는 ‘Narcissus Garden’이 이어진다. 1,700개의 스테인리스 미러볼이 건물 안팎과 수면 위에 펼쳐져 하늘과 나무, 사람의 움직임을 조각조각 비춘다. 1966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이 나오시마에서는 대규모 설치로 다시 구성됐다. 햇빛의 방향과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수백 개의 구체에 비치는 이미지도 계속 달라진다. 항구의 붉은 호박에서 부두 끝의 노란 호박, 셀 수 없이 이어지는 거울 구체까지. 쿠사마가 평생 반복해온 증식과 반사의 언어를 섬을 오가며 여러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100개의 빛으로 만든 무한

장소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기간 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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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가로세로 4m 남짓한 방에 매달린 전구는 단 100개.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숫자는 금세 의미를 잃는다. 벽과 천장을 두른 거울, 바닥을 채운 수면에 빛이 거듭 반사되며 공간의 끝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2008년작 ‘Gleaming Lights of the Souls’는 쿠사마의 인피니티 룸 가운데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이 상설 소장한 작품이다. 관객은 물 위에 마련된 좁은 플랫폼에 서서 천천히 색을 바꾸는 빛에 둘러싸인다. 거울 속에는 전구뿐 아니라 자신의 모습까지 수없이 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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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루이지애나는 2015년 스칸디나비아 최초의 쿠사마 회고전 〈Yayoi Kusama – In Infinity〉를 열었고, 이후 이 작품을 컬렉션에 남겼다. 화려한 효과 뒤에서 작동하는 원리는 오히려 단순하다. 반복과 반사로 실제 공간의 크기를 무너뜨리고, 그 안에 선 관객마저 이미지의 일부로 만든다. 쿠사마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무한’과 ‘자기 소멸’을 몇 분의 체험으로 압축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2.5m의 거대한 호박

장소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기간 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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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aradise City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적인 호박 연작을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파라다이스시티 호텔 로비의 ‘WOW ZONE’에 설치된 ‘Great Gigantic Pumpkin’은 높이 2.5m, 폭 2.6m 규모의 대형 조각이다. 노란 몸체를 따라 검은 점이 촘촘히 이어지고, 둥글게 부풀어 오른 형태와 울퉁불퉁한 굴곡이 호박 특유의 볼륨을 과장한다.

호박은 쿠사마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그려온 소재다. 그는 매끈하지 않은 형태와 묵직한 부피, 친근하면서도 기묘한 인상에 매료됐고, 이후 회화와 판화, 조각으로 끊임없이 변주했다. 파라다이스시티의 작품은 그 오랜 모티프를 기념비적인 크기로 확대한 사례다. 미술관이 아닌 호텔 로비 한가운데 놓인 덕분에 작품을 대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 체크인과 이동이 오가는 공간에서 불쑥 마주치는 거대한 호박은 쿠사마가 평범한 사물을 얼마나 강한 이미지로 바꾸어왔는지를 보여준다.

무한을 위한 두 개의 방

장소 브라질 이뇨칭
기간 상설

브라질 이뇨칭에는 쿠사마의 작품을 위한 독립 갤러리가 있다. 2023년 문을 연 약 1,437㎡ 규모의 건물로, 페르난두 마쿨란(Fernando Maculan)과 마리아 파스(Maria Paz)가 두 설치 작품의 조건에 맞춰 설계했다. 이뇨칭이 작가별로 독립된 전시관을 운영해온 방식과 쿠사마의 몰입형 작업이 만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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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Pedro Mo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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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Daniela Paoliello

상설 전시되는 작품은 ‘I’m Here, But Nothing'(2000)과 ‘Aftermath of Obliteration of Eternity'(2009). 전자는 소파와 테이블, TV가 놓인 거실을 형광색 물방울무늬로 뒤덮어 일상적인 공간 감각을 흔든다. 반면 후자는 어둠 속 작은 황금빛 등이 거울에 끝없이 복제되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설치다. 하나는 점으로 공간을 잠식하고, 다른 하나는 빛과 어둠으로 경계를 지운다. 쿠사마가 평생 탐구한 ‘자기 소멸’을 서로 다른 감각으로 풀어낸 두 작품을 나란히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곳의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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